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 개정판 나남창작선 58
박경리 / 나남출판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은 작가의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쓰여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전쟁으로 부모형제를 다 잃고 조만섭씨를 따라 낯선 땅 통영에서 정착하는 수옥,뭇남자들의 시선을 끄는 그녀의 외모때문에 그녀는 더욱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것 같다.수옥을 보고 첫눈에 반한 서영래는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없음으로 인하여 수옥을 탐한다. 결국엔 그의 수중으로 들어가 갇힌 삶을 살다가 학수에 의해 그녀의 삶은 다시 자유를 찾지만 그가 군대에 끌려가기에 임신한 몸으로 그녀를 받아 들여주지 않는 학수 부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명화는 조만섭씨의 외동딸로 그녀의 엄마는 남편이 외지에 나가 있는 사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서 자살을 하고 만다.엄마의 죽음은 그녀의 결혼에 커다란 걸림돌로 자리하여 박의사는 응주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응주와 명화의 결혼을 반대하는 박의사는 사실은 그녀의 엄마의 죽음이 결혼에 문제가 된것이 아니라 아들의 연인을 사랑했기에 며느리로 받아 들일수 없음을 그녀에게 고백하고 만다.
 
명화와 결혼을 하기로한 응주는 아버지가 며느리감으로 내세우는 죽희와 명화와의 사이에서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다가 명화를 택하게 되지만 명화는 그와 하룻밤을 함께 하며 하룻밤을 인생의 전부인듯 허물어져버리고는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완전한듯 하면서도 한가지씩 문제점을 안고 있다.완벽할것 같던 박의사가 아들의 애인을 사랑한다는 점이며 돈을 가졌지만 자식을 갖지 못한 서영래,누나들의 치맛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편력증처럼 방탕한 생활로 자신을 망쳐버린 문성재며 잘살던 집안이 망함으로 인하여 자신을 학대하듯 웃음을 팔면서 자기만족을 얻듯 하는 학자나 여린듯 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주먹이 먼저인 학자의 오빠 학수, 그리고 서울댁등 모두가 어부의 어망에 걸린 갖가지 고기처럼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은 여인이 주인공이듯 이 작품도 명화와 수옥의 대조되는 삶이 주를 이룬다. 완벽하진 않지만 가정의 울타리에서 부성애를 한몸에 받으며 부족함 없는 명화와 전쟁으로 가족이며 울타리를 모두 잃고 노리개처럼 남자의 목표물로 마음이 닫혀 있던 수옥은 학수를 만나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말의 문도 열리듯이 두 여인들의 대조적인 삶은 통영을 배경으로 잘 들어나 있다.학수를 만나 안정을 찾은 수옥은 통영에서 안착하는 대신 사랑을 잃은,포기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사랑에 도피를 하는 명화의 삶은 너울처럼 출렁인다.
 
한편에서는 속에 불을 품고 있는것처럼 쓴소리를 서슴없이 뱉어내는 학자의 거침없음이 소설을 더욱 맛깔나게 해준듯 하다.
"나는 젊어요! 박 의사는 늙었어요! 누가 더 잘사나 두고 봅시다! 아들은 미치광이 딸하고 결혼하고, 뭐가 남아요? 마음대로 계산대로 되는 줄 아세요? 뭐가 남아, 벙어리 딸하고 청승맞게 늙어서 그 꼴 부럽지 않아요.조금도 부럽지 않단 말이예요!"
ㅡ202p
그녀는 그렇게 박의사에게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내고는 박의사 병원에서 간호원이 되겠다던 꿈을 저버리고 독설가가 된듯 술집에서 웃음을 판다.
 
 
파시,사전적 의미로는 물고기가 한창 잡힐때 바다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이지만 이소설은 살아남기 위하여 파닥파닥 대지위에서 뛰는 인간들의 시장같다.절망과 아픔을 간직한채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숨을 쉬듯 생명이 느껴진다.작가의 소설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활력있게 소설속을 누비고 다니며 마치 재래시장에 온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살아 있음을,진솔한 삶을 질박하게 잘 보여준다.시장만큼 삶의 다양성과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또 있으랴.아름다운 통영의 앞바다와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명화 응주 학자 학수 수옥 순이 서울댁 조만섭 박의사 경주 죽희 윤선생 서영래 용주 문성재 선애 닻줄 김서방등이 있기에 소설은 더욱 생명력이 느껴진다.독자의 입장에서는 명화와 응주가 잘 되었으면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명화를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움이 여운처럼 남겨졌다.작가의 소설은 해피엔딩보다는 비운의 결말이 더 많은듯 하다. 독자의 바람을 저버리면서도 어쩌면 새로운 삶을 독자 스스로 연장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 복선처럼 깔린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