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짤막하게 크게 알려진 밴드와 앨범을 가지고 글을 꾸려나가려고 했지만, 쓰다보니 생각보다 글의 부피가 커진다. 그래서 굵직한 밴드(흔히 슈퍼 밴드라고도 불림)를 하나 찍어 길게 풀어 나가면서, 중간 중간에 거기에 관련된 다른 밴드나 아티스트들에 대해 잠깐 다루는 방식으로 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멤버 교체가 많고, 뛰어난 뮤지션들간에 서로 '헤쳐모여식'이 흔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굵은 가지를 유념하면서 중간에 잔 가지들을 만나면 잠시 색다른 느낌도 받을 겸, 눈길을 주는 식으로 읽으면 될 거 같다.[초고를 여러번에 걸쳐 수정할 생각이다]
킹 크림슨, 핑크 플로이드를 아트락 밴드라고 부르기엔 뭔가 어색하고, 카멜이나 뉴트롤스를 프로그레시브라 하기에도 약간 밋밋하다. 그냥 일단은 프로그레시브, 아트락이란 용어를 얼추 비슷하다고 여기자.
가장 모범적인 프로그레시브 앨범으로 우선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꺼내 본다. 밴드 결성은 1967년 Giles Giles & Fripp로 볼 수 있으며, 이 앨범은 1969년에 나온다.
Giles Giles & Fripp[아래 사진]
비틀즈와 맞짱을 떠서 영국 앨범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잠시 입이 벌어진다. 좋은 음악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거야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먹혔다는게 다소 의아하다. 시기적으로도 젊은이들의 사회 반발력의 기운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나 넘겨 짚어본다.
이 앨범에는 아방가르드한 첫 곡 ''21st Century Schizoid Man' 이 곡제목처럼 맛이 간 정신을 노이즈 전기음향의 증폭에 실어 불규칙한 맥박으로 표출한다. 킹 크림슨의 사자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물론 로버트 프립의 외침이 가장 크지 않았겠나) 나머지 곡들도 다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그 중 'Epitaph'는 이 밴드의 안방마님 역할을 오래도록 충실히 하는 곡이다. 그렉 레이크의 멜랑꼬리한 음색과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의 멜로트론이 잘 조화된 음악이다.
'I Talk To The Wind'는 정말 바람에 속삭이듯 나지막한 음색이 멋드러지고, 'Moonchild'는 에코가 섞인 인트로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가 비슷한 맛이 난다. 그러나 뒤로 가면 재즈적으로 바뀌는 묘한 곡이다. 그리고 끝곡인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가장 락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웅장함을 담고 있는 곡인데, 후배 밴드들이 나중에 색다르게 많이 따라하는 곡이기도 하다.
멜로트론이 나온김에 이들보다 밴드로서는 앞선 무디블루스(Moody Blues)를 지나칠 수가 없게 됐다. 'Nights in White Satin'으로 유명한 그들의 기념비적인 앨범 [Days Of Future Passed'67]은 '하루의 시간'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프로그레시브 앨범에서 단일한 주제로 음반의 곡들을 통째로 구성하는 방식들이 유행하게 됐다고 한다. 드보르작의 교향곡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공들인 클래식과 락의 이쁘장한 만남이 서사적이면서도 매끄럽게 이어진다. 여기서 멜로트론의 선구적인 쓰임 또한 만나볼 수 있다. 다소 평이한 느낌을 주기에, 무디블루스가 프로그레시브 매이나에게 열광적인 지지는 받지 못하지만, 음악 작업에서의 신선한 시도들은 그 후에 다른 밴드들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토대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렉 레이크(Greg Lake)는 2집 [In the wake of Poseidon'70]을 끝으로, 3인조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로 들어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수준 높은 아트락의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무소그르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새롭게 연주한 'Pictures at an Exhibition'은 'C'est La Vie'와 함께 그들의 대표곡이다. 그러나 E.L.P의 최상의 실력이 유감 없이 드러난 앨범은 비록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Brain Salad Surgey'73]를 꼽을 수 있다. 기거(H. R. Giger)가 디자인한(그 후 [Then & Now]도 있다) 표지부터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 앨범에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3부작으로 구성된 'Karn Evil 9'은 E.L.P의 최고의 경지가 30 여분 동안 펼쳐지는 곡이다.
킹 크림슨은 그 후로도 계속 고독한 지성이 깃든 미학과 실험성을 가지고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커다란 매듭을 짓기 시작한다. 두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70]은 1집 보다 약간 김이 빠진 느낌도 주지만 'Cadence and Cascade' 곡이 잔잔한 느낌을 준다. [Lizard'70]에서는 마치 제네시스의 피터 가브리엘 풍의 보컬 느낌이 나는 'Lady Of The Dancing Water'와 불협화음이 눈에 띄는 'Cirkus' 그리고 청아한 보컬로 시작하는 20 여분의 대곡 'Lizard'가 있다. 74년 앨범 [Starless and Bible Black]은 킹 크림슨 매니아들의 애청곡 'Fracture'와 느리게 진행하면서 공간에 균열을 만드는 듯한 'Starless And Bible Black'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도 무척 좋아하는, 말이 필요 없는 명곡 'Starless'가 담긴 [RED'74]가 있다.
[RED]이후 해산을 선언하지만 긴 공백 끝에 새로운 움직임이 생긴다. 1980년 이후 프립은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는데 그 이름이 디시플린이다. 그러나 다시 킹 크림슨의 밴드 이름을 되찾고 디시플린[Discipline]은 그들의 81년 앨범 제목으로 탈바꿈한다.
공백 기간 동안 내노라하는 여러 뮤지션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단련된 프립의 음악 세계가 한뭉큼 얹어진듯한 음악으로 들린다. 여러 다양한 실험이 담겨 있지만, 그다지 노골적이지 않아서 듣기에 큰 부담은 없다. 보컬이 낭낭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보컬 음색은 대중들을 바라보지만, 리듬은 발라드같은 곡에서부터 변주가 느껴지는 곡 등 뭔가 즐기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이 앨범의 묘미는 4번 트랙 'Indiscipline'과 7번 끝곡 'Discipline'의 대칭성이 주는 긴장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디시플린이 다소 혼란한 '카오스'를 드러낸다면, 디시플린 곡에서는 '코스모스' 즉 질서 잡힌 음악의 힘이 느껴진다. 이곡을 듣고 나서 앨범표지를 보면 "아! 그래서.."하는 고개 끄덕임이 절로 생긴다.
첫 곡이 'Elephant Talk'인데, 프립이 킹 크림슨이라는 밴드 이름을 갖기 전에 활동했던 'Giles, Giles & Fripp' 밴드의 68년도 앨범 B면 두번째에 'Elephant Song'이 실려 있다, 나레이션과 서커스풍의 음악이 어우러진 약간 재미있는 곡이다. 하여튼 엘리펀트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 있지 않나 싶다.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솔로 앨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거의 우주적인 허공에 오가는 굉음에 매달린 기타줄같은-추상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그의 성향이 멤버들은 물론 대중하고도 연속적인 유대를 어렵게 하는 듯이 보인다.
로버트 프립은 솔로 시절에 여러 뮤지션들과 앨범 작업을 같이하는데, 데이빗 보위, 브라이언 이노, 데이비드 실비앙 등이다. 내가 보기에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그래도 궁합이 잘 맞는 거 같다. 그러나 둘이 만났으니 음악의 대중성은 물 건너 간 것이고, 매니아들에게는 어떤 미지의 음색을 탐닉하는 두 탐험대로는 안성맞춤이다. 이들은 1973년에 [No Pussyfooting]를 시작으로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