어머니 공부 - 치매 어머니와 시장터에서 느리게 살기
이동현 지음 / 필로소픽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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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치매와 그외 중병에 걸리면 요즘은 대부분 '요양병원'이나 그외 시설에 많이 가시게 한다.그리곤 시간을 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병원비나 대는 것이지 정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나 또한 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드리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폐암이라는 소리를 듣고나니 덜컥 이제 아버지를 누가 맡아야 하나하는 생각부터 들게 되었다.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게 된다면 아니면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된다면 그 뒷일을 누가 다 맡아서 할 것인가? 분명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 자식들이 있으니 모두 모여 상의를 해야했고 모두 모여 의견을 내지만 이유 없는 자식이 없다. 모두 이래저래서 안된다는 말뿐이지 선뜻 나서서 맡아서 자신이 모두 멍에를 짊어지겠다는 자식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서일까 그래도 보내 드리고 너무 많이 못한 일들이 사뭇쳐 아버지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서지만 그래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내가 함께 아버지 옆에서 수발을 들었던 그 귀한 시간들이 내 삶에 영양분처럼 날 지탱하게 해 준다. 그렇다고 홀로 계신 엄마를 좀더 챙겨 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 뒤돌아 서면 잊고 만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기에.

 

그런데 저자는 70중반에 치매가 온 어머니를 출퇴근 길에 함께 하면 극진히 봉양을 한다. 정말 부모님은 낳으실 제 괴로움을 다 잊은신듯 자식을 위해 허리가 휘도록 젊은 시절 열심히 두 손에 지문이 다 닳도록 하숙일을 하시며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런 어머니의 인생을 어쩌면 다시금 반추해 보는,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자신이 어머니 인생을 통해 인생이란 것을 다시 배우고 있음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모두 담아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백프로 모두를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지난날의 과거의 모든 것들,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가 잊어가고 있는 그 기억들은 아들인 장자는 다시금 불씨를 되살려내듯 하나하나 다시금 불씨를 집히고 있다. 우리 친정엄마고 그러지시만 다른 병은 걸려도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 한다며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시골동네에 엄마와 연세가 같으신 분이 치매에 걸리신 분이 계셨다. 날마다 동네가 떠들썩 하기도 하고 자식들은 어머니를 찾아 온통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도 그 넓은 들로 찾아 다니기를 밥먹듯 하니 나중에는 어머니께 점점 험한 말도 하고 어머님이 알아 듣지도 못하는데 하지 말아야 말과 행동을 일쌈는 것을 보았다. 그 어머님 울집 밭에서도 늘 고추며 콩이며 한참 수확을 하려면 따가서 엄나도 나중에는 혼잣말로 속상하다고 하시면서도 가슴 한 켠에는 불쌍한지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혀.' 하고 늘쌍 하셨다.

 

그렇게 치매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옆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다른 병 또한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가치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은 정말 슬픈일인듯 하다. 그런데 저자는 부모님의 과거가 모두 저장되어 있고 할머니와 외할머니까지 함께 사시다 가셨던 북아현동의 저잣거리 집을 다시 수리를 하여 부모님과 함께 한다. 어머니의 치매가 좀더 깊어진 다음에는 아예 출퇴근도 함께 하고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한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한다.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고 좋은 것이 있다면 그가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의 치매가 아니었다면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것이란 말이 와 닿는다.그런 어떻게 보며 고지식하고 세상과 소통이 그리 많이 않았던 아들이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많은 돈을 들여 집도 수리하고 마당에 감나무며 매화나무며 대추나무도 심어 사계절을 느끼고 집안에 새로운 가구와 가전제품을 들여 놓는다.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변화였는데 무엇보다 큰 것은 차를 장만한 것이다. 운전도 못하면서 차를 장만하여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고 맛난것 한번 사드시지 못한 부모님과 함께 드라이브를 한다는,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되지 않았을까.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중병에 걸리면 물론 요양기관에 맡기면 잘 알아서 돌봐드리겠지만 무엇보다 더 안정감을 갖고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인듯 하다. 우리 부모님들도 병원에만 가시면 하시는 말씀이 '집에 가야지 여기에 못 있는다.밭에도 가봐야하고 수확도 해야 하고..' 늘 집걱정이셨다. 그렇다고 옆에 다른 사람을 시켜 돌봐드리라고 할수도 없는 처지, 그럴정도가 아니었기에 내가 시간을 내어 함께 했는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난 정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평생 후회하며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병간호를 한다는 것은 '문병인'이 아니고 '간병인'이라면 누구나 힘들다. 문병인들은 알지 못하는 환자와 나누는 세세한 것들을 나 또한 알고 있었고 처음엔 서로 맞지 않는듯 하면서도 가족이기에 서로가 잘 통하고 금세 우린 어느 누구도 부러워하는 짝이 되어 아버지를 돌봐드렸다. 저자 또한 요양병원에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아버지가 그 말씀을 한번 꺼냈지만 정말 본전도 찾지 못하고 아들에게 혼자고 마셨다. 남이 못하는 부분을 가족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느꼈겠지만 남이 보는 시선에서는 또 그렇지가 않다.요즘은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세상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면서 우린 자식에게 나중에 어떤 거울이 될지 생각도 못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그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것은 어머니가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자신도 모셔야 된다고 당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그 일로 그는 상을 받기도 한다. 안받겠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받게 되는 효자상, 그 앞에서 해맑게 웃으시는 어머니가 평안한 모습이다.

