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노무현 대통령, 당신을 떠올리면 감정이 출렁인다. 살아생전 그에 대해 나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여론의 뭇매에 그가 쓰러지고 아파할 때도 나는 알지 못했다. 살기에 바빴고 혐오에 가까운 정치에 현기증이 났을 뿐, 무엇 하나 엮이고 싶지 않았다. 밀쳐 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가 남긴 커다란 발자취는 아련한 추억처럼 마음을 후벼 파 댔고 얼어붙은 마음을 움직였다. 나를 움직인 원동력은 그의 진심이 담긴 진정성에서 비롯함은 물론이거니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연대된 부작위에 대한 의식이 더 컸음이다. 승냥이처럼 달려드는 잔인무도한 권력의 이면을 무방비로 감내한 당신의 아픔을 나는 그렇게 외면했다. 처절하게 파고든 권력의 탐욕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할 벼랑으로 당신을 밀었고 단말마의 고통과 함께 기구한 삶의 마지막 비행을 마감했다.

 

그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아직 미완성이다. 현재도 그에 대한 비판과 헐뜯기는 진행형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부끄러운 현실은 언젠가는 종착점에 이르러 역사의 겸허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책벌레였다.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토론하고 건전한 비판을 통한 합리적인 이성을 도출하고자 노력하였다. 매사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에 아마추어 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덮어 쓰며 변혁을 이끌어내는 열려 있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런 당신을 사로잡은 책을 함께 읽고 토의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가 못 다한 생각의 총합, 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줄 책을 함께 공감한다는 것은 노무현, 당신의 눈으로 본 희망에 출렁이는 세상의 이면이다.

 

이 책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한다>는 오마이뉴스와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2009년 9월부터 11월까지 10권의 책을 바탕으로 참여정부에 몸 담았던 강사들을 선정하여 강독회를 열었던 내용을 기반으로 서술된 책이다. 강독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심도 깊게 토의하고 밀도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냄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강독회의 책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글이 되고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무게감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독회라는 필터를 통해 걸러진 글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지향점을 향해 나간다. 그 속에 담긴 함의를 각자의 필터를 통해 확대재생산하는 것보다 하나의 큰 틀을 통해 읽어 나가는 것은 생각의 집결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효과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강독회의 대상이 된 주제는 일정한 주체적 의식과 부단한 생각이 밑바탕 되어야 하며 이로 인해 더욱 발전된 통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을 본다면 텍스트에 곁들여진 팩트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 분명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고 기리는 작업의 일환에서 기획된 편집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집착은 거부감의 대상이 된다. 각 각의 책의 중요한 핵심과 사상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가늠하는 것은 좋았으나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대비하는 토론이 부족하였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의 기반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하는 10권의 책을 선정하고 강독하는 책의 특성상 완만한 흐름의 유지는 불가피해 보인다. 물론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그 태양은 판이하게 갈리겠지만 호불호에 따라 갈라질 것은 피할 도리가 없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완성도가 높은 역작들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 내고 갈무리하였기에 지식의 층위를 불문하고 이채로운 경험이 가능하다. 정치, 경제, 환경, 사회 제 분야의 인식 있는 학자들의 책들이 결집되고 하나의 중심축을 향해 나아가기에 하나하나의 책을 따로 떼 놓고 읽어도 통찰의 힘을 키워주기에 충분한 양서다. 또한 강독회의 열기를 고스란히 흡수하여 그 자리의 열기를 밀도감 있게 전달해 주고 있으므로 충만했던 당시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독회는 같은 곳을 여럿이 함께 보는 협업의 힘을 맛볼 수 있기에 독서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랑한 10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굵직한 카테고리로 나누어 분류하여 보면 국가, 경제, 사회, 환경, 문화를 주춧돌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탐색하고 고민하는 통찰의 작업이다. 장하준 교수가 지은 <국가의 역할>과 람 이매뉴얼과 브루스 리드가 지은 <더 플랜>은 신자유주의의 실상과 국가가 지녀야 할 비전에 대해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신자유주의가 우리 경제에 안긴 폐해, 부자감세로 이어지는 양극화의 불안한 기조, 친기업정책일변도의 자본지상주의에 대한 통찰은 작금의 현실과 대비시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고하게 제시한다.

 

또한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한다>는 정치적 색깔의 명분의 허상을 짚는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점이 무엇이며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여 줄 전 방위적인 인식의 지표는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책이다. 노벨경제학상을 거머쥔 경제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정치 문화적 생리를 탁월하게 끄집어 내 엮어 가는 이 책은 흡입력이 대단한 책으로 각인된다. 아마도 이러한 각 분야를 넘나드는 폴 크루그먼의 통찰의 힘에 노무현 대통령이 반하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강독자로 나선 김창호 노무현 재단 기획위원의 경륜에서 나오는 경험과 맞물려 지속가능성에 대한 화두를 제대로 이끌어낸다. 그는 미국식 보수와 진보의 생래적 차이와 정치적 영향에 따라 진보가 보수의 불분명한 경계를 지적하고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수립한다. 현대 정치사회의 핵심은 '거버넌스', 즉 시민의 정치적 참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일갈한다.

