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산 관악 마지막 골짜기 길이다. 엄밀히 말하면 삼성산과 호암산을 가르는 북쪽 골짜기에서 들어가 남쪽 골짜기로 나오는 길이다. 북쪽 골 물은 도림천 작은 지류라 달리 이름이 없고, 남쪽 골 물은 안양천 지류지만 제법 커서 삼막천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지도상으로는 북쪽 골짜기 마지막 부분에서 직진해 넘어가지 않고 좌우로 갈라져 들어가다가 능선길을 만나면 돌아와 넘게 돼 있다. 늘 하는 방식을 따라 나는 지도에 없는 내 길을 만들며 직진했다. 골 물을 따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가다 보니 결국은 능선을 따르고 있었다.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능선을 좋아하지 않는 취향상 아쉽고 또 아쉬웠다. 반전이 시작됐다. 능선임에도, 대부분 소나무 군락지임에도, 의외로 많은 버섯이 반겨주었다. 이들이 나를 불렀구나, 그리 여기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능선 벼랑 끝에 있는 기이한 바위

 

남쪽 골짜기로 내려오는 길도 지도에는 있지만 거의 폐쇄되다시피 한 소로였다. 인적이 전혀 없었다. 갖가지 버섯이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정오쯤 되자 갑자기 게릴라 폭우가 숲을 뒤덮었다. 온몸을 적시는 정도가 아니라 숨쉬기를 가로막는 듯한 분위기가 휘몰아쳤다. 커다란 활엽수 아래로 들어가 쓰나 마나 한 우산이지만 얼굴만이라도 가리자 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포장도로 가까이 이르자 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관악역 근처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내처 걸을 수는 없겠다 싶어서였다.

 

장마철 일요일이라 그런지 식당은 썰렁했다. 40대 하나와 20대 둘 남자 사람들이 구석 탁자에 앉아 가지고 온 양주를 마시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화 주도권은 40대가 쥐고 있었는데, 주식 하는 기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 둘은 인생을 걸었다는 표정으로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말들은 하나같이 내 귀를 통과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숲속에서 버섯이나 만나고 나온 이 물에 빠진 늙은 생쥐는 얼마나 물색없는 동물인지···


다시 선 백악, 저 멀리 아스라하게 관악이 보인다.

 

전철로 이동해 한강 저 건너편 주산 백악으로 다시 들어갔다. 장마 탓에 늘 붐비던 그 길도 인적이 끊겼다. 홀로 한 바퀴 돌아 청와대 전망대에 섰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리투아니아 가서 아무 짓이나 막 해대는, 우크라이나 가서 아무 말이나 막 해대는 두 인간을 축원하며 여덟 자 진언 부적 하늘 향해 태우고 손 모으고 고개 숙이고 춘추관 길로 나오면서 다시는 이 길로 드나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저들 장단에 이런 하찮은 춤마저 추어서는 안 되겠기에 말이다. 북촌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국시 집에 들어서니 여섯 시, 집을 나선 지 여덟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막걸리 한 대포로 해갈은 했지만, 무지렁이 부역자 인생 고뇌를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아 막걸리가 더 들어가도 국시가 들어가도 헛헛하기만 했다. 이렇게 금방 일어나세요? 묻는 점장에게 웃어 보이고 천천히 걸어 광화문으로 나왔다. 다시 똑같은 밤이 시작될 무렵, 밤의 대통령이 다리 꼬고 앉아 있는 건물 맞은편에서 버스를 탔다. 취기가 벌써 가셨으니 밤이 길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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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 치과 하는 지인이 있어 치료받고 인덕원역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갈현천을 거슬러 올라가 관악산 문원 계곡으로 갈 생각이었다. 갈현천 주위는 얼마 전까지 대부분 숲 또는 녹지였다. 따라가면서 보니 엄청난 규모 토건 탓에 폐허로 변해 있었다. 육중하게 가라앉는 가슴에 통증이 실려 빗속을 걷는 발걸음을 더욱 질척이게 했다. 지구생태계에서 인간은 악성종양이 맞다. 결코 은유가 아니다.

 

설상가상 구글 지도에 있는 군부대 시설을 잘못 판독해 통과가 가능한 전원마을쯤으로 알고 접근하면서 행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길 없는 풍경을 더듬으며 길을 탐색하며 얼마를 헤맸을까, 느닷없는 기억이 튀어나왔다. 관악산 둘레길이었다. 점점 더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이내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바뀌어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변했고 폭우는 언제 그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큰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고 나처럼 비를 쫄딱 맞고 있는 버섯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개기는 동안 어느덧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과천 야생화 자연 학습장으로 들어가 엉망이 된 행장을 수습하고 문원 계곡 아닌 과천 시내로 갔다. 이 상태로 산을 오르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일단 늦게나마 점심부터 먹어야 했다. 메밀국수를 먹고 밖으로 나오니 간간이 햇살이 비치는 날씨로 바뀌어 있었다. 방향을 거꾸로 잡았다. 구세군사관학교 뒤 작은 계곡에서 들어가 문원 계곡으로 나올 생각이었다.

