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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대지의 꿈 - 장 지글러, 서양의 원죄와 인간의 권리를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빈곤은 결핍에서 오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다. 그러나 빈곤은 공평하지 못하다. 대물림되는 빈곤의 대다수가 특정한 곳에 집중된다. 대대손손 빈곤의 망령은 삶을 공허하게 하고 불확실한 세상으로 물들게 한다. 상대적 빈곤이나 주관적 빈곤은 논외로 하더라도 절대적 빈곤은 삶을 공포로 내 몬다. 이러한 절대적 극 빈곤자 층의 대다수가 남반구에 산다. 적도 이남에 위치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에 위치한 소외된 인간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농경지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굶주림에 허덕인다. 그들이 굶주리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알량한 민족성을 들먹인다. 그들에게 펼쳐 진 고통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숙명처럼 부여된 가난과 결핍의 고통을 우리는 상대적 차별에 의한 결과로 포함하고 도외시한다. 이러한 모든 외면은 어디로부터 연유하는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짐승보다 못한 삶의 아픔은 누구로부터의 시작인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북반구의 중심, 서양세계의 지배를 받고 산다. 문명의 근원지가 모두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다는 우월감과 서양의 선민의식이 지배와 피지배로 나누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서양이 벗어 던진 야만성과 폭력의 광기는 식민 지배를 더욱 단련되고 완고한 무자비함으로 강화되어 연결되었다. 이로써 피와 광기로 얼룩져 가려진 역사의 이면은 문명의 충돌에서 살아남은 이긴 자의 몫으로 내어 주었다. 그 단 한 번의 처절한 패전의 도륙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불합리를 유발했다. 5백 년여 동안 끈질기게 유린당한 인권은 현재도 서양에 의해 쥐락펴락하는 믿기 힘든 현상이 오늘도 자행되고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이 책 <빼앗긴 대지의 꿈>은 삶의 터전을 상실해 꿈을 잃어버린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르포르타주다. 저자 장 지글러는 <탐욕의 제국>, <왜 세상의 절반을 굶주리고 있는가>에서 신랄한 비평과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서방세계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그의 연속기획물인 이 책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어진 빈곤에 대한 거대담론이다. 스위스 사회학자 출신인 장 지글러가 뿜어내는 서양의 원죄에 대한 재조명과 해석은 여태껏 알고 있던 역사서의 대부분을 새롭게 기술해야 될 지경에 이른다. 서양의 폭력과 무자비에 굴복당한 그들의 처참한 현장이 가려지고 지워진 현실처럼 폭력의 연대는 끈질기고도 무섭다.
실제 이 책의 사례로 제시된 나이지리아와 볼리비아의 현실은 기존의 인간성에 대한 관념을 사그리 종식시킨다. 그 오염되고 가난이 짐승처럼 떠도는 현장은 서양의 무관용과 배타주의가 낳은 인위적인 참상이다. 서양은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자본과 기술의 우위를 앞세워 모든 것을 약탈한다. 그 배후에는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개발은행IBRD, 세계무역기구WTO가 사악한 뱀처럼 도사리고 있다. 서양은 문명화라는 협박과 감언이설로 남반구의 나라를 꼬드겨 국영기업을 무장해제시켜 빼앗고 열악한 무역조건을 약탈적 관세를 내 세워 빈곤의 악순환의 끓을 수없는 사슬로 묶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양의 이 모든 약탈의 목적은 사악한 독이었다. 그들에게 빌린 자본은 그 옛날 선조들이 노예로 팔려 나가던 광기의 시절과 전혀 다를 없다는 진실이다. 산업의 균등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의 후진국에 대해 최첨단의 제품이 막강한 자본력을 토대로 밀려 와 썰물처럼 천연자원을 약탈해가도 넋을 놓기만 할 뿐 방도가 없다. 더욱이 자신들의 소중한 터전에서 일군 식량자원을 고스란히 약탈자들의 넘쳐나는 기름진 배를 채워주기 위한 탐욕의 도구로 희생되는 동안 그들의 자식들은 멀걸게 여윈 등가죽을 굽히고 불룩 솟은 세상 사이로 말라버린 눈물 한줌을 체념으로 게웠다. 파충류처럼 광산을 기어 하루 14시간 한달 내내 목숨을 담보로 엄청난 노동에 시달려도 돌아오는 것은 불과 푼돈에 불과하다.
이 모든 불공평은 서양의 탐욕이 낳은 구속당한 절망의 현실이다. 저자 장 지글러가 유엔인권식량조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적나라하게 파헤친 믿기 힘든 어둠의 풍광이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도 자행되는 타인의 고통이다. 수잔 손택은 이 세계의 거짓된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참된 이미지를 제대로 짚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폭력과 잔혹함이 난무하는 현실은 거짓으로 달궈진 오만함의 산물이다. 서양의 정신분열증상도 편견에 사로잡힌 결과다. 아울러 타자로부터의 관계가 고착화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설명히 가능하다. 인권은 누구나 향유할 천부된 권리다.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인간의 불평등은 부자유스러운 것이며 진정한 인간의 본성과도 무관하다고 본 장 자크 루소의 철학처럼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 프랑스가 탐욕의 광란에 도취될지라도 그 옛날 인권대선언의 정신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반전이 기가막힌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권은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권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 환원 불가능한 무엇, 다시 말해서 가치의 정수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 함께 우리가 단 하나의 인간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P.124)
남반구 대부분의 나라들은 서양세계의 손아귀에서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서양세계가 만든 탐욕의 카르텔이 견고하게 뭉쳐 다져진 철옹성처럼 그들의 이권을 물샘틈없이 착취하는 동안 남반구의 나라들은 기아의 늪에 빠져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인다. 하지만 희망은 척박한 곳에서 움트기 마련이다. 볼리비아의 희망, 민선 인디오 대통령 에보 모랄데스의 등장은 탐욕의 사슬을 종식시키고 미래를 구원해 줄 소중한 등불이다. 그는 천박한 서양자본주의에 맞서 빼앗긴 영토주권을 회복하고 민족주의에 근거한 사회주의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시대적 대통합을 이뤄 낸 그의 희망의 불씨는 기울어진 불합리한 현실을 복원하는 근원이 될 테다. 갖은 진통과 내홍을 견뎌 이겨 낸 사회적 합의는 진정한 인권의 희망을 쌓는 초석이 될 것이다. 비록 그 어둡고 긴 어둠의 터널을 건너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여야 하겠지만 그 본질은 변질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진정한 승리인지를 보여주는 인간성의 항체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은 바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불변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