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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놀러 갑니다, 다른 행성으로 - 호기심 많은 행성 여행자를 위한 우주과학 상식
올리비아 코스키.야나 그르세비치 지음, 김소정 옮김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청소년 도서를 볼 나이는 10년도 더 전에 지났다. 이 책은 청소년 도서로 분류되어 있고, 이 책의 원서도 아마존에서 ‘고등 교육 교과서(higher education textbooks)’로 분류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을 계속 읽게 된 건 ‘태양계 여행을 위한 안내서’라는 독특한 형식 때문이었다. 이 책은 기존의 우주과학 책들처럼 태양계 안의 각 행성들에 대한 정보를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행성들을 여행한다고 가정하고 그 행성에 가는 방법과 그 행성에서 볼 만한 것, 할 만한 것 등을 설명한다. 아직까지 태양계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다녀온 천체는 달밖에 없지만, 태양계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며 태양계의 천체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지구 안에서의 여행도 준비가 필요한데 그저 가겠다고 마음먹고 다음날 훌쩍 우주여행을 떠날 수는 없을 터. ‘지구를 떠날 준비’ 부분을 읽다 ‘시력은 반드시 양쪽 눈 모두 2.0이어야 한다’는 구절에서 좌절했다. 라식 수술은 무서운데 우주로 떠나려면 꼭 받아야 하는 걸까. 거기에 14킬로그램짜리 완전 무장을 하고 물에 들어가는 생존 훈련, 25미터 길이 수영장을 쉬지 않고 세 번 왕복할 수 있는 수영 실력, 하루에 40번씩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중력 훈련까지. 지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우주로 나가는데 이쯤은 당연히 준비해 둬야 한다고 치자. 하지만 본문에서 태양계 여행을 하다 죽거나 다시는 지구로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구절들이 계속 나타나니, 저자들은 태양계 여행을 권하는 걸까, 말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달 표면에서 바라본 지구. 저자는 "(달 표면에 도착했을 때) 휴가를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모든 장소(지구)를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NASA/GSFC/Arizona State University
하지만 본격적으로 책 속 여행이 시작되면서 태양계 여행은 때려치우고 그냥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까 하는 마음은 사라졌다. 책을 읽으면서 펼쳐지는 태양계 행성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다. 태양이 수성의 하늘을 한 바퀴 도는 하루는 176일인데 수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1년은 88일이니, 수성에서는 하루가 1년보다 길다는 이야기, 화성에는 에베레스트보다 3배는 높은 화산이 있어, 꼭대기까지 등반하려면 한 달은 걸린다는 이야기, 목성의 허리케인 대적점은 수백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내가 옛날 사람이었다면 상상력이 풍부한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을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화성의 위성 포보스는 중력이 매우 작은 곳이다. 저자들은 포보스에서는 한번 도약하는 것만으로 높이가 830미터나 되는 버즈 할리파 빌딩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며, 높이뛰기가 포보스의 주 종목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저자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출처: Steve Thomas, Olivia Koski, Jana Grcevich, Penguin Books
이런 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사실에 SF적인 상상을 더해 저자들은 천연덕스럽게 태양계 여행에서 볼 만한 것, 할 만한 것들을 안내한다. 달에 있는 호텔에서는 지구가 보이는 방을 달라고 하자든가,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갈릴레이 위성(갈릴레이가 1610년에 발견한 4개의 목성 위성들. 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가 갈릴레이 위성에 속한다.) 대신 한적한 레다 위성에서 목성을 관찰하자든가, 토성의 고리에 캔 얼음으로 우주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자든가. 수백 년 뒤에나 가능하거나, 수백 년 뒤에도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마치 지금의 관광객들이 하고 있는 양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 유쾌했다. 그런 상상조차 완전한 허구는 아니고 태양계 행성에 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상상 속 태양계 여행을 마치고 저자와 독자는 지구로 돌아온다. 모든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니까. 저자들이 이 태양계 여행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지구의 소중함이다. 태양계 다른 행성들에서 사람이 도무지 살 수 없는 극단적인 더위와 추위를 경험하고 아무런 생명도 없는 풍경을 본 사람이라면, 지구의 온화한 환경과 온갖 다양한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이 더욱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상상의 태양계 여행을 하면서 우리의 시야를 넓힘과 동시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된다.
P. S.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알지만, 본문 앞의 화보 부분만 컬러로 하고 본문 안의 우주 이미지와 일러스트들은 흑백으로 처리한 것이 아쉽다. 특히 목성의 오로라나 천왕성의 푸르른 표면처럼 그 색채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이미지들이 흑백인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