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베를린 장벽철거, 91년 소련붕괴 후 냉전구도가 사라지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진영이 승리하고 본격적으로 세계화가 되었다. 적이 없어졌기에 92년에는 여행자유화가 되어 이전에는 반공교육받고 외교관, 상사맨, 독일광부간호사, 아랍 건설노동자만 갈 수 있었던 외국을 자유롭게 다니기 시작했다.


세계를 다니게 된 한국인은 우리가 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게 되는데 이와 더불어 수능일변도의 입시구조에 지친 부모들이 자식을 외국에서 교육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극히 소수의 지식인과 부자만 할 수 있던 일을 중산층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루트는 두 가지다.


민사고 졸업 후 하버드에 진학한 박원희처럼 국내 특목고 졸업 후, 코리아헤럴드 사장 홍정욱처럼 현지 명문고 졸업 후 하버드 진학. 전자는 2002년, 후자는 80년대 후반으로 시기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들이 쓴 유학경험 에세이가 낙양의 지가를 올리며 조기유학붐이 불기 시작한다. 모두가 명문고, 아이비리그를 간 것은 아니고 각자 재정과 상황에 맞추어 영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다른 영미권 국가를 선택하기도 하고, 개혁개방에 따른 호재를 노리고 사업을 한 부모를 따라 중국유학을 가기도 했다. 미국에 먼저 이민 간 친척집에 홈스테이를 하게 된 경우도 있다.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단기어학연수 등도 유행했다. 면모는 가지각색이나 7막 7장, 공부9단 오기10단 같은 책이 조기유학, 즉 해외출국을 하나의 입시트렌드로 만든 랜드마크임은 분명하다. 인천공항의 크기를 초기세팅했다.

 

그런데 이런 인력공급과 수요의 관점에서 이들은 졸업 후 어떻게 되었을까? 현지취업일까 귀국일까.


중요한건 2000년 즈음 빌 클린턴 재직시절(93-01)에는 미국에 돈이 많아 장학금이 빵빵해서 혜택을 보았다. 2008년 모기지사태 후 예전 같지 않아졌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또, 2017년 이민정책으로 인한 추첨식 비자문제로 좋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돌아 온 경우까지 생겼다. 20년 코로나에 최근 이슈까지 더해 미국이 예전같지는 않다, 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이 말은 결코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불행하다거나, 돌아 온 사람이 승자라는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다. 인생은 저마다 궤적이 있고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는 개인의 몫이며 복과 시련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모양새를 달리할 뿐이다. 외국에서 인종차별이 있다면 국내에선 갑질과 진상이 있을 수 있고, 외국에서 여유가 있다면 국내에서 편리함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2000년에는 인터넷도 없고 제대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적었는데 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유학생이 잠깐 귀국해서 과외를 해도 폭발적인 수요가 있었고 전업강사로 등극해 토플 토익 강좌를 열어 대박이 나기도 했다. 자격증 습득을 위한 중간적, 도구적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즉 생물학이나 철학의 내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 아님에도) 인력공급은 적고 수요가 확실했다. 영어가, 유학생 신분이 돈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트렌드는 지속되지만 이는 특목고, 국제고, 유학원 등을 포함해 하나의 업계가 형성되어 시스템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공급이 수요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박람회 광고마케팅 등으로 수요를 진작시켜주면서 만들어진다. 입학성공담, 취업성공담을 통해 나가서 성공한 소수의 선배의 간증을 노출한다. 실패자의 이야기는 묵살된다. 이런 조치는 대증요법이다. 증상만 완화하는 것에 가깝다. 이미 업계내부에선 유학수요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입시는 의대가 확실히 쥐고 있다. 1등급 일부가 명문대를 가는 구조 속에 매년 나머지 80%를 구원해야하는 필요성은 있다. 기형적 입시구조 속에서 나도 실패하지 않았어, 우리 애는 유학갔어, 라는 말이 나와야하기 때문에 돈있는 이들이 유학을 대안카드로 만지작거리는 것은 맞다. 대학은 외국에서 나오더라도 청소년 때까지는 가족하고 있어야한다는 문화 속에, 그리고 기러기 아빠로 고생한 중년남성의 아우성 속에 특목고 국제고가 우후죽순 생겨 조기유학 수요를 국내에서 잡았다.


