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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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다도의 명인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고 할복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왜 리큐는, 히데요시의 미움을 받게 되었나, 리큐가 끝까지 집착했던 녹유 향합의 비밀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작가는 역순으로 사건을 서술해 나간다. 이 방식이 참신하고 기백이 넘친다, 마치 리큐의 다도처럼! 

다도라는 게 차의 예법 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다도란, 정원을 내고 다실을 장식하고 좋은 다구를 고르고 정성을 다해 객을 대접하는 것 전체를 아우른다. 다도 문화를 통해서 일본인들은 미의 절정을 추구한다. 리큐는 그러한 미의식에서 최고였던 남자로 그려지는데, 그 묘사들이 무척이나 생생하다. 작가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등 일본 역사의 영웅들을 묘사하는 시각도 흥미롭다. <대망>의 시각과 유사하면서도 히데요시에 대해서는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그가 희대의 영웅이면서도 아집에 차 있음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품격 있는 병풍을 한 폭씩 펼쳐보는 느낌이었다. 한 폭 한 폭 멋진 이야기가 담겨 있어 어렵지 않게 읽히고 재미와 감동도 준다. 일본 문화의 핵이라 할 만한 다도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권영주의 번역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또, 책의 외관은 겉표지보다 벗겼을 때 좀더 아름답다.

   
 

리큐를 어떻게든 난처하게 만드려고 히데요시가 커다란 청동 물그릇과 홍매 한 가지만 장식단에 두고 꽂게 한 적이 있었다. 리큐는 별일 아니라는 듯 홍매 가지를 거꾸로 들더니 한 손으로 훑었다. 꽃과 꽃봉오리가 물 위에 뜬 것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풍정을 자아냈다.  

"벚꽃으로 말하자면 그 사내, 꽂지도 않고 가지를 들더니 '져야 비로소, 져야 비로소' 하고 읊으면서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야. 꽃잎이 흩날려서 아닌 게 아니라 봄의 풍정은 더하더구나.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허나 영 아니꼬워." 

리큐가 재지와 기략을 종횡무진으로 펼쳐 보일 때마다 히데요시의 분은 더욱 커졌다.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230p

 
   
   
 

- 히데요시의 본성은 욕심이구나. 

히데요시라는 사내는 탐욕이 옷을 걸치고 걸어다니는 듯한 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은 해골이 가죽을 썼으나 히데요시는 달랐다. 욕심이 가죽을 쓰고 옷을 입었다. 소친은 그것을 간파했다.  -259p 

 
   
   
 

다만 똑같은 욕심의 불길이라도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색채가 꽤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부나가의 욕심은 구도적인 색채가 매우 강한 것 같았다. 노부나가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불사가 불상을 조각하듯, 무형의 천하에 형태를 부여하려고 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 소친은 노부나가를 몇 번 만났는데, 욕심은 많아도 뭔가를 탐하는 상스러운 풍정은 없었다. 그에 비해 히데요시는 똑같이 천하의 부를 수탈해도 어딘지 모르게 상스러움이 감돌았다. 냄비 바닥까지 전부 핥아먹는 듯한 저속함이 느껴졌다.  -264p

 
   
   
 

"아름다움은 결코 얼버무릴 수 없습니다. 도구든, 행다든, 다인은 항상 목숨을 걸고 절묘한 경지를 추구합니다. 찻숟가락에 박힌 마디의 위치가 한 치라도 어긋나면 성에 차지 않고, 행다중에 놓은 뚜껑 받침의 위치가 다다미 눈 하나만큼이라도 어긋나면 내심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야말로 다도의 바닥없는 바닥, 아름다움의 개미지옥, 한번 붙들리면 수명마저 줄어듭니다."  

리큐는 자신에 전에 없이 정직하게 이야기함을 느꼈다.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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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 - 일본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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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 <일본편>은 8명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掌篇 3편을 제외하고는 작가당 한 작품씩 선정되어 있다.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들은 읽어본 적 있으나 나머지 5명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다. 

