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
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우린 구면이네요.

 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이름은 길고 복잡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인상이 강렬하게 남는다.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에게 지문이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다르고, 체향이나, 분위기같은 것이 다 다르게 느껴져서 그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에게도 문체가 다 다르게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차단이라는 제목과 색다를 것 없어 보이는 표지를 보면서 작가 이름을 살필 생각도 안하고 무심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저 나오는 내용으로 조금 스릴러 장르이거나 추리 장르이겠거니 생각하고 읽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전에 읽었던 책과 좀 비슷한데 하는 생각이 심히 들어왔다. 무슨 책이었더라, 이렇게 문득 일상에 끼어들어온 잔인하고 무자비한 살인마로 인해 긴장과 초조 속에서 인물이 극한까지 몰려가며 끝으로 끝으로 결말을 향해 독자와 함께 달려가도록 만드는 이 몰입감을 느꼈던 것은 -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 도 이와 비슷하지만 아니었다.

 

 그러다 작가 이름을 다시 보고 난 뒤에 생각나는 제목들이 있었다. "눈알사냥꾼" 과 "눈알수집가". 그랬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전작들을 차례로 읽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특유의 분위기를 마치 전에 만났던 사람 특유의 냄새나 분위기 같은 것을 더듬어 재인식하듯이 '알아보게' 되었다. 신기한 점은 작가 본인이 같다는 것도 특유의 분위기가 날 수 밖에 없는 일이긴 하나 한 번 번역이 되어 완성된 책에서도 이 분위기가 똑같이 느껴진다는 거다. 심지어 번역을 한 사람도 다른데.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을 거쳐서 만들어진 다른 책들이 결국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나온 것이라고 이리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만큼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자신만의 색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는, 혹은 확립한 작가라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지난 두 권과 이번 새 책을 통해 독자 -나- 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 시켰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가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새 작품을 가지고 돌아오기란 참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 일테지만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그 이상을 이번 "차단"을 통해 증명해 낸 것 같다. 법의학자인 미하엘 초코스와 함께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부검 과정과 사후 반응 검사들을 설명해내면서 다소 강렬함이 지나쳐서 위화감이 들 수도 있는 부분들 마저도 제대로 보여주었다. 어떤 의의나 흠집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숨가쁘게 몰아쳤던 것에 비하면 헤르츠펠트의 딸인 한나의 완고한 모습은 좀 애매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고, 여러차례 지나치게 과한 과정이 댓가로 주어졌다고 생각하도록 상황이 전개되었으나 글쎄, 한나의 심리가 제대로 반영이 된 것일까 십대라는 불안점함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을 고려하여도 말이다.

 

 이처럼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 근간에 대한 당위성이 아닐까. 고립된 장소 안에서 자신의 안위조차 감당할 수 없는 린다가 모든 두려움에서 매번 눈을 돌리지 않고 점점 더 깊은 사건의 중심으로 제발을 옮기는 일이 왜, 단지 한 생명에 대한 인류적 책임에서만 비롯되는지 그 끈도 약하게 느껴졌고 왜, 본보기 혹은 원망의 대상이 헤르츠펠트에게로 이렇게나 가혹하게 집중되어야 했는지, 잉골프는 제대로 된 설명도 해주지 않고 자신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던 상대의 개인적이면서도 위험한 일에 기꺼이 동행하기로 마음을 먹는지 설명해야 한다면 지금같은 전개나 결말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독자를 몰고가는 몰입도와 긴장감은 상당한 수준으로 이어지면서, 기꺼이 펼친 첫 장을 쉼없이 넘겨 끝내 앉은 자리에서 마지막 한 장마저 덮어내도록 만드는 재미는 보장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 내용 이상으로 작성했던 리뷰를 임시로 저장했었는데 잠시 다른 일을 마치고 불러오니 한문단만 남은 채로 사라져버렸었다. 전에 썼던 내용이 생생한 감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마음에 들었었는데 지금은, 지나간 글을 되살려 엉성하게 연결해놓은 느낌이다. 분명 버튼을 눌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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