 

'어머니를 찾아 가는 길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자신들을 돌보고 키웠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살아오듯 부모님에게 못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세상공부 인생공부를 하게 되는 그의 이야기는 진솔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물론 극진히 봉양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점점 드문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우리 또한 나이를 먹을 것이고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우리도 그런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세상은 병이란 것이 나이를 따라 오는 것이 아니고 젊은 사람도 노인들이 걸리는 병에 걸리는 것이 보통의 일이 된 세상이다. 자신의 뿌리가 박힌 곳에서 어머니의 인생을 그리고 아버지의 인생을 함께 지켜가며 지천명이라는 나이에 비로소 어머니로 인해 세상을 다시 보는 인생 공부를 하는 그의 담담한 이야기가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당연한 것이 외면 당하는 세상,난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면서 내 자식은 우리를 모셔주길 원한다면 그것이 생각처럼 될까. 본대로 배우고 익히게 되어 있는데 과연 자식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치매환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평안하신 어머님의 얼굴이 좋다. 좀더 오래 아드님의 곁에서 평안하시고 아프시지 않고 오래사시길 바라며 많이 가져서 부자가 아니라 그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품고 있어서 부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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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들빼기꽃과 파프리카꽃

 

 

 

 

 

왕고들빼기가 드뎌 꽃을 피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녀석인데 오늘 실외기 베란다의 화분들 물을 주다보니

이녀석 활짝 피어 있다.. 앙큼한 녀석.. <<너 이름이 뭐니......?>> 라고 물으면

<<나.....씀바귀요...>> 할 것만 같은 씀바귀과의 녀석이라 그런지

산길에서 많이 봤던 씀바귀꽃과 비슷 비슷..하지만 조금 크네..

 

이녀석 지난 여름에 옆지기가 저녁 시간에 동네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너무도 많아 뜯어다 삶아서 무쳐 먹고 또 많이 뜯어서 왕고들빼기장아찌도

담아 놓은 녀석인데 그때 이녀석이 뿌리채 우리집에 와서 이렇게 살게 되었다.

가을은 가을인가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보니

결실의 계절이 맞긴 한가 보다.언제 꽃이 피나 하고 몽오리만 바라보던 시간,

이녀석 이렇게 소박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니...

 

파프리카꽃

 

 

뭐냐고요...여름엔 겨우 하나씩 파프리카를 달고 있던 녀석들이

장마도 지나고 태풍도 지나고나니 이렇게 꽃이 다닥다닥...

물론 열매로 거듭나고 있는 녀석도 많다.여름엔 꽃이 이어서는 모두 떨어져 내리더니

이젠 비바람을 이겨낸 후라 그런지 꽃이 떨어지지 않고 열매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

 

파프리카꽃은 고추과라 그런지 고추꽃이나 똑같다.

그런데 이녀석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 소박하다.

시골아낙네 같은 수줍음을 간직한 꽃이다.

 

 

 

 

이녀석은 이름을 모르겠다. 예전에 야생화 구경을 갔다가 데려온 녀석인데

화분 하나에 모두를 함께 심어 놓아서리 뭐가 어느 녀석인지 잘 모르겠다.

