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IVE KITTERIDGE (Paperback)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Simon & Schuster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뭐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건 좋은 소설 독법은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읽은 '내'가 보기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이 부분이 아닐까 추측하는 건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의 의미를 추적해가는 관객처럼, 스쳐 지나치는 평범하고 무난한 문장 속에서 어떤 독자는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고, 그리고 '발견'한다. '발명'에 가까울 테지만, 그건 분명 발견일 테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좋아하고, 그녀가 창조한 루시를 좋아하는 내가,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발명'한 작가의 속마음 문장은 바로 여기다. 나는 이 문장들이 내겐 작은 충격으로 읽혔던 <겨울 음악회>의 마지막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So they talked like that, and it was kind of nice. They both needed someone to talk to, someone to listen, and they did that. They listened. Talked. Listened more. He never mentioned Harvard. The sun was setting behind the boats as they sat with their decaf coffees. (325p)



나는 항상 '대체 불가능성'에 미혹됐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마리 루티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는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사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타인의 특징은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우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 톤, 눈빛, 코, 턱, 눈썹, 손톱 모양, 또는 커피 잔을 집는 방식에 매료되기도 한다."(126쪽)

나는, '그'일 수밖에 없는 그 사람과의 사랑이 특별하다고 혹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irreplaceable. 신승훈이 <I believe>(아, 숨길 수 없는 나의 연식이여!)에서 노래했듯이. '난 그대여야만 하죠'의 고백. 나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미루어 짐작했다. 난, 그대여야만 해요. It's always been you. 앤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길버트의 말처럼. 항상 너였어. 너였고, 너야. 내 마음은 언제나 너였어. 그런 말, 그런 이야기.

올리브에게 '난 그대여야만 해요'의 그 사람이 함께 떠나지 못했던 짐 오케이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헨리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리브는 남아 있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헨리였으니까. 새로운 사람 잭이 그녀의 '난 그대여야만 해요'의 그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잭 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짐은 사고로 올리브를 떠났고, 그리고 헨리도 그녀 곁을 떠났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고,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올리브에게 '난 그대여야만 해요'의 그대는... 잭이다. 잭인 것 같다. 그런데 잭은 어떤 사람이냐면, 잭. 바로 '그' 잭이 아니라, 그녀 앞에 앉아 있는 '그냥' 잭이다. someone to talk to, someone to listen. 지금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사람, 그리고 지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내게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 사람.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사람. 이 사람, 내 앞에 있는 이 사람.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11쪽)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잭이 올리브에게 말하고, 올리브가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올리브가 이야기하고, 잭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올리브는 올리브가 되고, 잭은 올리브에게 비로소 '잭'이 된다. 이때의 '잭'은, 바로 그 사람, 대체 불가능한 어떤 사람, 꿈에 그리던 환상 속의 그대가 아니다. 이 사람은 지금 내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목요일에는 친구를 만났다. 근무시간이 워낙 적으니깐 근무일을 4일로 조정해 주었는데(나에게는 조정권 없음), 수요일이 금요일이 되는 건 좋았는데, 금요일이 월요일이 되어버려서 지금으로서는 좋은 건지, 별로인 건지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이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아이의 공부와 식사(를 위시한 영양관리)를 거의 완벽한 수준에서 케어하던 친구여서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갔다고 해서 서운하고 허전해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배달 한 번 안 시키고, 외식도 마다하던 친구는 밥 안 하게 돼서 너무 좋다고 했다. 아이가 돌아오는 목요일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참 묘했다.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가진 최고의 노력으로 엄마의 역할을 해냈던 친구는 만족해하고 즐거워했다. 빈둥지 증후군의 증세가 전혀 없었다. 이에 반해,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 꺼내 밥 차려주고, 툭하면 외식에, 공부는 자기 일이니 각자 알아서 잘 하겠거니~ 관심을 갖지 않았던 나는, 아이 둘 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오히려... 떠났던 빈둥지를 돌아보고, 안으로 들어와 쓸고, 할 일 없어 바닥을 닦는, 그런 엄마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화끈한 친구의 표현대로, 둥지가 비기도 전에 둥지 '떠나버렸던' 내가 말이다.

