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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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이름 ’보리’도 주인할머니가 지어주셨어. 내가 생선뼈나 고깃덩어리보다도 주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보리밥을 더 잘 먹으니까 할머니는 그게 신통해서 내 이름을 ’보리’라고 붙여준 거지.나뿐 아니라 우리 네 형제가 모두 다 ’보리’였어...

 - 저런 빌어먹을 놈의 개. 기어이 한마디 하고 가는구나. 사람 오장을 다 뒤집어놓고 가네.
주인할아버지는 팔려가는 엄마를 욕했는데,욕지거리도 슬프게 들렸다.
<>, 녀석의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소설에는 ’보리’라는 개가 등장을 한다. 수몰지구에서 노인내외와 함게 살던 보리는 할머니의 마지막 버팀에도 어쩔 수 없이 굳은 살이 박이도록 뛰어 다녔던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물이 할머니의 배추밭 가장자리까지 차 올라 어쩔 수 없이 노인내외는 큰아들 집으로 가고 보리는 바닷가에서 작은 어선 한 척으로 그날 그날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 가는 작은 아들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낯선 곳이지만 바다내음과 주인아저씨의 옷에 베인 휘발유냄새마져 나중에는 그리움이 될 정도로 정을 붙이고 살게 된다. 녀석의 눈을 통해 민초들의 각박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엿볼 수 있으며 개들의 눈에 비친 인간사와 인간의 눈에 비친 개에 대한 현실이 숨김없이 여실히 들어남으로 하여 좀더 동물에, 반려동물로 함께 하고 있는 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것 같다. 나 또한 애완견을 두마리나 키우고 있지만 녀석들의 입장보다는 내 편에 맞추어 녀석들을 키운것 같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늘상 보아온 것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결코 간단히 보아 넘길 수 없는 버려진 현실의 낙오된 부분들을 잘 찾아 내었다는 것이 작가답다.

그 굳은살은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진 고향의 땅이 나에게 가져다 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보리의 굳은살을 읽으며 개의 굳은살 보다는 난 내 아버지의 굳은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칠십평생을 땅을 일군 아버지의 손과 발에는 훈장처럼 굳은살이 그동안의 피와 땀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 고향땅을 떠나 도회지에서 사시라 하면 하루도 결코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신다며 적응을 못하신다. 굳은살로 다져져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 보리에게도 굳은살은 아파트의 방안에 갇혀 살기엔 흙내음이 그리운 땅을 밟고 활기차게 뛰어다녀야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굳은살, 그 굳은살은 바닷가 작은 아들의 집에서도 인간의 똥을 먹기도 하고 작은 아들의 죽음을 보기도 하면서 더 다져지지만 녀석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간의 식탁에서 한그릇의 배부름으로 끝이날지 다른 주인을 만나 삶을 연명할지... 

개 발바닥의 굳은살은 민초들의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처럼 하루하루가 험난하고 힘들기만 하다. 보리가 악돌이를 만나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와 같은 길에서 사투를 벌이기도 하듯 언제 난관에 부딪힐지 모르는 삶속에서 작은 아들의 급작스런 죽음은 한가정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수몰지구에서 바닷가까지 온 보리의 삶 또한 흔들어 놓고 있다. 굳은살로 어디든 가서 살지 못할까마는 현실의 올가미는 하루하루 목을 조이듯 조여오는 것이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칠수록 더 조여오는 느낌이 들어 슬프기만 하다. 똥개도 아니고 진돗개인 보리의 운명이 현실의 가장들의 모습인듯 하여 마음 아프게 읽었다. 개에 사실적인 감정이입이 마음을 더 아리게 한 소설이다. 한 자  한 자 온 몸으로 이 소설을 썼을 생각을 하면 더 가슴에 와 닿으며 그래서 작가에게 빠져드는것 같다.