무늬조팝도 아니고 암튼 이녀석 그동안 꽃을 보여주지 않더니

요즘은 심심하면 꽃을 피우고 있다.가지끝에 이렇게 다닥다닥 작은 꽃몽오리를 달고

하얗게 하얗게 이쁜 꽃을 나팔불듯 피우고 있다.

<<너 정말 이름이 뭐니.......?>>

 

 

201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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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김치에 청양고추 옥수수알을 넣은 내맘대로 김치전

 

 

밀가루+부침가루+달걀1개+연잎가루2숟갈..

 

 

묵은지를 쫑쫑 썰어 넣고

 

여름에 밥에 넣어 먹으려고 알만 따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옥수수알을 넣고

 

씹는 맛을 주기 위한 옥수수알..ㅋㅋ

 

 

 

 

*준비물/밀가루,부침가루,연잎가루2숟갈,달걀1개,묵은지,옥수수알,청양고추,검은깨...

 

*시작/

1.밀가루+부침가루를 5;5 비율로 썩고 여기에 연잎가루 2숟갈을 넣은 후에 달걀 1개를 넣고

약간의 소금만 넣어 잘 저어 준다.(묵은지를 넣은 것이라 소금은 넣지 않아도 된다)

2.청양고추를 쫑쫑 썰어 넣어 준다.매콤하게 먹으려면 청양고추를 넉넉하게 넣어주면 좋다.

3.묵은지를 쫑쫑 썰어저 반죽해 놓은 것에 넣고 잘 저우 준다.

4.옥수수알도 적당량을 투하,그리고 모든 재료가 잘 섞이도록 잘 저어준다.

5.달군 팬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부쳐준다.

 

 

저녁을 먹으려고 하니 반찬이 마땅한 것이 없다. 옆지기는 축구모임이 있어 늦는다고 하고

에고 혼자 있어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늘 대충 먹다보니 영양실조까지는 가지 않았어도

영양이 불균형일듯 하다. 갑자기 묵은지부침개를 해 먹고 싶다는 생각,

요건 딸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딸들이 있을 때 가끔 하던 것인데 두녀석 모두 떨어져 지내니

잘안된다는..그래도 한번 혼자라도 맛있께 먹어줘야 하면서 시작했다.

물론 해서 먹고 남겨 놓으면 저녁에 옆지기가 와서 먹는 것은 당근 당근 백퍼 백퍼...

 

부침가루 밀가루 연잎가루를 알맞은 비율로 섞고 거풍기로 섞어 준 후에

지난 주말에 언니네 가게 텃밭에서 따 온 '청양고추'를 조금 넉넉하게 넣었다. 매콤하게 먹기 위하여.

그리고 검은깨도 솔솔솔 넣어 주기고 묵은지를 꺼내어 쫑쫑 썰어 주었다.

김치를 너무 많이 넣어도 김치만 둥글러 다닐 수 있으니 반포기에서 또 반을 쪼개어

적당량만 썰은 후에 다시 통에 넣어 주었다. 요런것 너무 많이 해도 기름냄새에 맛이 떨어진다는..

그저 먹는 것은 적당량이 최고.. 그리곤 냉동실에 옥수수알이 갑자기 생각,

울집 냉동실에는 콩과 이런 곡류들이 많이 들어 있다. 시골에서 보내 주신 것들인데

먹기 보다는 쟁여 놓는 것이 많다. 옥수수알은 지난 여름에 마트에서 옥수수를 구매하여

쪄먹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알을 따서 모두 두 봉지 넣어 두었다.

그리곤 밥을 할 때 한 줌 넣어 먹는데 그게 또 별미다. 하지만 여름엔 밥이 잘 상하니

금방 먹는 밥에 넣어 먹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그 옥수수알을 김치전에 투하..마구 투하...

 

옥수수알을 넣어 준 것은 김치전에 오징어를 넣어 주면 가끔 김치를 씹다가

나도 모르게 오징어를 씹는 맛이 좋았던 느낌,하지만 울집은 나도 아이들도 오징어를 그리

즐겨하지 않는 다는 것.내가 워낙에 오징어를 싫어해서 먹지 않았더니 아이들이 싫어한다.

