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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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보이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비롯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확실, 그것은 규명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경계는 비현상계의 미지의 존재로 각인된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닿은 적 없는 곳, 그곳은 존재에 대한 현상을 묻고 따질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상상한다. 시간 너머의 세계, 또 다른 차원의 세계에 대해서. 평행한 시공간의 틈 어디에서, 보이는 현상계와 흡사하게 닮은, 다차원의 세계가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의외로 강고하다. 그곳을 연결해 줄 커넥터로 기능할 무엇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 인간의 마음 속 한 구석을 견고하게 채우고 있는 믿음인 "외계의 생명체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당위처럼 같은 맥락의 차원이다. 어쩌면 확증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단단한 이유 또한 인간이 가진 의식 중 직관에서 동인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직관의 힘을 광대한 에너지라 믿는다. 직관은 때론 둥글둥글한 호기심으로 때론 예리하고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문제를 푸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또한 직관에 대한 의식은 모든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의 원천이라고 본다. 직관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이 열리고 진실에 보다 밀접해진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세상을 직관이 만든 패러럴 월드의 구현이라 정의하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모든 의식의 흐름을 정제하고 통제하여 걸러 낸 정수가 바로 이 책에 담겼다 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창조해 낸 세상은 인간의 의식의 기저 어딘가에 가 닿아 상호작용하고 공감하게 하는 방편이 되는 재료가 되는 것을 보면 우연을 넘은 정확성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가 빚은 생각의 총체가 탄생하기까지는 다채로운 직 간접적인 영향이 있었을 테고 행운의 바퀴처럼 우연성을 가장해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닐 테다.  기실 하루키에 대한 직관이 빚은 영향력은 의식이 퇴적되고 쌓이고 다져진 조각들의 조합의 과정이다.  그 속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성을 드라마틱하게 구축한다.

 

실제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채로운 영향의 흔적을 책 전편에  흩뿌려 놓는다. 그것은 외따로이 혹은 뭉쳐져 가상된 세계를 교묘하게 위장하고 은폐하며 정교하게 짜인 세계를 창조하는 자양분이 된다. 따지고 보면 하루키는 대단한 관찰력과 창의력의 소유자라는 놀라움에 이른다. 전편을 장악하는 신포니에타의 협주곡을 위시하여 체호프, 프루스트의 편린들이 적절하게 배합되고 두개의 달과 공기번데기, 고양이마을, 리틀피플이 어우러져 혼합되는 변주를 매혹적이게 경청하게 된다. 여기에 하루키는 그의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체로 감정의 속도를  빠르게 변속하며 몰입의 속도를 높인다. 그래서 하루키의 책은 붙드는 순간 세계는 멈추고 그 속에 침투하는 몰입의 늪에 중독된다. 아울러 그는 방대한 분량의 서사 구조에서 오는 위압감을 경쾌한 흐름과 드라이브로 쾌속질주를 유도하는 힘은 가히 압권이다. 이러한 그의 문장력과 기교가 더해지고 합체되면 막강한 화력으로 엄청난 감정의 폭발력을 불러일으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통해 통찰하고 부여잡은 의식의 흐름과 세계에 대해 구현한다.  의식의 흐름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연결고리를 통해 설정인물들의 심리를 장악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통해 타자의 심리적 변화요소에 어떤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섬세한 필치로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심리의 이면에 숨은 감각의 고리를 정교한 메스로 해부하듯 드려다 보고 절개해 생생한 이미지를 숨 막힐 듯 잡아내는 것과 같다. 이처럼 하루키에게 시간을 설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며 설계된 세계가 구동하는 장면은 한편의 자연이 빚어낸 황홀한 완경을 감상하듯 바라보게 되는 영겁의 순간으로 상승하게 만든다. 이것은 대가의 혼이 담긴 필력의 완성이라 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1Q84의 세계는 카오스다. 질서를 무력화시키는 혼돈의 세상이다. 질서와 혼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아오마메가 고속도로출구를 통해 1Q84의 세계로 진입하였듯 질서는 정연하게 각자의 역할대로 움직이며 수평의 세계를 지향한다.  무방비 상태의 의표를 찌르는 일격, 카오스는 혼돈 속의 질서다. 덴고와 아오마메가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에서 직관에 이끌려 결합하게 되는 과정 또한 그러하다. 결국 예정된 질서는 마방진의 수처럼 적확한 수치다. 이렇듯 균열한 틈바구니를 밀고 나오는 미세한 시간의 흐름은 하루키가 지향한 1Q84의 세상에서 재창조된다.  몽환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1Q84의 10월에서 12월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외침과도 같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제거하고 공기번데기를 통해 반대편 세상의 후카에리의 몸을 빌려 덴고의 아이를 품는 과정은 결합의 산물인 생명의 잉태와 또 다른 세상의 출현을 맺어주는 의미로 부각된다.

