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쌤의 매거진 10월호 <한국인과 영어>를 듣고 영어 뽐뿌해지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고, 자연스레 검색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방송에서 소개된 여러 영어책 중에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를 구입한 사람을 현재까지 두 명 알고 있는데, 한 명은 스프링 분철을 택했고, 한 명은 스프링 분철을 택하지 않았다. 스프링 분철을 택하지 않은 사람이 스프링 분철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스프링 분철을 택해 주문했던 영어책(그것 또한 보카책, 『504 지적 리딩을 시작하는 공식 영단어』)을 4분의 1밖에 읽지 않았기에 이 책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한 번 보고 반품하려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스프링 분철을 택했건 택하지 않았건 그냥. 그 책은 읽기가... 그냥 끝까지 한 번 읽기도 어려워보이는, 외모와 무게. 하지만 이 책은 보카책. 읽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외워야만 하는 책. 그래서... 나도 모르겠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영어 공부에서도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쉽게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학습 vs 습득의 지난한 논의도, 'comprehensible input for survival'의 결론도 결국은 본인이 어떻게 이 지루한 과정을 해내는가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마리 루티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세부를 채워나가는 '학습'법이 유리할테고, 시간적 여유가 있고 미디어를 접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라면 '드라마'등을 이용해 최대한의 인픗을 통한 언어 '습득'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의 방법.
우선 처음에는 번역서에 선을 그어가며 빈틈없이 읽습니다. 두 번째는 선을 그은 부분을 원문과 하나하나 대조하며 읽어갑니다. 그리고 세 번재로, 그게 정말 좋은 책이고 한 달 정도 공을 들여 읽을 짬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원서로 읽어봅니다. 그것이 재독의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저희 같은 외국어 비전문가들은 말이죠, 전문가가 번역한 책을 옆에 두고 읽으려는 원서도 함께 둡니다. 그리고 사전을 앞에 둡니다. 이런 식으로 원서를 읽는 것이 좋아요. 번역본을 참고하면 원서를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집니다. (『읽는 인간』, 41쪽)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항상 뒤로 한다. 나는 갈등 회피형이다.) 그 에피소드에서 추천된 다른 책에 손을 뻗는다. 방송을 듣자마자 검색했더니 두 권이 도서관에 있었다. 상호대차로 신청하고 책을 뒷자석에 실어두고 며칠을 다니다가 나중에서야 해파리 책은 밀리의 서재에도 있다는 걸 알게됐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로 읽는다.
영생 불사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기에 숨길 필요가 없다고, 그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생을 위해 원숭이의 고환 패치를 자신의 고환에.... 캡처본을 가져온다.
영어로 시작해서 해파리로 끝나는 나의 독서기행의 끝은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 보자. 9월, 10월에는 이런 책들을 사두었다. 목표는 보조배터리였고, 연필이었고, 그라탕식기였고ㅋㅋㅋㅋ 그리고 책들.
날이 쾌창하니 하늘도 파란데, 아직도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