하지만 난 지금은 오징어를 좋아한다. 살짝 끓는 물에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이란...ㅋㅋ

그 맛처럼 오늘은 가끔 옥수수알이 씹히는 맛을 즐기기 위하여 한 줌 넣었다가

나중에 두 줌 더 넣어 주었다.그리곤 노릇노룻 포도씨유에 부쳐 내고는 양념장을 해서

혼자 먹었는데 아우..혼자 먹어도 왜 이리 맛있는지...

저녁에 늦게 들어 온 옆지기,김치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 장 먹어 주셨다.

-어...여기에 옥수수 넣었어..옥수수가 씹히네....

-네, 맞습니다요...옥수수 넣었답니다...

 

201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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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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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이라도 사랑의 실패는 맛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것이 남녀간 이성간의 사랑이건 혹은 가족이나 형제 그 외의 사람들간의 사랑이어도 좋다. 누구에게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가 있다.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혹은 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픔 속에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실연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그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잘 이겨내는 것이고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의 슬픔의 깊이와 모양은 나와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은 내가 처한 아픔이나 슬픔은 무척 크게 느낀다.하지만 그것이 내가 아닌 타인일 경우에는 '별거 아니네.' 하고 나와 비교하게 되고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 것의 깊이가 점점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실연 당한 사람들이 아침 일곱시부터 밥이 넘어갈까. 평범한 삶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텐데 남들처럼 일곱시에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내가 아픔에 처하면 세상에 그런 상황은 나하나처럼 여겨지지만 여기 모인 21명의 사람들만 봐도 이별이나 슬픔은 평범한 것,살아가다 보면 우연하게 만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 일곱시 조찬 모임에 온 사강과 미도 지훈, 그들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고 깊이는 얼마나 될까?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자신 안에서 끄집어 내지 못하고 가두어 두었던 그들이 모임에 참석하여 앞자기의 빈 의자를 보는 순간,사강은 그동안 담아 두었던 눈물을 쏟아내듯 진심으로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눈물을 쏟아 낸다. 봇물처럼 가두고만 있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고 자신의 슬픔 뿐만이 아니라 상흔이 어린 이별의 물건들을 보면서 타인의 슬픔까지 보게 된다.

 

