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책으로 『제2의 성』을 고른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집중이 잘 된다. 1년에 일주일 정도 책읽기가 싫고, 책읽기가 재미 없는 날이 있는데, 요 며칠이 그랬다. 『쥐』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고, 『젠더는 해롭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메모해 두었는데, 무슨 일이든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The Testaments』도 아주 약한 정도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페이퍼를 하나 써 볼까 하다가 책이 끝나고 나니 다시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계획대로라면 『Crazy Rich Asians』을 읽어야 하는데, 아, 자꾸만 멀어지는 그대. 도움과 해결의 의미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읽었는데, 잘생긴 얼굴에, 빨래판 복근, 조인성 안 부러운 기럭지에 친절하고 다정한 남자친구가 진짜 왕자보다 더 부자라는 설정에 약간 김빠진다. 사람이 뭔가 하나쯤은 부족한 면이 있어야 인간적인데. 키가 작던지, 얼굴에 여드름 흉터가 있던지, 성격이 나쁘던지, 유머 감각이 별로든지, 돈이 없든지. 이런 왕자님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는데,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나, 2권을 상호대차 신청했다.
다음 영어책으로는 『P. S. I still love you』를 꺼내놓았다. 여기저기 찾다가 생각해보니 1권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는 대출해서 읽었던 것 같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신간처럼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차분히 읽어나갈 자신이 없다면, 쉽고 재미있는 책으로 읽어야만 많이,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야. 사실은 내가, 이런 책을 좋아한다는 걸, 이런 책이 재미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인정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The Old Man and the Sea』거나 『Never Let Me Go』거나 『All the Pretty Horses』이면 매우 좋겠지만,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이거다. 『P. S. I still love you』.
최민희 전 의원이 “조국이네가 너무 불쌍해요!”할 때의 마음이 내 마음이다. 난, ‘조국이네’라고는 못 하지만, 아빠, 엄마, 딸, 아들,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 동생, 동생의 전처, 5촌 조카, 딸의 중학교 시절 폴더폰, 아들이 지원했던 학교, 엄마 투자 자문가의 전 직장까지 탈탈 터는 무소불위 검찰을 보면서 똑같은 마음이었다. 페미니즘 글 밑에 달린 공격적인 댓글 하나에도 이틀 정도는 마음이 흔들리는데, 한국의 모든 언론과 방송이 명백한 거짓 뉴스로 두 세달을 질질 끌고 다닌 그 가족의 처참함에 마음이 아프다.
책이... 안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