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떠올리면 감정이 출렁인다. 살아생전 그에 대해 나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여론의 뭇매에 그가 쓰러지고 아파할 때도 나는 알지 못했다. 살기에 바빴고 혐오에 가까운 정치에 현기증이 났을 뿐, 무엇 하나 엮이고 싶지 않았다. 밀쳐 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가 남긴 커다란 발자취는 아련한 추억처럼 마음을 후벼 파 댔고 얼어붙은 마음을 움직였다. 나를 움직인 원동력은 그의 진심이 담긴 진정성에서 비롯함은 물론이거니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연대된 부작위에 대한 의식이 더 컸음이다.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잔인무도한 권력의 이면을 무방비로 감내한 당신의 아픔을 나는 그렇게 외면했다. 처절하게 파고든 권력의 탐욕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할 벼랑으로 당신을 밀었고 단말마의 고통과 함께 기구한 삶의 마지막 비행을 마감했다.

 

그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아직 미완성이다. 현재도 그에 대한 비판과 헐뜯기는 진행형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부끄러운 현실은 언젠가는 종착점에 이르러 역사의 겸허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책벌레였다.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토론하고 건전한 비판을 통한 합리적인 이성을 도출하고자 노력하였다. 매사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에 아마추어 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덮어 쓰며 변혁을 이끌어내는 열려 있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런 당신을 사로잡은 책을 함께 읽고 토의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가 못 다한 생각의 총합, 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줄 책을 함께 공감한다는 것은 노무현, 당신의 눈으로 본 희망에 출렁이는 세상의 이면이다.

 

이 책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한다>는 오마이뉴스와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10권의 책을 바탕으로 참여정부에 몸 담았던 강사들을 선정하여 강독회를 열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서술된 책이다. 강독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심도 깊게 토의하고 밀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냄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강독회의 책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글이 되고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무게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독회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 글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지향점을 향해 나간다. 그 속에 담긴 함의를 각자의 필터를 통해 확대재생산하는 것보다 하나의 큰 틀을 통해 읽어 나가는 것은 생각의 집결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효과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강독회의 대상이 된 주제는 일정한 주체적 의식과 부단한 생각이 밑바탕 되어야 하며 이로 인해 더욱 발전된 통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을 본다면 텍스트에 곁들여진 팩트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 분명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고 기리는 작업의 일환에서 기획된 편집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집착은 거부감의 대상이 된다. 각 각의 책의 중요한 핵심과 사상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가늠하는 것은 좋았으나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대비하는 토론이 부족하였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의 기반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하는 10권의 책을 선정하고 강독하는 책의 특성상 완만한 흐름의 유지는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그 태양은 판이하게 갈리겠지만 호불호에 따라 갈라질 것은 피할 도리가 없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완성도가 높은 역작들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 내고 갈무리하였기에 지식의 층위를 불문하고 이채로운 경험이 가능하다. 정치, 경제, 환경, 사회 제 분야의 인식 있는 학자들의 책들이 결집되고 하나의 중심축을 향해 나아가기에 하나하나의 책을 따로 떼 놓고 읽어도 통찰의 힘을 키워주기에 충분한 양서다. 또한 강독회의 열기를 고스란히 흡수하여 그 자리의 열기를 밀도감 있게 전달해 주고 있으므로 충만했던 당시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독회는 같은 곳을 여럿이 함께 보는 협업의 힘을 맛볼 수 있기에 독서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랑한 10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굵직한 카테고리로 나누어 분류하여 보면 국가, 경제, 사회, 환경, 문화를 주춧돌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탐색하고 고민하는 통찰의 작업이다. 장하준 교수가 지은 <국가의 역할>과 람 이매뉴얼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 플랜>은 신자유주의의 실상과 국가가 지녀야 할 비전에 대해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경제에 안긴 폐해, 부자감세로 이어지는 양극화의 불안한 기조, 친기업정책일변도의 자본지상주의에 대한 통찰은 작금의 현실과 대비시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고하게 제시한다.

 

또한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한다>는 정치적 색깔의 명분의 허상을 짚는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점이 무엇이며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여 줄 전 방위적인 인식의 지표는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책이다. 노벨경제학상을 거머쥔 경제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정치 문화적 생리를 탁월하게 끄집어 내 엮어 가는 이 책은 흡입력이 대단한 책으로 각인된다. 아마도 이러한 각 분야를 넘나드는 폴 크루그먼의 통찰의 힘에 노무현 대통령이 반하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강독자로 나선 김창호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의 경륜에서 나오는 경험과 맞물려 지속가능성에 대한 화두를 제대로 이끌어낸다. 그는 미국식 보수와 진보의 생래적 차이와 정치적 영향에 따라 진보가 보수의 불분명한 경계를 지적하고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수립한다. 현대 정치사회의 핵심은 '거버넌스', 즉 시민의 정치적 참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일갈한다.

