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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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맨 앞에 이런 말이 나온다. "철학, 너 자신부터 알라!" 그러면서 뜬구름 잡는 철학의 허영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현실과 살갑게 다가서려는 의도를 내비친다. 그런데, 뜬구름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딱 현실에 맞는 철학인가? 그 현실이란 건, 정말 실감나게 구성된 허구는 아닐까? 그래서 자칫 현실에 충실한 행동들이 다른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방해하는 꼴이 될 리는 없는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고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기 입맛대로고, 어떤 사안에 대해 재판관처럼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나, 자신의 생각(도덕적 판단)을 스스럼없이 들이대는 모습도 보인다(가령 5부와 6부). 독자에게도 최소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을 넌지시라도 알려주고 그리한다면 그나마 나을텐데 말이다.  

그러한 태도가 자신의 책을 쓰면서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자기의 주장과 주입보다 어떤 물음을 일으키고 소소한 일상을 같이 읽기를 바란다면서 그러는 건 그리 권장할 만한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철학에 대한 조롱의 예를, 탈레스가 하늘의 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을 보지 못해 빠졌다는 일화를 든다. 그런데 이것을 꼭 발밑 현실에 대한 무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철학이든 예술이든 이름을 남길 정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의 '열정'의 예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해도, 그러한 소수의 지나친 호기심과 연구가 그 당시엔 비현실적이라 폄하되어도, 미래의 현실을 만드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이란게 그렇게 딱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와 잠재태(가능성)의 역동적인 상호침투가 바로 현실일 수 있음을, 현실에 대한 기존의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저자는 뜬구름 잡는 철학의 부정적인 모습에 잽을 하나 더 보탠다. 철학이 재미도 없는데 어렵기까지하니 최악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보면, 저자는 정말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쉽게 가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우리가 그냥 주변을 둘러 보아도, 일정 수준의 경지를 넘어서면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것들은 수두룩하다. 문학은 어떻고, 회화, 영화, 음악은 어떤가? 저자의 이런 태도는 마치, 최근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단지 어렵고 재미가 없다고 최악의 영화라고 평하는 일부 관객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재미가 없고, 어렵다는 것'이 지금 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평가될 그 무엇이 될 순 없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책을 조금 넘기다 보면, 여성 외모와 관련해서 송혜교와 전지현이 나온다. '송혜교와 전지현 중 누가 더 예쁘냐'는 논쟁을 소개하면서.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듯이 말한다. "여성의 외모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송혜교와 전지현은 열성 팬들로부터 인격이 아닌 외모로만 평가받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문제가 많은 토론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건 한마디로 오버라고 본다. 두 여배우를 가지고 누가 더 이쁜지를 가지고 토론을 한다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고, 또 그렇다 쳐도, 그것을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하고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마치 의식있는 지식인인양 말하는 태도도 그렇다. 그건 저자의 지나친 생각이지, 정말 누가 이쁜지 따지는 사람들이 그 여배우를 정말 외모로 평가하려는 의도라고 볼 순 없다. 일상의 작고 가벼운 애깃거리로 떠돌 수 있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끌어들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우에겐 연기력과 외모는 큰 무기고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스포츠 선수에겐 역시 기량이 그러하다. 음악으로 치면 기타리스트를 가지고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고, 밴드의 우월를 가리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건 한 사람의 인격이나 전체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이상의 장점을 가진 자들의 그 특정 능력에 대한 비교로 보면 될 뿐이다. 

가령, 박찬호가 낫냐, 선동렬이 낫냐를 가지고 스포츠 게시판에서 가끔 화제가 되는데, 그건 박찬호나 선동렬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공을 잘 던지는 걸로만 평가해서 일어나는 일인가? 이것이야말로 정말 소소한 일상의 일들인데, 그걸 철학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저자의 지나친 의도와 여성인권에 대해 좋은 태도를 보이려는 강박이 빚어낸 일이 아닐까?  

그럼 끝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노동'에 대해서 말을 해보자. 유물론적 시각에서 노동을 강조하는 것은 좋은데, 좀더 친절하게 인간의 노동이 개미나 벌들의 일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자연을 대상화하는데, 여자에 대한 별거 아닌 것도 대상화한다고 펄쩍 뛰던 저자가 '자연의 대상화'에 대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지나치는 모습이 약간 아쉽다.  

