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신(死神) 치바'라서 읽었다.
'주신(酒神) 치바'나 '지름신 치바'였으면 지나치고말았을거다.
게다가 사신에게 이름이 있다니! 재밌다. 글이든 그림이든 마찬가지, 
나는 유난히 제목에 집착한다.
'치바'는 지은이가 태어난 곳이다.
만약 내가 지은이라면 제목은 '사신 벽제'가 되었겠지.

거의 2년만에 보는 소설이다. 연이어 두 번 읽었다.
소설답다. 처음엔, 풍부한 상상력, 간결한 문체 덕분에 책에 푹 빠져들어
쭉쭉 읽어내려갔다. 두번째는, 탄성 나오는 도미노게임을 보는 재미로
장면 장면을 눈여겨 보며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기대하는 건 두가지다. 재미와 여유.
사신치바는 두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준다.

첫째, 재미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우선 인간이 아닌, '사신'이 주인공이라니 흥미를 끈다.
더구나 주인공은 신이지만 일을 하며, 인간을 대상으로 일하면서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을 대상으로 일하면서 정작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실이
많은 재미를 준다.

인간에 대해 잘 모르기때문에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한번씩 새로운 관심을 갖게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재미다. 뭐냐면, 내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301쪽, 사신치바가 노인을 만나서 일하는 장면이다.

   "죽기 전에 그 아들을 보고 싶나요?" 나는 나답지 않게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동료 중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을 위해 특별 서비스를 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그렇지도 않은.... 아니, 그런가? 아들이 어딘가에서 살아있다면 그걸로 충분
   해요. 나도 나 나름대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고. 그보다 지금 당신의 말투를 
   보니, 역시 이번에는 내가 죽을 차례같군요."
   "마음이 상했나요?"
   "아니오." 노파는 허세를 부리지도, 자포자기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듯 
   "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하고 말했다.
   "그게 뭐죠?"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
   "당연하죠."
   "당신한테는 당연하겠지만, 나는 이걸 실감하는 데만 칠십 년이나 걸렸다구요."

이런 장면에서는 더많이 그랬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알 지 못한 순간에 촬영된
내 모습을 TV로 보는 것과 같은 신선한 재미를 느꼈다.

두번째는 여유다.
소설을 읽으며 기대하는 여유는, 사실 매우 거창한 의미를 갖는다. 뭐냐면,
나는 소설을 읽으며 '인생 전체에 대한 여유'를 얻기를 기대한다.
삶의 여백을 많이 얻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여백을 통해 내가
집중해야할 것에 대한 목록들이 선명해지기를 바란다.
사신치바는 두번째 기대 역시 충족시켜주었다.  

책에서 사신치바는 여섯 번 일한다.
사신치바의 일하는 모습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는걸까? 하고
생각해보았더니,  '재능', '의협심(또는 신념)', '타인(또는 관계)', '사랑',
'오해(또는 이해)', '기쁨과 감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특히 세번째 이야기, <사신의 탐정소설 '산장 살인사건'>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장면이 있는데, 155쪽에 나온다. 제목처럼 산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뒤에 주인공이 하는 이야기다.
 
  다만 내가 그들의 비밀을 누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관심도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 때문에 마유코가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아무 짓도 안 했다
  
한들 그녀는 죽었다. 내 처지에서 말하자면 살아남은 이 세 사람만 해도,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종족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은 제쳐놓는다.

'인간이란 종족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은 제쳐놓는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정말 "깜짝!" 놀라서 자세를 고쳐 앉을 정도였다.
그렇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은 제쳐놓고 본다. 정말 그렇다!
확~ 주변이 환해지고, 삶에 무한한 여백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죽음을 제쳐놓지 않고, 거꾸로,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내 삶이 일주일 남았다면?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훨씬 더 선명해질 것이다.

잠깐 뜬금없는 얘기를 하겠다.
매킨토시 개발, 애플사 창업자 스티브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 동영상을 보았다. 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희안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난 느낌과 동영상을 본
뒤의 느낌이 무척 비슷하다.  

14분 정도의 이 연설은 100% 논픽션,
<사신치바>는 픽션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할만큼 같다.
스티브잡스는 연설에서 세가지 이야기를 한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삶 속에서 서로 이어지는 어떤 점들에 대한 이야기>,
<사랑과 상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내 생각을 더 길게 늘어놓지는 않겠다.
다만, 리뷰를 쓰며 생각이 정리되고 명확해지는 느낌이 반갑다.  

두번째 리뷰지만, 스스로 유익을 느낀다. 감사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사신치바를읽고싶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쓰여졌는지는 잘모르겠다.)

먹고 사는 일에 치우쳐 묻어버린 재능이 있다면?
삶이 훨씬 오래오래 이어질것 같아서 미뤄둔 꿈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자기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다.

인상깊은 구절 : 49쪽

    "캐슬린 페리어라고 알아?" 여자가 질문했다. 

    "누군데?" 남자가 물었다.
 

    '누군데?' 나는 머릿속으로 물었다.
 

    "오페라 가수야. 전화교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전화를 건 사람이 발굴

    하였고, 결과적으로는 대가수가 되었지. 하기야 훗날 만들어진 일화일지도 모르
    겠지만, 어쨌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과 똑같은 거지. 우연히 걸었던 전화를 
    받아준, 고객불만 처리를 담당하는 여자의 묵소리에 반하게 되는..." 

    "그렇지."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야? 더구나 몇 번이나 불만 전화까지 해놓고."
 

    "확신을 얻기 위해서였어.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훌륭해."
 

    "외모는?"
 

    "시원챦아."

     남자는 답을 하더니 제풀에 웃음을 터뜨렸다. 넉넉하고 따뜻한 웃음
소리였다.
   
    "괜챦아. 아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니까.
  재능이
     발휘되기만 한다면 껍질이 벗겨진 듯 외모에서도 매력이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런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