 

또한 하루키는  아오마메와 덴고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로 우시카와를 전면에 배치한다. 우시카와는 선구의 아웃사이더 해결사로 타락한 변호사이며 동물적인 감각과 기괴한 모습이 야누스의 형상처럼 대조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1Q84의 세상이 1Q85의 또 다른 통로가 열려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며 하루키의 다음 행보를 내비친다.  리틀피플이 날뛰고 경계가 허물어지며 또 다른 문이 열리는 혼돈의 과정을 하루키는 우시카와를 통해 암시하고 보여준다. 여기서 하루키는 대칭적 구조에 대한 강한 조화를 맞추며 이중적 나선구조를 이어주는 끈을 조화롭게 설정한다. 선구의 핵심일원인 포니테일과 스킨헤드, 타이거오일의 왼쪽과 오른쪽, 리틀피플과 빅브라더,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흑과 백의 부조화 속의 대칭구조를 통해 현상계와 비현상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교함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하루키는 의식의 흐름을 지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1Q84의 세계에서 살아 숨 쉬게 하였다. 덴고의 아버지가 현상계의 껍데기를 벗어 나 NHK수금원으로 아오마메와 덴고, 우시카와를 차례로 방문하여 수금독촉을 하는 난해한 장면은 데자뷰에서 오는 기시감처럼 생경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아마도 하루키는 의식의 중추가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어디에선가 재생되고 스며들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동시대를 사는 세상 저 편의 낯선 공간에 나와 같은 인간이 살아 움직인다는 상상, 섬뜩함이 몰고 오는 서늘한 상상이다. 풀리지 않는 미제와 같은 하루키가 던진 난제는 이야기가 계속 뻗어 나갈 것이라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인지한다.

 

이렇듯 무라카미 하루키, 그에 대한 열광은 이제 전설이다. 세상을 온통 1Q84의 세계에 홀리게 만든 그의 이야기에 마비되었다. 플롯 곳곳에 깃든 완벽한 장치들을 통해 실제 두 개의 달이 뜨고 공기번데기가 생산되는 세상에 서 있는 착각이 든다.  그가 설정한 모든 장치들을 풀어 나열하면 일정한 알고리즘의 틀 속에 모이는 이유 또한 하루키의 아우라가 유발한 엄청난 에너지다. 아오마메의 푸름에서 이끼 긴 푸른 달이 연결되고 존재감을 상실한 달에서 덴고의 강인함을 유추케 하는 음양의 완벽한 대칭적 조화. 하루키의 이 소설은 완전한 세상의 경계에 머무는 불완전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 속에서 나는 구부러진 시간을 마주한다. 1Q84의 생소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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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1 1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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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2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0-0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굉장히 좋은데요....

1Q84를 읽고 리뷰를 쓰면서, 얼마나 정리가 안 된채 헤매었던지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긁어다 올리고 끝냈답니다.
그만큼 제게 난해한 작품이었고, 그만큼 제게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곡우님의 리뷰를 읽으니, 머리 속의 혼돈 상태가 훨씬 가라앉고 있습니다. 기억을 다듬으면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리뷰입니다.

