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
안영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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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우하우스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독일에서 미술과 공예의 융합을 목표로 세워진 종합 예술학교다. 응용 미술인 공예보다는 순수 미술인 미술이 위에 있다는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고 모든 미술 분야를 통합하려 했고, 건축과 디자인에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더했다. 바우하우스 특유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건축물과 사용하는 물건의 디자인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바우하우스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것만이 우리가 100년이 넘도록 곱씹어야 할 바우하우스의 의미일까? 저자는 흔히 알려져 있는 바우하우스 설립의 의의와 바우하우스가 현대 조형 예술에 남긴 영향에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저자가 눈을 돌려 바라본 것은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이다. 여성들도 분명 바우하우스의 일원으로서 자기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바우하우스의 역사에서 조명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축은 바우하우스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차별받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겉으로는 미술과 공예,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고 주장했고, 여성의 입학을 허용했다. 당시 여성들은 바우하우스가 한 사람과 전문가, 예술가로 인정받을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바우하우스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를 설립한 해에는 지원자 중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학생들의 입학금은 남학생들의 입학금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었다(바로 다음 해에 남학생들과 같은 금액으로 조정되었지만, 왜 처음에는 남학생들보다 입학금을 많이 받았는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바로 이듬해에는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가 예외적인 재능을 가진 여성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며 여학생 모집 정원을 전체 정원의 3분의 1로 축소했다. 그런 데다 회화나 건축 같은 순수 미술 분야는 물론이고, 공예 분야에서도 '여성은 무거운 공예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목공, 금속 공방에 여학생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했다. 미술과 공예,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둘 사이의 이분법과 위계를 누구보다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구조 자체로 여성을 차별하고 있던 곳이 바우하우스였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그러한 차별을 뚫고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예술을 개척해 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바우하우스의 여학생들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분야'라는 이유로 전공 선택에도 제약을 받았고, 바우하우스의 조형 원칙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에 따라 공예 작품을 만들어도 '열등감의 발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직조 공방의 남성 교수가 자신은 직조공이 아니라 미술가라는 자부심에 갇혀 직조에 대한 실무 지식은 익히지도 않고 학생들 스스로 직조를 익히도록 방치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공예 기술을 익히고 공방의 커리큘럼을 다시 짜고 훌륭한 제품 디자인을 만들어낸 여성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갇혔지만, 바우하우스에서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었던 프리들 디커 브란다이스, 미국으로 건너가 직조를 산업의 측면에서나 예술의 측면에서나 한 단계 끌어올리려 했던 아니 알베르스, 처음 금속 공방에 들어갔을 때 남학생들이 시키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지만, 결국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여러 일상용품 디자인의 원형을 만들어낸 마리안네 브란트 등 바우하우스의 일곱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자신을 제약하는 것들을 뚫고 자기 예술을 펼쳐낸 그녀들을 조명하면서, 그녀들이 그러한 한계에 부딪히게 만든 바우하우스의 시스템과 차별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판형에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책이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바우하우스의 이면을 우리 눈앞에 들여다 놓는 책이다. 검은색과 하얀색, 주황색으로만 이루어진 간결한 디자인이 바우하우스의 제품 디자인을 연상시켜먼서도 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하게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바우하우스의 여성들을 다른 책이나 글에서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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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그림들 - 나의 생명이 그림으로 연결되어 어느 날 당신과 만날 것이다 주용의 고궁 시리즈 2
주용 지음, 신정현 옮김, 정병모 감수 / 나무발전소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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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가는 신간들은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로 조금씩 읽어보곤 한다. 이 책도 그렇게 앞의 몇십 페이지를 읽어본 책이었다. 미리 읽어본 부분 중에서 한 옛 화가의 시점에서 쓴 서문에 사로잡혔다. 과거인이 화자인데도 '부가가치'라는 현대의 용어를 쓰면서 천연덕스럽게 '이 말은 여러분 시대의 말'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도 정말로 옛 화가 중 누군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그린 그림인데도 그 그림의 미래는 통제할 수 없고, 자신이 죽고 나서 수백 년 뒤에 그 그림을 볼 사람들을 상상해 볼 수밖에 없는 화가의 고독, 그럼에도 그림을 통해 아주 먼 미래에 자신의 그림을 보아줄 사람들과 만날 것이라는 희망. 이 두 가지 감정이 4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서문으로 충분히 전달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책 전체를 읽어봐야겠다고 기억해 두고 있다가 드디어 다 읽었다.

