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이라도 사랑의 실패는 맛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것이 남녀간 이성간의 사랑이건 혹은 가족이나 형제 그 외의 사람들간의 사랑이어도 좋다. 누구에게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가 있다.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잘 이겨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혹은 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픔 속에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실연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그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잘 이겨내는 것이고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의 슬픔의 깊이와 모양은 나와는 어떻게 다를까? 인간은 내가 처한 아픔이나 슬픔은 무척 크게 느낀다.하지만 그것이 내가 아닌 타인일 경우에는 '별거 아니네.' 하고 나와 비교하게 되고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 것의 깊이가 점점 사그라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빛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실연 당한 사람들이 아침 일곱시부터 밥이 넘어갈까. 평범한 삶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텐데 남들처럼 일곱시에 아침을 먹을 수 있을까.내가 아픔에 처하면 세상에 그런 상황은 나하나처럼 여겨지지만 여기 모인 21명의 사람들만 봐도 이별이나 슬픔은 평범한 것,살아가다 보면 우연하게 만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 일곱시 조찬 모임에 온 사강과 미도 지훈, 그들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고 깊이는 얼마나 될까?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자신 안에서 끄집어 내지 못하고 가두어 두었던 그들이 모임에 참석하여 앞자기의 빈 의자를 보는 순간,사강은 그동안 담아 두었던 눈물을 쏟아내듯 진심으로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눈물을 쏟아 낸다. 봇물처럼 가두고만 있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고 자신의 슬픔 뿐만이 아니라 상흔이 어린 이별의 물건들을 보면서 타인의 슬픔까지 보게 된다.

 

사강,그녀는 아버지와 정수로부터 두번의 아픔을 겪는다. 어린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딸에게 남겨 놓고 아버지는 그렇게 모녀를 떠나갔다.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아픔만 남겨 놓은 아버지,그 아버지의 빈자리에 함께 비행을 하는 조종사 정수가 들어오게 된다. 강인하고 굳건할 것만 같던 정수에게서 아픔을 보게 되고 나약함을 보고는 둘은 서로의 가슴에 오게 된다.하지만 그는 사강과 함께 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가정이 있는 남자,이혼을 하고 그녀에게 오겠다지만 그렇게까지 가정을 깨면서 자신의 사랑으로 안고 싶지 않다.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아버지의 삶을 그에게 던져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곤 그녀는 정수를 품었던 그 시간들을 쏟아내듯 그들의 아이를 잃고 만다. 그 공허함으로 그녀는 어쩌면 이 모임에 오게 되었는지 모른다.그런가하면 지훈은 현정과 오랜시간 친구로 지내다가 헤어졌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하는,현정은 지훈의 가정사를,그중에서도 자폐를 가진 형의 아픔을 안아주지 못했던 것. 사랑이면 서로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토닥여줄줄 알아야 하는데 그저 바라다 보이는 자신들만 보았던 것. 지훈 또한 현정이 어머니를 품지 못한다. 딸의 일이라면 너무도 나서서 딸의 길 앞에 먼지를 쓸어주는 엄마,그녀는 어쩌면 마마걸처럼 늘 엄마의 그림자 뒤에 숨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그렇게 그들 또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미도는 조찬 모임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처림 아픔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녀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님 때문에 소녀가장처럼 가정을 책임지며 살았다. 그녀에게 남겨진 동생 미우를 책임지며 그녀는 악착같이 살아 왔다. 그런 그녀가 밝히는 '조찬 모임'의 본 취지는 지훈을 잊지 못한 현정이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이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잘짜여진 각본처럼 완벽하게 모임은 성사되어지만 그들이 나중에 나누어 갖게 된 이별의 상흔이 묻은 '물건'인 지훈이 가져 온 '로모 카메라'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해외판 때문에 지훈과 사강은 다시 만나게 되고 타인에게 쏟아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아픔을 이야기 함으로 인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게 되고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아픔을 보느라 타인의 아픔 따위 보이지도 않았고 귀굴이게 되지도 않았는데 로모카메라속 사진과 슬픔이여 안녕에 담긴 진실이 전해지면서 그들은 '과거'와 화해를 하게 되고 '슬픔이여 안녕!' 처럼 정말 슬픔과는 이제 작별을 하고 밝은 미래와 악수를 하게 된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실연이라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아픔의 그 진공된 시간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세상에 '실연'만 있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군가의 임의에 의해 결속된 모임이라고 해도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일곱시 조찬 모임'을 하게 되기 까지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그런 이별연습이나 슬픔을 보내는 연습이 모자랐던 그들은 타인의 아픔으로 인해 내 슬픔과 아픔이 희서되면서 평범한 일곱시 조찬을 맞을 그런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국 고사에 자신의 아이를 잃은 여인이 현자를 찾아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한다. 그는 여인에게 슬픔이 한가지도 없는 집의 오얏씨를 가져 오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여인은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슬픔이 없는 집의 오얏씨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정녕 그런 집이 존재할까. 내 슬픔만 보고 타인의 슬픔을 보지 못했기에 다른 집에도 그런 아픔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니는 집집마다 다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다. 비로소 깨닫는 여인,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행복만 사랑만 계속 되는 그런 시간속을 살겠는가.그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망망대해에 바람과 파도가 없다면 항해는 어떠할까? 삶 또한 사랑도 이별도 실연도 모든 것은 삶이라는 연장선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 그 시간을 잘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지훈을 다시 만난 현정 또한 자신의 과거의 시간과 안녕을 고하고 미래의 시간속으로 달려 갔듯이 정수 또한 비록 잘 안되는 식당을 하고 있고 아내에겐 엄격하지만 그의 딸에겐 딸바보 아빠처럼 다정하다. 그 또한 그의 삶 속으로 힘차게 아내와 함께 걸어 갔다. 지훈과 사강은 어떨까? 그들도 과거와 화해를 하고 트라우마처럼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슬픔과 실연'에서 일곱시 조찬 모임을 통하여 또 다른 슬픔으로 인해 자신의 슬픔과 실연을 희석시킴으로 인해 둘은 서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실연의 아픔이 떠나고 그 자리에 대신 사랑의 봇물을 가두게 되었다. 인생이 늘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은 모두 '행복'속으로 '사랑' 속으로 다시 힘차게 달려간다. 그것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세지다. 스스로 그들의 아픔을 읽어나가며 내 안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슬픔과 아픔의 찌꺼지를 모두 흘러가 버리고 화해와 용서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사족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스티브 잡스 또한 우리의 곁을 너무 바람처럼 떠나가가 버리고 말았다.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실연도 없다. 모두것은 지나가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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