일상에서 철학을 만나는 건, 도서관에서 허름한 양장본의 철학책을 고르는 것보단 분명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이다. 그러나 철학을 특별하지 않은 현실에 생동감 있게 풀어내는 일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뜬구름 위에서 관념의 날개짓을 멈추고 땅바닥으로 내려 오는 일! 필요하다. 그러나 내려오는 낙하에도 기술이 필요하고, 내려와서 오래도록 잘 걷는 것도 중요하다. 괜히 한쪽 다리를 헛딛어 똑바로 걷지 못하고 중심이 기운 채로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도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지금, 우리 일상의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읽으려는 태도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일상의 발견>, <일상에서의 철학>,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대학생.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저자의 주관적인 입김도 들어가 있다고 봄. 따라서 기본적인 입문서를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과 비판적으로 읽을 걸 구분하면서 보길 권함.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자본주의는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그 실체를 잃어버린다. 가방이 아니라 구찌라는 상표를 생산한다. 레인코트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버버리라는 상표를 생산하고, 시계가 아니라 롤렉스라는 상표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가방이나 레인코트라는 실제 상품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는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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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를 리뷰해주세요.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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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도 오고 했는데 숲으로 놀러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공기부터가 다르지 않을까? 나무들이 시야를 가로막겠지만, 거기서 어떤 답답함을 느끼랴. 한 사람이 두 팔을 벌려도 닿기 어려운 두꺼운 나무들도 하늘로 솟아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러한 나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숲에서 자리를 잡고 그저 묵묵히 숨쉬며 자랐을 것이다.  

왜 갑자기 숲이 나오고, 두께가 굵게 자란 나무를 들먹이는 것인지, 이 책의 제목에도 '지혜의 숲'이라면서 숲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고전을 오래된 나무를 통해 비유가 하고 싶어졌다. 오래된 나무에도 때가 되면 열매가 달릴텐데, 그것을 오래된 열매로 보진 않는다. 고전이란 것도 그러하다고 본다. 오늘 읽는 고전이 그냥 예전에 떠돌던 글들은 아니다. 그 언어의 복장이 고풍스러울지 몰라도, 현재, 우리들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짧은 문장으로 압축된 그 글자의 폭 안에는 세속의 지식들이 발효가 되어 잘 갈무리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고전을 오늘이라는 위장 안에서도 소화해야 하고, 그것은 곧 새로운 영양분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늘 정권이 바뀌면 뉴스에서 단골이 되는 가진 자들의 몰락! "부자이면서 자만하지 않으면 아름답고, 오만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라고 바로 이 책에서 말하지 않던가. 또한 "사람은 스스로 풍족함에 그칠 줄을 모르면 망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삶에 대한 아주 심오한 통찰이 담긴 문구도 발견했다. "인생은 문틈으로 백마가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욕망에 붙들려 사회의 요청에 순응하며 정신없이 사는 현대인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 봐도, 매우 현대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곳도 있었는데, "연기 구멍을 구부리고, 장작을 옮기라 한 것은 은헤가 없다"는 해설을 보고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또한 우리가 약간 잘못 알고 있는 '오월동주'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전달한다. 뒤에는 '고전의 개요'라고, 대표적인 중국 고전을 간단하게 소개하는데, <신음어>니 <위료자>니 처음 들어보는 것들도 눈에 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30대 이상,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한다는데, 내 생각에는 중고생들이 읽어도 괜찮을 거 같다. 어려운 부분이 적고, 해설과 유래도 나와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각 문구에 해당하는 글의 양이 적어서 부담이 없다. 대신 심오함을 얻기엔 좀 부족할 듯 싶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중국 고전의 대표적인 문구를 간략하고 쉽게 전달.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같은 저자의 <한권으로 끝내는 중국고전 일일일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중고생과 일반인들 누구나.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복숭아 나무, 자두나무 밑에는 자연히 길이 생긴다"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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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를 리뷰해주세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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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유명한 말이 나온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은 수행의 차원에서 바라볼 만한 것이지만, 세속의 차원에서도 본뜻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겠지만, 닮은 말들이 존재한다. 