사강,그녀는 아버지와 정수로부터 두번의 아픔을 겪는다. 어린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딸에게 남겨 놓고 아버지는 그렇게 모녀를 떠나갔다.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아픔만 남겨 놓은 아버지,그 아버지의 빈자리에 함께 비행을 하는 조종사 정수가 들어오게 된다. 강인하고 굳건할 것만 같던 정수에게서 아픔을 보게 되고 나약함을 보고는 둘은 서로의 가슴에 오게 된다.하지만 그는 사강과 함께 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가정이 있는 남자,이혼을 하고 그녀에게 오겠다지만 그렇게까지 가정을 깨면서 자신의 사랑으로 안고 싶지 않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의 삶을 그에게 던져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곤 그녀는 정수를 품었던 그 시간들을 쏟아내듯 그들의 아이를 잃고 만다. 그 공허함으로 그녀는 어쩌면 이 모임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그런가하면 지훈은 현정과 오랜시간 친구로 지내다가 헤어졌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하는,현정은 지훈의 가정사를,그중에서도 자폐를 가진 형의 아픔을 안아주지 못했던 것. 사랑이면 서로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토닥여줄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바라다 보이는 자신들만 보았던 것. 지훈 또한 현정이 어머니를 품지 못한다. 딸의 일이라면 너무도 나서서 딸의 길 앞에 먼지를 쓸어주는 엄마,그녀는 어쩌면 마마걸처럼 늘 엄마의 그림자 뒤에 숨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그렇게 그들 또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미도는 조찬 모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처림 아픔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녀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님 때문에 소녀가장처럼 가정을 책임지며 살았다. 그녀에게 남겨진 동생 미우를 책임지며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 왔다. 그런 그녀가 밝히는 '조찬 모임'의 본 취지는 지훈을 잊지 못한 현정이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잘짜여진 각본처럼 완벽하게 모임은 성사되어지만 그들이 나중에 나누어 갖게 된 이별의 상흔이 묻은 '물건'인 지훈이 가져 온 '로모 카메라'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해외판 때문에 지훈과 사강은 다시 만나게 되고 타인에게 쏟아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아픔을 이야기 함으로 인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아픔을 보느라 타인의 아픔 따위 보이지도 않았고 귀굴이게 되지도 않았는데 로모카메라속 사진과 슬픔이여 안녕에 담긴 진실이 전해지면서 그들은 '과거'와 화해를 하게 되고 '슬픔이여 안녕!' 처럼 정말 슬픔과는 이제 작별을 하고 밝은 미래와 악수를 하게 된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이라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아픔의 그 진공된 시간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세상에 '실연'만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의 임의에 의해 결속된 모임이라고 해도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곱시 조찬 모임'을 하게 되기 까지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그런 이별연습이나 슬픔을 보내는 연습이 모자랐던 그들은 타인의 아픔으로 인해 내 슬픔과 아픔이 희서되면서 평범한 일곱시 조찬을 맞을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국 고사에 자신의 아이를 잃은 여인이 현자를 찾아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한다. 그는 여인에게 슬픔이 한가지도 없는 집의 오얏씨를 가져 오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여인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슬픔이 없는 집의 오얏씨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정녕 그런 집이 존재할까. 내 슬픔만 보고 타인의 슬픔을 보지 못했기에 다른 집에도 그런 아픔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니는 집집마다 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다. 비로소 깨닫는 여인,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행복만 사랑만 계속 되는 그런 시간속을 살겠는가.그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망망대해에 바람과 파도가 없다면 항해는 어떠할까? 삶 또한 사랑도 이별도 실연도 모든 것은 삶이라는 연장선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 시간을 잘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지훈을 다시 만난 현정 또한 자신의 과거의 시간과 안녕을 고하고 미래의 시간속으로 달려 갔듯이 정수 또한 비록 잘 안되는 식당을 하고 있고 아내에겐 엄격하지만 그의 딸에겐 딸바보 아빠처럼 다정하다. 그 또한 그의 삶 속으로 힘차게 아내와 함께 걸어 갔다. 지훈과 사강은 어떨까? 그들도 과거와 화해를 하고 트라우마처럼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슬픔과 실연'에서 일곱시 조찬 모임을 통하여 또 다른 슬픔으로 인해 자신의 슬픔과 실연을 희석시킴으로 인해 둘은 서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실연의 아픔이 떠나고 그 자리에 대신 사랑의 봇물을 가두게 되었다. 인생이 늘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은 모두 '행복'속으로 '사랑' 속으로 다시 힘차게 달려간다. 그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세지다. 스스로 그들의 아픔을 읽어나가며 내 안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슬픔과 아픔의 찌꺼지를 모두 흘러가 버리고 화해와 용서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사족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스티브 잡스 또한 우리의 곁을 너무 바람처럼 떠나가가 버리고 말았다.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실연도 없다. 모두것은 지나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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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콜렉터 : 시간을 찾으면 인생도 찾는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미숙 옮김 / 명진출판사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두 딸들이 대학을 눈 앞에 두고 있기도 하지만 내 나이 또한 마흔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옆지기 또한 쉰 고개를 넘어서니 이제 우리의 '노년' 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자들은 직장에서 슬슬 밀려나는 시기이고 아이들은 돈이 제일 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수명이 연장되어 지금까지 살아 온 만큼의 시간을 더 살게 될지 모르는 인생인데 저축보다는 지출이 늘 더 많은 삶에서 과연 나중에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친구들과 모여도 옆지기와 함께 해도 늘 화두로 떠오르는 문제이다. 부모님들의 삶을 보아도 노년이라고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커서 떨어져 나가도 늘 지출은 여전하고 거기에 어디 한 곳 중한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가족이 모두 힘에 부쳐한다. 그만큼 준비없는 맞는 노후가 되어서는 안되는데 현대사회는 저축보다는 지출이 더 많다. 그렇다고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것도 아니다.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시간 없어서..'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을 어릴적부터 정말 많이 들어 왔지만 생각해보면 시간의 주인이 되어 살아 온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늘 시간의 노예처럼 24시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늘 힘겹게 '시간 없어'를 연발하고 살아도 늘 사는 것은 거기가 거기다. 그리고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하나 둘 친구들의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큰 병에 걸렸다거나 혹은 사고로 인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는,불의의 일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다치게 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시간 없는데 나중에 봐.' 라고 했던 사람들의 말은 영원처럼 지켜지지 않고 그저 말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속에 정말 시간이 없을까? 시간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잠시 잠깐 기다리는 시간에도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하는 시간은 무척 많다. 그런 시간을 종합해 본다면 내가 허투로 보내는 시간은 정말 많다. 하지만 하릴없이 메일을 확인하거나 SNS의 소식들을 검색하고 클릭하느라 정말 내게 귀중한 시간을 감지하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모래알처럼 시간을 허투루 버려 버리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인생을 4단계로 나누고 있다. 제 1단계는 수렵기로 30~45세, 제2단계는 더블스텐더드기라고 하여 45~60세, 제3단계는 원숙기라고 하여 60~75세라고 보고 제4단계는 제로 출력기라고 75세 이상으로 나누고 있다. 제1단계는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할 시기임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효율성을 강조하였고 그가 이 책에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제2단계인 더블스텐더드기인 45~60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시기에 딱 내가 놓여 있는 것이다. 자녀들에게도 경제적인 것이 제일 많이 들어갈 나이지만 본인들에게도 이 시기는 제일 중요한 시기이다. 회사에서 밀려나거나 혹은 노후를 위한 '시간 활용'을 좀더 짜임새 있게 활용해야 할 나이인데 '인생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다른 어떤 말보다 가슴에 와 닿은 말은 '쫓지 말고 찾아가라' 우리가 흔히 돈도 너무 매달려서 돈을 쫓아 가는 사람에게는 돈이 안붙는다고 말한다. 돈에 별 관심없듯이 하는 사람에게 더 돈이 온다고 한다. 시간도 그렇다고 너무 힘겹게 쫓아 가지 말고 찾아가라는 이 한마디가 왜 그리 가슴에 와서 콕 박히는지, 지금까지는 시간을 쫓아가며 살아 온 듯 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서 이젠 여유를 가지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할 시기인듯 하다.