빈둥지 증후군이 당최 뭔지도 모르는 친구가 빈둥지 유사 증세를 겪고 있지만 차마 입 밖에 말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케이크를 사 주었다. 얼그레이 쉬폰 케이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2026-04-14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의 찐사랑은 헨리라고 생각합니당😆

단발머리 2026-04-14 22:20   좋아요 1 | URL
크리스토퍼 빼야겠지요? ㅋㅋㅋㅋㅋ 저도 올리브의 찐사랑은 헨리라고 생각합니당 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것보다 저는, 헨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쓰러져 오랜 시간 힘들게 보내다가 이별한 게 너무 아쉬워요. 물론 저보다 올리브가 더 아쉽겠지만요.

다락방 2026-04-14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이 리뷰는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저도 가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생각하고 또 연인에게 네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냐 물었던 적도 있고, 그리고 주변에도 가끔 그렇게 묻기도 했거든요. 친구들에게도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의 이 문장을 보게 됩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고,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

아.. 그걸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네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면, 내가 전에 누굴 더 사랑했든, 그리고 내 앞의 그 사람이 전에 누구를 더 사랑했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내가 얘기하고 또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인 것을요..

단발머리 님.. 멋져요 ㅜㅜ

단발머리 2026-04-14 22:19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쪽으로는 사실 잘 모르고 살았고, 제 삶을 돌아봤을 때 앞으로도 그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깐 제가 가보지 못한 길, 제가 갖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서요. 이런 걸까, 저런 걸까,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거든요. 근데 이 소설에서는 뭐랄까. 그게 안 중요하다고 느껴졌어요. 잭이 치료받으러 들어갔을 때, 병원 의자에 올리브가 앉아 기다리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 때, 올리브가 ‘편안하다‘고 말했던 게 무척 인상깊었거든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지금 여기에 내가 할 일이 있고. 그런 거요.

다락방님은 영어원서 같이읽기 회장님이신데, 행동은 선플 달기 위원회 회장님 같습니다. 진짜루 그래요.

책읽는나무 2026-04-16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원서 리뷰를 읽으면 뭐랄까요? 정말 새 책의 리뷰를 읽는 느낌입니다. 나는 과연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은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고, 다시 그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구요.^^
근데 다들 각자의 눈에 들어온 문장들과 그 문장을 오래 생각하고 다시 재해석하여 들려주는 그 방식이 참 감동이란 생각을 종종 하고 있어요.
‘난 그대여야만 해요.‘ 내 눈 앞에 있는 지금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유일한 의미가 될 수 있는 것! 진리인 듯한데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좀 심쿵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단 딴생각도 좀 해보구요.ㅋㅋㅋ

그나저나 빈둥지 증후군.ㅜ.ㅜ
동네 언니 한 분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아닌가? 두 분인가?
비어져 있는 아이들 방을 쓸고 닦으며 물건을 그대로 놓아두고 있는데…지금은 그냥 방문을 닫아뒀다고 하더군요. 그 마음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지금 우리집에 애 셋 우글우글해서인지 그래도 좀 부럽다!로 바로 두뇌전환!🥹
빈둥지를 바라고 원하지만 막상 빈둥지를 갖게 되면 그 헛헛함이 찾아오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 같아요. 저는 빈둥지를 바라고 있지만 또 내심 빈둥지를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여서…엄마 마음은 알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케잌을 사 주는 친구가 있으니 참 복 많은 사람입니다.ㅋㅋㅋ

단발머리 2026-04-17 08:35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올리브 키터리지 읽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너무~~ 좋다~ 할 때, 제 삶에, 현실에 가깝게 겹쳐지는 부분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그게 싫었어요. (뭔지 아시죠? ㅋㅋㅋㅋㅋㅋ) 저는 다들 각자의 눈에 들어온 문장과 그 해석들이 참 좋거든요. 읽기라면 역시나 ㅋㅋㅋㅋㅋ 같이읽기가 최고죠^^

저는 제가......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빈둥지 증후군을 겪을만큼 둥지에 머물지 않았던 엄마새이구요. 저는 ㅋㅋㅋㅋㅋㅋㅋㅋ 빈둥지 증후군 유사 증세 ㅋㅋㅋㅋㅋㅋㅋ복잡복잡 우글우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사실 그 순간에는 힘들잖아요. 코로나 때 생각나네요. 방마다 1명씩 아이들이 차지하고, 먹고 치우고, 치우고 먹고....
책나무님은 위의 제 친구처럼 열심히 달려오신 분이라 아이들이 훨훨 날아가면 그 시간을 잘 누리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집밥에서 드디어~~ 해방되었습니다.
금요일이라 좋아요!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책나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