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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비밀 - 마음이란 무엇인가 유식입문
요코야마 코이츠 지음, 김명우 옮김 / 민족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마음의 비밀'이란 제목은 너무도 평범하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쓸 수 있는 것들은 많을 것이다. 처세술에서부터 (연애심리를 비롯한) 심리학, 신비주의, 초능력에 걸쳐서 말이다. 오히려 부제로 작게 써 있는 '아뢰야식의 발견 -알기 쉬운 유식입문'이 주는 간단하면서도 활력까지 느껴지는 분명함을 제목이 애매모호한 장막을 친 느낌이다. 이 부제가 바로, 원래 일본 원서의 제목인데 말이다.
물론 출판사 입장에서 '아뢰야식', '유식'이라는 낯선 간판을 내세워 괜히 사람들이 짐짓 겁을 먹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쳐도 이는 정도를 많이 벗어난 듯 하다. 정 그렇다면, '유식이라는 마음의 발견', '불교는 마음을 어떻게 보는가?' 혹은 더 쉽게 간다면, '불교-마음의 발견' 등이 낫지 않았을까?(최소한 책의 내용과 제목의 컨셉은 어느 정도 맞아야 하니까 말이다.)
들어서기도 전에 책제목을 가지고 너무 끌었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이 제목에 가려져 오히려 사람들의 눈을 가릴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니 양해 바란다.
요코야마 코이츠(橫山紘一)는 동경대 인도철학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다. 전에도 주로 유식(唯識)에 관한 책들을 많이 썼다. 이 책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나온 책들만 봐도, <유식철학>, <유식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마음사상> 등이다. 전문서에는 전문성 있게, 대중서에는 (이 책에서도 보듯이) 알기 쉽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셨다.
이 책, <마음의 비밀>은 알기 쉬우면서도 현대인에 맞게 고루한 옛 표현들을 되도록 삼가한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현대과학, 뇌과학을 조금 거론하기도 하지만, 살짝 붙였다 뗀 느낌 정도다.
가장 큰 장정이라면, <유식이십송>이나 <유식삼십송>의 차례에 맞게 구성한 것이 아니라, 유식의 번잡한 이론들은 잠시 물리치고, 가장 핵심적인 것들만 끄집어내서 풀어냈다는 것이다. 거기다 자주 '도표'라는 시각적 효과를 이용, 간단하면서 쉽게 접근하려고 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특히, 유식, 유식무경, 마음의 심층구조, 아뢰야식, 신체(몸)와의 관계 등은 그림을 통해서 단순하게, 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그러한 단순성에 작은 오해들도 끼어들 여지가 있지만, 입문서로서는 그러한 부작용을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라는 것이 어떤 객관적 공간이 아니라 결국 "마음속의 영상이다", 혹은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것을 (일단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서양의 정신분석, 즉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과 유식의 심층구조가 어떻게 다른지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1500년 전 인도에 이런 사유가 있었다는 놀라움은 잠시 제껴두고라도 말이다.
그러나 유식학은 학자들의 고급스러운 유희를 위한 이론이 아니라 결국 수행이라는 실천을 향해 있다. 이 부분에서 유식학이 강조하는 것은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이라는 개념?들이다. 변계소집성이라는 언어로 얽매인 상징계로부터 '연기성'이라는 자각을 통해 의타기성을 알게 되고, 거기서 마음의 변성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마음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원성실성이다. 이것을 이론적으론 우리가 알 수 있지만, 마음이 늘 여전한 까닭은 바로 수행이라는 실천-그것의 결실인 체험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이성 중심의 서양철학과 유식-중관이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실제로 유식이라는 이론 공부는 물론 젊어서부터 마음 수행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이 유식이 담긴 이 책에도 애정 어리게 드러나는데, 즉 뒷부분으로 갈수록 마음닦기 측면에서 타인에 대한 자비 같은 수행적인 것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이 책은, 이론적인 면에서 수행으로의 흐름이 급작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유식'은 역시 '중관'과 더불어 불교의 심층이기도 한데, 이러한 유식을 오래 붙잡고 매달린 저자의 내공이 이 책에 잘 갈무리 된 것 같다. 유식에 대한 단순한 요약본이 아니라, 유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용어, 개념과 수행까지 잘 아우러서 짧은 한 권에 담아낸 것이다. 유식에 대한 감을 잡기엔 아직까지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책 제목이 주는 애매모호함을 뚫고 들어가서 결국 아뢰야식이라는 마음의 폭류(暴流)! 그 거칠고 시원한 풍광을 잠깐이라도 맛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