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전장 나남창작선 40
박경리 / 나남출판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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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과 시장이 서로 등을 맞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은 움직이고 흘러간다.사람도 상품도 소모의 한길을 내달리며, 그리고 마음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사라져가는 민심을,사라져가는 인민들의 불길을 억지로라도 되살리기에는 오직 승리가, 사람과 상품의 소모를 막아줄 결정적인 승리가 있을 뿐이라고 기훈은 생각한다. ㅡ 244p
 
해방과 육이오,그 장엄한 역사의 드라마 밑에 깔렸던 내 젊음이 요즘에 와서 더욱 선명하게 한떨기 들꽃같이 눈앞에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늙어가기 때문이겠다.마지막 장을 끝낸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족들 몰래 울었다.
                                                             ㅡ작가서문중에서
 
작가는 마지막 장을 끝낸 날 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고 했는데 난 마지막 장을 덮으며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백치같은 여자 이가화와 컴니스트로서 인민과 사상에 충실한 기훈의 사랑이 마지막 순간 무참히 두 방의 총탄앞에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라며 작가에게 수정을 요하며 따져들고 싶을만큼 마음이 아팠다.질곡의 시간을 모두 이겨내고 마지막 거머쥐려 한 자유가 한순간 무너짐이 해방과 육이오를 견디어온 세대들의 아픔처럼 전이되는듯 했다.
 
연안으로 교사생활을 하러 갔던 지영은 육이오가 터짐으로 간신히 서울 집으로 내려와 가족들과 함께 하지만 모두가 피난을 가고 빈 거리엔 식량이며 약품등 모든것이 모자란 가운데 그래도 가족을 지켜나가려는 의지로 잘 버티어 간다.그러던중 남편 기석이 공산당 입당원서를 냈다는 이유로 잡혀가고 기석을 빼내려는 노력도 잠시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고 만다. 전쟁통에 옆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던 어머니 윤씨를 잃고 이모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다.
 
한편 가화는 우연히 만난 남자 기훈을 찾아 지리산으로 산사람이 되어 찾아온다.여리면서도 백치 같았던 여자가 사랑 하나로 낯설은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산생활을 이겨낸다는 것은 아마도 사랑의 힘이겠지만 그녀에게는 어쩌면 기훈이 마지막 탈출구였는지도 모른다. 
 
전장후의 세대이기 때문에 전쟁의 배고픔을 잘 알지는 못한다.그저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정도이지만 그 시대를 이겨나온 세대들은 정말 잊지 못할 아픔이고 배고픔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전설같은 시간들이다. 사실적인 표현들은 작가가 그 시대를 체험하고 살아왔기에 더욱 실감나게 그려나간듯 하다.
 
시장과 전장의 그 의미로 지영과 기훈의 삶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아 있다.자기들이 속해 있는 세계에 어울려 들어가지 못하고 겉도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두 인물은 육이오라는 그 시대를 대표하듯 그들의 아픔의 시간들이 질펀하게 전개된다.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려는 지영의 험난한 여정속에서 인간들의 살아있는 숨소리가 느껴지듯 작가의 섬세함이 소설속에 녹아나 있다.
 
박경리의 소설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빠져든다.토지21권도 그렇지만 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파시등 주인공들의 삶이 멀리 먼 이야기가 아닌 내 주위 사람들이 주인공이며 내고향의 이야기처럼 질박하면서도 소박하다.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것처럼 짧은 대화속에도 인간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편으로 남자들의 이야기인듯 하면서도 여인들,어머니가 주인공이 되어 그시대를 그리고 있다.이 소설에서는 지영과 가화의 서로 다른 삶이 주인공일지 모른다. 가정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힘과 한남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순애보적인 사랑인 가화의 험난한 삶이 육이오,시장과 전장이 들려주고픈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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