’비 오는 날은 나무와 풀들,바다와 산들,그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깊은 안쪽에 숨겨져 있던 냄새들이 밖으로 배어나온다. 그 냄새는 짙고 또 무거워서 낮게 깔린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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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새
에쿠니 가오리 지음 / 문일출판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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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잃어가는 희망에 대하여...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몇 권 구매를 해 놓았지만 이 책을 먼저 집어 들게 되었다. 분량도 111페이지로 부담이 없고 중간중간 이쁜 삽화가 넘 마음에 들었다. 앞 표이지의 그림처럼 이쁜 삽화들은 글을 읽지 않고 넘겨만 보아도 동심을 불러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쁜 색감에 이쁜 그림, 부제로 <누구나 잃어가는 희망에 대하여>  라는 말처럼 파랑새 한마리가 날아 들어와 <희망>을 안겨 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거품을 머금은 밀크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창문을 조금 열었는데 작은 새가 한마리 와서 불시착을 했다. 그 작은 새는 말을 하기도 하고 생각을 하는지 주인공과 대화가 가능하다. 주인공은 예전에도 작은 참새 한마리가 날아 들어와 키운 경험이 있기에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듯이 여기지만 이 작은 새는 사사건건 그를 쫒아 다니며 말을 걸기도 하고 보살펴 달라고 아픈척도 한다. 그에게는 일년여 사긴 여자친구도 있지만 둘사이에서 작은 새는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평범하게 받아 들였고 동거를 하게 된 작은 새가 점점 그에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자기만의 새라고 여겼는데 욕실천장에서 물이 새서 윗층에 가보니 노부부와 함께 자기의 작은 새가 있는 것이다. 샐쭉한 그를 달래주는 작은 새, 여친과 스케이트 장에 가서 스케이트를 타던 중에 없어진 작은 새는 자신도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하여 스케이트를 만들어 주고 세수대야에 얼음도 얼려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해 준다. 기발한 상상과 함께 어른만의 동화처럼 이쁜 일러스트는 읽는 동안 <희망>을 간직하게 되는 것처럼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기가며 이쁜 일러스트와 함께 하다 보면 내 안에 어느새 작은 새가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 내게도 어느날 갑자기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 온다면 나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할까...그에겐 늘 평범했던 일상이 작은 새로 인하여 새롭게 다가오고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늘 아무생각없이 돌리던 세탁기의 돌아가는 것조차 작은 새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여지고 급기야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 빨래와 함께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만드는가 하면 주변의 평범한 것들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게 됨으로 인하여 좀더 자신의 마음을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된것 같다. 주인공처럼 변화가 필요할때 요긴하게 읽을 수 있고 부담없이 생각할 수 있는 ’나의 작은 새’ , 다 읽고 책표지를 바라보니 문득 청량한 새소리를 내며 새 한마리가 날아 갈것만 같다. 내 안에 머물던 ’희망’ 이 다시금 희망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날아갈 것만 같은 느낌. 깔끔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에 어른을 위한 동화를 읽는 것처럼 잠시 행복에 젖게 만들었던 에쿠니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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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요리책
엘르 뉴마크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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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죽은 자들의 뼈 위에 세워진다...

이 책을 읽기전에 작가의 약력을 읽어보니 다양한 직업과 이탈리아인 요리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요리에 남들보다는 탁원한 감각이 있는 듯 하고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내용은 ’예순’ 에 작가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평생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그녀에게 늘 곁에서 지켜 보았을 아버지의 직업은 그녀에게 큰 감흥을 블러 일으켰을 것이니 요리에 관한 내용이 상당하게 잘 표현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책은 페이지 압박이 느껴질만큼 두툼하다. 600페이지가 넘지만 줄줄 잘 읽어나갈 수 있고 요리와 적절한 추리소설 같은 기법이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제목처럼 <비밀의 요리책>에 대한 궁금증으로 총독은 자신의 매독을 치료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한 책으로 루치아노와 그의 친구 마르코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금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이 들어 있는 책으로 오인하여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신세계에 대려다 줄 인생역전의 책으로 ’비밀의 요리책’을 원한다. 

거리의 부랑아로 떠돌던 루치아노는 궁전의 주방장인 페레로에게 <석류>를 훔치다 들켜 그를 따라 주방으로 가게 된다. 거리의 친구인 마르코에게 온갖 거리에서 살아 남는법으로 남의 말을 엿듣는 법과 물건을 훔치는 법에 익숙하던 그는 페레로 주방장의 비밀찬장에 궁금증을 두고 주방보조일을 보던 중에 페레로의 잃어버린 아들이 얼굴에 모반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말에 자신이 혹시 아들인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완전하게 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페레로는 그에게 신뢰감을 갖고 그의 후계자 <수호자> 역할을 그에게 맡긴다.