 

시간을 찾아가는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나온다. 그동안 미루고 있던 것이나 시간 없다고 못해보았던 일들을 이젠 실천해 보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누려보지 못한 카페를 찾는 다거나 책을 읽는 다던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못해 보았던 일들을 이루며 성취감에 빠져 들수도 있고 지금까지 누렸던 직업이 아닌 정말 가슴에 막혀 있는 일을 해보며 거기에서 얻는 성취감에 또 다른 인생의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60부터 제2의 인생이라고 한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는 60만 되어도 많이 살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발전한 지금은 '60은 청춘'이라고 한다. 얼마전에 읽은 <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에서 80대 노부부의 건강한 삶에 대하여 나온다. 80대 노부부는 젊은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하루종일 움직이고 일하고 그리고 텃밭을 가꾸어 자식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아간다. 그들 또한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것도 아니고 그런 삶을 살아 온 것도 아니었지만 젊은 시절에 누렸던 삶과는 전혀 다른 땅을 일구며 늘 일하면서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서 젊은사람 못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땅을 일구며 여유롭고 풍요로운 씨를 뿌린만큼 거두어 들이고 그것을 나누어 먹는 사람에서 행복을 느끼기에 더 건강한 삶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노부부야말로 시간의 노예가 아닌 시간의 주인이 되어 하루 24시간을 살아가는듯 했다.

 

다른 어떤 시기도 분명 중요하지만 한참 활동하는 왕성한 젊은을 지나 완전한 노년으로 가기 전의 '징검다리'처럼 건너야 하는 중간에 낀 45~60이라는 나이는 결코 만만한 나이가 아니다. 가끔 그 나이를 견디지 못하고 험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 오기도 하고 정말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인생을 달리 살아갈 수도 있는데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오는 것은 그만큼 힘든 나이라는 것이다. 한참 일하고 혀리를 펴려고 했는데 그 앞날이 더 힘든 비바람이 닥쳐 온다면,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시간의 주인이 되어 포기하지 않고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들은 쉽게 읽으며 공감해 나갈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귀농'이라든가 제2의 삶을 위하여 젊은 시절과는 다른 대기업의 사장이 구멍가게를 창업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데 인생은 준비하는 자의 것인듯 하다. 누구나 준비를 해야한다. 꿈을 그저 꿈으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관리를 잘하여 좀더 멋진 인생 여유로운 인생 멋 있는 인생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잃어버리고 있는 시간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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