 

로버트 라이시가 쓴 <슈퍼 자본주의>와 제프리 D.삭스의 <빈곤의 종말>은 대비하여 읽으면 재미날 책으로 보인다. 자본에 대한 상대적인 평등의 개념과 빈곤의 역학관계를 지형도를 그리듯 보여주는 책으로 그 내용 또한 옹골지다. 빈곤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가 시스템적인 역할에 대한 자리매김이 확고한 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0권의 책 중 제러미 리프킨이 지은 <유러피언 드림>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번이고 잘 쓴 책이라는 칭찬을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아끼고 또 아꼈다고 한다. 강독자인 김성환 전 비서관이 요약본을 만들어 보고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청사진이자 롤모델로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은 미국식 자본주의로부터다.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를 바탕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영웅식 자본주의의 획득과정이다. 하지만 실제 오늘날 미국에서도 양극화의 복병으로 인해 발목이 잡힌 상태이며 드림은 종말을 맺은 상태다. 더 이상 성공신화를 자력으로 써 내려가기에는 레드오션의 혼잡한 세상이며 그 대안으로 이 책은 유러피언 드림을 꼽는다. 기술의 진보와 발전으로 계몽주의시대를 극복한 오늘날, 대화와 타협은 민주주의를 든든하게 세우는 터전이 된다. '공감의 시대, 공감의 정치'와 '새로운 정치파트너로서의 시민사회의 가치'는 똘레랑스를 통한 공감의 세상을 이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모든 가치가 실현되는 유럽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로 인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 당신은 앤서니 기든스의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을 읽고 몹시 부러워했다고 한다. 영국의 인식 있는 학자가 당당하게 나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고 그 대안으로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토양이 부러웠을 테다. 우리에게 없는 그들의 관용과 여유,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가 그랬을 테다. 성장과 분배에 대한 시스템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평등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그네들의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정책대결은 사뭇 우리네 정치판과 비교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이념을 떠나 더불어 잘 사는 나라로 이행하는 비전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공유하는 시민의식이 바닥 깊숙이 녹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은 다른 책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앞서의 책들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 경제, 사상의 시스템적인 메커니즘을 통찰했다면 이 책은 리더가 갖추어야할 역량에 대해 주목한다. 책은 두 가지 리더로서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자아실현 욕구를 자극하는 변혁적 리더와 거래적 리더의 차이를 통해 변화를 이끄는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번스에 의하면 사람은 두 가지의 태양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어느 것이 우위에 서느냐에 따라 리더로서의 역할과 자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변화는 마음을 붙잡을 때 시작되는 것이라는 이치를 생각해 볼 때 공감의 변화는 거슬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지은 요시다 타로의 책은 환경을 화두로 한 지속가능성에 프리즘을 갖다 댄 대안적 환경저서다. 아바나의 절박한 환경이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어지고 도시 전체가 새로운 녹색성장환경으로 뒤바뀌는 놀라운 변혁을 통해 대안경제의 길을 모색하는 책이다. 녹색성장의 진정한 가치와 성장모토가 어디인지 생각하는 인식의 지표를 뒤바꾸는 유익한 내용으로 엮여 져 있다.

 

끝으로 <생각의 오류> 쓴 토머스 키다의 책은 노무현 대통령과 악연의 사슬로 묶인 언론의 책임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 내는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수구 보수신문집단에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했다. 언론이 왜곡되면 얼마나 쉽게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하고 진실이 잠식당하는지를 이 책은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생각이 우발하는 오류는 감성적이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우연성에 기대며 지나친 단순화와 기억의 왜곡의 근거 없는 믿음이 유발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실 6가지의 오류는 광범위하게 인간의 의식체계를 지배한다. 수치화된 통계자료보다 이야기의 감성적 호소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보면 그 나약함을 우리는 잊고 사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 책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증명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으로서 반드시 깨달아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한다.

 

 

이렇듯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를 대신하여 가늠할 수 있는 책의 총체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키피디아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 2.0을 건설하고 네트워크와의 결합을 시도하였으나 비록 실패하였으나 이 책 10권으로 그의 담대한 사상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향한 꿈을 껴안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세상은 언젠가는 이 땅에서 실현되고 구현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공존과 상생의 세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변하지 않는 가치는 참여에서 시작된다. 참여는 깨어 있는 지성을 요구하고 인식 있는 사고를 고무한다. 분명 이 책은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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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9-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감정적으로 좋아합니다. 그의 행적을 낱낱이 들춰내고 의심가는 대목을 짚고 진정한 진보로서의 한계를 적시하고 이런 대목에서 저는 도망칩니다. 논리적으로 공박하고 머리로 그를 얘기하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퇴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행복하다고 미소지었던 다큐3일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행복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그런 최후를 맞이하고 저는 그가 이런 책을 꼭 쓰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펼쳐져 있던 <유러피안 드림>을 저는 울면서 읽었습니다. 누가 너무나 사랑했던 책은 그 사람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저의 경박한 이해도로 그 책을 전부 소화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저변에 깔린 그 인간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너무 좋았습니다. 곡우님의 글을 읽으니 참 그리워집니다.

穀雨(곡우) 2010-09-15 09:04   좋아요 0 | URL
시간이 되면 10권의 책을 다 읽어 볼 참이예요. 당신께서 어디에 마음을 뒀는지
어느매에서 감동에 벅차올랐는지 드려다 보고 싶어요.
이 책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계속 지배적이더라구요....그립기도 하고.
 