명, 청 시대의 황궁이었던 자금성은 청이 멸망하고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진 뒤 '고궁박물원'이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되었다. 이 책은 자금성 고궁박물원의 연구소장인 저자가 그곳에 소장된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책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림들 중에는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시기에 국민당의 수장인 장제스가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에서 대만으로 가져온 유물들로 만든 것이다), 상하이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자금성 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이 아닌 그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그림들은 자금성 고궁박물원 소장품이고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소장품도 원래는 자금성 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어떤 작품도 옛 중국의 그림을 이야기하려는 저자의 의도에서는 벗어나지 않으니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단순히 각 그림의 조형적 특징이나 미술사에서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그림에 얽힌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써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뿐 아니라 그 그림에 그려진 사람, 그 그림을 그리라고 명령한 사람,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만들어간 사람들까지 그 그림과 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망라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비극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에는 '덧없음'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이나 부귀영화, 권세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쇠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총명했던 여인은 세상의 비정함을 결국 이기지 못했고, 천재 문장가는 뛰어난 글재주로 부와 높은 관직을 얻었지만 돈을 물 쓰듯 쓰다 탕진하고 가난 속에서 죽었다. 예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군주는 구중궁궐에서 시서화에만 탐닉하고 전란과 기근으로 죽어가는 궁 밖 백성들은 돌보지 않다,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먼 북방으로 끌려가 고향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났다. 성군으로 칭송받으며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삶을 살았던 황제들도 군주로서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자유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백성의 모습을 한 자신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러나 그조차 헛된 몸부림일 뿐이었다.

그런 격정적인 드라마를 이면에 숨겨두었는데도 책에 실린 그림들은 한결같이 고요하고 담담하다. 화려한 연회를 그린 그림이나 황제의 행적을 칭송하는 선전용 그림,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거나 수백 명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림들조차 그렇다.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저자는 어느 그림에서나 시간의 흐름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깊은 고독을 읽는다. 하지만 그 적막함이 오히려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저자가 일부러 잔혹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골라 왔나 싶을 정도로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화가들은 그림 속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책에 실린 그림들만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그림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이나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미술사와 중국사, 중국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본문 전체를 굳건히 받쳐주고 있다. 특히 서양 미술사의 도상학적 분석처럼 그림의 각 요소에 담긴 의미들을 하나하나 밝혀낸 뒤 그 의미들을 연결해 그림을 그린 의도를 파악해 낸 <중병회기도> 챕터는 한 편의 추리 소설 같다. 중국사와 중국 미술사를 알아가는 즐거움, 그림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애초에 중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보니 번역자가 주석을 충실히 달았지만 중국사, 중국 문화, 중국 고전 문학에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여러 군데 있다. 그리고 실제로는 요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악역인 요 성종 야율융서는 이 사람의 고조부다)가 죽은 지 수십 년 뒤에 북송의 마지막 황제 흠종이 죽었는데(천조제는 1128년 사망, 흠종은 1161년 사망) 두 황제가 금나라 황제가 연 연회에서 함께 처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던 북송의 황녀 유복공주가 탈출해서 송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정사가 아닌 야사다. 유복공주와 함께 금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위태후가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모두 보았을 유복공주의 입을 막기 위해, 탈출한 유복공주를 가짜로 몰아 죽였다는 이야기는 저자의 상상이다. 일단 내가 찾아낸 것은 이 두 가지지만, 나처럼 중국사를 잘 모르는 외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야사거나 저자의 상상일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점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글과 그림, 만듦새 모두 우아하고 유려한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전체 분량이 640페이지에 이르고 무게가 1킬로그램이 넘는 이 책은 내용의 무게로나 실제 무게로나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만큼 풍성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담겨 있다. 한 번 정독한 뒤에 이따금씩 마음에 와닿는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펼쳐놓고 책에서 풀어놓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감상해도, 그저 그림 자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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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필요한 시간 - 전시 디자이너 에세이
이세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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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보니 대학원 선후배, 동기들 중 대부분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설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길로 갔다. 대학원 공부를 할 때도 전시 관련 수업은 딱 한 개밖에 듣지 않았으니 내게 전시는 가지 않은 길, 그래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여러모로 본받고 싶었던 옛 동료도 전직이 갤러리 큐레이터였다고 하니 전시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그래서 '전시 디자이너의 에세이'라는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전시는 어떻게 준비되고 디자인되는지 궁금해서.

