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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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평점 :
이 책의 맨 앞에 이런 말이 나온다. "철학, 너 자신부터 알라!" 그러면서 뜬구름 잡는 철학의 허영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현실과 살갑게 다가서려는 의도를 내비친다. 그런데, 뜬구름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딱 현실에 맞는 철학인가? 그 현실이란 건, 정말 실감나게 구성된 허구는 아닐까? 그래서 자칫 현실에 충실한 행동들이 다른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방해하는 꼴이 될 리는 없는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고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기 입맛대로고, 어떤 사안에 대해 재판관처럼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나, 자신의 생각(도덕적 판단)을 스스럼없이 들이대는 모습도 보인다(가령 5부와 6부). 독자에게도 최소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을 넌지시라도 알려주고 그리한다면 그나마 나을텐데 말이다.
그러한 태도가 자신의 책을 쓰면서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자기의 주장과 주입보다 어떤 물음을 일으키고 소소한 일상을 같이 읽기를 바란다면서 그러는 건 그리 권장할 만한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철학에 대한 조롱의 예를, 탈레스가 하늘의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을 보지 못해 빠졌다는 일화를 든다. 그런데 이것을 꼭 발밑 현실에 대한 무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철학이든 예술이든 이름을 남길 정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의 '열정'의 예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해도, 그러한 소수의 지나친 호기심과 연구가 그 당시엔 비현실적이라 폄하되어도, 미래의 현실을 만드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이란게 그렇게 딱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와 잠재태(가능성)의 역동적인 상호침투가 바로 현실일 수 있음을, 현실에 대한 기존의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저자는 뜬구름 잡는 철학의 부정적인 모습에 잽을 하나 더 보탠다. 철학이 재미도 없는데 어렵기까지하니 최악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보면, 저자는 정말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쉽게 가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우리가 그냥 주변을 둘러 보아도, 일정 수준의 경지를 넘어서면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것들은 수두룩하다. 문학은 어떻고, 회화, 영화, 음악은 어떤가? 저자의 이런 태도는 마치, 최근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단지 어렵고 재미가 없다고 최악의 영화라고 평하는 일부 관객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재미가 없고, 어렵다는 것'이 지금 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평가될 그 무엇이 될 순 없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책을 조금 넘기다 보면, 여성 외모와 관련해서 송혜교와 전지현이 나온다. '송혜교와 전지현 중 누가 더 예쁘냐'는 논쟁을 소개하면서.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듯이 말한다. "여성의 외모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송혜교와 전지현은 열성 팬들로부터 인격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받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문제가 많은 토론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건 한마디로 오버라고 본다. 두 여배우를 가지고 누가 더 이쁜지를 가지고 토론을 한다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고, 또 그렇다 쳐도, 그것을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하고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마치 의식있는 지식인인양 말하는 태도도 그렇다. 그건 저자의 지나친 생각이지, 정말 누가 이쁜지 따지는 사람들이 그 여배우를 정말 외모로만 평가하려는 의도라고 볼 순 없다. 일상의 작고 가벼운 애깃거리로 떠돌 수 있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끌어들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에겐 연기력과 외모는 큰 무기고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스포츠 선수에겐 역시 기량이 그러하다. 음악으로 치면 기타리스트를 가지고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고, 밴드의 우월를 가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건 한 사람의 인격이나 전체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이상의 장점을 가진 자들의 그 특정 능력에 대한 비교로 보면 될 뿐이다.
가령, 박찬호가 낫냐, 선동렬이 낫냐를 가지고 스포츠 게시판에서 가끔 화제가 되는데, 그건 박찬호나 선동렬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공을 잘 던지는 걸로만 평가해서 일어나는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정말 소소한 일상의 일들인데, 그걸 철학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저자의 지나친 의도와 여성인권에 대해 좋은 태도를 보이려는 강박이 빚어낸 일이 아닐까?
그럼 끝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노동'에 대해서 말을 해보자. 유물론적 시각에서 노동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데, 좀더 친절하게 인간의 노동이 개미나 벌들의 일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자연을 대상화하는데, 여자에 대한 별거 아닌 것도 대상화한다고 펄쩍 뛰던 저자가 '자연의 대상화'에 대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지나치는 모습이 약간 아쉽다.
일상에서 철학을 만나는 건, 도서관에서 허름한 양장본의 철학책을 고르는 것보단 분명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이다. 그러나 철학을 특별하지 않은 현실에 생동감 있게 풀어내는 일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뜬구름 위에서 관념의 날개짓을 멈추고 땅바닥으로 내려 오는 일! 필요하다. 그러나 내려오는 낙하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내려와서 오래도록 잘 걷는 것도 중요하다. 괜히 한쪽 다리를 헛딛어 똑바로 걷지 못하고 중심이 기운 채로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지금, 우리 일상의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읽으려는 태도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일상의 발견>, <일상에서의 철학>,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대학생.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저자의 주관적인 입김도 들어가 있다고 봄. 따라서 기본적인 입문서를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과 비판적으로 읽을 걸 구분하면서 보길 권함.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자본주의는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그 실체를 잃어버린다. 가방이 아니라 구찌라는 상표를 생산한다. 레인코트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버버리라는 상표를 생산하고, 시계가 아니라 롤렉스라는 상표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가방이나 레인코트라는 실제 상품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다."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