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묘사하자면 이렇다. 보통 사람보다 키가 커서 뚱뚱해 보이지 않는 남자 2와 여자 1은 복부비만에 도달하기 직전의 완만한 라인을 자랑한다. 보통 체격의 남자 1은 과체중이고, 여자 2는 점핑 다이어트 중인데 죽을 힘을 다해 뛰었건만 한달 동안 겨우 2키로 빠졌다고 한탄한다.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부족의 평범한 현대인들. 우리는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다. 부족하지 않은 양을 먹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늙으신 어머니는 쌀을 씻으신다.
새벽부터 손님 아닌 손님맞이로 고단하신 어머니는 돌침대 위에서 잠시 눈을 붙이시고, 안마의자 심청이와 함께 자동코스 20분짜리 안마여행을 방금 마치고 돌아온 어떤 며느리는 즐거운 핸드폰 놀이를 이어가는데.
늙으신 어머니는 쌀을 씻으신다.
9시 30분에야 아침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제 겨우 12시 35분인데.
늙으신 어머니는 쌀을 씻으신다.
안방에서 잠든 어떤 며느리는 깊은 잠에 빠져버렸고 심청이와 함께 있던 며느리만 총알처럼 일어선다.
늙으신 어머니가 쌀을 씻으러 일어서시니 어떤 며느리 벌떡 일어설 수 밖에.
나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심한 편식이다. 둘째를 낳고 모유수유를 했는데, 운동하지 않았는데 살이 빠졌다. 내가 만든 것을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으니 자연스레 다이어트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다. 먹고 나서 크게 생각나는 음식도 별로 없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식이 커피와 빵. 아주 좋은 원두를 전문가의 솜씨로 정성껏 한 방울, 한 방울 추출한 그런 커피가 아니어도 된다. 그냥 커피면 감사하지만, 선택은 거의 라떼. 빵은 항상 맛있다. 물론 맛있는 빵이 있기는 하다. 유선생이 집에 놀러오면서 내가 좋아할거라며 심사숙고해 골라온 이런 빵들. 버터프레첼, 애플피셀, 올리브 치아바타, 먹물앙금과버터. 이런 빵들 사랑한다. 내 인생 어느 순간, 진지하고 성실하게 운동할 때가 오게 된다면, 그 운동은 아마 이 빵들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 빵을 먹기 위해. 이 빵을 마음껏 먹기 위해.
유발 하라리도 언급했듯이 이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는 영양 부족이 아니라 영양 과다이다. 못 먹어서가 아니라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때를 맞춰 쌀을 씻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먹여야 한다. 내 새끼와 내 새끼의 새끼에게 밥을 먹이는, 먹이고 싶은 마음.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해 난 불평하지 않는다. 내가 내 새끼의 배고픔에 항상 다급한 것처럼 그럴 것이라 믿을 뿐이다. 문제는 배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된다는 것. 때가 되니 먹어야 한다는 것. 난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먹지 않을 뿐.
집에 돌아와서는 레이 브래드버리 읽는다. 몰리님의 애정 작가를 다시 읽는다. <September 2036> The Martian.
사람들이 돌아오는 서울,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서울에서 우주를 생각한다. 화성에 정착한 지구인을 생각하고, 지구인 몰래 숨어사는 화성인을 생각한다.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변신하는 화성인에 관심이 갔다. 화성을 침략한 지구인은 변하지 않고, 화성에서조차 떠나온 지구를 실현하는데, 침략 당한 화성인은 지구인의 요구에 자신의 모습을 바꿔야만 했다. 이번에는 지구인에게 눈길이 간다. 지구인들에게는 화성인이 각각 다른 사람, 다른 존재로 보인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내가 찾는 바로 그 존재로 화성인을 인식한다. 모든 지구인이 그랬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그 누구도 아니며,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화성인은 그대로 녹아 내린다.
빨간 글씨가 하루 남았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개학 전까지는 빨간 글씨나 마찬가지고, 검은 글씨이되 빨간 글씨 같은 검은 글씨가 앞으로도 열흘 정도 남아있다. 금쪽처럼 소중한 빨간 글씨가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기쁜가. 아니면 슬픈가.
빨간 글씨에 읽을 책과 읽어야만 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두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명랑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