 
딸아이와 제 엄마와의 사이는 각별하다. 몇 해의 계절을 뒹글며 경험하는 동안 훌쩍 웃자라버린 아이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기만 하다. 그 호기심을 해갈해 주는 통로는 바로 엄마다. 엄마의 표정과 행동에 담긴 틈새를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 가 앵무새처럼 느닷없이 엉뚱한 지점으로 아이는 거침없이 뱉어 낸다. 아이의 의식세계의 어느 지점에 걸려 있던 흡수했던 모방의 흔적이 툭 튀어 나온 것처럼 말이다. 아이는 예측할 수 없다. 어디로 날아 갈 지 행방이 묘연하다.

 

이른 저녁을 끝내고 자기 전 준비를 모두 마친 후,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각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배속에 든 새로운 생명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에서 배운 지식과 의문이 겹쳐지는 접점에 이른 모양이었다. 아이는 태연작약하고 해맑은 표정으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배 속의 아기 씨는 아빠에게 뺏아 온거야?

 아님 아빠가 엄마에게 준 거야?"

 

순간, 몰아치는 황당함, 뒤이어 몰려 오는 엉뚱함이 유발한 폭소.....

 

자지러질 듯 웃음을 선사한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커다란 눈망울만 재빠르게 굴리기에 바쁘다. 아이가 가진 지식의 경험치로는 분명 주고 받는 거래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리라. 아이의 눈에 비친 새 생명의 출현과 사고에 대한 경계는 소화내기 힘든 현실이다. 분명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는 제 엄마의 신체변화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을테고, 아이의 눈으로는 아빠의 것으로 인식되는 아기 씨를 어떻게 엄마가 가져 왔느냐는 도통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같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여태껏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을 주고 받는 소유의 대상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아이의 영악함에 놀랐다기 보다 순수한 생각의 우듬지에서 걸러 나온 엉뚱기발한 생각이 신통방통하다. 한창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이라서 그렇다지만 아이의 세상은 어른의 경직된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행위는 아이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 주는 리시버의 역할이 필요하다. 자칫 정제되지 못한 말랑말랑한 생각을 기존의 관념으로 자르고 해체하다 보면 아이에게는 저항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킨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는 유아서의 대체법은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고 거리감이 든다.

 

나는 재차 아이의 눈에 담긴 호기심을 곱씹어 본다. 아이의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흘러 나왔을지를 가늠해 보고 아이가 내 놓은 결과치에 딱 부합할 정도의 언어로 다시 보내 주려 노력한다. 아이에게 아기의 탄생은 닭이 알을 쑥쑥 낳는 것과 같은 맥락의 수준이다. 드러난 그 대로 불쑥. 그러니 아빠와 엄마가 서로 사랑해서 아기가 생겼다는 압축되고 추상적인 대답은 막연하다. 그 막연함에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아이의 눈망울이 대변해 준다. 아이에게 1+1=2라는 공식보다 1+1=3이 될수도 있다는 불가해의 영역처럼 말이다.

 

"너는 아빠와 엄마의 사랑의 결실이란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며 아끼기 때문에

 아빠의 몸에 있는아기 씨를 엄마의 아기 집으로 보내

 준 거란다."

 

성(性)이라는 게 대 놓고 말하기가 참 민망하다. 구성애 여사의 말씀에 의하면 성은 아름답고 솔직해야 된다는 데 나는 한참을 멀었다. 이건 나의 부모님 세대에게는 더 뒤로 뒤로 밀쳐진 이야기였을테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느니 엄마의 배꼽에서 나왔다느니 하는 왜곡되고 결락된 진실은 가뭇없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솔직함을 요구하고 그렇게해야 제대로 된 부모 구실을 한다. 부모의 의식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지겨울만큼 확증된 사실이므로 달리 토를 달거나 불만을 토로하기는 어렵다.

 

어쨋든 아이에게 성에 대한 관념을 심어 주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한 것은 변함없다. 유치원에서 주워 들은 아빠와 엄마의 신체구조에 따른 성 아이덴티티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직접 대입해 보는 것을 보면 어설픈 은닉은 위험하다. 더불어 생각이 든 한 꼭지. 아이는 이렇게 크고 자라는 구나하는 조화로운 진실에 겸허해진다. 그동안 나의 굳은 생각의 프리즘으로 아이를 재단한 것은 아닌지하는 겸연쩍은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럴 때 딱 어울리는 철 지난 광고 하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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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1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젤 답변하기 힘든 질문이예요, 그쵸?

穀雨(곡우) 2010-09-10 15:24   좋아요 0 | URL
전 크게 웃었습니다...므훗....^^
 

 
바람길이 바뀐다는 것은 몸이 먼저 알고 흡수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바람은 변한다. 태풍이 오겠다는 기별 뒤에 스스로 제 몸을 낮춰 소멸한 말로의 남겨진 꼬리가 여름을 데려갔다. 밤새 바람이 다르다. 끈적하게 타고 흐르던 눅진한 바람이 이제 몸집을 줄인 모양이다. 둔중하게 고여 있던 느낌은 오간데 없고 바람은 가볍다. 가볍다 못해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한들한들 거리는 5월의 봄바람은 아닐지언정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은 상큼하다. 밍기적 뒤채다 늦은 여름의 끝자락도 소슬한 바람 앞에서는 위력이 없다. 송글 송글 맺혀 비져 나오던 땀자락도 바람 앞에서는 무혹(誣惑)할 수 밖에 없다. 

