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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ㅣ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 교양 인문서 시리즈로는 『난생처음 한번』, 일명 '난처한' 시리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그리고 이 책이 포함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있다. 앞의 두 시리즈는 최근 나온 편까지 거의 다 읽었지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관심이 있는 인물 편만 골라 읽었다. 문득 이 시리즈도 전부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안 읽은 편들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1권이지만 내가 읽지 않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햄릿』과 『맥베스』뿐이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해 좀 더 알면 유익하면 유익하지 무익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으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완전 정복'을 시작했다.
읽기 전에 우려했던 것은 저자가 고령이고 영문학 전공자도 셰익스피어 연구자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목차만 봐도 굉장히 많은 곳을 여행하는데 체력이 부치지는 않았을까.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덜 민감하지 않을까. 저자 소개를 보면 영문학이나 셰익스피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력들만 보이는데 믿고 있을 수 있을까. 시리즈 안의 각 책들마다 편차는 있고 다소 아쉬운 편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하는 시리즈니 일단 믿고 보기로 했다.
이 세 가지 걱정은 기우였다. 이 책을 위해 셰익스피어 기행을 시작한 2014년에도 저자는 이미 70대였지만 책에서는 여정 때문에 지친 기색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여성 혐오와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여주인공 카테리나의 설교는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투철한 옹호이고, '길들이기'라는 관점 자체가 틀려먹었다고 단호히 말한다(이 작품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줬으면 했지만). 그 밖의 작품들에서 셰익스피어가 소수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이야기한다. 본인이 셰익스피어 연구자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함께 말하면서, 독자들이 각 견해를 비교해 보고 자신 스스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저자 자신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 대사의 탁월한 표현(그리고 원어로는 어떻게 이 표현이 중의적이거나 언어 유희를 하는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논리의 비약이 없으면서 현학적이지도 않다. 수십 편의 작품을 다루고 있기에 한 작품을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의 해설을 모아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읽기 좋다. 해설의 특성상 각 작품의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행문으로서도 읽기 좋은 책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각 편에 따라 기행과 인물 탐구의 비중이 달라지고, 기행문과 설명문의 질도 편차가 있다. 이 책은 둘 다 고르게 좋다. 1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아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그가 주로 활동한 런던, 『심벌린』 속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배스를 여행하고, 2부와 3부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셰익스피어를 언급한 외국 작가들과 관련된 곳을 여행한다. 1부에서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런던, 배스 이 세 곳만 여행하지만, 2부와 3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된 유럽 각 나라의 십여 곳을 다소 숨 가쁘게 이동한다. 사실 2부와 3부에서 저자가 여행한 곳은 모두 셰익스피어 본인은 살아생전 발 한 번 들여놓지 못한 곳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살려냈다. 2부와 3부에서는 거의 한 꼭지당 한 곳씩 여행할 정도로 일정이 빽빽한데도 저자는 여행자의 서정을 잃지 않는다. 짧은 여행에서도 그 장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감정을 만끽하면서 자신이 본 풍경을 스케치하듯 묘사한다. 이런 기행문이 생각보다 밀도 있는 설명에 지친 독자에게 휴식이 되어준다.
왜 영문학 전공자나 셰익스피어 연구자에게 이 책을 맡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씻어낼 정도로 저자는 여행과 인물 탐구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좋은 책을 써냈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고 딱 적당한 크기의 판형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여행 사진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감각적인 편집 디자인에서도 이 시리즈가 여러모로 공들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하는 시리즈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씻어내 준 시리즈의 산뜻한 시작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