페레로의 요리를 먹기만 하면 모두가 요리에 빠져드는 것을 의심하는 총독이나 그외 사람들, 하지만 그의 요리에 들어가는 특별 재료인 허브나 그외 금기시 되는 재료들은 늘 그의 비밀의 찬장에 모셔져 있고 그는 늘 지식을 전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 자신이 살아온 것과 비슷하게 살아 가고 있는 루치아노를 보며 사랑앓이도 한때이고 지나간다며 보다 더 지식을 전파하고 지키는 일 <수호자> 일에 몰두하길 바라지만 ’비밀의 요리책’ 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번져 나가 드디어 그들의 목숨마져 위험에 빠지고 페레로 주방장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그는 결국 책에 대한 궁금증을 남겨 놓고 죽게 되고 돈에 눈이 먼 그의 친구 마르코는 그를 대신하여 이유없이 죽게 된다. 파란만장한 소용돌이 속을 헤쳐나오듯 베네치아를 벗어나 스페인의 그라나다로 주방장과 함게 수호자 역할을 하던 사람들을 만나러 가게 된 루치아노는 자신이 훔친 <석류> 때문에 자신이 인생이 바뀌었듯이 그가 후에 머무르게 될 <그라나다>의 속뜻이 <석류>임을 알게 되고는 그곳에서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속에서 나오는 페레로 주방장의 요리들은 사실적이며 무척이나 구미를 당기게 한다. 15세기 베네치아의 서민들의 생활이나 그 시대를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그 속을 루치아노와 함게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요리에 대한 표현들은 정말 대단하다. 난 이소설을 읽으며 의미깊게 보았던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올랐다. 깔끔한 요리와 소리가 잘 담겨졌던 영화였는데 페레로 주방장의 요리는 그런 소리가 들릴 듯 했다. 어찌보면 루치아노의 성장일대기 같기도 하고 ’비밀의 요리책’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그리는 추리소설 같기도 하지만 요리와 더불어 방대한 지식을 백과사전처럼 간직한 페레로 주방장이 그 시대에는 너무 앞서가는 선구자였기에 시대와는 맞지 않아 대변자 루치아노를 불러 들였다는 것이 더 흥미로운 구성이 된것 같다. 아직 일반화 보편화가 되지 않은 <커피>에 대한 식음후의 표현등과 그의 대한 표현들이 지금은 일상적이지만 처음엔 금기시되는 약물이나 이상한 것으로 취급한것들이 재밌게 표현되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것 같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면, 우리가 발전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어쩌면 진정한 힘은 페레로 주방장의 비밀스러운 지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디언 스승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세가지로 분류했지. 굼뜬 특질을 지닌 뿌리채소,사람을 흥분시키는 육류와 후추, 영묘한 특질을 지닌 신선한 과일과 채소란다.모든 음식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균형을 만들어내지.한가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균형이 깨질 수도 있지. 
삶의 많은 부분이 기다림이란다. 그러니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면 좋은 거지.
바로 지금 이곳에는 수플레와 우리 둘뿐이구나.시간은 늘 현재란다. 우리는 현재에 살아야 한단다.

요리를 통해 그 시대의 모든 지식들이 믹스된것 처럼 한가지 요리에도 방대한 지식이 어우러져 탄생된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 페레로 주방장의 비밀의 지식들이 탐이 나기도 하고 후세에 전해주려 노력한 그의 굳은 의지가 어쩌면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희생자’ 의 역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들어나지 않은 ’비밀의 요리책’ 때문에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할 수 도 있지만 그 시대를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주어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책이다. 작가의 완숙미와 요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엿볼 수 있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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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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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2009

 스틸이미지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케이트 윈슬렛(한나), 데이빗 크로스(어린 마이클),
랄프 파인즈(마이클), 제넷 하인(브리짓)..
★★★★★

 그들의 비밀스런 사랑이 운명처럼 가슴을 아프게 한다...


 원작을 오래전에 구매를 해 놓고 영화를 보기전에 읽고 가려 한것이 그만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때문에 볼까 말까 하다가 영화를 먼저 선택하게 된것은 영화의 완성도일 것 같다. 입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내용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는 것은 다른 느낌인것 같다. 옆지기와 함께 보러 가려다 오랜동안 친구인 여고친구와 함께 보러 갔는데 이른 아침의 시간이기도 해서인지 극장안은 모두 여자들이었다. 처음엔 나신으로 시작되는 영화라 숨을 죽여 보더니 점점 영화의 이야기에 빠져 드느라 극장안은 조용했다. 