穀雨(곡우) 2010-10-05 22:19   좋아요 0 | URL
쓰고 지우기를 숱해 반복했어요. 하루키를 단박에 정의한다는 게 쉽지 않더군요.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고님의 공감의 표시, 위로가 됩니다...^^
 
빈집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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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과 울분은 화병의 근원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에 담긴 소재 중 한恨에 대한 집착은 병적일 만큼 삶을 무섭도록 지배한다. 상실과 결핍에서 오는 아픔,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기능적 아픔. 그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하나의 구심점, 한으로 이어진다. 한에 대한 모습을 형상화한다면 채울 수 없는 비움이 떠오른다. 상호작용이 단절된 일방적 형태의 껍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가뭇없다. 이러한 현상의 주효한 원인으로 나는 봉건적 구조와 계층적 갈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한이 쌓이고 또 쌓여 중첩된 아픔이 되는 이유의 외형적 원인은 사뭇 그러하다. 하지만 한의 내면적 갈등은 해갈할 수없는 욕망에서부터다. 욕망의 다채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인 정서적 교류의 단절은 한을 유발하는 시초가 된다.

 

그래서 한을 형성하는 원인을 찾는 것은 때로는 다면적인 상황의 이해와 면밀한 접근으로 결속되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추적의 과정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뒤엉키고 꼬여 든 문제라도 실마리는 있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티끌 같은 실마리의 단초는 관계의 부조화다. 나와 관계를 맺고 연결된 일차적인 친밀집단 즉, 가족이다. 가족의 해체는 기능적 갈등요소들을 한으로 응집하고 끌어 모으는 원인제공의 요소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시스템 내에서 가족문제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의 문제로 치부되어 보듬어 안고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매듭을 묶은 당사자의 손으로 풀어야한다는 결자해지의 영역인지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주영 작가의 <빈집>을 조망해 본다면 상당 부분 그로테스크한 상황의 연출이 지속됨을 알 수 있다. 부자연스럽게 흐르는 인물들 간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조합은 상황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모이고 퍼지는 파동처럼 각 각의 한이 얽히고설키고 포개지지만 결국 채울 수없는 비움의 기형적 출현으로 공감하기 힘든 현실을 껴안는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적 상황으로 내모는 내러티브는 단단함에서 비롯된다. 의도하고 설정된 조합이 조밀하게 계획된 대로 치밀하게 구동하는 힘, 김주영 작가의 역량이다. 진부한 소재도 조탁되고 주무르면 세제되어 정화될 것 같은 필력이다. 나는 이 작품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소개해 준 지인의 선물이 없었다면 깊이 있는 그의 글을 놓칠 뻔 했다. 흔하디흔한 가난과 상처를 소재로 이렇게도 한 많은 인간 군상들을 정렬시켜 놓는 그의 필력에 흠뻑 젖었다.

 

소설 속 주인공 어진과 한량의 피를 이어받은 근본 없는 도박꾼 아버지와 억척같이 살길을 도모하는 어머니의 기묘한 줄다리기를 통해 삶의 끈이 어디로 이어지고 나아가는지 드려다 보는 장면은 잿빛 여운처럼 진득하게 퍼진다. 이 작품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소재는 바다와 은행나무의 은유적 감성이다. 채울 수없는 마음의 위안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고독한 행위의 분투가 애틋하다. 어진은 아름드리 오동나무에 메어 놓은 하늘침대를 통해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고 위무하며 그에 반해 배 다른 언니 수진의 해체된 가족의 아픔은 바다로 이끌어 상호대비 시켜주는 구조는 작가의 한에 대한 통찰이 깃든 메타포다.

 

