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맛, 삿포로의 키친 - 지니어스 덕이 660일간 먹고 그린 음식들
김윤주 글.그림 / 컬처그라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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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삿포로에서 600여일 체류하면서 방문한

114개의 음식점을 소개한 책 <행복의 맛, 삿포로의 키친>.

식당의 건물, 요리를 그린 흑백의 일러스트와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요란한 가게 홍보나 메뉴 소개, 사진이 없다는 점에서 개성이 넘친다.

손맛 나는 담백한 일러스트는 매력적이지만, 컬러링이 안 되어 있어서 시각정보로서의 역할은 불충분하다.


현지에서 살면서나 가볼만한 숨겨진 음식점들을 많이 알 수 있다는 점은 좋은데

자세한 정보는 안 실려 있기 때문에 가이드로서의 역할은 부족하다.

컬처그라퍼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좀더 기획적으로 다듬을 부분이 있지 않았나 아쉽다.

밋밋한 제목도 그렇고 편집도 그렇고, 좀더 팔릴 만한 책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삿포로에 여행할 게획이 있거나 가봤거나, 심플한 에세이를 즐긴다면

 

한번 찾아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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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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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장편소설 <홀>은 제목 그대로 인생의 구멍에 빠져버린 남자 이야기다.

첫 장면에서 독자는 전신 불구가 되어 병실에 누워 있는 주인공 오기를 마주하게 된다.

오기는 눈만 깜박일 뿐 말조차 하지 못한다.

그 시점에 소설이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이 옴짝달싹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하지만 인생의 이전 시점들을 더듬어가면서 아내와 장모와 그의 속물적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약간의 스릴러 요소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사십대가 지나면서 인생은 점점 시멘트처럼 굳어가는 것을 느낀다.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고정된다.

지금 내가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은 그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답이다.

그러니 가끔은 극적인 변화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밖에서 온 것이든, 안에서 온 것이든.

 

<서쪽 숲으로>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어딘가에 갇혀버린 인간에 대한 스토리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유사하다.


표지가 반양장으로 유연하게 휘어진다. 겉모양도 참 잘 만든 책이다.  

 

어떻게 삶은 한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그럴 작정으로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28p

자괴를 이겨내기 위해 언젠가 아내가 읽어준 허연의 시를 종종 떠올렸다.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는 구절이 담긴 시였다.
그 구절을 생각하면 다소 마음이 놓였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체로 그럴 시기라는 것에 안도했다.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78p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버린다는 것.
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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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6-10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옴짝달싹 못하고 눈만 깜박이는 남자라고 하니까 변신의 그레고르가 떠오르네요. 음. 사십대가 코 앞에 닥쳤는데 남은 인생 시멘트처럼 굳지 않게 저도 한 번 읽고 고민 좀 해 봐야겠어요.

베쯔 2016-06-10 15:54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주인공 같은 극적 상황에 처하는 건 두렵지만요. 책속에서 그 방법을 알려주진 않지만 생각하게는 해주는 것 같아요.
 
오카자키에게 바친다 1
야마모토 사호 지음, 정은서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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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만 책을 주문하다가,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들렀더니

표지가 눈에 띄는 만화책이 있었다.

야마모토 사호의 <오카자키에게 바친다>는 여자친구들 간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만화를 SNS로 썼는데 히트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주로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러니까 1990년대가 배경일까. 게임기, 친구집 놀러가기 등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오카자키라는 친구의 집이 좀 특이해서, 흥미로웠다.

엄마는 늘 손에 와인잔을 들고 있고, 육아 방임일지도 모르는 그런 엉망인 집.

거기서 자란 오카자키는 처음 사귄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마모토랑 만나서 행복해. 난 아마 야마모토의 인생에서 조연이 되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생각해."

아아 감동적인 문구.

그러고보니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인가. 학교 시설을 돌보는 아저씨가 있었고, 그 분 집이 학교 안에 있었는데

그 집 딸이랑 좀 친하게 지냈다. 애어른처럼 성숙했던 그애 집에 가끔 놀러갔는데

어느날 스테인레스 대접에 믹스커피를 한 사발 타줘서 마셨던 기억도 난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참 자유로워서 좋겠다 부러워했었던. 

그런 추억을 더듬게 하는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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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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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새로운 세대의 표상 같은 존재였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간명하면서도 텅 빈 느낌의 쿨한 소설이었고

대중적인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는 사건이었다.

나는 <댄스댄스댄스>라든가 <해변의 카프카>를 거쳐 최근작 <1Q84>까지

장편소설들을 좋아하지만, 그의 필력은 에세이에서 더 빛나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하루키 자신이 소설을 쓰는 방식을

오픈 소스로 풀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의 문체가 산뜻한 무국적의 번역투의 문체가 되었는지도,

꾸준히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장편소설을 쓰는 비결은 무엇인지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결을 안다고 해도, 따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머리가 너무 좋은 사람은 소설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에서 괜히 위안을 받았고,

소설을 쓰고 남은 잉여 콘텐츠로 에세이를 슬렁슬렁 쓴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너무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 거라고 나는 항상 생각합니다. 소설을 쓴다는-혹은 스토리를 풀어간다는-것은 상당히 저속의 기어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20p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나는 원고지와 만년필을 일단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만년필과 원고지가 눈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세가 ‘문학적’이 되어버럽니다. 그 대신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올리베티 영자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그걸로 소설의 첫 부분을 시험 삼아 영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중략)
내용을 가능한 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 하고, 묘사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몹시 조잡한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가며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 점점 내 나름의 문장 리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49p




주변 인물들이나 어떤 일에 대해 사사삭 콤팩트하게 분석해서 ‘그건 이런 거야’ ‘저건 이러저러해’ ‘걔는 이러저러한 녀석이야’라는 식으로 단시간에 명확한 결론을 내놓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내 의견으로는 그렇다는 얘기인데) 소설가로는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평론가나 저널리스트가 더 적합하겠지요
120p

소설 쓰는 시기가 일단락되면 한 번도 연 적이 없는 서랍, 쓸 곳이 없었던 소재들이 꽤 많이 나와서 그런 것(말하자면 잉여물자)을 이용해 한 번에 몰아서 에세이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에세이란 굳이 말하자면 맥주 회사가 출시한 캔 우롱차 같은 것, 이른바 부업입니다. 정말로 좋은 소재는 다음 소설=본업을 위해 챙겨둡니다. 그런 소재가 그득하게 모이면 ‘아, 소설 쓰고 싶네’라는 기분도 저절로 솟아납니다.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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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언제나 대단해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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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자들에게 인기 절정인 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데뷔작

<여자들은 언제나 대단해>는 2001년도에 발표한 작품, 그러니까 15년이나 되었다.

그림체는 좀 서툴지만 직장생활의 쓴맛, 단맛을 특유의 가벼운 유머로 버무려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여자들끼리 케이크 먹다가 우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에피소드와

직원여행 때 버스 타자마자 계속 술만 마셔대는 남자직원들 이야기 등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일본 기업에는 단순 행정업무만 하는 여직원들이 별도로 있는데 그런 OL들 이야기다.


내친 김에 자전적인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도 읽었는데

마스다 미리의 문장 감각이 하이쿠나 광고문구를 연습해서 생긴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림보다는, 문장의 담백함과 생략에서 오는 여백이 매력적이라고 늘 생각했었는데.

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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