마이클은 열병으로 인해 전차를 타고 가다가 급하게 내려 골목에서 구토를 하게 된다. 그런 그를 유심히 보던 여인 한나가 그를 도와주고 집까지 바래다준다. 자기를 돌봐준 여인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전해주러 갔던 십대의 마이클은 30대의 한나에게 첫눈에 끌리게 되고 둘의 비밀스런 사랑은 시작된다. 자신의 또래와 어울리기 보다는 한나와의 시간에 점점 빠져드는 마이클, 그런 그에게 그녀는 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그는 수업시간에 공부해야 하는 <오딧세이> 부터 <채털리부인의 사랑>..등 그녀에게 맛깔스럽게 책을 읽어준다. 그가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직장에서 전차안내양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한다는 말에 마이클에게조차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사라지고 만다. 그런 그들이 8년후 법정에서 만나는데 한나는 수용소에서 감시원 일을 했다고 하여 법정에 서고 마이클은 법대생으로 다시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비밀스런 시간들을 돌이켜 보다가 그녀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그는 고심을 하게 되지만 자신이 나서서 해결될 일이 아닌듯 하여 증인으로 나서질 못한다. 

한나 슈미츠는 다른 감시원들 보다 형을 더 많이 받아 수감생활을 들어가게 되고 마이클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순탄지 못한 생활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되는데 그는 한나를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가 자신이 나서지 못한 죄책감에 그녀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해 그녀에게 읽어 주었던 책들부터 자신이 직접 책을 읽으며 녹음을 하여 그녀에게 전해주게 된다. 그가 전해준 테잎을 듣고는 자신이 예전에 ’꼬마야’ 라고 불렀던 마이클임을 알고는 그녀는 그의 테잎을 정성스레 듣는다. 그러다 그녀는 글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문득 책을 빌려 테잎과 대조를 하듯 하며 혼자서 글을 깨우쳐 나간다. 글을 깨우치고는 마이클에게 한줄 편지도 써서 보내지만 마이클은 답장 한장 하지 않는다.그녀가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되기전, 운명처럼 둘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세월은 빗겨 갈 수 없었는지 둘은 늙어 있다. ’꼬마야, 많이 컸네..’ 하며 그를 알아보는 한나.가석방후에 그녀의 거취와 직장을 마련해 놓았다는 마이클의 말에 그녀는 자신의 감방에 돌아와 정들었던 그 방에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이클이 좀더 적극적으로 그녀가 <문맹>임을 증명했더라면 그녀의 삶은, 혹은 마이클의 삶은 어떻게 변화가 되었을까. 지식인인 변호사가 된 마이클에게 그녀는 장애물이 되었을까.. 아님 그가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그녀의 인생을 혹은 그의 인생을 저당잡힌 것 같아 영화가 다 끝나고 마지막 음악이 흘러나오는데도 일어나지지 않았다. 평생을 가슴에 간직할 사랑이었고 연인이었는데 사랑보다 자존심이 더 중하였을까. 시대상으로 나치에 관한 일이라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그저 직업으로 택했을 뿐이고 자신의 문맹을 밝히기 꺼려 남의 죄가지 뒤집어 쓰고 평생을 수감생활을 한 것인데 그녀 또한 그렇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듯 해야 했을까... 그녀를 그 나락으로 몰고 간 다른 감시원 여자들과 재판정의 사람들, 그녀의 삶이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흐트러짐 없이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 또한 깔끔하고 매끄러워 더 가슴이 먹먹했던 영화이다. 마이클의 법대 교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은 도덕성 보다는 법이 우선이라는 말이 한사람의 인생을,아니 두사람의 인생을 너무도 짓밟은 듯 하여 애처로웠던 영화.