이 책은 전시 디자인이라는 일에 대한 본격적인 직업 탐구가 아니라 에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전시의 A부터 Z까지 짚어가지는 않는다. 저자가 방문했거나 함께 일했거나 몸을 담았던 스물한 곳의 미술관을 주제로 삼아, 각 미술관의 건축 특징과 전시 시스템, 전시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그곳에 얽힌 저자 자신의 경험, 추억을 엮어서 쓴 책이다. 장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 4페이지, 미술관 풍경을 담은 사진 7페이지, 해당 미술관을 관람할 때 필요한 정보 1페이지로 한 장이 구성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이나 미술관이 위치한 문화권 같은 특정한 기준으로 장들을 배열한 것은 아니니,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으면 된다. 각 장의 본문은 짧고 사진은 많아 틈 날 때마다 한 꼭지씩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글 하나하나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거기에 담긴 저자의 고민들은 가볍지만은 않다. 현장에서 직접 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이기에 지금 우리 미술관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예쁘고 멋진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는 과정에서, 전시의 이미지만 남고 전달하려 했던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까. 전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품인데, 작품 외의 지나치게 화려하고 강렬한 디자인 요소들이 작품을 가려버리지는 않을까. 관장이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미술관 전시나 운영의 가이드라인도 바뀌는 일이 많은데, 무조건 과거를 폐기하기보다는 거시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과 자기 일을 통해 미술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기에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4페이지 안에 짤막짤막하게 자기 생각을 담아야 하니 아주 깊이 담론을 심화시키지는 못하지만 읽다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

전시에 대한 고민들은 꽤 깊지만, 전시를 실제로 진행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에드워드 호퍼 전을 저자가 디자인했다는데, 호퍼 전에 대한 이야기는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룬 장과 휘트니 미술관을 다룬 장에서 하고 있다. 두 장에 걸친 이야기들을 그러모아도 호퍼 전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서울시립미술관 호퍼 전의 전시장을 찍은 사진 한 장과 그에 대한 설명 세 줄, 호퍼의 작품이 전시된 모습을 담은 휘트니 미술관 사진 다섯 장과 휘트니 미술관 이야기를 담은 다섯 페이지 중 일부. 이게 독자에게 주어진 모든 단서다. 두 전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디자인을 통해 휘트니 미술관을 전시 공간에 풀어내려고 했다는 이야기, 서울시립미술관 호퍼 전에 갔던 내 기억을 겹쳐 보니, 휘트니 미술관의 호퍼 전과 서울시립미술관의 호퍼 전이 참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기억 한 조각과 저자가 던진 작은 퍼즐 조각들을 맞춰서 얻은 결과였다. 그것만으로는 감질나서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호퍼 전뿐만 아니라 다른 전시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으면 했지만, 이 책에서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저 저자가 들려주는 스물한 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저자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통해 스물한 곳의 미술관을 만났다. 사진을 공부한 사람답게 사진의 톤들이 통일되어 있고 강렬한 원색의 피사체를 찍은 사진들도 혼자 튀지 않아 보기 편안하다. 그러면서도 각 장소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어 스물한 곳이나 되는 미술관을 한 곳 한 곳 방문하는 느낌이 든다. 하얀색 표지와 하얀색 본문 페이지들 사이에 올해의 팬톤 컬러라는(이 책은 작년에 나왔지만) 피치 퍼즈로 물든 페이지들을 넣어 포인트를 준 디자인은 정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그래서 저자의 글과 사진이 만들어내는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한층 더 살린다. 사진 설명은 모두 책 맨 뒤로 옮겨서 모아놨는데, 그 덕분에 사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지만 사진 설명이 있는 페이지와 사진과 본문이 있는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일장일단이 있다.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고 준비하고 홍보하고 진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듣고 싶다는 처음의 기대는 충족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예술이 있는 곳들에 잠시 머물러 일상의 먼지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피카소가 말한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 영혼에 묻은 일상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이라니, 그 목적은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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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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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역사'는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정식 한국어 단어는 아니고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을 의미하는 인터넷 속어다. 그래서 책의 제목만 보면 인류의 온갖 실수와 과오의 흔적을 담은 지도들이 담긴 책인가 싶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마흔 곳의 폐허는 누군가의 과오라기보다는 역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자연 환경의 변화 때문에 그 쓸모를 다 하고 버려진 곳들이 대부분이다. 학교에 무단 결석을 했다는 이유로 열네 살 소년이 50대가 될 때까지 가둬놨던 레녹스성 병원이나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들을 죽을 때까지 가둬놨던 아캄펜섬처럼 '흑역사'의 의미에 딱 맞는 장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인류의 과오보다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장소들의 쇠락이다. 원제도 '잊힌 장소들의 지도책Atlas of Forgotten Places'니 '흑역사'라기보다는 '쇠락의 역사''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아마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흑역사'라는 강렬한 어감의 단어를 제목에 넣은 것 같다.