한편, 수출위주구조 속에서 대기업 해외지사,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는 전문직 자녀들은 국제학교 보조금이 있어서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자라 자연스레 영미권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그냥 학교 카운슬러를 통해 진학하지 따로 업체에 견적요청하지 않고 영어가 자연스럽게 되므로 절차적 문제 없이 그냥 지원한다. 에세이나 한 번 읽어달라는 정도 뿐. 유학원 입장에서 정말 영어를 잘하고 좋은 학교를 갈 사람들은 찾아오지 않고, 어느정도 영어를 하고 외국경험이 아주 많지 않은 사람들이 수요다.


이제 저출산, 인터넷, Mooc, AI학습, 학력보다는 창업이라는 트렌드, 대학필요 없다는 머스크의 발언 등으로 조기유학 기세가 많이 꺾였다. 처음에 말했던 박원희 홍정욱을 꿈꾸며 자란 키즈들이 유학갔던 시절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앞으로 아예 없어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18세 자녀와 40대 부모라는 고객에서 저변을 넓혀 평생교육으로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뭐 이 이야기는


차치해두자. 조기유학을 가게 된 한국의 분위기와 구조만 대충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정말 중요하건 조기유학생의 쓸모다. 현지에서는 아시아인TO, 한국담당TO, 혹은 전공기술활용 등 여러 요인이 있다. 돌아와서는 외국어 사용 해외업무에서 리에종 즉, 연락책 그리고 해외학벌이라는 얼굴마담 즉 간판으로서 역할이 있겠다. 정말 외국에서만 있는 어떤 기술이나 허들이 높은 자격증(박사PhD, 변호사 bar exam 등)을 습득하고 돌아 온 경우 정보 격차 및 한미 경제력 차이로 인해 오랫동안 쓸모를 입증할 수 있었지만 이제 예전과는 달리 쇄신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왜냐? 한국도 더이상 못 사는 중진국이 아니라 원천기술을 가지게 되었으며 미국도 마냥 잘 살 던 나라가 아니게 되었는데다, 인터넷 정보통신으로 인한 지식정보 신속한 교류, 그리고 이젠 AI로 인한 지능혁신까지 더불어 화이트칼라 직종에 여러 충격파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을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라는 질문만 중요했던 시기가 끝났다. 공급이 적고 수요가 많았던 시기의 질문이다. 일단 제품을 만들면 팔리던 산업화 시절의 생각이다. 라면이 없어서 못 먹지 라면만 만들면 날개 돋친듯 팔렸다. 이젠 다품종 소량생산에 연예인광고, 유투브숏츠꽁트까지 만들어야 팔린다. 불닭볶음면은 맛 보다는 바이럴이 큰 역할을 해서 매출을 올리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쉽다. 이제 조기유학해서 돌아 온, 혹은 현지에 있는 내가 어떻게 PR을 해야할까? 퍼스널 브랜딩을 어떻게 해야할까? 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과거의 졸업증으로 가만히 있어도 모두가 대접해주는 시대가 아니다. 팔리는 나를 스스로 만들어야한다.


이때 생각해보면 좋은 것은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의 관계다. 위치에너지는 학벌, 운동에너지는 노력이라 생각해보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미국대학에 입학해 어렵게 공부해 졸업해 화려한 학벌을 취득했다. 이 자체로 끝이 아니다. 롤러코스터가 올라갔다가 급강하하며 속도를 내듯, 위치 에너지는 낙차가 있어야 그 위력을 비로소 발휘한다. 스위스의 기차처럼 천천히 산을 올라가서 높은 고도에서 평지처럼 운행한다면 여기가 해발고도 몇 m인지 알 수 없다. 높은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그 위치 에너지가 실감된다.


한국에서 조기유학 학벌이 먹혔던 시절엔 이런 잘 사는 패권국의 명문대 학벌이 덜 사는 한국으로 내려오며 위치에너지의 차이가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대학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은 우리나라에 없기에 희소가치가 있었다. 교육열 높은 사회에서 서울대보다 높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대접받았다. 이제 아예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차이가 크지 않은 비슷한 위치의 등가교환이다. 우리가 외국에 알려주어야하는 것도 생겼고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럼 영어를 한국어로 일방향으로 영독해하는게 아니라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벡터 방향만 바꾸면 된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외국인에게 한국문화, 기본생활를 가르치는 것이다.


비로소 발휘한다. 스위스의 기차처럼 천천히 산을 올라가서 높은 고도에서 평지처럼 운행한다면 여기가 해발고도 몇 m인지 알 수 없다. 높은 산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올 때 비로소 그 위치 에너지가 실감된다.