 

바람은 때론 곁가지를 달고 온다. 내가 사는 곳은 바람에서 소금기가 퍼진다. 살짝 부딪히는 바람에도 진한 소금 내음은 코끝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전률한다. 분명 짧은 바람이었음에도 강렬한 감각이다. 그가 몰고 온 소금기는 파도에 실려 세상을 순회했을테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바람에게 나이가 있다면 지구의 나이와 엇비슷하겠다. 부정합으로 퇴적된 지층을 뭉치고 덮고 단단하게 만드는 동안 바람은 제 모습을 계속 변하고 변했을테니. 어찌보면 바람에게 시간의 관념은 의미가 없다. 인간이 만든 시간의 기록은 바람에게 껍데기에 불과하므로 어떤 형태로든 어떤 자리에든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단지 변화의 정도에 따라 힘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 외에는 바람에게 시간은 사치다. 

 

변화는 이렇듯 소리없이 다가온다. 기약하지 않아도 예정대로 흐른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한 뒤에는 저만치 앞 서 나간 후의 일이다. 시작은 바람이다. 바람이 해의 길도 바꾸고 달의 모자란 기울기도 채워준다는 착각마저 분다. 바람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이 이 뿐이겠는가. 손으로 꼽아 세울만큼 의식화하지 못한다. 다의적인 바람의 영향은 자연을 회전하고 사람의 기운도 탈피하듯 바꾼다. 무의식중에 느낀 그 가벼운 바람이 상념으로 몰고 가는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자연으로부터 배운다는 상생의 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바람의 변화가 무슨 대수겠냐는 물음을 던진다면 딱히 돌려 줄 말이 없다. 그저 바람이 바뀌었으니 여유를 찾고 주위를 좀 더 돌아보자는 정도지 애면글면할만큼 선후를 다투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람의 변화는 잠시나마 정체되어 둔해진 탁한 공기를 신선한 공기로 대체해 주는 역할만큼 중요한 일이다. 변화의 순간은 사소하고 미묘한 것에서부터다. 빠름에 익숙해진 일상에 바람은 충분히 윤활유가 된다. 살갗에 감기는 바람의 촉수에 마음도 분명 변화의 가운데에 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시간이 되면 바람 맞으러 가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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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0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9 09:14   좋아요 0 | URL
바람~하니까 예전에 제가 썼던 시가 생각나서 올려봤어요.
푸히히~~유치하지만...
'바람의 제자'라는 태그도 붙였었죠.

穀雨(곡우) 2010-09-09 09:36   좋아요 0 | URL
마기님, 시가 제 부족한 글과 잘 어울리네요.^^
채움과 비움, 어제와 오늘.....
가을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기를.....^^
 

 
1. 

걱정한 만큼 일은 대개 맥없이 끝난다. 기대도 마찬가지다.

2.

신새벽부터 비가 흩뿌리는 역사를 뒤로 하고 몇시간을 나아가기만 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의 기차는 고요한 물 속처럼 정지된 듯 움직임이 둔하다. 표정이 정지한 상태다. 그네들의 사정들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몸짓은 닮았다. 그것도 주말을 끝낸 월요일 이른 아침의 기차칸이라면 평소보다 더 성마르다. 아마 식사도 평소보다 빨랐을테고 리듬이 흔들려 불안정한 상태에 겨우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매번 이 시각에 출발하는 기차는 바닥처럼 가라앉는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웠으니 더 더욱 그랬는지도......


어떻게 보면 생체시계는 해를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에 미친다. 해가 사라지면 몸은 활동을 멈추고 의도적인 경직상태로 돌입하고 그로 인해 누적된 피로를 몰아내는 반복된 살기 위한 진화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나가는지 모른다.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작용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주기적인 리듬과 규칙을 메트로놈의 정형화된 순서에 맞춰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구속이 될 수도 있거니와 갑갑함이 발목을 붙든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 한켠에는 새로움을 찾는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어쨋든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지 구부려져 얽히는지 움직이고 나아간다. 리듬이 얼만큼 벌어진 사람들을 태우고 기차는 목적지에 격한 숨소리를 내 쉬며 멈추기를 반복한다. 사람들은 기차 속 풍경과는 다른 사뭇 잰걸음으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날아갈 듯 이동한다. 하지만 표정은 이전과 다름이 없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의 눈빛은 밤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밤의 지배는 마법처럼 서서히 해가 제법 떠오랐을 즈음에나 풀리리라. 


어지럽게 뒤엉키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서울역의 끈적하고 탁한 공기는 갈라진 간극의 틈입처럼 아득하다. 널부러진채로 간밤 도시의 혹독한 냉기와 오염된 시간을 버텨 냈을 노숙자들에게는 이 도시는 지겨울테다. 아니, 영혼을 붙잡혀 벗어날 수 없는 지옥경처럼 두렵다는 게 적확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서울역은 죽음의 광기와 삶의 집착이 들짐승처럼 배회하는 섬뜩한 곳일테니 말이다. 그들에게서는 원시의 공기가 느껴진다. 인간이 만든 도시화의 한 가운데에서 원시의 태고적 내음이 섞여 흐른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더 이상 밀려날 곳 없는 그들의 굴곡같은 삶, 보이는 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락적인 허기를 채우는 그것보다 인간적인 위로가 더 필요할테니 말이다.