  '지도책'이라는 원제에 걸맞게 각 장소의 세부 지도는 꽤 꼼꼼하게 그려져 있다. 그 장소의 과거 구조와 현재 구조, 사라진 건물과 남아 있는 건물, 장소가 있는 곳의 지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루스벨트섬(구 블랙웰섬)'의 세 시기 지도를 나란히 놓아 이 섬에서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 페이지가 인상적이다. 각 장소의 현재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에서는 폐허 특유의 스산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영미권 논픽션 저자들이 흔히 그렇듯 이 책의 저자도 유머 감각과 서정성이 섞인 문체로 쉽고 재미있게 책 속 폐허들에 얽힌 역사를 설명한다. 예쁜 외국 풍경도 보고 싶고 교양도 쌓고 싶다면 가볍게 읽기 좋다. 이 책의 원서가 2021년에 출간되었으니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그 시기의 독자들로서는 여행을 못 가는 대신 이 책으로 대리만족을 했을 것이다. 이제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으니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 된 장소들에 가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다만 아주 풍부한 볼거리, 이야깃거리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한국어 번역판 기준으로도 30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책에서 마흔 곳이나 되는 폐허를 이야기하니 아주 깊이 있게 각 장소를 들여다보진 않는다. 텍스트만으로는 3, 4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게 끝인가' 싶은 챕터들도 있고, 사진이나 지도가 기대한 것보다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는 평도 있다. 제목을 보고 인류의 온갖 추악한 면모를 이 책으로 보겠다고 기대하거나 페이지마다 이야기와 풍경들이 넘쳐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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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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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안녕, 이렇게 같이 책 얘기하는 건 오랜만이네.

H: 그러게. 그런데 이 책 저자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B: 4년 전에 우리가 같이 얘기했던 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의 저자야.

H: 아, 그랬지. 그런데 이 책 꽤 한참 전에 나온 책 같은데?

B: 나는 2016년 개정판으로 읽었긴 하지만 사실 2000년에 쓰인 책이 원서야.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손녀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이 책은 아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두 책의 출간 시기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지.

H: 뭔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

B: 예전부터 이런 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읽을 책 찾다 우연히 이 책이랑 마주치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계 시민으로서 읽어야 되는 책인데 여태 안 읽고 있었구나 싶었어.

H: 그런데 24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 읽으면 시의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B: 그렇긴 하지. 2016년 개정판이어서 편집자가 2000년 이후부터 2016년까지의 상황을 업데이트한 주석을 넣긴 했는데, 2016년도 벌써 8년 전이잖아.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거 같아. 2022년 1월에 <위대한 수업>이라는 EBS 프로그램에서 장 지글러 교수가 강의를 했었거든. 그때 한 이야기와 이 책에서 한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 물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야기하니 이 책 내용과 겹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이 책을 쓴 시점 이후로 세계의 기아 문제가 나빠지면 더 나빠졌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거 같아.

H: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잖아.

B: 24년이 지났어도 나아진 건 없다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까지 계속되는 문제가 어디서 시작된 건지, 그런 문제를 만들어낸 사회 구조, 세상의 흐름은 어떤 건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그걸 이 책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어.

H: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 얘기한 것처럼 역시 자본주의가 문제겠지.

