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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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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명제命題가 무수히 존재한다.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철학의 문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미제다. 과학의 출현이 명제를 점령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는 될지언정 근본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은 항상 불온해진다. 이처럼 인간이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인식의 범주는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기댄 상상에 불과한지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이보그처럼 조립과 결합의 과정을 통해 창출된 기계에 담긴 정신의 사유는 어디까지나 무의해진다. 하지만 무의미에 대한 증명은 오롯이 인간의 현재의 범주로 재단한 논거다. 존 코너가 세계를 구원하고 무자비한 터미네이터가 존재하는 그 세계처럼 기계를 벗어난 또 다른 증명되지 못한 정신의 총아가 존재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는가.




        이 책 < 2058제너시스>은 미래의 가능성을 들여다 본 허구가 빚은 이야기다. 인간의 탐욕과 배타성으로 세계가 몰락하고 지구의 귀퉁이 어느 한 작은 섬에 살아남은 인간들에 의해 기록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의 특징은 상상력의 탄탄한 토대위에 세운 과학철학에세이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진화의 종착역을 과학의 프리즘을 통해 펼쳐 보이며 고대철학의 관념을 결부시켜 분절하고 다듬었다는 사실이다. 저자 버나드 베켓은 경제학 전공에 과학 교사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의 인문학적 통찰력과 과학의 실증성, 철학의 확증성이 결합하여 탄생한 이 책은 결론을 뒤집는 놀라운 반전만큼 시선을 잡아 끌어매는 매력이 넘쳐나는 이야기다.




        실제 미래의 사실은 예측이라는 확률의 무대 위에 서 있다. 파생가능한 모든 개연성이 현재와 결합하여 빚어 낸 것이 미래다. 그러므로 저자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추출해 낸 미래의 현실이 공상에만 그치란 법은 없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실현가능한 상태인지를 논하기 이전에 그 속에 담긴 실체의 이면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을 보는 또 다른 맛이다. 아울러 이 책의 얼개는 대화체를 통한 관점의 유연한 이동이 현실성을 증강하는 요인이 된다. 액자의 틀에 솟아 난 구멍처럼 바깥과 안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몰입을 유도한다. 몰입된 관점은 관념을 위무하고 본성을 통찰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아낙스라는 대상을 통해 아담이라는 인물을 평하고 사이보그에 가까운 로봇 아트의 정체성을 논한다. “저를 만든 건 누구일까요? 누구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사유하는 기계를 만든 건 누구일까요? 압도적인 효율성을 지닌, 생각을 전파하는 저 같은 기계 말입니다.” “저를 만든 건 인간이 아닙니다. 바로 관념이 저를 만들었죠.” (P.131) 이 책에서 정신은 진화의 대상으로 파악된다. 인간이 진화를 거듭해서 먹이사슬의 최고봉에 오른 유일한 개체라는 진실은 인간의 시선으로 표현된 진실이다.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면 진화와는 무관한 무체물에도 진화의 출현이 가능해 진다. 그 중심에 관념이 자리 잡고 의식이 자란다면 그것을 현재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요원해 지기만 한다. 환원된 진실은 철학의 시선으로 범위를 넓혀 가지만 관념과 사유의 대상이 인간이라는 오만함에서 현실성은 무참히 무너진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인간의 관념에 천착한다. 공화국으로부터 사육된 훈련된 명령과 지시의 반기는 폭력과 압제의 역사를 반영한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다. 제도화된 폭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무서운 도구로 변하는지 우리는 현재도 목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본성에 쫓아 행동하고 표출했던 결과가 체제를 보호하는 이익과 인권을 보호하는 이익과의 사이에서 양립가능한가라는 문제로 회귀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이념이나 집단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희생해도 된다는 식의 결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존재하지 못할 실현 불가능의 영역으로 밀어 냈다. 계급과 계층의 구분이 이데올로기에 따라 나뉘고 엉킬지라도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아담이 인간을 통찰했다면 로봇 아트는 관념을 자극한다. 인간의 구성단위를 분자로 쪼개고 나누면 무생물인 개체들과 유사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는 가정 하에 세워진 이념의 실체는 관념 또한 진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 즉 로봇이 감정을 점령하고 사리분별을 식별할 수 있는 분별력, 지능을 갖추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치다. 그래서 지능을 갖춘 로봇은 더 이상 전력공급에 의지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닌 무형의 시스템에 올라 선 진화의 새로운 강자가 된다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의 추출물이지만 그 상상의 준거 틀을 일거에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 저자가 구성한 상상의 논리는 강력한 개념으로 무장된 상태다. 진화는 모든 것에 깃들여 있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기존의 고정관념을 해체시켜 버린다.




        제너시스(창세기)는 이렇게 다시 쓰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존재는 정체성을 동인하는 연결고리다. 인간이 사유하고 획책한 현실이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 지 이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관념이라는 토대가 빚은 사물과 현실의 궁극적인 이해는 본성에 맞닿아 있다. 인간은 본성의 분해를 위해 철학을 사용했다. 이렇게 철학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포섭한다. 포섭된 범위가 옳든 그르든 그것은 하나의 가정에 머문다. 가정은 다듬어지고 깎여지기를 반복하며 명제가 된다. 하지만 명제는 언제든 참과 거짓의 경계에 머문다. 동전의 양면처럼 뒤집어지기를 희망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저자 버나드 베켓의 상상력은 동전에 가려진 이면을 보는 열쇳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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