3.
 
마음은 실체가 없으되 취약하기 짝이 없다. 아침 나절 분주하게 펼쳐지는 이동에 위압당하고 덩그마니 찌를 듯 솟은 콘크리트에 짓누를 듯 무겁다. 파고드는 것은 현기증 뿐만 아니라 붙들 곳 없는 불안이다. 그래도 마음은 호기심이 앞선다.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들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은 언제나 생동감있다. 가벼운 접촉사고로 뒷목을 끌어 잡고 바닥에 나뒹구는 택시기사와 그악스러운 아주머니와의 신랄한 몸싸움을 구경하는 재미와 같다. 뭐, 달리 재미라는 감정외에는 구체적으로 형용할 말이 없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 대해 "불안은 삶의 조건이다.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보통의 말을 풀이해 보면 하나의 불안이 해소되면 또 다른 불안으로 이동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이 된다. 


돌이켜 보면 불안은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재료다. 불안이 마음과 엉키면 평온은 부서지고 긴장은 고조되며 동요는 버무려진다. 불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 그것이 기쁨으로든 슬픔으로든 바뀌는 것은 불확실한 불안의 재료의 배합이다. 그렇다면 불안을 적절하게 조절 가능할까? 레시피에 맞춰 요리를 하 듯 불안을 몇 스푼만 첨가하면 최적의 상태, 즉 행복을 만드는 재료가 될까하는 거다. 그러므로 보통이 불안의 출현이 마음의 결핍, 사랑에서 온다고 했는지 모른다. 사랑은 불안을 중화시키고 희석시키는 최고의 첨가제다. 


나를 사랑한다면 불안의 통제를 통해 삶의 만족, 행복을 얻는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걱정은 일의 경중, 익숙함의 정도, 환경, 주위영향에 다분히 관계를 맺는다. 걱정이 커지면 불안이 된다는 이치는 분명하다. 사소한 걱정이 불안으로 바뀌기 전에 유쾌한 긴장을 위한 평정의 상태로 바꾸는 것이 불안을 통제하는 수문통제소가 되는 셈이다. 이런 과정을 나는 빈번하게 반복한다. 걱정하고 긴장하며 불안해하고 믿고 통제하는 과정. 때로는 믿는 객체를 더욱 넓혀 신의 영향력에 기대는 것도 이와같은 의미와 같다. 마음은 앞서서 보았듯 실체가 없으나 형태는 다양하다. 마음을 드려다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의 마음을.
 

 

p.s) 늦게 내려 온 밤, 말로의 위용에 놀라고 쓴 맛을 본 리뷰소식에 아쉬웠다.
       마음은 또 안정보다 살아있음을 내비친다. 그래도 아쉽다. 결과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단지 민망한 기대를 한 나 자신에게 아쉬울 따름이다.


p.s 2) 단연 최고라는 머쓱한 어느 님의 위로가 없었다면 아쉬움은 진하게  

         머물렀을지 모르겠다. 그 님의 진심이 담긴 말. 마음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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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9-0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의 묘사 한 줄 한 줄이 들어와 박힙니다. 어휘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 송혜교가 어느 드라마에서 했던 대사를 참 의미심장하게 들었어요. 작은 걱정만 하며 살고 싶다,는 말. 이 말 살수록 너무 와닿아요. 불안의 경중도 그게 너무 커서 불안이라는 말 속에 담을 수도 없을 만한 것을 대면했을 때 자잘한 걱정과 불안이 있던 일상을 그리워 해 본적도 있어요. 결국 삶은 곡우님 말씀처럼 불안을 통제하는 기술의 연마 과정인 것도 같아요.

리뷰를 곡우님 리뷰를 안뽑아 주면 대체 누구를 뽑아 주나요? 최고 맞아요^^

穀雨(곡우) 2010-09-07 15:18   좋아요 0 | URL
아, 블랑카님. 작은 걱정만 하고 살면 좋겠다는 말, 콕콕 와 닿네요.
음...호사다마란 말도 그런 뜻이니 그것도 어찌보면 같은 뜻이겠어요.
불안을 떨쳐 버릴 수는 없으니 불안을 통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리뷰소식은 다른 곳에 대회가 있었거든요. 근데 미역국만 잔뜩....ㅋㅋ
이제 괜찮아요. 분명 글이 산으로 갔으니 제 자리는 없는게 당연해요...
그것보다 블랑카님의 위로가 더 고맙고 살가워요....^^

비로그인 2010-09-0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불안이 해소되고 다른 불안으로 이동된다기 보다 하나의 불안이 또 다른 불안을 낳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가는 과정은 아닐까 싶은데...
나 예전에 이거 읽다가 스탑했는데...다시 읽어봐야 겠어요.^^

穀雨(곡우) 2010-09-08 16:31   좋아요 0 | URL
아...저도 그 뜻으로 적은 거예요. 불안이 꼬리를 문다는 의미로....
보통의 이야기는 마음이 허할때 읽으면 좋아요.
전 언제든 내키면 꺼내 읽거든요...^^

비로그인 2010-09-08 15:46   좋아요 0 | URL
언제든 내키면 허하시다는?
푸히히~~
허한 느낌이 자주 든다는 건...나이가 먹어가고 있다는 거.
오늘 이곳은 글루미한 하늘이예요.
부산은 어떤가요?