실제 이 작품의 얼개는 다양한 가족 내 갈등의 원인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잇따른 부재와 쫓김으로부터 발생한 불안의 극복과 해소를 위해 어머니는 어진에게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대한다. 애정결핍은 이렇듯 지근거리에 있으며 인물마다 각기 처해 있는 상황의 변주가 다르며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름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일그러져 구부러진 관계는 때로는 극단의 모습으로 때로는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변질될 때가 있다. 그래서 한동 설한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어진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무작정 험한 길을 휘적휘적 걷고 낯선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만용을 부리며 기이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댈 곳 없는 마음의 유기된 행동의 연장선이다. 정해진 것 없이 찾고 숨는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계속 자행하며 기필코 찾아내고 마는 괴상한 행동은 불안한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시켜 놓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삶에 대해 결여된 아픔을 갖는다. 어진의 눈을 통해 아픔이 재해석되고 변형되는 모습은 관계의 모순과 결핍의 순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고독의 섬에 갇히게 된 어진의 방황하는 마음과 삶에 배신당한 상처는 모두 구조적 모순에서부터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한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해체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감으로 다가선다. 수진이 남편의 바람과 폭식으로 인해 우울의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과정과 어진이 시댁으로부터 버림받고 비정한 어머니와 무능력한 아버지로부터 애정이 결핍된 과정 또한 닮은꼴로 변한다. 결국 이야기의 절정은 비움의 채움에 대한 욕망의 분출로 이어지는 것을 예정할 수 있다.  외롭게 홀로 선 섬처럼 끊어진 연결고리를 찾아 헤매는 아픔의 배출하지 못하는 허무한 생산이다. 수진이 바다를 사막의 신기루마냥 내딛고 유영하는 모습과 어진의 냉혹한 삶의 모습은 한으로 승화된다.

 

이렇듯 어진의 성장의 파노라마를 통해 작가는 선예도가 높은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무시로 흡입한다. 그 속에서 거머쥔 아픔, 한을 끌어안은 여인의 애환은 시리도록 아픔이 퍼진다. 변화무쌍한 시간의 속도에 현기증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자근자근 타자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아무도 머물지 않는 빈집에 대한 정체성을 통해 상념의 시간을 선사한다. 비움의 마음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대한 진중한 물음, 탐욕과 욕망의 고삐를 어떻게 쥐고 나갈 것인지를 되묻는다. 아울러 인간은 관계와 관계의 촘촘한 망에 얽혀 산다는 변하지 않는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섬을 느낀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비움과 채움의 끊임없는 반복 작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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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09: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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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3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움과 채움도 멋진 대구,멋진 제목인걸요~

제목도 좋지만,리뷰도 좋아요.
전 요즘 자꾸 비워내는 쪽으로 생각해요.

穀雨(곡우) 2010-09-30 09:22   좋아요 0 | URL
비움에 대해 늘 고민하지만 잘 안되네요...^^
제가 욕심이 많나봐요...ㅎㅎ
 

 


 

[제주 남원큰엉 해안경승지, F9 ISO 100 50㎜ GX-10]

  
  

풍랑과 풍랑의 사이에 파도는 인다.  

파도는 쪼개지고 분절되지만 합일은 곧 이뤄진다.  

파도는 포말의 흔적을 대기중에 퍼트린다.  

파도는 바람을 안는다.  

바람에게 내맡긴 파도는 심해의 기억을 상실한다.  

바람이 일으켜 만든 파도는 공기 중에 가벼이 부유한다.  

입자는 펴지고 희미한 소금기만 오롯이 머금는다.  

파도가 남긴 흔적, 포말은 새로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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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위에 걸터앉은 싸이렌이 떠올라요, 난.^^

穀雨(곡우) 2010-09-28 23:01   좋아요 0 | URL
마기님의 상상력은 멋집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샘솟는지...^^
싸이렌, 제가 접수합니다. 오늘부로...ㅋㅋ

2010-09-29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은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하는 열매라고 한다. 여행은 시간을 멎게 하고 오직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멋이 있다. 여행을 통해 얻은 시간은 자신이 가진 시간의 규칙보다 훨씬 값어치 있는 보석과 같다. 삶에서 여행을 뺀다면 푸석하게 말라 붙은 건조한 상태와 같을테다. 하지만 일정한 삶의 틀이 생기고 규칙에 얽매이다보면 여행을 거창한 행위의 범주로 놓기 마련이다. 여행을 어딘론가 떠날 수 있는 낭만적인 감성의 행위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여행은 계획되어야 하고 습관의 인에 의해 형성된 범주에 놓이는 관습에 구속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여행이 머뭇거리게 되고 재고 따지는 일이 되는 모양이다. 
 

