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크닉에 다녀왔다
패티 스미스와 현대 소닉 아트 플랫폼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협업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를 하고 있다.
지도를 보면 회현역에서 가까워서 걸어가기 만만해보인다. 그러나 짧은 구간이지만 급경사라 만만하지 않다. 산악지형의 서울은 넓은 간토평야의 도쿄에 비해 군데군데 언덕이 많아 도시임에도 도시안에서 작은 등반하는 재미가 있다. 산맥의 한국, 등산의 민족이다. 피크닉은 근처 갤러리 눈, 화이트스톤과 동선연계성이 좋다. 다만 여기도 급경사다.
지난 전시는 우에다 쇼지의 모래극장 사진전이었다. 이번에는 풍성한 음향과 깊은 해류느낌의 짙고 느린 예술영상작품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종교적 영상도, 늑대와 고래와 남극과 난교가 병치된 영상도, 박제된 동물에서 불타는 자연으로 이어지는 영상도 모두 서정적인 이미지의 영상이다. 자근자근 전달되는 성우음성과 풍성하게 밀려오는 파도음향과 함께 작가가 전달하는 풍경에 적시다못해 잠기는 기분이다.
밤에 잠에 잘 못 드는 이들이 있다. 자더라도 가벼운 수면을 하다가 종종 깨는 이들이 간혹 있다. 감각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의미화하고 맥락화하는 뇌세포가 발달해서 눈을 감아도 쉽게 수면상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걱정하며 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을지 되새김질하는 사고회로가 강제적으로 멈춰지지 않는다. 그래서 잠이 못 든다. 대략 MBTI중 N계열에 많다.
반면 무던한 S계열 중 멍때리는 게 가능한 이들이 있다. 생각을 멈출 수 있고 따라서 누우면 잠이 온다. 아예 걱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주어진 정보를 잘 인식하고 그것으로 그치는 사람들과 의미를 이끌어내는 데 특화된 사람들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렇게 멍 때리는 게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각기 좋아하는 예술도 다른 편이다.
스토리 없이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의 연속만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의미추출능력이 발달해 밤에 잠 못 드는 이들은 잘 못 보는 영화다. 네러티브가 없고 대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보고 나서 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쉬이 흥미를 잃는다. 한편 멍 때릴 수 있는 부류들은 재밌다고 찾아본다. 원래도 큰 의미부여를 안 하기 때문에 체르노빌 흑백배경에 폐허에서 수풀 사이를 걷는 컷을 편집한 화면에 의미심장하지만 기승전결없는 신디사운드에 방사성 동위원소 번호와 싯구를 섞은 내레이션이 ㄴㅏ오는 영상을 보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피크닉 이번 전시는 큰 줄기에서는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다. 다만 매층 2편 연속 30분-40분 영상 3개를 다 봐야 전시설명도 이해가고 예술가가 의미하는 바를 납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해의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직관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미지의 향연을 몇 분씩 인내하며 보고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3층 대멸종과 산불연작은 1946년 출생일듯한 저자가 매년 멸종된 동물을 자기 생애주기와 함께 읊는다. 1966년 20살이 되었다. 1967년 딱따구리가 멸종되었다. 범상어 듀공 등등.. 작가가 70살이 될 때까지 매년 어떤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자연재해와 인간재해에 대한 화두를 섞었다.

매 영상마다 교육받은 30대 여성 미국인의 중음 내레이션이 있다. 끝까지 완강했다면 시의 대구처럼 반복되는 대사를 놓칠 수가 없다.
그토록 질펀한 눈물 such great tears
Smothered lamb crushed
All the muscles are contracting
그리고 모든 근육이 수축하고 있었다
종을 주조한다
Sweeping time sleeping time scheming
Prince of anarchy
Do you remember me 등등
각본이 좋다. 영어대사의 리듬과 전달이 좋다.
I was just a country girl
With the mind of God
Who loved you
다른 메시지 세 개다
더러는 이게 뭐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하고 스치며 볼 거다. 더러는 피크닉이라는 전시장 이름에 데이트장소라고 생각해서 왔다가 실망할거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혼밥하듯 나홀로 피크닉을 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잦아드는 사운드스케이프에 세례를 받고 1층으로 들어갔다가 4층으로 나오는 기분이 되어 전시장을 나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