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단편 '사랑에 대하여'(1898)는 그의 유명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부인)'(1899)과 쌍둥이 같다. 둘 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안나.



Lady in Moscow, 1912 - Wassily Kandinsky - WikiArt.org


체호프 단편집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 표지는 칸딘스키의 그림.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세요? 그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의 눈, 내게 내미는 작고 우아한 손, 그녀의 실내복, 그녀의 방식으로 손질된 머리, 목소리, 발걸음에서, 난 늘 내 인생에서 새롭고 특별하고 매우 중요한 그 무엇이라는 인상을 똑같이 받곤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시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 생각에 잠겨 조용히 침묵하기도 하고, 그녀가 피아노를 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집에 없을 때도 안에 들어가 유모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와 놀거나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안나 알렉세예브나가 돌아오면 현관까지 마중 나가서 그녀가 사 온 물건 꾸러미들을 받아 들고 엄청 행복하고 진지한 소년처럼 그녀를 따라가곤 했죠.

안나 알렉세예브나와 나는 가끔 같이 극장에 가곤 했는데, 갈 땐 늘 걸어서 갔고, 극장에서는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았어요. 그녀가 말없이 건네주는 작은 쌍안경을 받아들 때마다 그녀가 내 사람인 듯 친근하게 느껴졌고,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공연한 오해를 살까 봐 극장에서 나오면 곧바로 작별 인사를 하고 낯선 사람들처럼 헤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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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의 단편 '다산성'(1966)으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 김승옥 [金承鈺]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33266&cid=41708&categoryId=41737




사진: UnsplashHimanshu Gangwar



"오늘 낮엔 무얼 하셨어요?"

나는 값을 받는 듯한 태도로 물었다.

"옆집 마당 위에 고추잠자리떼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어요. 그 집 마당에 코스모스가 많이 있잖아요? 그 위를 잠자리떼들이 마치 공중에 가만히 떠 있는 것처럼 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는 얼굴을 빨갛게 하고 그러나 고개는 숙이지 않고 성우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요?

내가 물었다.

"별루 생각 없었어요. 내년엔 우리집 마당에도 코스모스를 심어야겠다는 생각 좀……"

"코스모스 정말 좋지요? 고향엘 가느라고 가끔 기차를 타면 철둑 양쪽으로 코스모스가 피어 있곤 했지요. 한때는 코스모스 라인이라구 해서, 라인이란 건 영어로 줄이란 말이잖아요? 전국 철로 양쪽에 코스모스를 심게 했다는데, 요즘은 기차를 타도 그게 없어졌어요. 가뭄에 콩 나기로 어느 시골 정거장에나 좀 심어져 있곤 하지요."


그 여자 얘기의 분위기에 맞추느라고 기껏 한 내 얘기는 그러나 마치 쇼펜하우어가 잉크병에 돈을 숨겨놓고 쓸 만큼 의심쟁이였다는 얘기를 하는 투가 되어버려서 나는 자기의 얘기에 화가 났다.

"코스모스도 좋지만 잠자리떼가 참……"

그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에 대한 내 나름의 회상이 또 나올 판이었다. 나는 그 여자의 말에 감동한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더 긴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 다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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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권여선) 수록작 '사슴벌레식 문답'은 권여선식 네 친구 이야기이자 벌레 이야기. 2023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김승옥문학상 작가노트 '안녕 사슴벌레'를 보면 이 단편의 제목은 처음에는 '강촌 여행' 또는 '생일 여행'이었다가 '강가에는 안개가'를 거쳐, "2017년9월11일의 일기"에 기록한 사슴벌레 일화 - 토지문화관에 레지던스 작가로 체류할 당시에 동료 작가가 겪은 경험을 옆에서 듣고 적어두었다 - 를 발견하고 소설의 향방과 최종제목이 결정된다.

Georgiy Jacobson - Beetles Russia and Western Europe  By see in description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김승옥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리뷰 '사슴벌레는 어디로든 들어온다'를 쓴 평론가 양윤의는 이 사슴벌레식 문답을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속 대화와 연결시킨다.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정원은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고 무서움을 잘 타는 성격이었지만 때로는 급작스러운 광기나 충동에 몸을 맡겨 우리를 놀라게도 했다. 정원은 ‘자유’나 ‘해방’이 들어간 시나 경구, 노래 가사 등을 많이 외우고 있었는데 특히나 그 말을 전공인 불어로 발음할 때면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온몸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면 우리 또한 그 유려한 발음에 감탄해 덩달아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평소의 정원은 리본이 달린 작은 꾸러미에 포장되어 어딘가로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어여쁜 선물 같았고, 부영은 그런 연약한 룸메이트에게 ‘언니스러운’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자기는 제멋대로이면서 정원이 제멋대로 굴다 상처받는 것은 견디지 못했다. 감싸면서 단련시키려 했고 아끼면서 통제했다. 정원이 저거 너무 순진해서, 정원이 쟨 너무 고지식해, 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그러면서도 정원의 순진함과 고지식함을 교정하기보다는 보존하려 했다. 정원만의 스타일을 허물어뜨리지 않으려 했다.

누가 봐도, 있는 그대로 지켜준다, 그런 느낌이었다.

너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의젓한 말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가부좌라도 튼 듯한 점잖은 자세로. 그런데 나의 상상과 달리 정원의 말에 따르면 방에 있던 사슴벌레는 몸이 뒤집힌 채 계속 버둥거리며 빠른 속도로 움직여 다녔다고 했다.

약을 쳐서 그랬나봐. 정원이 사슴벌레에 빙의된 듯 양 손가락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그렇다면, 하고 내가 말했다. 사슴벌레의 등에 작은 휴지를 대고 양쪽 다리에 빗자루 싸리를 몇 개씩 매달아 너 대신 청소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정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원과 나는 이런 대화법을 의젓한 사슴벌레식 문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 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두고 저 흐르는 강처럼 의연한 사슴벌레의 말투만을 물려받기로 말이다. - 사슴벌레식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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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뤼아르 시 선집 제4부 1940년대를 읽는 중.  아래 옮긴 글은 시집 '고통의 무기'(1944) 수록작 '용기'의 마지막 대목이다.

사진: UnsplashLouis Paulin


우리 중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죽었다
이제 그들의 피는 우리 가슴 속에 자리 잡고
다시 아침이 온다 파리의 아침은
임박한 해방
태어나는 봄의 공간
바보 같은 세력은 열세에 놓이리라
이 포로들 우리의 적들은
만약 그들이 깨닫는다면
만약 그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일어나 물러가리라.

-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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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이종인 역) 중 제8권 '불경한 행위와 모범적 생활'로부터


Bacchus and Ariadne, 1971 - Frank Auerbach - WikiArt.org


미노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8m1436a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일찍이 사람들이 온전히 통행하지 못했던 미로에 들어가면서 실을 풀어 두었다가 나오면서 회수함으로써 테세우스는 무사히 벗어났던 것이다. 즉시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딸을 데리고 낙소스를 향해 돛을 올렸으나 잔인하게 그 섬에 아리아드네를 내팽개치고 혼자 떠나 버렸다. 버림받아 슬피 우는 여자에게 바쿠스 신은 사랑과 도움을 주었다. 바쿠스는 아리아드네의 이마를 두른 왕관을 떼어 내 하늘 높이 던졌다. 왕관은 허공을 날아갔고 이 왕관을 장식한 보석들은 반짝거리는 별이 되었다. 이 보석들은 왕관 형상을 유지하면서 오피우쿠스 성좌와 헤르쿨레스 성좌 사이에 자리 잡았다. - 미노스와 아리아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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