穀雨(곡우) 2010-09-08 16:33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아무래도 제가 조증이 있는 모양입니다.^^
부산은 바람이 따뜻해졌어요. 밤새 바람길이 바뀌었는지 선선하다 못해
약간은 긴장이 되는 바람이더군요.
지금은 찌뿌둥한 구름사이로 간간히 해가 보였다 말았다 그러네요.
하지만 바람과 햇빛 사이에 소금기는 여전해요.
어디서부터 온 바람인지는 몰라도....^^

비로그인 2010-09-08 19:25   좋아요 0 | URL
소금기가 있는 바람이니 바다에서 왔겠네요.
ㅎㅎ갑자기 '남쪽으로 튀어'에 배경이 되었던 오키나와가 생각이 나요.
읽는 동안 완전히 빠져설랑 오키나와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한참을 그랬거든요.
'이웃집 토토로'의 그 시골도 좋구.
허하거나 좀 생활이 무료하다 싶을 때는 저렇게 공기가 신선한 곳에서 깨끗한 맘으로 사는 꿈을 꾸곤 했는데...
곡우님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으로 달래시네.ㅎㅎ
빈 곳을 채우는덴 책이 최고져 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소설이란 있을 법한 이야기로 이해된다. 소설은 상상이라는 재료를 주원료로 삼고 작가의 오감(五感)이라는 부재료를 투입해서 잘 버무려 숙성시켜 부풀린 빵과 같다. 그러므로 소설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사실적인 무대가 펼쳐지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이 촉수를 가진 생물체처럼 감각적이라는 사실도 비슷한 논리다. 이렇게 소설은 인간을 닮는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관계를 투영한다. 인간관계는, 삶이라는 보편적이고 개별적인 요소의 총합이다. 삶의 속성은 대체로 불가해성의 영역이다. 복잡 미묘하며 예측하거나 속단할 수 없다. 누구나 삶은 불완전하며 완벽하지 못하다. 이와 같이 삶과 소설은 동일한 범주에 있으나 소설은 보다 더 자유롭다. 따라서 소설의 무대는 가변적이며 전지전능한 실험의 대상이 된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을 본다. 그러하기에 소설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고 오르가즘을 재촉하는 해방구가 된다.

 

 

김영하. 나는 그를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그가 한국문단에 센세이션의 돌풍을 몰고 다니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할 동안 나는 그를 몰랐다. 그와 맞닥뜨리게 된 기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한 부분이다. 동사무소에 들렀다 주민 편의를 위해 대여문고를 운영하던 책꽂이와 근접한 거리에 있었고 그날따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은 정지된 듯 지루했으며 고압적인 흐름은 불편했다. 상황은 내가 원하는 방향의 궤적으로부터 비켜 나가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손끝은 그를 만났다. <퀴즈쇼>. 빠르게 눈은 흘렀으며 마음은 뒤쫓기에 분주했다. 인생은 퀴즈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퀴즈쇼. 작가의 말 중에서) 그의 문장은 사실적이었으며 상상력은 기발했다. 그의 오감에 걸려든 인생은 나를 위로했으며 인생은 퀴즈처럼 선택의 순간이라는 역설을 이해했다. 나는 그렇게 그의 책을 섭렵했다.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오빠가 돌아왔다>.

 

 

그렇게 그가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여유롭게 들고 특유의 마술로 세상을 홀렸다. 그의 이번 작품은 전작의 속성은 닮고 있으나 전에 비해 짧은 단편으로 묶였다. 단편소설의 특성상 템포와 강약의 완급조절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작품은 그의 실험적 본령을 이어가는 또 다른 결과물인 셈이다. 나는 그의 이번 작품에서 안톤 체호프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연상했다. 러시아의 대작가 안톤 체호프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현상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 내려 갔다. 그의 글은 특별히 놀라운 사건을 도입하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사건이 있더라도 그 자체의 외부적인 측면보다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다양하고 모순된 반응에 주목한다는 점, 대체로 매우 느슨한 플롯인데다가 그 결말이 미결정의 상태로 끝나고 주인공들도 이에 대해 어리둥절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 등장인물들 간의 의사소통의 단절 등 현대 단편소설의 기틀을 확립한 천부적인 자질을 갖춘 문호였다.(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p-191~192 인용) 이 책의 총 13편의 단편은 체호프의 토질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열매로 인식된다.