나에게 여행은 늘 어딘론가의 막연한 동경에서부터다. 동경의 근원은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노마드의 끝 간 곳 없는, 그 원대한 설렘을 소망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여행이 비어 버린 감성을 채워주고 재깍재깍 돌아가던 삶의 바퀴를 윤기나게 해 줄런지 모른다는 희망이 숨어 있어서다. 그런데 나는 여행을 잊어 버렸다. 여행이 나의 몸을 변화시키고 억눌린 감정의 물꼬를 틔워준다는 당연한 이치를 혼탁해진 공기에 의해 제압당했다. 막상 떠나면 이렇게 쉬운것을......
 

계획없이 떠난 제주여행은 8할의 설렘과 2할의 기대로 가득찼다. 그 여행의 대부분을 채워준 설렘만으로도 호르몬이 급격하게 분비되고 인생이 바뀌는 기분이다. 기분을 변화시키는 물질은 보이지 않음에도 사물의 정경을 전혀 새롭게 그린다. 매번 똑같은 일상도 설렘은 빠르게 촉수를 뻗어 나가 공기의 흐름을 바꾼다. 설렘, 그 순간의 공기는 가볍다. 
 

 

 

                                                                              제주의 하늘 

 

제주 하늘은 맑았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알길 없었으며 세상은 온통 푸르렀다. 작렬하는 태양도 푸름 앞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지척에 있다는 잴 수 없는 거리감이 적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오히려 내 마음이 멀었음을 실감하는 거리였다.

 

출발하기 전 온전히 안겨 있다 오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일정을 느슨하게 잡았다. 외지인이 제주를 방문하면 어김없이 거치는 렌트카를 픽업하고 관광지쿠폰을 찾는 일정은 대개가 같다. 요즘은 미리 인터넷에서 관광후보지에 대한 정보와 할인쿠폰을 구매할 수 있으며 미처 방문하지 못한 관광상품은 환불해 주는 편리한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느영나영의 안내를 통해 구매했지만 거의 할인률은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사전에 정보를 취합해서 어떻게 제주를 둘러 볼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싶다. 관광이든 휴양이든 테마를 담는 것이 제주의 풍광을 담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상태와 아이들의 기대를 적절히 배합하는 차원에서 첫날은 늦은 아침으로 제주공항에서 가까운 유명한 식당인 "올레국수"로 이동했다. 올레국수는 사골육수처럼 진하게 우려낸 국물과 국수를 양껏 담아 푸짐한 흑돼지수육을 소담하게 얹어 먹는 음식이다. 어디서나 맛 볼 수 없는 제주의 전통음식으로 제주에 오면 한번은 맛보아야 하는 음식이란다. 가격도 맛도 꼭꼭 채워주는 든든한 음식이다.

 





                                                                            올레국수

 
 
첫 출발부터 막힘없이 술술 풀린다. 여행지에서 낯선 음식과의 조우는 명성에 비해 초라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에너지가 절로 충만해 진다. 제주 시내를 벗어나는 동안 마음은 절로 풍성하게 차오른다. 곧게 뻗은 고속국도를 막힘없이 내달리는 청량감으로 인해 더 더욱 차고 넘친다. 이제 든든히 먹었으니 첫 목적지는 아이들을 위해 테디움박물관으로 고고싱.....^^
 
테디움박물관은 서부권역에 새로 개장한 아담한 인형 박물관으로 곰인형을 메인 테마로 동물인형을 전시하고 직접 만질 수 있는 곳으로 중문에 위치한 테디베어박물관과는 차이를 둔다. 아이들의 감성에 맞게 직접 만지고 올라타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유아가 있는 가족여행에는 꽤 호응이 좋은 곳이다. 물론 어른은 한껏 부푼 기대감을 잠시 호주머니에 넣어두어야함은 필수다.^^
 



 



 

아이들 위주의 사진을 찍다 보니 쓸만한 이미지가 별로다. 찍을 때는 쉴새없이 셔터를 누른 것 같은데 막상 펼쳐 보니 건질게 없다. 하지만 신나게 떠들고 놀던 아이의 표정에 허접한 사진실력은 자취를 감춘다. 형편없는 사진 실력이므로 넓은 양해를 바란다.^^

