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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길은 언제나 돌아오기 위해서 있다.누구도 끝까지 걸어간 이는 없다.
서 있던 자리에는 없어진 내가 있다. 나는 이미 그다.
나와 그가 이제 만난다.달라진 것은 없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길. ㅡ下200p
오현우, 나이는 서른 두살 먹었구 시골 중학교에서 교직을 갖구 있었고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다.잠깐 징역 살구 강제징집으로 전방에서 군대생활도 했다.그가 윤희를 만나 단숨에 말해버린 그에 대한 사실들.그는 지하조직 활동을 하고 광주항쟁이후 수배지가 됨에 따라 잠수하기 위하여 시골,갈뫼로 내려가 윤희와 함께 밀월의 시간처럼 잠깐의 동거생활을 한다. 과수원 뒷켠의 창고같은 건물을 그들만의 작은 보금자리로 새롭게 고쳐 텃밭도 일구고 작은 화실까지 꾸며 윤희는 그림도 그리며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삼개월여,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들 이었고 그시간동안만 서로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한윤희,아버지가 빨치산였기에 좀더 오현우라는 인물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아버지의 무너진 삶으로 인하여 가정을 엄마 혼자서 꾸려 나가는 강인함을 옆에서 학습이라도 하듯 그녀의 삶도 부모님을 닮아 간다.짧은 시간동안 현우와 동거생활를 하면서 임신을 하고 그가 무기수로 들어 가면서 혼자서 딸아이를 낳고 갈뫼에서 키우다 학교를 보내기 전 엄마의 집으로 들어 갔다가 동생 영희의 호적에 올린다.그녀는 혼자서 딸을 키우며 대학원에 들어가 화실을 열고 생활을 하다가 송영태라는 학생운동가를 만나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영태는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지만 그녀는 늘 현우의 빈자리를 느끼면서도 누구에게도 그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한편 독일에 유학을 가서 이희수라는 환경친화적인 그의 생각에 공감하며 사랑에 빠지지만 뜻하지 않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를 잃고 귀국한다.
그녀는 귀국후 대학교단에 서기도 하면서 생활을 하다가 불치의 병에 걸렸음을 알고 그녀의 생활과 딸 은결이의 이야기며 모든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어 놓아 현우가 보게 한다. 그녀는 가고 없는 빈 공간에 만기출옥을 하여 이상향 같았던 갈뫼를 찾아가 그들의 먼 추억을 더듬던중 발견된 그녀의 노트와 그림,
당신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지요.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히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한번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햇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ㅡ下308p
"당신은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80년대,그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지만 나의 정원을 찾았을까,그리고 우리의 정원을 찾았을까? 윤희가 독일 유학에서 머므르고 있는 동안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로 거듭날때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하나 보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장벽은 튼튼하게 유지하게 되고 있다.치열하게 시대를 살다간 최미경,한윤희 그리고 많은 이들이 꿈도 펼치지 못하고 흔적없이 사라라져간 아픔의 시간뒤로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찾기 위하여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을까.
소설의 겉표지 색상부터 연한 연두빛,봄빛이다.그것은 희망인듯 하다. 그 시대에 난 중학생이었다. 선생님으로 부터 몇몇 학생들에게 대학생언니 오빠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라며 선생님께서 잠깐 말씀해 주신것들이 믿기지 않았지만 연일 최루탄에 흐려지는 뉴스를 접하면서 옆에서 구경하듯 했지만 그래도 그 시대를 거쳐와서인지 더욱 와 닿는 소설,갈뫼의 생활은 그들의 이상향 같은 곳이기도 하면서도 우리가 꿈꾸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현우와 윤희 은결에게는 그곳은 새로운 꿈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어머니의 자궁같은,꿈이 탄생하는 모태이기도 하다.만기출옥이후 윤희도 없는 빈세상,모든것이 끝인줄 알았던 현우에게 갈뫼는 그의 18년의 감옥생활과 같은 딸 은결을 선물해 주었으며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해준 곳이다.
암흑의 시간을 살아왔기에 지난 시간이 더욱 아름답고 값지고 소중하고 간직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오래된 정원'을 소유하게 만드는 것일까. 오랜 시간 비워온 아버지의 빈자리에서도 '저 이제 가야 해요,아버지. 자주 만나요.' 하며 아버지를 인정해준 은결,암흑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그에게 남은 딸 은결은 그에겐 새로운 출발이고 희망이다. '당신은 그곳을 찾았나요?' 그녀가 그에게 반문하듯 남긴 말들은 봄빛같은 생활을 하던 갈뫼의 생활처럼 평화의 시간들일까.아픔의 시간,옹이를 하나 더 만들면서 나무는 더 단단해지듯이 값진 댓가를 치루었기에 아마 현우에게도 은결에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희망,평화는 더욱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정원의 꽃들은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다.
너희들은 어디로 날아가느냐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누구로부터 떠나왔느냐
모든 것들로부터
그들이 함께 있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
조금 아까부터
그러면 언제 그들은 헤어질 것이냐
이제 곧
1993년에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있던 무렵 운동시간에 나가 하염없이 시멘트 담벽 안의 비좁은 공간을 맴돌면서 문득 무릉도원 이야기와 샹그릴라 전설이며 하는 것들을 생각하던 중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섬인 유토피아까지도.그러나 나와 내 벗들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미래나 예견에 사로잡힌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현실 변화를 끌어내는 시대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물결 속에 휩씁리며 헤엄쳐가던 하찮고 가냘픈 개인의 나날을 통해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에른스트 블로흐의 말투로 얘기하자면 <오래된 정원>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 될 것이다. ㅡ작가의 후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