 

로버트 라이시가 쓴 <슈퍼 자본주의>와 제프리 D.삭스의 <빈곤의 종말>은 대비하여 읽으면 재미날 책으로 보인다. 자본에 대한 상대적인 평등의 개념과 빈곤의 역학관계를 지형도를 그리듯 보여주는 책으로 그 내용 또한 옹골지다. 빈곤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가 시스템적인 역할에 대한 자리매김이 확고한 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0권의 책 중 제러미 리프킨이 지은 <유러피언 드림>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번이고 잘 쓴 책이라는 칭찬을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아끼고 또 아꼈다고 한다. 강독자인 김성환 전 비서관이 요약본을 만들어 보고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청사진이자 롤모델로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은 미국식 자본주의로부터다.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를 바탕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영웅식 자본주의의 획득과정이다. 하지만 실제 오늘날 미국에서도 양극화의 복병으로 인해 발목이 잡힌 상태이며 드림은 종말을 맺은 상태다. 더 이상 성공신화를 자력으로 써 내려가기에는 레드오션의 혼잡한 세상이며 그 대안으로 이 책은 유러피언 드림을 꼽는다. 기술의 진보와 발전으로 계몽주의시대를 극복한 오늘날, 대화와 타협은 민주주의를 든든하게 세우는 터전이 된다. '공감의 시대, 공감의 정치'와 '새로운 정치파트너로서의 시민사회의 가치'는 똘레랑스를 통한 공감의 세상을 이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모든 가치가 실현되는 유럽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로 인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 당신은 앤서니 기든스의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을 읽고 몹시 부러워했다고 한다. 영국의 인식 있는 학자가 당당하게 나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고 그 대안으로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토양이 부러웠을 테다. 우리에게 없는 그들의 관용과 여유,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가 그랬을 테다. 성장과 분배에 대한 시스템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평등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그네들의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정책대결은 사뭇 우리네 정치판과 비교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이념을 떠나 더불어 잘 사는 나라로 이행하는 비전을 사회 전체가 함께 공유하는 시민의식이 바닥 깊숙이 녹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은 다른 책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앞서의 책들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 경제, 사상의 시스템적인 메커니즘을 통찰했다면 이 책은 리더가 갖추어야할 역량에 대해 주목한다. 책은 두 가지 리더로서의 기준점을 설정하고 자아실현 욕구를 자극하는 변혁적 리더와 거래적 리더의 차이를 통해 변화를 이끄는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번스에 의하면 사람은 두 가지의 태양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어느 것이 우위에 서느냐에 따라 리더로서의 역할과 자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변화는 마음을 붙잡을 때 시작되는 것이라는 이치를 생각해 볼 때 공감의 변화는 거슬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을 지은 요시다 타로의 책은 환경을 화두로 한 지속가능성에 프리즘을 갖다 댄 대안적 환경저서다. 아바나의 절박한 환경이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어지고 도시 전체가 새로운 녹색성장환경으로 뒤바뀌는 놀라운 변혁을 통해 대안경제의 길을 모색하는 책이다. 녹색성장의 진정한 가치와 성장모토가 어디인지 생각하는 인식의 지표를 뒤바꾸는 유익한 내용으로 엮여 져 있다.

 

끝으로 <생각의 오류> 쓴 토머스 키다의 책은 노무현 대통령과 악연의 사슬로 묶인 언론의 책임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 내는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수구 보수신문집단에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했다. 언론이 왜곡되면 얼마나 쉽게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당하고 진실이 잠식당하는지를 이 책은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생각이 우발하는 오류는 감성적이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우연성에 기대며 지나친 단순화와 기억의 왜곡의 근거 없는 믿음이 유발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실 6가지의 오류는 광범위하게 인간의 의식체계를 지배한다. 수치화된 통계자료보다 이야기의 감성적 호소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보면 그 나약함을 우리는 잊고 사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 책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증명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으로서 반드시 깨달아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한다.

 

 

이렇듯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를 대신하여 가늠할 수 있는 책의 총체다. 노무현 대통령이 위키피디아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 2.0을 건설하고 네트워크와의 결합을 시도하였으나 비록 실패하였으나 이 책 10권으로 그의 담대한 사상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향한 꿈을 껴안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세상은 언젠가는 이 땅에서 실현되고 구현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공존과 상생의 세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변하지 않는 가치는 참여에서 시작된다. 참여는 깨어 있는 지성을 요구하고 인식 있는 사고를 고무한다. 분명 이 책은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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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9-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감정적으로 좋아합니다. 그의 행적을 낱낱이 들춰내고 의심가는 대목을 짚고 진정한 진보로서의 한계를 적시하고 이런 대목에서 저는 도망칩니다. 논리적으로 공박하고 머리로 그를 얘기하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퇴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행복하다고 미소지었던 다큐3일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행복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그런 최후를 맞이하고 저는 그가 이런 책을 꼭 쓰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펼쳐져 있던 <유러피안 드림>을 저는 울면서 읽었습니다. 누가 너무나 사랑했던 책은 그 사람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저의 경박한 이해도로 그 책을 전부 소화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저변에 깔린 그 인간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너무 좋았습니다. 곡우님의 글을 읽으니 참 그리워집니다.

穀雨(곡우) 2010-09-15 09:04   좋아요 0 | URL
시간이 되면 10권의 책을 다 읽어 볼 참이예요. 당신께서 어디에 마음을 뒀는지
어느매에서 감동에 벅차올랐는지 드려다 보고 싶어요.
이 책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계속 지배적이더라구요....그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