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이 바뀐다는 것은 몸이 먼저 알고 흡수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바람은 변한다. 태풍이 오겠다는 기별 뒤에 스스로 제 몸을 낮춰 소멸한 말로의 남겨진 꼬리가 여름을 데려갔다. 밤새 바람이 다르다. 끈적하게 타고 흐르던 눅진한 바람이 이제 몸집을 줄인 모양이다. 둔중하게 고여 있던 느낌은 오간데 없고 바람은 가볍다. 가볍다 못해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한들한들 거리는 5월의 봄바람은 아닐지언정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은 상큼하다. 밍기적 뒤채다 늦은 여름의 끝자락도 소슬한 바람 앞에서는 위력이 없다. 송글 송글 맺혀 비져 나오던 땀자락도 바람 앞에서는 무혹(誣惑)할 수 밖에 없다. 

 

바람은 때론 곁가지를 달고 온다. 내가 사는 곳은 바람에서 소금기가 퍼진다. 살짝 부딪히는 바람에도 진한 소금 내음은 코끝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전률한다. 분명 짧은 바람이었음에도 강렬한 감각이다. 그가 몰고 온 소금기는 파도에 실려 세상을 순회했을테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바람에게 나이가 있다면 지구의 나이와 엇비슷하겠다. 부정합으로 퇴적된 지층을 뭉치고 덮고 단단하게 만드는 동안 바람은 제 모습을 계속 변하고 변했을테니. 어찌보면 바람에게 시간의 관념은 의미가 없다. 인간이 만든 시간의 기록은 바람에게 껍데기에 불과하므로 어떤 형태로든 어떤 자리에든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단지 변화의 정도에 따라 힘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 외에는 바람에게 시간은 사치다. 

 

변화는 이렇듯 소리없이 다가온다. 기약하지 않아도 예정대로 흐른다.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한 뒤에는 저만치 앞 서 나간 후의 일이다. 시작은 바람이다. 바람이 해의 길도 바꾸고 달의 모자란 기울기도 채워준다는 착각마저 분다. 바람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이 이 뿐이겠는가. 손으로 꼽아 세울만큼 의식화하지 못한다. 다의적인 바람의 영향은 자연을 회전하고 사람의 기운도 탈피하듯 바꾼다. 무의식중에 느낀 그 가벼운 바람이 상념으로 몰고 가는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자연으로부터 배운다는 상생의 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바람의 변화가 무슨 대수겠냐는 물음을 던진다면 딱히 돌려 줄 말이 없다. 그저 바람이 바뀌었으니 여유를 찾고 주위를 좀 더 돌아보자는 정도지 애면글면할만큼 선후를 다투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람의 변화는 잠시나마 정체되어 둔해진 탁한 공기를 신선한 공기로 대체해 주는 역할만큼 중요한 일이다. 변화의 순간은 사소하고 미묘한 것에서부터다. 빠름에 익숙해진 일상에 바람은 충분히 윤활유가 된다. 살갗에 감기는 바람의 촉수에 마음도 분명 변화의 가운데에 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시간이 되면 바람 맞으러 가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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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0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9 09:14   좋아요 0 | URL
바람~하니까 예전에 제가 썼던 시가 생각나서 올려봤어요.
푸히히~~유치하지만...
'바람의 제자'라는 태그도 붙였었죠.

穀雨(곡우) 2010-09-09 09:36   좋아요 0 | URL
마기님, 시가 제 부족한 글과 잘 어울리네요.^^
채움과 비움, 어제와 오늘.....
가을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