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의 범죄 - 미야베 미유키 단편집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장세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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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 따윈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노력해라, 노력하면 보답받을 거야"라고 하지만,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지 않은 이유는 본인들 삶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잔뜩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것도 모른 채 "노력하자, 노력하면 보답받지 못할 일은 없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자랐다간, 어른이 되고 나서 자신을 차고 월급을 더 많이 받는 남자와 결혼해 버린 옛 애인을 죽여서는 보스턴백에 쑤셔넣어 내다버리는 전개가 되는 거다.-11쪽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중략) 결혼 피로연에 나와 있으면, 생판 남인 신랑 신부의 경력이며 그때까지의 가정 환경이나 교우 관계 등을, 꼭 그 사람에 대한 전기나 기록을 끝까지 읽은 듯 잘 알게 되거든요."
(중략)
"피로연에는 신랑 신부와 가로줄 관계밖에 없는 분도, 세로줄 관계밖에 없는 분도 한자리에 모이잖아요? 파고들어 보자면, 피로연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신랑 신부의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스펙트럼. 프리즘을 통해 갈라진 빛의 열.
게다가 이 스펙트럼은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웃고 손뼉 치고 표정을 바꾼다. 제각기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을 품은 채.-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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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오른손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지음, 정태원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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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별로였습니다. 같은 곳을 헤매다가 마지막의 반전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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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생각할 수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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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에서 연달아 나온 두 권의 미야베 미유키 작품 중 하나. <오늘밤은 잠들 수 없어>가 연작의 첫 권이고, <꿈에도 생각할 수 없어>가 두 번째 권이다. 화자인 오가타는 중학생 소년. 친구 시마자키와 함께 사건에 휘말리고 사건 해결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는 이야기다. 진즉에 <오늘밤은->을 읽고 나서도 <꿈에도->는 읽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황매의 책, 표지가 너무 촌스럽잖아. 그런 주제에 너무 비싼 느낌. 

그래도 미미 여사의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번에 손에 들었다. 오, 이건 꽤 재미있었다. 화자가 소년이라서 관점이나 문장이 순진하면서도 곳곳에서 비유가 톡톡 튄다. 사회 문제가 되는 사건을 다루는 사회파 미스테리이기도 하면서, 커다란 사건과 친구와의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소설이기도 하면서, 오가타가 구도라는 소녀를 좋아하게 되면서 연애의 전개가 중간중간 펼쳐지니까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사건은 해결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년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는, 사람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고, 그 나이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음- 소년의 깨끗한 마음과 대비되는 일반 사람들의 무신경함이 많은 걸 시사해 준다. 소년이여, 그대로 멈춰라- 하고 외치고 싶다니까.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베스트5에 넣고 싶을 정도로, 내 취향에는 좋았던 작품. 

   
 

나는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처럼 냉수를 마셨다. 카페에서 냉수가 나오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커피잔은 비었는데 추가 주문할 생각은 없지만 손 갈 데가 없어서 허전할 때를 대비한 것일 게다. 만약 냉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수많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한마디'가 이 세상 모든 카페 안에 흘러넘쳤을 것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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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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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의 경우, 그런 작가는 몇 안 된다. 좋아하는 걸 넘어서서 동경한달까. 그냥 애인 발뒤꿈치도 이뻐 보이듯이 그녀의 작품이라면 그저 좋은 것. 개성이 강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 온다 리쿠는, 작품의 성격이나 질도 다양하다. 장르를 딱히 추리나 공포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꽤 애매한 라인에 서 있는 작품이 많다. 나의 베스트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 <흑과 다의 환상>, <유지니아> or <엔드게임> 이렇게 4권이다.  

이번 작품은 국립공원 정상에 있는 고풍스러운 호텔을 배경으로, 부유한 세 자매가 여는 다회에 초대받은 사람들 간의 애정과 갈등과 죽음에 대한 환상을 소재로 한다. 일종의 클로즈드 서클 계열이지만, 글쎄 사건다운 사건이 일어난다고 봐야 할까, 아니라고 봐야 할까. 소설은 화자를 달리하며 총 6개의 장(변주)을 펼쳐 보인다. 감상은 마음대로 하시라. 세 자매의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독자도 여기에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소설 중간중간 삽입된 알랭 로브그리예의 난해한 소설(시나리오?)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가 소설 독해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난 모르겠다. 난 아니었는데, 작가는 이 소설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다 읽고 이게 뭐야,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모호하게 처리되는 부분도 있으나 '살인에의 충동'을 환상으로 처리한 방식은 특이하다. 그냥 온다 리쿠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아주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이다. 닫힌 세계, 하지만 아름다운 세계.