 



 

엄청난 곰, 출현. 테지움에서 가장 인기있는 곰이다. 실내가 어두워 이미지가 어둡게 나오는 것이 흠이지만 아이의 마음은 온통 곰에게 쏠린다. 미끄럼처럼 올라타고 굴러도 곰은 큼직막하고 넓은 등으로 포근하게 감싸준다. 곰의 환한 웃음이 금세 전염되는 기분이다. 한바탕 왁작찌껄하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나는 다시 달렸다. 협재해수욕장을 지나 서부해안도로의 천혜의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을 시리게 담았다. 하지만 이 날 제주의 날씨는 34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듯한 폭염이 난무했다. 아쉽게도 아이들의 컨디션 난조와 옆지기의 피곤함을 이유로 차를 돌려 국내 최대 녹차 재배지 오설록으로 돌렸다. 오설록은 사시사철 푸르름이 오롯이 떠도는 곳으로 대양에서부터 불어 오는 바람과 제주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청정의 녹차가 자란다는 곳이다. 언젠가부터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필수방문코스가 되다시피한 찌든 눈이 맑아지는 곳이다.




 

오설록박물관은 2층 현대식 구조로 지어 녹차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곳은 입장료가 없는 대신 상품을 파는 수익금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롤케잌이 인기만점이다. 허겁지겁 먹는 통에 제대로 된 사진은 이미 실종되었지만 대신 이것으로 대신한다.^^ 녹차 케잌의 속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달고 맛나다. 아마 재료가 신선했고 땀 흘린 후 먹는 탓에 더욱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 달콤한 부드러움이 선명하다.
 



 
 

오설록에서 만난 녹차의 풍광은 어마어마하다. 처음과 끝을 종잡을 수 없는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녹차의 행렬에 압도되고 폐부 깊숙히 덮쳐 오는 향기에 취한다. 어른 허리춤까지 자란 녹차의 도열이 마치 잘 가꿔진 유럽식 정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이는 이랑과 이랑 사이의 통로가 모두 놀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자기는 이제 두더지가 되었으니 어서 찾아 달란다. 영락없이 푸름에 빠진 모습이다.

 



 

 

여행은 추억을 담는다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눈뜨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삶의 궤적에서 비켜 선다는 행위가 이처럼 세상을 전혀 다르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곳이 어디든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면 나에게 부여된 삶의 선택의 방향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 소통의 오랜 길에 다름 아니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자유롭다는 관념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욕망이나 집착의 무게를 조금 내려 놓는다면 그 길 위에 여행이 포개진다면 삶은 여유로워지리라. 뒤처진다는 두려움, 각박한 세상으로부터의 숨막힘, 치열한 경쟁에 대한 불안감 등 모든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위안은 여행이 가진 넉넉한 치유와 사색의 힘으로 충만해진다. 여행은 삶을 겸손하게 바꾸는 법을 알려줄 것이므로.


첫날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오설록을 끝으로 근처의 유리의 성을 지나 간선도로를 따라 중문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은 어렵사리 거머쥔 시간인지라 숙소는 조금 많이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중문 숙박지내에서 가장 서비스가 좋다는 신라호텔에서 갖은 할인방법(?)을 동원하여 정원이 딸린 패밀리형 룸으로 정했다. 값비싼 서비스요금만큼 호텔 직원들은 모두 한결같이 친절했으며 있는 듯 없는 듯 편하게 한다. 배정 받은 룸은 호텔에 딸린 야외수영장과 가까워 호텔 내 부대시설을 누리기에 아주 흡족했으며 지나칠만큼의 여유를 마음껏 누렸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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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8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7: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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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8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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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8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9-2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주 풍광이 기가 막힌데요.
그리고 올레 국수는 첨 듣는데다 한번도 못 먹어봤어요. 이런.
눈에 익은 테디베어 박물관이 보이는군요.
대신 눈으로 보는 제주도..... 이것도 설레네요. 역시 멋진 섬입니다.