 <사랑을 말하지 못한 남자,그 사랑을 믿지 않았던 여자>... 한나에겐 마지막 사랑이었고 마이클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사랑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인생은 흘러간다는 말처럼 좀더 자신들에게 <진실>했더라면 하는 여운이 남았던 영화이다. 자신들의 사랑에 솔직하지 못했던 불장난 같았던 사랑이 평생을 그 사랑안에 가두어 두게 만들어 놓았던 한나와 마이클, 그녀의 묘비처럼 쓸쓸히 버려진 사랑같아 안타까움이 발길을 무겁게 하는 긴 여운의 영화.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을 얼른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책과는 약간 다른 차이가 나겠지만 긴여운을 좀더 지속시키고 싶다.원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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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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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한다는 의미야...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맥의 입장이라면 딸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 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용서>라는 것은  타인을 용서하는 것일까 자신을 용서하는 것일까..자신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던 미움의 울타리를 거두어 내고 <마음에 자유>를 안겨주는 것처럼 <용서>라는 것은 타인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자신 또한 평생을 마음의 감옥안에서 어둠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 어둠밭에서 빛을 보지 않고 살기 보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맥은 바쁜 아내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떠난다. 친구들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가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중 케이트가 카누를 타다가 아빠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던 순간에 모든 슬픔이 시작되었다. 카누가 뒤집히면서 아이들이 물에 빠지고 구조원을 했던 경험이 있는 맥은 물에 뛰어 들어가 간신히 아이들을 구해 내지만 '거대한 슬픔'은 그 뒤에 일어난다. 막내딸 '미시'가 감쪽같이 사라진것. 그들이 야영하던 캠핑장 주변을 찾아 보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수소문 하던 끝에 낯선자가 미시를 유괴해 갔음이 밝혀지고 그가 남긴 증거물은 연쇄살인범임을 알아내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유괴해가던 차를 쫒던 중에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발견하는 피 묻은 미시의 빨간 원피스를 찾아 내지만 여섯살난 미시는 없다. 그 슬픔을 간진한채 살아가던 맥에게 어느날 전해진 쪽지 한 장, 그곳엔 오두막에 오라는 파파가 보낸 글이 쓰여 있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여행을 떠난 후에 오두막으로 향하여 슬픔의 장소에서 뜻하지 않게 '파파' 를 만나게 된다. 하느님은 우리가 늘 생각하는 비슷한 그림의 형상을 생각하는데 이곳에서 만난 파파는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흑인에 중년의 뚱뚱한 아줌마. 파파와 함께 있는 예수와 그외 사람들과 맥은 지난 이야기와 신비한 체험을 하듯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자신이 속에 얽히어 있던 실타래를 풀듯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며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자마져 '용서'를 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는 바로 당신의 영혼이에요. 이 혼란스러운 정원이 바로 당신인 거죠! 당신의 마음 밭에서 우리가 함께 목적을 갖고 일했어요. 비록 거칠지만 아름답고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이 보기에는 엉망 같아도 나에게는 완벽한 패턴이 형성되고 있는게 보여요. 생기가 넘치는 게 느껴져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차원 분열 도형이죠.' 

'어둠 속에서는 두려움과 거짓말과 후회의 실체 크기가 가려지죠. 그런 것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이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더 크게 보일 뿐이에요. 당신 안에 있는 그런 것들에게 빛을 비추면 실제 모습이 보이겠죠.' 

'당신이 내 존재를 느끼건 아니건 간에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고 나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우린 어려움에 처하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 하느님..' 이란 소리를 할때가 있다. 위에 언급한 말처럼 하느님이란 존재는 우리가 느끼건 못 느끼건 간에 우리안에 늘 함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나 크리스천이란 소리는 아니다. 종교를 떠나서 무한의 존재로 느끼는 하느님에게 알게 모르게 넋두리처럼 혼잣말을 할때가 있다. 몹시 대화가 하고 픈데 들어줄 사람이 없다던가 '영적인 존재'에게 털어 놓으면 꼭 들어줄것만 같아 꼭 그분이 아니어도 공간안에 숨쉬고 있는 어느 존재에게 자신만의 마음을 담아 소원을 빌 때, 우린 정형화 되지 않은 하느님을 만난다. 소설속처럼 아픔을 간직한 맥이 형상화된 하느님을 만나서 자신안에 고여 있던 아픔을 토로해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상처가 아물 수 있었을까. 그 하느님이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중년의 흑인 여성이든 간에 자신의 아픔을 표출해 내고 그들과<대화> 를 나누었기에 상처가 소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두막> 은 자신에게는 상처였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게 해 준 장소이며 공간이다. 그가 '거대한 슬픔'의 장소로 <오두막>을 그냥 방치해 두었다면 그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자신을 갉아 먹었을 테지만 영적인 존재와 만남에서 자신안에 고여 있던 아픔을 모두 짜내어 새살이 돋아 나오게 하였기에 어둠속에서는 아픔의 상처가 커 보였지만 밝은 빛에서는 실제 자신의 존재를 볼 수 있었던,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커다란 아픔이 되었던 장소나 사건이 일어났던 곳에 누가 다시 가고 싶겠는가.하지만 나 또한 경미한 사고로 끝났지만 아픔의 장소가 있다. 그 장소와 이름만 들어도 아픔이 다시 밀려오는 듯 했지만 그 아픔을 잊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장소에 가서 사고 현장을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다. 상처를 덮어 놓거나 기피하기 보다는 부딪히다 보면 더 빨리 치유할 수 있다는 작가만의 치유 방법이 하느님과의 대화로 이어지지만 그가 현실을 받아 들이고 부딪힌 것이 더 빨리 치유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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