 

 

실제 이 소설의 플롯들의 다양성, 소재의 기발함, 삶의 보편적 편린 등은 그 차별적 시도가 매혹적이다. 사실(寫實)이라 할지라도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삶의 보편적 특성은 어느 순간 존재의 가치 앞에 무력해진다. 이 작품의 명제(命題)가 대변하여 주 듯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거나 알 수도 있다는 가정적 현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의 알고리즘을 분해해 본다면 모노레일의 궤적과는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처럼 비정형적이며 일정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삶은 때때로 자신을 속이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이른바 삶의 불가해성이다.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나 관찰없이는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의 이번 작품은 차후 작품의 패턴을 넓히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로봇의 삼원칙을 세운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이로봇>의 저자다. 그의 소설은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흥행 또한 크게 성공했다. 아시모프는 칼 세이건과 더불어 천재과학자이자 작가다. 김영하가 아시모프의 로봇을 빌려 온 것은 모방이 창작의 주춧돌이 된다는 경험적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김영하의 <로봇>은 아시모프의 그것과는 닮은 점이 없다. 로봇은 더 인간적이며 인간의 마음을 시종일관 뒤흔든다. 섹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로봇의 3원칙에 복종하는 딜레마에 빠진 로봇. 그래서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로봇. 김영하는 이에 더해 ‘라고 치고 게임’을 주 무기로 공략하며 패를 유리하게 이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딜레마에 갇혔으며 험난한 암초에 좌초되었다. 로봇의 존재이유를 묻게 되었고 그 로봇이 인간에게 쾌락을 안겨주었으며 그 쾌락의 종말이 로봇의 파괴로 이어진다면 로봇이 인간을 제거의 대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인가라는 구조적 모순에 이르렀다. 따지고 보면 모순된 현실은 어디서든 비일비재하다. 비이성적인 해답이 차지하는 경우는 허다하며 이성은 상실된 지 오래인지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 로봇을 모른다.

 

 

<여행>은 현대인의 고독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결혼을 앞 둔 수진과 과거 애인이었던 한선과의 어색한 만남과 무모한 여행이 발단이 되어 불편한 진심을 토해내며 가식의 가면을 벗는 인간의 위선적 행위를 관찰한 작품이다. 사랑과 현실은 다르다는 차이를 우리는 진리처럼 되새긴다. 현실 앞에서 사랑은 허무하고 냉소적이다. 한선의 그 무모한 만용도 짧은 쾌감을 유발하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은 낙관적이지 못하다. 배를 태워주겠다는 험상궂은 사내의 시비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낭자한 현장은 수진의 마음을 흔들지만 현실은 그녀의 미래 앞에 비굴해졌다. 포스트잇같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뒤끝 없는 관계라고 믿던 그녀에게 미래가 불투명한 시간강사의 그는 이미 거세당한 만남이었다. 아이러니한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너무도 흔하게 일어난다. 외면 권하는 세상, 사랑을 위한 납치도 이제는 관용의 자리는 없다. 인생은 사막보다 더 삭막하기 때문에.

 

 

<악어>는 포식자의 매정한 눈물이 떠오른다. 한 남자에게 우연히 찾아든 천상의 목소리. 그를 성공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로 이끌던 목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다면. 남자는 우연히 들른 클럽에서 무명의 보컬에게 끌리고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파충류 악어, 목소리는 꿀꺽. 그는 악어가 되었다. 박제가 되어 동물원에 전시된 후 그의 노래는 전설이 되었다. 모든 동물들이 우는 비현실적인 상황. 박제된 악어의 노래는 위선처럼 슬픔을 지배하였고 악어는 위선에 능욕당하지 않았다. 결국 세상은 악어의 위선처럼 거짓에 취약하며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신기루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면 그만인 것을.

 

 

<밀회>는 작품 속 나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그 시선 속에 숨어든 반전은 이 작품의 주제가 숨은 최고의 걸작이다. 시간의 흐름을 유영하고 타국의 일상을 탐구하며 때로는 나른하게 때로는 흥미롭게 서술하는 경어체는 고백처럼 들린다. 소설 속 나는 세심하게 사물을 더듬고 그녀를 만나는 동안 펼쳐지는 정경을 하나라도 빠트리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고백한다. 그 고백은 자성의 소리로 이어지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 사물의 구체성에 대해 논하며 윤회를 들먹인다. 그는 해파리를 꿈꾸고 그녀와의 부적절한 만남을 회의(懷疑)한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낯선 사람처럼 느끼는 그녀의 남편과 그로 인해 복잡한 죄책감과 증오, 친밀감에 대한 희구가 뒤섞인 그녀는 소설 속 나의 예상 밖의 죽음에 현실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김영하는 이 작품에서 그가 면밀하게 관찰하고 느낀 사유의 총아를 모두 집결해 놓았다는 느낌을 나는 강하게 받는다. 삶은 불가해한, 알 수 없는 현상의 연속이며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든다. 이처럼 이 작품은 아무도 모른다는 미지의 영역의 경계에서 실존적인 물음을 구체적으로 던짐으로써 인간의 내밀한 본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유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삶의 근원이 믿음에서 비롯되고 나아간다는 본질에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는 계기가 된다. 마치 밀회하듯 스릴 넘치게.

