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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 부차트 가든의 한국인 정원사 이야기
박상현 지음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라는 제목과 잘 손질된 서양 정원 사진 표지,
첫인상은 그냥 '또 한가로운 정원사 이야기로군.' 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비슷한 책 한 권 나왔던거 같은데? 맞아,
오경아 작가가 쓴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그것도 같은 샘터, 같은 출판사에서..
음.. 정원사 좋지. 얼마나 좋으냐.
매일 꽃과 나무를 돌보며 지내는데 돈까지 준다니!'
이러고 질투 반 부러움 반, 곱지 않은 눈으로 책을 편다.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정원사 하라고?
한 번 해보라고?
말처럼 그렇게 한가한 직업인줄 아냐고?
흐흐. 그렇겠지.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겠냐. 그래 나도 안다.
1967년 전남 신안의 한 섬에서 태어난 지은이 박상현은
'자연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일을 간절히 바란 결과,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부차트 가든 최초의
한국인 정원사'가 되었다.(표지 앞 날개 지은이 소개글)
프롤로그 제목이 인상적이다.
「캐나다에 나를 옮겨 심다」
'나무냐? 옮겨 심게?'
이상하다. 처음엔 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책을 폈다 해도
막상 읽어보니 중년 나이에 캐나다로 이민 간 사연도 그렇고,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부차트 가든이라는 곳도 궁금하고,
한국인 최초 정원사가 된 사연도 궁금하고,
사진도 좋고, 글도 담백하니 읽기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자꾸 머릿속 말대답은 이렇게 삐딱하지?
그렇게 부러운거냐?
음..
거 참..
솔직히 볼수록 부럽네 그랴.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뭔가 그럴싸한 성공담을 기대한 독자라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떠난
사십대 이민자가 먼 이국에서 얻은 소소한 기쁨을 기록한 글로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13p. _프롤로그)
오케이~
이렇게 쿨하게 나오시는데 나 혼자 괜히 눈에 힘주고 있을 필요 없지!
좋아, 그럼 지금부터는 그냥 나와 같은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로
편안하게 읽어주겠어!
어? 저게 뭐지? 벌인가?
새잖아? 와우~ 새들도 꿀을 먹네!
신기하다 신기해.
내가 가장 반갑게 맞는 손님은 벌새다. 허밍버드Hummingbird라고 불리는
이 작은 새는 그야말로 신비롭다. 1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작은 몸집에,
마치 벌처럼 붕붕 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큰 벌새라 해봤자 몸무게가
겨우 10~20그램 정도이고 그 가벼운 몸으로 1초 동안에만 날갯짓을 50번
이상 한다니 실로 경이로운 생명체다.(33p.)
벌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새 중에서 제일 작은 새라는 것과
공중에서 '정지'할 수 있는 새, 방향 전환이 자유자재라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야기로만 전해 들은 그런 벌새를 지은이는
이렇게 가까이서 날마다 볼 수가 있구나!
아, 역시.. 부러워.
어쩔수가 없네.
마음을 비우고 담담히 읽으려 했건만,
벌새 사진 한 장에 벌써 이렇게 심통이 난다.
으이그.
부러움에 심통을 내면서도,
어울릴 줄 아는 꽃 철쭉, 퓨시아, 측백 나무, 목련, 술 빚는 꽃 헤더, 장미, 국화,
데이지, 해바라기, 제라늄, 아쿠바, 수국... 등등. 한 걸음 한 걸음, 꽃과 나무에
관련된 정원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나는 어느새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캐나다의 부차트 정원'을 거닐고 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수국 이야기에서 지은이의 엄마 이야기가 나올때는 감정이입이 최고조에 달했다.
꽃이 피기 전에 수국 잎은 깻잎과 비슷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캐나다 아들네로) 다니러 오신 (지은이의) 엄마가
깻잎 씨앗을 가져다가 지은이의 채소밭에 심어서 싹을 틔워 모종 낸 이야기며
수국에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새롭고 재미있어서 신나게 읽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등장하는 문장들에 그만 울컥 해버렸다.
몇달간 캐나다 아들네서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지은이의 어머니가 인터넷을 배워
카페에 올린 글이다. 울엄마가 휴대폰 문자 보내는거 배워서 나에게 처음 보냈던
문자가 떠오르며 울컥.
'우이씨, 이 아자씨 글 참말로 심통나게 써뿌네그랴. 첨부텀 끝까징 우째 이리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거여!'
"내가 오늘 김포와서콤피터배운다. 아들래미들아보아라참
재미있다. 막내야콤피터사다오."(2010.7.25)
"절기상 처서라고,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머리 골이
띵하구나. 나야 집에 있으니까, 별일 없는데 느그들 건강
조심해라."(2010.8.23)
"올 추석은 모든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머조금 할려면 돈
만, 들것갇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키로 생각하고 차래상에
놓을것만 조금씩, 살려고한다. 느그들도 그리알고 우리,
옥상에서 바배큐 파티나하자."(2010. 9.12)
"오늘은 김장도 다하고 모처럼 콤피터 앞에 안저보앗
다. 김장허기가 쪼끔힘들엇다. 맛있게 먹어라 자손들아"
(2010. 11. 20)
"김장허기가 쪼끔힘들엇다. 맛있게 먹어라 자손들아"
... 네 엄마. 엄마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아니, 우주 최강이예요!
이상하게 계속 심통 나고 부럽고 눈물이 나서
리뷰는 여기서 마쳐야겠다.
나처럼 한바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 구경하면서
심통 부리고 싶은 분, 부러움에 눈물 흘리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강력 추천드리며,
아래 사진은 덤.
* 부차트 가든이 아니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튤립 '제니 부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