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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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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전반에 관한 책보다 이런 컨셉을 갖춘 책이 더 흥미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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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분열증 현대사상의 모험 1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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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기이한 분출이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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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에 출연했던 배우 히스 레저(Heath Andrew Ledger)가 최근에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는 내 짐작보다는 많은 영화에 나왔다.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2005)>과 <몬스터 볼(2001)>에도 나왔다는데, 이 영화들을 볼 당시엔 그를 몰랐고, 이제서야 그의 출연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다른 영화들에 비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의 존재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십대에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좀 놀랍다. 영화 처음에 파트너로 나오는 배우 제이크 질렌홀과 만나는 장면은 약간 어리버리하면서도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근데, 여기서 약간 뻔질하게 나오는 이 배우(제이크 질렌홀)가 최근 영화 <조디악>에서는 너무도 진지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나온다. 배우란 정말 높고 낮은 서로 다른 빛깔의 음을 지니고 다니는 괴물스런 악기?들이 아닐까..

 

 

 

 

 

<와호장룡>으로 유명한 이안 감독의 <브로크 백 마운틴>은 도발적인 주제인, 동성애를 다룬 영화이지만 그것의 자극성에 쉽게 탑승해서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다. 긴 시간 동안 두 남자의 정서가 마치 수채화 혹은 동양화처럼 포개지는 부두러운 점과 선의 미학이 있다. 결국 초점은 두 남자이고, 이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품는 배경은 바로 양들이 풀을 뜯는 한가로운 산 '브로크 백 마운틴'이다. 이 산에서 그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지만, 양들 대신 사람들의 눈이 살아있는(타인들의 주시) 마을에서는 그냥 평범한 남자의 모습으로 위장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불쾌하고 이질적인 종자로 낙인이 찍혀서 제거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여기서의 '거세'는 정신분석학적인 거세가 아니라, 정말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고, 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남자들이 더욱 곤혼스러운 것은, 이들은 오리지널 게이들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선택은 한적한 곳에서 둘이 같이 목장을 운영하며 오붓하게 살면된다. 물론 여기에도 위험이 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누구보다 거칠고 남성미가 흐르는 남자들. 미친듯이 날뛰는 황소를 타고, 사무실이 아닌 드넓은 땅 위에서 말을 타고 일하는 이들이, 단 둘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고대 그리스의 그 무언가를 되물려 받은 듯한 감전을 느껴야 하는 비극을, 운명을 겪어야 한다. 

이 둘이 게이인가, 양성애자인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일반적인 성적 범주보다는 오히려 개별적인 만남의 사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홀)의 만남에서 우연히 점화된 성적 사건이고 그것의 지속이 아닐까?. 이들은 자신들이 게이가 아니라면서 게이처럼 행동한 것 뿐이다.          이런 역설을 가능하게 만든 바탕화면(오브젯)이 바로 브로큰백 마운틴이라는 바다와 같이 고요한 산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이안 감독은 <헐크>에서 약간 어긋난다. 헐리우드의 유혹에 장단을 맞추지 말고, 자기에 맞는 영화를 고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히스 레저의 출연작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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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페르(L'Enfer, 2005)>.. 우리말로는 '지옥'이란 영화다. 일본 영화 중에 더러 '지옥'이 들어 간 영화들이 있는데, 랑페르는 뱀의 혀처럼 불길이 치솟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프랑스 영화라니 심리적인 지옥은 꽤 잘 만들거 같은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끌고 가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처절한 값을 온통 배우들에게 맡기진 않는다. 어쩌면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에게 "이것이 이 영화의 여운이다"라며 조금씩 그 맛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반가운 여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서 늙은 양반을 정말 감질나게 만든 여자, 캐롤 부케. 007 본드걸 출신으로 참 아리땁다. 그런데, 완전 백발의 할머니가 되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길래, 벌써 이렇게 늙었나.. 하는 놀라움과 의아심을 들게했다. 그러나 다행히 설정상 분장으로 그런것임을 알고 좀 안심이 되었다. 

 

 

 

 

괜히 주연도 아닌 여배우를 가지고 늘어지다니. 그러나 나도 곤혼스러운것이 스포일러 없이 이 영화에 대해 말하자니 그러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요새 본 영화 중에 구성이  알차 보여서 정보 없이 보는게 좋을 것 같기에 그러하다. 특히 처음에 순간 순간 빠른 영상 속에 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어, 보고 나서 음미해보면 꽤 적절한 맛임을 알게 해준다.

