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을 수 없는 나는, 그래도 답을 찾고 싶은 나는,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둔 책을 꺼내고, 정희진 선생님의 해제를 다시 읽는다.

 


유대 민족은 실재가 아니라 담론과 관습의 산물이다. 물론 정체성은 억압받을 때 생성되는 사회의식이므로 유대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강력하고 전투적이다. 한편 정체성의 정치는 피해의 자각이라는 원한, '르상티망ressentiment'에서 생기기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시오니즘이 그것이다(-이스라엘 동맹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현실은 이 책에 접근하는 데 혼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해제>, 정희진, 352)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

 

먼 나라에서의 끔찍한 전쟁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전 세계가 편을 나누어다같이 미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거 아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하마스 대원들의 잔인한 영상을 보면, 이스라엘의 분노가 어떠할지 예상된다. 하지만, 수시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살해했던 이스라엘군의 행동 역시 팔레스타인들의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걸, 많은 언론은 모른 체 하고 있다. 하마스의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로 입지가 불안해진 하마스의 오버 행동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더 큰 책임은 이스라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군사적 긴장이 느껴지는 (한반도 빼고 세계 최고) 중동의 한복판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해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했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집권과 정치적 세력 확장을 위해 외부의 힘을 이용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가족들의 원통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피의 보복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하마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피난 가는 행렬도 학교도 병원도 이스라엘군의 요격을 피할 수 없다.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리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공멸의 버튼이 이렇게 눌러지고, 말았다. 전쟁터는 가자지구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들이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글을 읽으며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정도였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반유대주의 가톨릭 성직자 진영을 글이나 말로 매우 훌륭하게 대표한 집단이 바로 예수회였다. 이런 결과가 빚어지게 된 까닭은 수습 성직자들에게 4대에 걸쳐 유대인 혈통과의 무관함을 입증하게 했던 예수회의 계율이었다. 또한 19세기 이후 교회의 국제 정책은 예수회가 장악했다. (<전체주의의 기원>, 235)

 


흑백의 인종적 단절을 위해 백인들은 오랜 기간 자신들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한 방울의 흑인 피도 백인의 것으로 보지 않겠다는 무모한 집념과 이러한 집념의 실행은 이미 유럽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던 일이다. 4대에 걸쳐 유대인 혈통과 무관합니다, 라는 증명. 그런 증명이 필요한 사회. 그런 사회를 지배하는 반유대주의 문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일은 멈춰져야 한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을 그만둬야 한다.

 

















1948 5월 아렌트로 하여금 탄원서 「유대인 조국을 구하기 위하여 - 아직 시간이 있다」를 쓰도록 만든 것은 이러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어떤 대가를 치르든 끝까지 싸우려는 두 민족 모두의 현재의 욕구는 순전히 비합리적일 뿐이다"(JP, 179)라고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 188)

 

 


그들의 오랜 고통을 나는 글로만 알 뿐이다. 유대 국가의 건설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외부인들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정전 상태의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선제공격을 운운하는 무식한집권 세력의 통치 속에 살고 있는 나는, 북한 미사일의 공격권에 속하는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한 전쟁의 소용돌이가 두렵고 또한 걱정스럽다. 전기, , 식량 공급을 막고 있는 이스라엘의 행태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누군가 먼저 멈춰야 한다면, 휴전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건 이스라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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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0-17 2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 이라는 문장에서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뉴스보다가 밥을 다 먹지 못했…어요.
보이는 게 다는 아니겠지. 대체 이런 역사는 언제 끝나는 건가.
먼저 멈춰야하는 건 이스라엘, 같은 마음입니다. 멈추기를. 멈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3-10-17 22:51   좋아요 2 | URL
조마조마한 마음이에요. 전쟁터가 가자지구이니 필레스타인들의 피해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거 같구요.
바이든이 날아간다고 하던데, 제대로 중재해야 할 텐데....
얼른 이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뿐이에요.......

책읽는나무 2023-10-18 06: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첨단을 걷는 이 시기에 전쟁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니....참 믿을 수가 없네요.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약자일텐데..
강자들의 논리 속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ㅜㅜ
그래서 전쟁이 당연시 되는 세상.ㅜㅜ

저도 단발 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단발머리 2023-10-19 18:44   좋아요 1 | URL
바이든이 날아갔는데도 아무 성과가 없대요. 물이랑 식량이라도 공급되어야 할텐데...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데... 공멸일 뿐인데...
너무 안타깝네요...

독서괭 2023-10-19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렌트입니까?
전쟁이 더 확산되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저희집 귀요미가 추석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멈추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또 전쟁이 났다고 전하는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ㅠ

단발머리 2023-10-19 18:46   좋아요 1 | URL
<전체주의의 기원>을 서둘러 읽어야겠는데 자꾸 미뤄지고 있네요.
독서괭님댁 귀요미 마음을 봐서라도 얼른 전쟁이 멈춰져야 할텐데.... 가자지구 폐허 속의 아이들 볼 때마다 마음이 더 그래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더 언론의 관심을 못 받았던 거 같아요. 전쟁은 무조건 막아야 하는데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