혼자라는 거! 이것이 누구는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함을 불러들이는 극단의 존재상황일 수 있고, 또한 어떤 이는 그것을(외로움) 고독으로 승화하여 즐기기도 한다. 이 차이는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혼자서 자기만의 공간을 남 의식 없이 충분히 만끽하는 사람은 주변을 둘러 보아도 분명 많지는 않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스스로 단단한 의식의 경계를 만들어서 힘들게 버티는 고된 연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무대의 상영 시간은 결국 끝이 있고, 그 후, 무대에 내려가서 화장이 지워진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그러니 혼자가 되는 거, 그리고 이렇게 하면 충분히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권유 역시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나이에 따라 사회가 부여하는 수순(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적당히 돈을 모아 결혼을 해야 하고.. 등등)에 따라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 자유로운, 즉 원래 여유와 고독이 공존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책을 찾을리가 없다.  

몇 번의 이혼을 경험하고, 자신의 문제와 시름하면서, 어느새 이쪽 전문가가 되어 버린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을 그리 전달하고 싶었을까? 아마 자신이 찾은 그 무언가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픈 의욕이 강한 듯 하다. 그리고 저자가 나름대로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흔적이 책에 인용된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사례들을 열거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로 채운 느낌이다. 그래서 세세한 주의나 엄격성은 떨어진다. 

나는 한자로 인간이 '人間'으로 표기하는 것이 많은 걸 시사한다고 본다. 즉, 사람은 세상에 나와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뜻이 있으리라. 그걸 저자가 모를 리 없고, 문제는 그러한 것이 어색하고, 힘들고,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데에 있다. 그럼, 그러한 이성간의,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연인 혹은 부부)관계가 힘든 사람에게는 고독이란 무기를 가지고 '혼자 되기'를 권하기보다, 그래도 어떻게 '둘이 되기'가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아무래도 전자보다 후자가 더 쉽기 때문이다.  

이 책은, 1장에 전체적인 문제의식과 방향이 담겨 있고, 특히 26쪽에는 책의 탄생 배경이 나와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읽고, 마음에 끌린다면, 정독을 하면 좋겠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은 원서와 다르게, 마치 가볍게 읽을 만한 미술책으로 오해를 살 만하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부제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고른 사람은 흔히 말하는 '낚시'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자기 경험의 바탕에서 쌓아 올린 저자의 관점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여자들에게, 운이 좋다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박지영의 <혼자살기>. 고영주의 <혼자살기 가이드>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외로움을 무지 타는 혼자인 여자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하나가 되기를 열망하는 두 사람이 실상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 온다. 이 깨달음은 변화의 기회다. 로맨스라는 흥분 상태에서 시작하여 서로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독립적인 두 사람으로,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로 성숙해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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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미쳤다>를 리뷰해주세요.
스타는 미쳤다 - 성격장애와 매력에 대한 정신분석 리포트
보르빈 반델로 지음, 엄양선 옮김 / 지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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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7살에 요절한 3명의 록 스타를 알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은 60년대 미국, 흔히 말하는 저항의 시기에 젊은이들(특히 히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절정의 아이콘들이었다.  우드스탁에서 지미 헨드릭스가  전기 기타로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를 (불경스럽게도) 온 몸을 비비꼬며 연주하는 장면을 누가 잊으랴. 

케네디라는 꿈이 사라진 후, 그 공허 안으로 다시 야욕의 혀를 넘실거리는 권력에 대한 이들의 거친 몸짓은 저항이면서 축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꽃은 점점 사그라들어 마침내 젊은 재로 식어버린다. 무언가에 저항하면서도 약물이 그네들의 몸과 정신을 포획하는 것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나보다.  

일반인을 능가하는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그 내면에는 자신을 좀먹는 진득한 그림자를 달고 살 수 밖에 없는 그들. 자신이 가진 카오스를 결국 밖으로 폭주하듯이 단기간에 써버리고 결국 소멸을 택하는 자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런 과도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스타가 되기가 쉬운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자리에 오르면, 그 숨도 편히 쉬기 힘든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몰고 가는 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불안증 분야의 전문가라는 저자 보르빈 반데로는 이 책에서, 스타들이 미친짓?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진행 과정으로 보는 듯 하다. 즉 어려서부터 생겨 난 그 씨앗들의 힘, 그리고 방향이 그들에게 과속페달을 밟게 한다고.. 