한국에서 조기유학 학벌이 먹혔던 시절엔 이런 잘 사는 패권국의 명문대 학벌이 덜 사는 한국으로 내려오며 위치에너지의 차이가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대학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은 우리나라에 없기에 희소가치가 있었다. 교육열 높은 사회에서 서울대보다 높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대접받았다. 이제 아예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차이가 크지 않은 비슷한 위치의 등가교환이다. 우리가 외국에 알려주어야하는 것도 생겼고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럼 영어를 한국어로 일방향으로 영독해하는게 아니라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벡터 방향만 바꾸면 된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외국인에게 한국문화, 기본생활를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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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태는 처음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다. 기획안 때 알 수 없었던 현장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대응해나가야한다. 프로덕트 출시 후 시장분위기를 파악하며 개선점을 보완해나가야한다. 즉각적 대응은 피지컬 AI가 할 수 없는 일이다.


2. 흑백요리사2에서 백수저 스웨덴 입양아 제니 월든, 흑수저 프랑스 입양아 안녕 봉주르가 나왔다. 어느 정도 인터뷰 분량은 있었지만 의미있는 발언은 없었다. 후자는 잘하는 불어가 아닌 어설픈 영어로 인터뷰했으며 목소리도 웅얼거리고 기세도 좋지 않았다. 전자는 오히려 손종원의 유창한 유학생 영어를 부각시키는 조연 NPC였다. 제작사의 처음 의도는 한류와 함께 해외 디아스포라 한국인 서사도 조명해보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을 지켜보며 이들의 서사를 대폭 잘라냈던 것 같다. 공개 후엔 오히려 임성근 셰프 같은 예상치 못한 다른 인물이 바이럴되었다.


3. 영화 프로젝트Y는 감독이 직성대로 하지 못하고 투자사의 입김과 간섭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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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식대로 나이 들기 - 내일이 불안한 당신을 위한 완벽한 노후 수업
이영자 지음 / 초록서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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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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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미술관 올해 첫 전시 <오류를 거니는 산책자>전시가 열렸다. 3월 말까지다. 역에서 멀고 근처 다른 전시장이 없어서 동선이 단조롭고 단독으로 가야한다. 개강하고 사람이 몰릴 듯하다.


공학자가 제작한 AI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는 말끔히 외적으로 완벽해보이는 신제품을 판매하는 한편 예술은 미드저니가 만든 어그러진 이미지마저 과정으로서 전시한다. 


디지털 세상의 오류는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며 AI는 경이로운 거짓이라고 선언하는 전시서문이 흥미롭다. 이분법적으로 인간은 선, 로봇은 악이라고 하거나 기계는 완벽, 인간은 오류라고 하지 않는다. 되려, 멈춰서 질문을 여는 오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피에르위그, 히토슈타이얼, 왈리드 라드, 롤라(북서울), 백남준아트센터, 교각들(상희)의 화두와 닮았다


오류는 즉각적 해석이라는 강박을 멈추고 미정리된 과거의 잔여를 음미하게끔한다. 메시지 전달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을 재조정하는 훈련과정이자 의미 생산매개로서 기술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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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4102509490004606


이도현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이 이래저래 추천한 책은 거진 읽었다. 나고야대 명예교수 미야지 아키라의 번역서 <열반과 미륵의 도상학>, 성백효의 <한문공부와 번역이야기>, 데니스 수마라의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하는가> 등등.
















시간의 세례를 입고도 살아남은, 묵힌 장같은 좋은 양서를 보통 샤라웃했다. 우리전적을 탐구하는 그의 전공에서 배태된 감식안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난 무술에는 큰 관심은 없어 넘기곤하니 그의 관심사와 완전 공명하는 것은 아니다(나름 선긋기)

1992년에 나온 중앙아불교 도상자료 모음집, 1945년 출생 예산이 배출한 걸출한 희대의 한문학자의 조언서, 2002년에 나온 캐나다 캘거리대 교육학자가 정보과잉의 시대에 문해력 증진을 주장하며 상호구성하는 텍스트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


그러나 이 모두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교양, 학술서고 한편 모두에게 숨겨진 보물같은 책도 있다. 역자로서는 품은 항하사만큼 들었으되 모래톱에서 잊어버린 악세서리를 찾는 것처럼 독자를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책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무료로 원문보기를 할 수 있는데도.