스포일러가 왕창 포함된 글은 마음 편히 따로 써야겠다. 한 가지, 이 영화는 키에슬롭스키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삼부작(천국, 지옥, 연옥)중 지옥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 감독의 톤을 지키느라 극단적인 묘사로 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살짝 제어를 한 게 아닐까? 

이 페이퍼 제목에 낭패가 들어갔는데, 이건 영화에 대한 느낌이 낭패인 것이 아니라, 이 영화에 나오는 한 인물의 심정이 이러지 않을까 해서 적어 본 것이다. 왠지 랑페르와 어감도 비슷하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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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당신의 추천 영화는?

그대

빛나는 것이라고 무조건 넋을 빼고 바라보지 마라

그 보잘것 없는 부스러기는 당신의 을 기다렸다

그 유혹에, 무심코 그것을 클릭하는 순간

운명의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대개 뭇사람을 유혹하는, 사람의 내재된 욕망을 은밀하게 꾀는 시스템은

그에 맞는 쾌감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보통의 즐거움보다 몇 갑절 큰 것으로

당신이 원하지 않지만 원하는 타나토스(의 영상)를 선사할지도 모른다

시스템적으로 말하자면, 파국(Catastrophe)이다

...

시스템에서 질서가 더는 감당 못하는 지나친 쾌감은

못된 작은 구멍의 급류에 휩쓸려 빠져 나갈 것이다. 

 

매력적인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세실리아 역으로 나오는 영화 <어톤먼트(atonement)>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너무도 단순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각'은 각 개인에게는 너무도 사실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각 유기체의 독특함 만큼이나 마음의 작용도 미묘한 차이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에는 온갖 오해들이 소울 메이트가 꿈꾸는 투명한 소통의 다발들을 부지런히 오염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린 소녀가 있다. 브리오니라는 이 소녀는 을 통해 저 아래에서 언니와 젊은 일꾼의 묘한 행동을 우연히 보게 된다. 짧은 무성 영화같기도 한 장면인데, 두 인물의 모습은 극단의 감정이 실렸는지 동작이 크고 거세다. 그리고 물에 옷이 흠뻑 젖은 여자의 모습에서 성적 코드는 무리없이 자리잡는다. 어떻게 보면, 두 연인의 감정싸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감정이 복받쳐 씩씩 거리는 이 여자가 바로 세실리아고, 젊은 일꾼은 그래도 명문 의대를 다니는 장래가 유망한 로비라는 청년이다(뭐 우리나라 드라마로 치자면, 사장집에 얹혀 사는 공부를 잘하는 운전기사의 아들 정도..).  

영화는 친절하게도 소녀의 시선에 잡혔던 광경을 다시 한번 '실제는 이러했다'는 식으로 보여준다. 사실?은 아직 두 남녀는 서로 시큰둥한 사이였고, 세실리아가 오빠가 집에 오는 걸 환영하기 위해 연못에서 꽃병을 씻어 꽃을 넣으려고 하는데, 로비가 옆에서 도와준다고 설치다가 작은 사고가 난 것이다. 꽃병에서 살짝 작은 조각이 떨어지면서 연못에 풍덩 빠져버린다. 그 꽃병을 건지려고 세실리아는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고(그래서 물에 흠뻑..), 그리고 격분해서 로비를 신경질적으로 밀치고 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브리오니가 창을 통해 불확실하지만 대충 받아들인 인상하고는 많이 어긋난 이야기다. 즉 방의 창문은 이 어린 소녀에게는 하나의 필터 역할을 한 것인데, 그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서도 동시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오해의 필터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스스로 미진하지만 하나의 이해에 도달한 것이다.

하필 왜 그런 인상을 받았을까? 순전히 제한된 정보로 인한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는게, 영화를 계속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 이미 브리오니의 마음에는 그런쪽으로 흘러갈 만한 싹(로비에 대한 감정)이 뿌려져 있었다.

 

벌써 두시가 넘었다. 나머지는 내일 써야지.

자기 전에, 이 영화의 원작이 바로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속죄(Atonement)라는 소설이다. 아직 소설은 보지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낀 건, 어떤 우연의 짧은 순간에 잠복해 있는 운명의 갈래질에 대한 묘사가 꽤 섬세하고 순발력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아주 커다란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 마디 마디를 잇는 운명의 힘이 소리 없이 보는 사람의 가슴에 두터운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결말이, 아니면 늙은 할머니가 된 소녀의 고백이 설득력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이언 맥큐언(이안 맥이완?)의 소설들.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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