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이름 ’보리’도 주인할머니가 지어주셨어. 내가 생선뼈나 고깃덩어리보다도 주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보리밥을 더 잘 먹으니까 할머니는 그게 신통해서 내 이름을 ’보리’라고 붙여준 거지.나뿐 아니라 우리 네 형제가 모두 다 ’보리’였어...

 - 저런 빌어먹을 놈의 개. 기어이 한마디 하고 가는구나. 사람 오장을 다 뒤집어놓고 가네.
주인할아버지는 팔려가는 엄마를 욕했는데,욕지거리도 슬프게 들렸다.
<>, 녀석의 발바닥을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 소설에는 ’보리’라는 개가 등장을 한다. 수몰지구에서 노인내외와 함게 살던 보리는 할머니의 마지막 버팀에도 어쩔 수 없이 굳은 살이 박이도록 뛰어 다녔던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물이 할머니의 배추밭 가장자리까지 차 올라 어쩔 수 없이 노인내외는 큰아들 집으로 가고 보리는 바닷가에서 작은 어선 한 척으로 그날 그날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 가는 작은 아들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낯선 곳이지만 바다내음과 주인아저씨의 옷에 베인 휘발유냄새마져 나중에는 그리움이 될 정도로 정을 붙이고 살게 된다. 녀석의 눈을 통해 민초들의 각박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엿볼 수 있으며 개들의 눈에 비친 인간사와 인간의 눈에 비친 개에 대한 현실이 숨김없이 여실히 들어남으로 하여 좀더 동물에, 반려동물로 함께 하고 있는 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것 같다. 나 또한 애완견을 두마리나 키우고 있지만 녀석들의 입장보다는 내 편에 맞추어 녀석들을 키운것 같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늘상 보아온 것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결코 간단히 보아 넘길 수 없는 버려진 현실의 낙오된 부분들을 잘 찾아 내었다는 것이 작가답다.

그 굳은살은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진 고향의 땅이 나에게 가져다 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보리의 굳은살을 읽으며 개의 굳은살 보다는 난 내 아버지의 굳은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칠십평생을 땅을 일군 아버지의 손과 발에는 훈장처럼 굳은살이 그동안의 피와 땀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 고향땅을 떠나 도회지에서 사시라 하면 하루도 결코 숨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신다며 적응을 못하신다. 굳은살로 다져져서 지금도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 보리에게도 굳은살은 아파트의 방안에 갇혀 살기엔 흙내음이 그리운 땅을 밟고 활기차게 뛰어다녀야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굳은살, 그 굳은살은 바닷가 작은 아들의 집에서도 인간의 똥을 먹기도 하고 작은 아들의 죽음을 보기도 하면서 더 다져지지만 녀석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간의 식탁에서 한그릇의 배부름으로 끝이날지 다른 주인을 만나 삶을 연명할지... 

개 발바닥의 굳은살은 민초들의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처럼 하루하루가 험난하고 힘들기만 하다. 보리가 악돌이를 만나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와 같은 길에서 사투를 벌이기도 하듯 언제 난관에 부딪힐지 모르는 삶속에서 작은 아들의 급작스런 죽음은 한가정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수몰지구에서 바닷가까지 온 보리의 삶 또한 흔들어 놓고 있다. 굳은살로 어디든 가서 살지 못할까마는 현실의 올가미는 하루하루 목을 조이듯 조여오는 것이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칠수록 더 조여오는 느낌이 들어 슬프기만 하다. 똥개도 아니고 진돗개인 보리의 운명이 현실의 가장들의 모습인듯 하여 마음 아프게 읽었다. 개에 사실적인 감정이입이 마음을 더 아리게 한 소설이다. 한 자  한 자 온 몸으로 이 소설을 썼을 생각을 하면 더 가슴에 와 닿으며 그래서 작가에게 빠져드는것 같다.

’비 오는 날은 나무와 풀들,바다와 산들,그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깊은 안쪽에 숨겨져 있던 냄새들이 밖으로 배어나온다. 그 냄새는 짙고 또 무거워서 낮게 깔린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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