B: 맞아. 사실 이 지구에서는 120억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된대. 그것도 한 명이 하루에 2400~2700칼로리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 문제는 아무리 식량을 충분히 생산해도 그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되지 않는 거야.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도 자기들 이익이, 권력이 더 우선인 사람들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법과 규제가 있는 건데, 그런 규제들을 다 풀면 세상이 알아서 잘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게 자본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야.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고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라는 과거의 자유주의를 계승한 거지. 장 지글러 교수는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고 몇몇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온 지구의 경제를 틀어쥐고 있어서, 기아와의 투쟁이 어렵다고 얘기해. 그런 사실들을 폭로해 왔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게서 소송도 많이 당했다고 지글러 교수가 <위대한 수업>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

H: 진실을 말한 대가가 너무 무겁구나. 평생 그렇게 싸워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B: 엄청난 액수가 걸린 소송을 계속 당하면서도 지글러 교수는 다국적 기업과 그들이 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자국의 개혁도 중지시켜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아. 그리고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하지만 자신이 구호 현장에서 봤던 사람들에 대한 인류애는 잃지 않는 게 책 곳곳에서 느껴져. 온 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전하려고 하거든. <위대한 수업>에서도 영양실조 때문에 노마라는 병에 걸려 안면 조직이 녹아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직접 인쇄해 와서, 이걸 꼭 방송에서 보여달라고 했던 게 기억나. 그렇게 비싸지 않은 항생제만 사 먹어도 퇴치할 수 있는 병인데, 가난해서 걸린 병이라고 했었어. 정말 이건 꼭 알려야겠다는 열의와 간곡함이 느껴졌어. 구호단체의 일이 오히려 각 지역의 지배층들의 배를 불려주고 권력을 공고히 하게 되어버린다 해도, 그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 없다고 하는 데서 지글러 교수의 마음이 느껴졌어.

H: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싸워왔는데도 세상은 여전한 걸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B: 이 책의 마지막에서 부르키나파소에서의 농업 개혁이 실패로 끝난 것을 듣고 지글러 교수의 아들이 말해. 그러니까 결국 좌절과 절망만 남은 거냐고. 지글러 교수는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 자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자기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기 나라 경제가 자립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H: 공산주의를 시작한 사람들부터 최근의 개혁자들까지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해 왔던 일이야. 늘 느끼는 거지만 현실은 참 구체적이고도 너무 굳건히 우리 앞에 서 있는데, 이상은 그에 비해 단순하고 너무 멀게 느껴져.

B: 체 게바라가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잖아. 우선 이상을 높게 잡아야 현실을 그 이상의 50퍼센트, 70퍼센트, 90퍼센트로 점점 끌어올리지. 장 지글러 교수는 원래 인간은 자신 곁에 있는 가족, 일족, 이웃에게서만 연대감을 느꼈지만 국가를 세우면서 처음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해. 그렇게 인류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적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말해. 희망은 정의를 향한 인간의 불굴에 의지 속에 있다고. <위대한 수업>을 보면 그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게 보여. 방송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럴 거야.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음, 예를 들어보면 선진국들에서 소고기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그러니까 소를 더 살찌우기 위해 소들에게 풀 대신 곡물 사료를 먹이는데, 그런 축사의 연간 옥수수 소비량이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고 하잖아. 우리가 고기를 조금이라도 덜 먹으면 그런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글러 교수는 이 책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고 했어. 우리가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문제를 기억하고 함께 아파한다면, 작은 것이라도 행동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세상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 책의 다음 개정판은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좋겠어.

* 종이책이어서 업데이트되지 못한 2024년 2월 현재의 상황

- 내전 기간인 1996년 적대 세력 수천 명을 포위해 굶어 죽게 만들었던 라이베리아의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는 2006년 체포되었고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징역 50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복역 중이다.

- 현재도 기후 난민은 기존의 난민 정의(국적,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때문에 자국 내에서 박해에 이르는 차별을 받고, 그와 같은 박해 때문에 자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난민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기후 난민'이라는 용어 대신 '기후 변화로 인한 강제 실향민'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 이 책에서는 2015년에 세계 인구가 71억 명이 될 것이고 그중 60퍼센트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2024년 현재 세계 인구는 약 81억 명이고 2021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6퍼센트가 도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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