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each Read /제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작별인사
한동안 로맨스 금지를 선언했는데, 이 책을 또 읽어버렸다. 다른 인종 간의 로맨스를 소설로 읽는 건 처음인데, 그가 혹은 그녀가 다른 피부색인 것이 사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뻔한 진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중층적인 존재인지, 유혹당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이런 장르의 소설을 통해서도 관계의 오묘함을 재발견할 수 있다. 좋았던 문장은 여기.
I didn’t shower, barely ate, chugged water and coffee but nothing harder. (303)
여남 주인공 둘 다 작가인데, 슬럼프에 빠져있던 여자 주인공이 쓰기의 탄력을 회복한 순간, 그녀는 말 그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쓰기만 한다. 초인적 집중력이 쓰기로만 발휘되는 장면이다. 자연스레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와 겹치는데 그 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쓰기와 섹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유쾌 발랄한 쓰기와 섹스의 완벽 하모니. 집에 책이 없군. 다시 읽고 싶다. 김영하 신간도 나왔다고 하던데 그 책도 궁금하다.
2. 초인적 힘의 비밀 / 진리의 발견 / 길 위에서
무슨 이유인지 나는 이 책이 운동에 관한 책일 거라 예상했다. ‘초인적 힘’에서 나도 모르게 ‘힘’에 강세를 주었던 듯하고, 표지도 한몫 했을 거라 추측하는데,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하지만, 정확히는 운동력보다는 창조력에 대한 책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저자가 즐겨했던 혹은 도전했던 운동/활동은 스키, 달리기, 초월명상, 가라테, 요가, 자전거 타기,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등이다.
책 중간에 마거릿 퓰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진리의 발견』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앨리슨 벡셀이 들려주는 마거릿 퓰러 이야기도 무척 흥미진진할 듯싶다. 저자가 책 전반에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작가는 잭 케루악. 『길 위에서』라는 책으로 무명 작가에서 일약 비트 제너레이션의 주도적 작가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내 스타일은 아닐 것 같은데 일단 링크해 놓고 기억해 두기로 한다.
3. 어떻게 지내요 / 우리가 사는 방식 / 친구 /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모험? 모험이라면, 우리는 서로 다른 두 모험에 나선 것이었다. 친구의 모험은 나의 모험과 완전히 달랐고, 앞으로 아무리 함께 생활을 한다 해도 우리는 다분히 혼자일 터였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어도 둘이 있지만, 떠날 때는 오로지 혼자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149쪽)
1월에, 2022년 상반기 도서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골랐을 때, 알라딘 친구는 내게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너무 성급했다. 올해 상반기의 책, 새로운 후보가 나타났으니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 책의 리뷰를 세 번 정도 쓴 것 같은데, 실제로는 리뷰를 쓰지 못했다. 꼭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리뷰는 나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을 앞둔 친구의 부탁. 가족과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욕하면서 읽는 즐거움. 내가, 누구에겐가 이런 사람(친구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감정적 거리와 솔직함이 주는 충격.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큼 정직해야 하는지, 얼마큼 인내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저자의 다른 책을 기다리고 있다.
4. 의식의 기원
요즘 제일 재미있게 있는 책은 이 책이다. 60쪽 정도 읽었고, 구매해서 읽으려고 지금은 읽기를 중단한 상태다. 친구 중에 철학책을 잘 읽는 친구가 있다.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이런 책들을 아주 편안하게 읽어버린다. 친구 중에 소설을 잘 읽는 친구가 있다. 나는 아직도 소설 읽기 전 ‘마음 준비’가 필요한데, 친구는 소설이 최고라는 말과 함께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매분 매시간 설파한다. 친구 중에 사회학 도서를 잘 읽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사회학 도서를 잘근잘근 씹어낼 뿐만 아니라, 푸코를 결혼 안 한 막내 삼촌 대하듯 그의 사상을 놀리고 골린다. 관심과 흥미가 각각 제각각이다. 나는 이런 책에 흥분한다. 이런 부분.
의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의식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이 의식의 의식을 의식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다. (46쪽)
의식의 의식, 의식의 출현, 양원적 정신, 목소리의 위치와 기능, 신의 음성, 죽은 자의 말, 산 자의 대답, 천사들의 기원, 시간의 공간화, 길가메시, 시와 노래, 정신분열증, 과학이라는 복신술.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 나를 펄쩍 일어나 앉게 만드는 것들이 이 안에 다 있다. 의식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과거 여행 혹은 의식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과학 여행. 기대 만발, 개봉 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