穀雨(곡우) 2010-09-28 19:50   좋아요 0 | URL
올레국수, 맛납니다. 그리고 인형박물관이 비슷비슷한게 많이 생겼어요.
마고님 말씀하시는 곳은 아마 중문에 있는 테디베어박물관이지 싶어요.
또 어딘지 모르겠지만 조안베어라는 곳도 있다는군요. 얄팍한 상술이지만
아이들은 어찌나 좋아라하던지....
그래도 제주는 머무는 것만으로도 설렙니다.^^

blanca 2010-09-2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야심한 시각에 올레국수와 오설록 롤케잌 얘기는 잔인합니다.^^;; 남편과 아이 없을 때 몇 번 다녀 온 그곳이 곡우님의 기행문으로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아이들이 참 이뻐요. 테디움 박물관에 저희 아이도 꼭 데려가고 싶어요. 제가 갔을 때는 없었는데. 태어날 아기도 함께 가족이 참 행복한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穀雨(곡우) 2010-09-28 22:54   좋아요 0 | URL
음..제가 봐도 잔인하네요..ㅋㅋ
담번엔 블랑카님도 아이 데리고 다녀 오세요.
모든 게 새록새록 좋았어요..^^
 

 
일상에서 비켜난다는 것은 때론 자극이 되는 일입니다. 도시에서 살아 간다는 것은 일정한 틀 속에서 매일 쳇바퀴돌듯 흘러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 틀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지만 한 번 즈음 경계를 벗어나는 일은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9월의 달콤한 휴가와 일상의 이탈은 매혹적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차오르고 마음은 혼곤히 젖어 들었습니다. 잠시 궤도를 수정해서 달려 보는 것도 결코 허투루 사는 것이 아님을 체득합니다. 이처럼 여행은 삶의 완급을 조절하고 쉼을 통해 비워진 감성의 에너지를 채우는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행 내내 제주의 하늘을 높고 푸르렀습니다. 가을을 시샘하듯 뒤 늦은 폭염이 쏟아졌지만 모처럼의 여행에 장애가 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가는 곳, 보는 곳마다 눈길이 머물고 마음은 평온에 휩싸였습니다. 제주도의 그 푸르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푸름입니다. 

대양의 원대한 공기를 마음껏 채우기위해 가슴이 벅차 올랐지만 시간은 참으로 속살같습니다. 시간의 요상한 관념의 사이, 아쉽기도 야속하기도 하지만 마음만은 추억을 담고 기약없는 날을 헤아려 봅니다.  

다시, 일상입니다.

부러 밀쳐 냈던 책도, 글쓰기도,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빈집이지만 관심을 갖고 들러 주신 님들에게도 부족한 글이나마 트위터처럼 굴러야겠습니다. 
 

덕분에 달콤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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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2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달콤한 여행이셨다니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네요.
ㅎㅎ가을처럼 찰진 글...기대하겠습니다^^

穀雨(곡우) 2010-09-28 09:25   좋아요 0 | URL
모처럼 쉬었으니 찰지진 못해도 한 걸음 나간 글이 되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마기님도 추억이 가득한 가을 되시기를....^^

2010-09-27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9-27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름 휴가 다녀오셨군요?
제주도라..... 덥긴 하지만 싱그러웠겠어요.

그러나 일상의 복귀! 환영합니다.

穀雨(곡우) 2010-09-28 09:27   좋아요 0 | URL
네. 아주 늦은 여름 휴가였지만 날씨만큼은 한여름이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어요. 쭉~~~

blanca 2010-09-27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가는 시간은 정말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 같아요. 얼마나 아쉬운지. 그래도 일상에서 그 기억을 곱씹어 보며 또 힘이 되더라구요. 곡우님도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 맘껏 기억 속에 저장해 두시고 수시로 꺼내 보시며 힘차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穀雨(곡우) 2010-09-28 09:29   좋아요 0 | URL
힘차게 살아가려 하는데 고갈된 에너지를 푸름으로 가득 채워서 인지
일이 손에 잘 안 잡혀요...ㅋㅋ
블랑카님도 행복하고 풍성한 가을 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