https://www.nl.go.kr/korcis/data/boardDetail.do?bdIdx=797&currentPageNo=1



1년쯤 전에 올라 온 스레드지만 잊지 않고 있다가 짬이 날 때 읽었다. 별감방일기는 고종 20년간의 액정서의 업무일지를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액정서는 왕실의 잡무와 심부름을 담당한 기관이고, 왕실 경호인 별감이 소속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별감방일기는 경호인의 업무일지라 할 수 있고, 거칠게 비유하면 왕실도 건드릴 수 없던 비자금 은닉거래장표에 가깝다. 일기지만 매일 쓴 일기는 아니고 몇 달 간격으로 띄엄띄엄 작성되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4102509490004606


연구총책임자 장유승 교수는 한국일보 기사에서 흥미를 북돋게 배경을 더 서술하며, 왕실이벤트 때마다 각종 명목으로 반강제로 뜯긴 예시를 나열했다. 나아가 별감은 한양 기생의 뒷배로서 유흥업소 운영을 했다고 말한다. 봉급은 쥐꼬리 같으니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었을까. 우리나라도 싱가폴처럼 국가공무원에게 연봉억대로 최선의 대우를 다하고 책임과 의무를 물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경우 공무원 박봉과 각자도생의 계보가 더 오래된 듯하다. 마치 착복의 계보가 있는마냥, 일제, 625, 군부정권,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양태만 바꾸어 뒷돈 챙기기가 지속되었다. 정경유착, 연예계와 기업인의 밀월관계, 조폭의 마약밀수 같은 이야기는 영화드라마의 단골소재다.


역사의 맥락은 흥미롭지만 번역서는 건조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처럼 나름 건질만한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니 사극작가가 읽을리 없다. 여성영웅소설이 나오는 야담처럼 재미도 없다. 장부를 번역했으니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 주었고 문안했고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 나열했을 뿐이다. 심지어 저본은 한문인데 처음 장부가 시작한 1864년에는 반듯반듯 적다가 1882년엔 글씨가 괴발새발이다. (전근대 한문서적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기 때문에 pdf에 원문사진이 있어도 뒷페이지에서부터 거꾸로 오름차순으로 읽는다) 다행히도 적는 문구가 대동소이해서 그래도 눈치껏 알아볼 수 있다.


여기서 1차사료와 고군분투하는 전문가와 2차사료를 토대로 대중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가 갈라진다. 어느 누가 더 고귀한 것은 아니고 각자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 보이는 곳에서 무대와 소품을 만드는 제작자가 있고, 그이들이 제공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무대 뒤의 노고는 베일에 싸여 관객들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스테이지 프로듀서가 없다면 멍석이 애초에 깔릴 리가 없다. 고전번역위원들이 일견 쓸모없고, 아무도 읽지 않는 도서를 번역할 때는 누군가 언젠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에 호응하여 원문을 보았다. 역시나, 지난한 작업이었으리라, 한 눈에 알 수 있다.


연구원들은 저본에 없는 부분도 승정원일기로 보충했다. 용어정리를 하면서 격기役只(음식차려대접)같은 이두도 설명을 베풀었다. 역지 아니다. 한문의 음과 훈을 빌어 표기하기에 이두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사알(심부름꾼) 같이 고려시대부터 있던 직책은 으레 업계에서 상식적으로 알기 대문에 생략하지만 사약(열쇠담당)은 풀이를 제공했다. 격기(음식을 지어 올림)은 서술했으나 敎是같이 상식적인 표현은 생략했다.


특이하게 눈 여겨 본 부분은 1880년대에 일어 가타가나로 표기되어 일본과 교류가 있었다는 점(엄씨가)이다. 경진년(1880) 11월 26일 기사에 일본국서를 중희당에서 친히받았다는 문구를 굳이 장부에 적은 점도 독특하다.


원문에서 국역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저자에 따라 필기체가 다르기도 하고, 그 시대에만 쓰는 용어가 있고, 이체자도 많다. 예컨대 사알인데 저본에는 알대신 錀(발음은 윤)되어있어서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알을 사약이라고 써서 수정했다는 모양이다.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1882임오년(고종19) 1월 15일 기사 p212의 각주에 저본의 錀을 알로 교정했다고 하여 찾아보았다. pdf p261(p170) 우측으로부터 7행에 있었다.


또, 1883계미년(고종20) 9월 3일 기사 p223의 각주에 사알을 연문으로 보아 삭제했다고 했다. pdf p252 우측으로부터 5행 가운데에 있었다. 둘 다 정말 알이 아니고 錀으로 되어있어서 교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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