 

 

<아이스크림>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 봤을 법한 상황을 표현한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자동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일정한 질량과 성분으로 조합하여 만들어진 기성품, 그 속에 산입된 불순물은 신뢰의 영역이다. 나는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때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안전한 지, 믿을 수 있는 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에 의한 결과다.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은 제 값을 치르고 갈증을 해갈시켜 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불순물이 첨가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불순물은 제조자와 고객을 불편한 관계로 만들고 기선을 잡기위한 모종의 심리게임은 시작된다. 상황은 어지럽게 번진다. 소설 속 부부의 상황처럼 고객책임자의 비일상적인 만남의 기록은 낯설지만 눈에 익는다. 손해배상금이라도 한 몫 챙기겠다는 윤리적 경계에서의 유혹은 오히려 인간적이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또한 인생이다. 고객책임자의 너무도 성실한 태도에 압도당하고 패스트푸드로 넘쳐나는 현실 속으로 되돌아온다. 이 작품은 세속적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반드시 신문에서나 보는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받는 행운(?)처럼 같은 결과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법이라고.

 

 

<조>는 타락한 형사다. 백화점을 드나드는 뜨내기 잡범을 잡아 장물을 빼돌리며 이익을 챙긴다. 그에게 있어 백화점은 경계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다. 조는 포식자의 인내를 가지고 먹이를 좁혀 가 듯 표적을 유린한다. 반면 백화점 시계코너 정은 살기 위한 몸짓으로 육신을 타락시킨다. 타락은 공공연화되고 일상화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타락은 허용된 제스쳐이다. 경계를 조금 넘었다고 해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경계를 탐하는 타락은 변하는 것에 대한 무감각이 지배하고 우리는 그렇게 타락한다. 조가 정으로 인해 타락하는 과정은 흡사 중독성 강한 마약성분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우리 삶에서 타락은 바람처럼 가깝고도 은밀하다. 언제든 유혹할 태세를 갖춘 팜므파탈의 유혹처럼.

 

 

<마코토>는 현대 여성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했다. 훈남의 일본인 유학생을 사이에 두고 새침떼기 후배와의 줄당기기는 읽는 이의 애간장을 태운다. 상황이 역전되고 후배의 교활한 속임수에 마코토가 넘어가 버리는 가련한 현실은 애틋하다. 하지만 인생은 역전이 가능하다.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마코토와 후배와의 이별을 듣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바람은 믿는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 법. 머피의 법칙처럼 민망한 상황, 허무개그처럼 뻘쭘함이 밀려온다. 유쾌한 암전, 읽는 이는 즐겁다.

 

 

<퀴즈쇼>는 그의 장편과 얼개가 유사하다. 하지만 또 다른 맛이 난다. 소설 속 주인공 정동국과 조은이의 만남 그리고 관계를 적절히 배합하고 섬뜩하기도 한 장면을 삽입하여 몰입을 유도한다. 기능적 결손가정, 성공일변도의 가치관, 물질만능주의사회에 대한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경쾌하게 탁탁 끊기는 스타카토처럼, 시원하고 차가운 맥주처럼 텁텁함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인생은 퀴즈처럼 선택의 순간이다. 선택은 홍수통제소에 날아든 긴박한 상황이 파도를 타고 이어진다. 그 물결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예측은 빗나가고 상황은 암울하다. 하지만 인생은 정동국의 헛물처럼 잡념을 남긴다. 내가 그때 그랬다면.

 

 

<명예살인>, <바다이야기 1, 2>, <오늘의 커피>, <약속>은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소설이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절단하여 벌려진 채로 속살을 그대로 드려 낸 실체를 비틀어 보고 매달아 보고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꼼꼼하게 분석한 뒤,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사진처럼 직설적으로 직관적인 서술이 인상적이다. 어디서든 부딪히는 상황, 사회면 한 곳을 오롯이 장식하는 사건·사고, 불행은 이어진다는 속설, 어이없는 만남 등 이러한 단면들은 확률의 법칙을 무시하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렇듯 김영하의 이번 작품은 상상력이라는 펜으로 현실을 섬세하게 스케치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다. 그의 문장은 모던함 속에 감춘 마력이 강한 자성을 발산한다. 한번 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는 쇠붙이처럼 생각을 흡수당하고 관성을 상실한다. 나는 소설이 현실을 떠나서는 공상에 그친다고 믿는다. 소설은 현실에 충실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그러하기에 소설은 작가의 밀어내고 내어 쓴 사유의 흔적을 따라 독자는 그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흡수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정화작용을 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김영하는 오래도록 간직할 삶의 도피처이며 위안이 되는 소통의 장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이번 작품, 반갑고 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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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추천만해야지 어려워서 원~~ㅋㅋ
소설을 읽을 땐 뭐 나의 인생도 같이 읽혀지니까요...도피하고 싶어도 자꾸 현실이 곱씹어지곤 해요.
멋진 리뷰...즐감합니다^^

穀雨(곡우) 2010-09-01 08:59   좋아요 0 | URL
어렵다는 생각, 제 글의 최대의 약점입니다.
보다 더 쉽게 쉽게 써야 할텐데 말이지요. 글쓰기 어렵습니다.^^

yamoo 2010-09-0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김영하 작가 좋아해요..최근 나온 신간을 제외하고는 다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김영하의 신작은 천천히 구입해야 겠습니다^^

穀雨(곡우) 2010-09-03 09:28   좋아요 0 | URL
이번책은 단편선 모음집이라 생각보다 분량이 작습니다.
한나절이면 충분한 분량, 하지만 김영하의 스타일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