인상적인 작품은 다음 세 편이다. 가난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그린 구니기타 돗포의 '대나무 쪽문', 미스테리를 차용하여 인간 생사의 갈림을 가벼운 터치로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 여인의 불행한 운명을 색다른 형태로 진술한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 

<영국편>이 대표 작품을 잘 선정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반면, <일본편>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분량이 가장 많은 '오오쯔 준끼찌'(지나치게 사소설적이며 내용이 산만한)와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마치 이광수의 농촌 계몽소설 같은 분위기의)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적당한가 의아했다. 

편집자 해제의 수준도 너무 교과서적이어서 고유의 컬러가 없었다. 일본어 표기도 최근의 흐름과 다르게 되어 있어 좀 거북했다. 한마디 더, 표지의 게다 이미지도 좀 구태의연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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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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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의 처녀작으로 본격 추리물이 아니라는 홍보문구에도, '이시오카 + 미타라이 콤비의 첫 만남'을 그렸다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쩔쩔매고 어리버리한 이시오카와 능청스러운 미타라이의 콤비야말로 참 걸작이란 말이지. 

기억을 읽고 벤치에서 깨어난 한 남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낯선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이시오카)는 이방에서 뻔뻔한 점성술사를 만나 위안을 얻는데 그가 바로 미타라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기억을 찾아줄 단서를 발견하는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다. 과연 그는 왜 기억을 잃었을까? 그는 살인자인가, 아닌가를 밝히는 이후의 빠른 전개는 재미있었는데, 소설의 전반부는 그저 평온한 생활을 그리고 있어서 좀 지루한 감도 있다. 하지만 시마다 소지 작품 치고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해서 나름의 매력도 있었다.  

시공사에서 나왔는데 표지도 멋지고 겉표지를 벗기면 안의 장정이 단단하고 아름답게 제본되어 있다. 제목인 '이방의 기사'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양각 처리해서 맛이 살아났다. 잘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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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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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게 범인이 맞는지, 반전은 대체 뭔지-? 내겐 그저 로맨스 소설 같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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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빵집
이병진 지음 / 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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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외관은 '갈색의 잘 구운 빵'을 연상시킨다. 재생지 느낌의 크래프트지를 두른 단정한 느낌. 출판사 이름을 보는 순간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낸 그 출판사 아닌가 싶었는데 역시나다. 꽤 믿음 가는 책을 만드는 곳이다.

전국 빵집 중에 자기 이름을 건 베이커리들의 대표 빵들 하나씩을 소개한 책. 빵 매니아라면 피해가기 어려운 책 아닐까! 구입한 후 저자 이력을 확인하니 제과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관련 잡지 편집장을 지냈다고 한다. 호오, 더욱 믿음이 가는 걸.  

마음에 드는 제과점에 들러 빵 하나를 고르고, 설레는 맘으로 집에 돌아와 한입 베어무는 순간이 난 너무 좋다. 이 책은 마치 그런 느낌으로 빵 하나씩을 소개한다. 맛을 음미하듯 책장을 넘긴다. 팔랑팔랑 잘도 넘어가네. 언젠가 한번 들러보고 싶은 빵집들. 오랜 동안 그 자리에 있는 빵집들의 대표선수를 조곤조곤 소개해 주고 있다. 급조해서 만든 콘셉트 북이 아니라, 빵 마니아인 저자가 오랫동안 이용해본 경험이 녹아있다는 느낌?!

한 가지 아쉬운 건 제품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온 것도 있다는 것. 그 빈 자리는 상상으로 메워야 한다.

P.S.  여기 소개된 집 중에 김영모, 리치몬드 두 곳밖에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동네(상도동) 빵집으로 토모니 베이커리가 소개되었다. 오늘 확인한  토모니의 '모찌모찌 크림치즈빵'의 맛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쫄깃하면서 폭신한 식감의 빵 속에 상큼하면서 진한 크림치즈! 앞으로도 빵집 탐험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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