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소설집 '각각의 계절'(2023) 수록작이자 202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기억의 왈츠'에 김민기의 노래가 아래와 같이 나온다. 이 단편은 '여덟 편의 안부 인사'(2021) 발표작이다.


'각각의 계절' 해설은 문학평론가 권희철이 썼다. 








차돌 이내몸 - 김민기 / 가사집 https://gasazip.com/69184









그때 놀랍게도 경서가 낮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으로 차돌멩이로

슬픈 노래 부르지 마라

나도 어느새 경서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가사를 모르는 부분에선 혼자 부르기도 했다. 노래가 3절까지 완벽하게 끝났을 때 구선배가 뭐 이런 빌어먹을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르고 난리냐며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승희가 좋아요, 하고 일어났다. 경서도 좋죠, 하고 일어나더니, 같이 가도 되는지 빠져줘야 하는지 몰라 멀뚱멀뚱 앉아 있는 내게 기묘한 손짓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숙녀에게 춤이라도 권하는 듯한, 우아하고 장난스런 초대의 손짓을.

요즘도 나는 젊은 날 도대체 왜 이런 노래들만 부르고 살았을까 싶은, 그러나 하도 불러 아직도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노래들을 이따금 불러보곤 한다. 내 머릿속으로 차돌멩이로 슬픈 노래 부르지 마라…… 한 사람이 죽으려고 태어난 것 같다 산산이 부서져라…… - 기억의 왈츠

「기억의 왈츠」에서 화자와 경서가 도서관 터널에서 만났을 때 함께 부른 노래, "요즘도 나는 젊은 날 도대체 왜 이런 노래들만 부르고 살았을까 싶은, 그러나 하도 불러 아직도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노래들을 이따금 불러보곤 한다"고 했던 그 노래는 김민기의 〈차돌 이내몸〉* 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십대의 화자와 경서는 거의 사십 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알게 될 것을 당시의 유행가에 기대어 미리 불러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먼 훗날 화자는 스스로의 삶에 덫을 치고 삶을 죽음으로 바꿔놓는 바람에 자기 삶을 그렇게 ‘작고 딱딱한 결정체’로 위축시키고 말았지만 이제는 그것을 깨뜨려야 하고 깨진 듯이 외쳐야 하고 그렇게 해서 산산이 부서뜨리고 살아 움직이는 삶으로 다시 써야만 한다고 절감하게 되었는데 약 사십 년 전부터 반복되던 이 노래의 후렴구가 이미 ‘산산이 부서져라 차돌(=작고 딱딱한 결정체) 이내몸/ 깨뜨리고 깨진 듯이 외쳐라’이기 때문이다.

* 이 노래 자체에 이미 ‘다시 부르기’의 작은 역사가 내재되어 있다. 1970년대 당국의 요주의 인물이었던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차돌 이내몸〉은 1974년 양희은의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나 금지곡 처분으로 전량 수거 폐기되었다. 이 노래는 1993년이 되어서야 김민기가 다시 부른 버전으로 ‘김민기 2’에 수록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는데 그러나 김민기가 다시 녹음하기 전에도 〈차돌 이내몸〉은 구전되어 불리고 있었고 80년대 학번인 (중략) 이 소설의 화자와 경서는 선배들에게 배운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던 것이다. - 해설│영원회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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