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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평점 :
흔적. 모든 것은 반드시 궤적을 남긴다. 그것은 우리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사소한 하나의 흔적이 모든 것을 밝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CSI과학수사대에서나 연출된 상황만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반경 모든 곳에는 불가피하게도 자신이 지나온 모습이 반드시 투영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회 속에 묻혀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나가고 상대방의 상태를 꿰뚫어 본다는 것은 상당한 우위에 서는 포지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그것들을 유추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영향력 범위 내에 놓여 있는 사소한 단초, 즉 옷차림새, 머리스타일, 행태 등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습관과 행동을 통해 어떠한 성격의 소유자로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짜릿하고 매혹적이겠는가.
스눕은 상대방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 사람을 꿰뚫는 과정을 의미한다. 스눕이라는 생소한 심리분석을 통해 우리는 묵살하고 무시한 것들에 담긴 통찰의 묘미를 엿보게 된다. 이 책 <스눕>은 젊은 심리학자 샘 고슬링의 기발한 착상을 통해 연구되고 발전시킨 행동심리의 한 분야다. 인간이 행동하는 파장범위를 일정한 프레임을 통해 담고 그 틀을 해체하고 뒤집어 봄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영역을 만든다는 가정에서 시도된 것이 이 실험을 기획하고 연구하게 된 시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심리분석을 숱하게 접해 왔다. 범죄인들의 심리를 분석한 프러파일러, 행동특성을 조사하고 유형을 분류하는 행동심리학 등은 스눕과 동일한 선상에서 서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스눕은 독심술사의 초능력처럼 스누퍼들의 상황적 이해와 알고리즘을 통해 혜안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 차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스누퍼의 세계는 단서와 수수께끼사이의 연결고리를 통해 짜릿한 쾌감을 맛 볼 수 있는 호기심이 가득한 곳이다.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설득력 있는 논거로 맥 애덤스는 정체성의 확립을 말한다. 저자의 모든 사상의 근저를 관통하는 맥 애덤스의 정체성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정체성은 재구성된 과거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상을 통합해 삶의 일관된 통일성과 목적, 의미를 제공하는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정체성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주는 끈이라고도 했다. 결국 각자의 삶에 기록된 흔적의 구성요소들은 용해되고 산화되고 남은 일정한 화학작용에 의해 분출된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성을 형성하고 정체성이라는 포섭된 틀로 묶인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스눕은 인간 본성을 지향한다. 이것이야말로 스눕의 영역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주는 핵심이다.
이 책에서는 스눕을 통해 밝힌 인간의 유형을 아울러 기록하고 통찰한다. 그렇게 인간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을 거쳐 남긴 흔적이 바로 인간의 본성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단서들의 향연을 추적해서 밝힌 인간의 성격은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동조성, 신경성, 자기애적 성향의 인자를 불러 모았음을 밝혀냈다. 그는 한 사람이 머물다 간 침실이나 욕실의 은밀한 공간들이 주는 단서들을 따라 규칙적인 틀을 창조해 낸 것과 같다. 아마도 우리는 이것을 직관의 영역으로 간주해왔는지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거나 예리한 사람으로 인식했든지 말이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애거시 크리스티가 창조해 낸 명탐정 에르큘 포와르처럼 말이다.
스눕이 막연히 은밀한 단서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적 특성을 밝히는 것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스누핑을 통해 추적하고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해서 퍼즐의 해법을 찾아가는 외형적 카테고리 외에도 예견 가능한 행동범주를 가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관을 넘은 통찰력의 영향력은 놀랍도록 정교해진다. 하지만 장애는 언제나 산재한다. 누군가가 맡긴 두드러진 물건의 존재가 오히려 그 사람의 특성을 밝히는 데 방해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흔적이 남긴 실질적 가치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함을 간과할 수 없다. 샘 고슬링은 이러한 장애물에 대해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접근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으로 무의미한 요소를 제거하고 장애를 극복하는 방편을 만드는 셈이다.
스눕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보다 넓은 차원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연결점에서 타자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스눕의 메커니즘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주입하고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나를 그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호감형 인간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스눕의 세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