이 책에 실린 스타들을 보면, 태어나는 환경 자체에 이미 불운의 기운이 감지된다. 정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은 스타들을 자라게 하는 데에는 좋지 못한 환경이라는, 희한한 등식까지 떠올리게 만들 정도다. 그러니 영화배우 클라우스 킨스키의 유년기는 정말 혹독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엄청난 상황들의 연속이고, 여기에서 성질 사나운 괴물이 나오리라는 건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킨스키는 그것을 고스란히 실현한 배우이기도 하다.  

흔히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영화에서는 만들어졌는데, 바로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피츠카랄도>에서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킨스키라니! 우리는 그냥 다 만들어진 영화를 보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마치 진저리나는 시간과의 싸움과 서로에 대한 적대시가 팽배했었나보다. 킨스키가 하마터면 같이 출연한, 극도의 불만을 품은 원주민들에 의해 큰해를 입을 뻔 햇다고 하니 말이다. 나도 오래 전에 봤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라서 이런 상황이 글쓴이의 괜한 허풍은 아니리라 짐작이 간다.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는 이 여자가 이렇게 곱고 이쁜줄은 몰랐다. 그런데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은 어쩌면 이리도 기구한지.. 뭐 그러한 사람들이 이 책에선 줄줄이 나온다. 가령  가장 짧은 별(단신)? 에디트 피아프도 빼 놓을 수 없다. 어쨌든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노래 중에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이란 묘한 제목을 가진 곡이 있다. 이것은 흑인들의 아픔을 노래한 것인데, 여기서 이상한 과일은 큰 나무에 매달린 흑인노예의 시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상한 과일'이 왠지 야릇한 미적 은유를 풍길것도 같은데, 전혀 다른 비극을 가리킨다니 놀랍다. 그리고 빌리 홀리데이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스타들에게도 그러한 이상한 과일의 빛깔과 향이 베어들것만 같아 두렵다. 

이 책에는 록스타가 많이 나오고, 그들의 세세한 이야기들도 다른 지면과 달리 꼼꼼한 면이 있다. 흔히 떠도는 풍문을 바로잡는 부분 역시도 그러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자가 한때는 기타리스트였다고 한다. 그러한 관심도가 단순히 한 인물에 대한 자료를 간략하게 정리하는 수준은 넘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과도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차라리 스타의 길로 들어서서 짧게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별빛을 비춰주고 사라지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식으로. 즉 어차피 이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쪽으로 가더라도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는 힘들거라는 예감인지도 모른다. 어떤 스타는 말하지 않던가? 자기가 이런 스타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살인자가 되었거나 도둑질을 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빛나는 것이 다 별은 아니지만, 빛나는 별들 중에는 무척 흔들리는 것이 있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안타까움이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하며 이 책을 덮는다. 그런데 이 도시 밤하늘엔 흔들리는 별조차 보기가 어렵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비운의 스타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단순한 우연이나 사건이라기 보다, 어려서부터 가지게 된 어떤 요인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정신의학적 지식도 따로 장을 마련해서 설영해준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지만, 일반 심리학책은 지루해서 싫은 사람들. 이런 책을 통해서 우선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경계성 성격장애 환자의 심리치료 이론을 다룬 논문을 소개한 기사들을 다 이어 붙이면 지구를 한 바퀴 둘러쌀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신분석 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학문적으로 증명된 것은 핸드볼을 두르기에도 충분치 않다" p.123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불충분한 증명에 대해 약간 의심쩍은 듯한 저자의 비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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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도르의 <라깡 세미나 에크리 독해 1>이라는 책을 뒤늦게 발견했다. 홍준기 씨가 밀고 있는? 라캉주의 정신분석가인데, 지젝이나 브루스 핑크 이외의 걸죽한 라캉 전달자를 만나고 싶다면 한 번 접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조엘 도르는 자신만의 (학자적인) 내공을 갖춘 걸로 보인다. 그리고 특색이라면, 팔루스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이다.  다만, 설명이 한 가지 톤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라, 지젝같이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재미는 덜하다. 그렇다고 그리 쉬운 편도 아니다. 그러나 지젝이나 핑크에 기울어진 라캉 독서 상황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색다른 분위기를 얻을 수 있다.