우리나라에 번역된 소설들은 작가 후기나 평론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친절하게도 일본 평론과 작가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어서 작품 감상에도 꽤 도움이 된다. 특히나 온다 리쿠가 생각하는 소설 작법, 미스테리에 대한 생각 등을 읽을 수 있어 인터뷰는 아주 유용했다.  

흑,백을 컬러 모티프로 디자인된 표지와 양장본 속표지는 마음에 쏙 든다. 이 책의 우아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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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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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키라는 가공의 해안도시를 배경으로 한 하자키 일상 시리즈 두 번째. 이건 뭐 너무 재미있잖아, 마치 연속극을 보는 듯 편안하면서도 두근두근하는 전개. 첫 번째 권(빌라 매그놀리아의 사체)이 빌라 주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인자 찾기에 주력했다면, 이번 권은 하자키 FM과 로맨스물 전문 헌책방, 그리고 지역 명문인 마에다 가를 중심으로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닷가에 떠내려온 시체, 그는 마에다 가의 사라진 도련님으로 추정되고, 그냥 무작정 하자키를 방문했다가 얼떨결에 시체를 발견한 외부인 아이자와 마코토는-어쩌다 보니 헌책방(어제일리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리고 헌책방에서는 또다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시체는 도련님이 맞는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등등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자키FM의 프로그램 진행자 치아키와 커피숍을 운영하는 아버지, 하자키FM 사주인 마에다 마치코와 그녀의 딸인 미소녀 시노부, 그리고 로맨스마니아인 우아한 헌책방여주인 마에다 베니코까지- 캐릭터들의 통통 튀는 개성이 즐거움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헌책방 주인 베니코 여사가 마코토를 채용하기 위해 로맨스물에 대한 지식을 측정하는 퀴즈를 내는 장면. 그 문답이 얼마나 웃기던지, 그리고 사랑스럽던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목. 

밝고 경쾌하게 인물과 사건을 그려내는 데는 천재적인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 하지만 본격 추리물로서의 트릭이나 추리는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작가다.  

   
 

"여쭤 보겠는데요, 이 가게는 로맨스소설 전문 헌책방인가요?"
노부인은 마코토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는 놀랍게도 상냥한 웃음을 지었다.
"아가씨, 로맨스소설 좋아하나?"
"네? 네, 그냥."
"흠, 그렇다면 내가 좋은 걸 골라주지. 그럼 검은 머리하고 금발 중에 어느 쪽을 좋아하나?"
"네......?"
"검은 머리가 좋다고? 좋아, 그럼 가슴 털은 있는 게 좋나?"
"네......?"
"없는 편이 좋다고? 좋아, 그럼 부자랑 야성적인 건, 어느 쪽이지?"
"부...... 부자요."
"그렇다면 이거군."
노부인이 사뿐히 카운터를 떠났다가 드디어 빅토리아 홀트의 )『사냥꾼의 달이 떠오를 때』라는 두 권짜리 로맨스소설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중략-
"빅토리아 홀트 같은 고딕계 로맨스 작가로 유명한 사람을 두 명 들어봐."
"메리 스튜어트하고 필리스 A. 휘트니, 일까요."
"스튜어트의 『이 난폭한 마술』을 번역한 사람은?"
"마루야 사이이치."
"필리스 A. 휘트니의 A.는 무엇의 약자지?"
"아야메. 일본어로 무늬."
"여자 이름으로 고딕 로맨스를 발표했던, 미국의 경찰소설 작가라고 하면?"
"힐러리 워."
"최근 일본어 번역이 나온 톰 새비지의 고딕 로맨스는?"
"『상속』."
"책 첫머리의 에피그래프에서 고딕을 뭐라고 정의했지?"
"고딕소설이란 젊은 아가씨가 집을 갖게 되는 얘기다."
"대단한데."
베니코는 이미 고수를 만났다는 눈빛이 되어 있었다.
-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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