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syo님의 말은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더위를 피해 찾아간 대형서점마다 책을 찾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세상 모든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그득한데,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못지 않게 책을 펴고 조용히 책 속 세상을 거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휴가철을 전후한 책 판매량을 고려하더라도 독서의 계절은 여름이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올해는 아니다.
최근에 가장 더웠던 때로 자주 소환되는 1994년 여름,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만 했다. 방학식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보충수업이 4교시씩 보름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왜 4교시까지만, 4교시씩 보름간 보충수업을 해야 했나. 오전에 4시간 수업을 받기 위해 버스를 타고 45분을 이동하고, 12시 10분에 학교에서 쫓겨나 불타오르는 태양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집으로 데려다 줄 단 하나의 버스를 기다렸던 그 해 여름, 1994년. 나는 그 해의 뜨거움을 기억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구열에 불탔던 여름이 아니라,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 더워서 뜨거웠던 여름.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고 말했다는 건 전혀 과장이 아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 숨막히는 대기. 뜨거운 열기.
2018년 8월 8일 수요일 9시 6분. 태양의 본 모습이 드러나기 전, 도서관으로 향한다. 상호대차한 책들을 무사히 받았다.
『이 나날의 돌림노래』는 사사키 아타루의 신작이다. 나는 사사키 아타루의 책들을 전부 다 읽지는 않았는데, 옮긴이가 “사사키 아타루……. 이제는 꽤 익숙해진 이름이다. 현해탄을 건너 그의 이름과 저작이 전해진 지 몇 해 만에 고정 독자층도 생길 만큼…….”라고 썼을 때 ‘고정 독자층’에 나도 포함된다는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딱 그 책 때문에라도, 나는 사사키 아타루의 팬이 맞다.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는 ‘페미니시트 크리틱’이 부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상황과 젠더 권력 관계의 절합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문제 제기 방식, ‘더 나은 해결’을 위한 논쟁, 이론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이 책에 참여한 필자들이 엮은이 김은실의 지도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서점에서 정희진 선생님의 글, “여성이 군대 가면 평등해질까 :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역과 젠더”만 찾아 읽었는데, 다른 글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대출하게 됐다.
『메이크 미』는 하드보일드 액션스릴러의 진수, 잭 리처 컬렉션 중의 하나이다.
책 4권을 쌓아두고 제일 먼저 펼친 책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설교집 『물총새에 불이 붙듯』이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 중에 제일 유명한 책이라면, 『메시지』를 들 수 있다. 성경 전체를 한 사람이, 하나의 목소리로 담아냈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감각으로 성경을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책이다. 『The Message』가 출판된 것을 알게 된 후, 신약과 구약을 구입했는데, 한국어 번역은 나오는 대로 한 권씩 구입해 읽어나갔다. 교회를 오래 다녔거나, 기존의 성경적 표현, 어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시 읽는’ 성경의 맛을 찾아줄 만한 책이다. 『물총새에 불이 붙듯』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30년 설교 사역의 결정판이다. 번역은 ‘유진 피터슨 전문 번역가’ 양혜원씨가 맡았다.
독자들을 위한 편지, 머리말, 1부의 서문을 읽고 나니, 9시 44분. 이제 아기새들이 일어날 시간이다. 부지런한 다른 집 아기새들은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지역 도서관에 나와 이렇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건만, 우리집 아기새들은 꿈 속 나라에서 바로 그 의미를 열심히 찾고 있다. 도서관을 나선다. 시원하고, 편안하며, 조용한 도서관.
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syo님의 말은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작년까지는. 올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11년만의 폭염 아닌가. 111년만에 찾아온 폭염을 그렇게 대우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여, 독서의 계절이 여름인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111년만의 폭염에 어울리는 특별한 독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호대차한 책 4권 모두 기다리던 책들이다.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들이고, 입수를 고대했던 책들이고, 정리를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대출한 책들이다. 그러나, 폭염은 111년만에 찾아왔다. 홀대할 수 없다.
손을 내민다. 크레마를 켠다. 잭 리처다.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자동차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비행기다. 다리를 쭉 뻗고 한숨 자기로 한다. 런던에는 저격수가 기다리고 있다. 잭 리처의 머리를 단번에 날려버리려 라이플 총을 걸고 대기하고 있는 저격수에게로 간다. 잭 리처는 1300m 전방에서 엎드려쏴 자세로 그를 노리는 저격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리딩리딩 웬말이냐.
딩가딩가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