 

 

 

 

 

아난케 출판사에서 나오는 <아난케 정신분석 총서>도 묵직하니 볼 만한 책들이 많다. 아카데믹한 느낌이 많지만, 진중하게 공부하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어쨌든 다시 브루스 핑크로 건너 가서, 그의 책 <에크리 읽기>를 잠깐 언급해야 겠다. 내가 읽은 라캉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충실한 내용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감상문을 쓴다고 해놓고 이미 망각의 시간을 건너, 때를 놓쳤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다시 이 책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이다. 특히 이 책에는 아주 오래 전 소칼 등에 의해 저질어진, 프랑스 사유를 잠시 우습게 만든 지적 헤프닝에 대한 훌륭한 반격이 포함되어 있다.   

 

 

 

 

 

우노 구니이치의 <유동의 철학>을 읽다가 스피노자 설명에서 미립자의 교착이라는 흥미로운 부분을 봤다. 신체, 몸과 관련해서 나온 말인데, 이 미립자가 더 미세해지고 힘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의 차원에 육박해 들어가면, 그것을 차라리 氣라고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유물론으로서의 기철학과 내통할 수 있는 묘한 순간을 포착한 느낌!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보다 말다 했는데, 개정판이 나왔다길래, 그것마저 멈췄다. 들뢰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철학자이니 시간을 내서 그와의 만남을 다시 시도해 볼 생각이다. 뭐 그런 사람이 스피노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에겐, 프루스트 역시 중요하니까.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시도 읽다가 멈춘 상태다. 너무 양이 많다. 그런데, 제임스 조이스에 비해서 프루스트의 번역에 대해선 우리나라는 참 조용하단 생각이 든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만화로도 있어 혹했는데, 너무 얇다. 열 권을 읽든, 한 권으로 정리된 것을 읽든간에, 프루스트도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니체는 늘 새로운 활자에 찍혀서 독자들에게 영원회귀하듯 돌아온다. 전에 나온 책도 새롭게 단장해서 나오기까지 하니 말이다. 먼저, 앨피에서 나온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입문서라고 보기에는 사뭇 다른 시각들을 제공하는 신선함을 갖춘 책이다. 저자가 최근의 지적 흐름에도 민감한지, 늘 있어왔던 고리타분한 접근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은 아까 스피노자의 <에티카>란 책과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이 책을 <니체, 철학의 주사위>로 처음 만났다. 영문을 번역한 책이기도 하고, 철학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역자의 탓인지, 신뢰가 가진 않았다. 다만 프랑스판에 없는 들뢰즈의 서문이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미심쩍게 보다가, 프랑스판을 번역한 책이 나와서 구했는데, 게으른 독서방법으로 슬금슬금 보게 되었다. 그래서 반 정도 읽었나? 이 책에도 약간 번역에 문제가 있었는지, 같은 역자, 같은 제목으로 얼마 있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또 새로 번역한 책을 읽을 생각으로, 이 책도 결국 읽다 멈추고 말았다.  

뭐 결국은 게으른 독서을 변명하는 꼴이지만!  

그런데, 중요한 건, 왜 '니체의 철학'이 아니고 '니체 철학'인가? 여기에 꽤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들뢰즈에게 니체는 스피노자나 베르그송 등하고는 또다른 지위가 있는데, 아까 말한 책 <유동의 철학>에서 보자면, 니체만이 들뢰즈 등 뒤에 출몰하는 자로 묘사한다. 아주 노골적인 표현까지 나오는데, 그 상스러움 안에서도 니체와 들뢰즈는 묘한 힘으로 겹쳐진다. 그 부분에서 데리다가 말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모습도 연상되니 재미가 있다.  

왜 '의'가 아니고 '와'인가는 쏙 빼고 딴 애기만 한 거 같다. 딴 애기를 하면서 이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변덕은 느닷없이 나온것이라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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