 

구세군사관학교 교정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조용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어린 딸아이와 함께 쉬러 자주 찾았었다. 옛 모습이 기본적으로는 남아 있었으나 전경이 달라져 잠시 헷갈렸다. 이내 방향을 잡고 계곡을 찾아 들어갔다. 물과 바위 경관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간직했던 기억은 그대로였다.

 

그때 보았던 숲 더 깊숙이 들어가자 좋은 풍경 이상으로 길이 좋지 않았다. 비는 바위만 미끄럽게 만들지 않고 작은 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인적을 흐트러뜨려 길을 어렵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크게 길을 잃어 전혀 길이 아닌 곳을 헤치며 나아가고 말았다. 물소리를 따라왔다고 생각한 바와 달리 나는 거의 반대 방향 능선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길을 잃을 때는 언제나 그렇듯 지도 볼 생각을 까맣게 잊는다. 되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야 비로소 스마트폰 지도를 열지만 때는 이미 늦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헉헉대며 벌벌 떨며 오르는 동안 아름다운 기억은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비 탓으로 인적이 끊긴 깊은 산속을 홀로 헤맬 때 느끼는 외로움, 아뜩함, 무서움은 더없이 예리했다. 와중에 경이로운 버섯을 발견하면 그런 감정들은 찰나적으로 동강 났다. 고맙습니다, 인사하며 길을 열어갔다. 문득 하늘 선이 나지막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암석군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 너머에 능선길이 있음을 직감하고 안심했다. 능선길에 올라서 저 멀리 누워 있는 과천 시내를 내려다보는데 홀연히 한 생각이 돌이켜졌다.

 

숲에서 길을 잃는 까닭은 숲에 빙의되기 때문이다.”



숲에 빙의되었을 때 눈에 들어온 버섯

 

여느 만신들은 인신에 빙의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스스로 인간을 사랑해 인간이 된 나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숲에 빙의되는 일이 내 이치에 맞다. 길 잃는 순간과 길 잃은 뒤 일어나는 일들을 돌이켜보니 그제야 깨달아진다. 길을 잃는 순간 나는 개별자 인간 정신을 놓는다. 숲으로 배어들어 영적 상태가 된다. 길을 잃는 순간 나는 인간 흔적을 놓는다. 숲으로 배어들어 나무 본성이 된다. 그 삼매경이 내가 길을 잃었다는 각성을 살포시 붙잡아둔다. 바로 이 짧은 시간이 숲 제의 절정이다.


 

길 없는 골짜기 숲을 헤치고 올라와 능선에서 내려다본 과천


숨이 고르게 잡히고 땀이 잦아들자 나는 위로 향한 능선길을 크게 돌아 문원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 바닥에 닿으려면 아직 먼데 벌써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 따라 계곡 아래로 깊숙이 들어서니 장마철 숲에서 풍기는 발효 향이 은은하다. 아까 내 귀를 두드리던 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그고 가만히 앉았다. 그제야 숲을 떠나서 도시로 돌아간다는 알아차림이 들어왔다.

 

문원 계곡에서 나와 과천 시내로 향하지 않고 관악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아침에 멈추었던 바로 그곳에서 시작해 정부 청사 뒤로 난 소로를 따라 걸어 과천 시청으로 나왔다. 온몸이 흠뻑 젖어 있다. 몸살 나지 않겠냐며 걱정하는 아내 전화 목소리를 웃음으로 감싼 채 나는 과천 정부청사역으로 들어섰다. 인덕원역을 나선 지 7시간 만이었다. 걸은 거리는 20k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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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7-10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섯번째 대멸종은 그 악성종양에서 출발하고 있죠.

bari_che 2023-07-11 08:0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의학에서는 악성종양 세포를 본디 세포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데, 인간은 과연 어떨는지 궁금하군요.
 





물경 이들은 감나무다. 몇 종류 과일을 먹고 그 씨를 그냥 쓰레기봉투에 던져넣기가 죄스러워 빈 화분 흙 속에 묻었는데 어느 순간 싹 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어떤 친구가 홍시 씨를 머리에 인 채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이들은 주어진 조건을 따라 지상을 살고 있다. 감나무임에도 영락없는 초본식물, 그러니까 풀 자태를 취하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자아낸다. 경이롭다가도 송구스럽다. 가만히 들여다보다 나지막이 소리 내어 말을 건넨다: 부끄럽습니다. 고맙습니다. 듣습니다. 한 말씀. 꼭 똑.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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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 어느 비건이 한 이 말을 <시사인>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이 말을 하는 2초 정도 시간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남이 모르거나 가닿지 못하는 진실을 혼자 알거나 가닿을 때 짓는 표정과 자신이 모르는 줄 모르면서 남이 아는 얘기를 할 때 짓는 표정은 아마도 같거나 적어도 비슷하지 싶다.

 

저 말은 얼굴이 대체 뭘까를 화자가 진지하게 생각해본 뒤에 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육식하는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비범해 보이는 저 말도 피상적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왜냐하면 동물에게는 얼굴이 있고, 식물 또는 그 이전 생명체에게는 얼굴이 없다는 통속한 상식만으로 비범해 보이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과연 식물 또는 그 이전 생명체에게는 얼굴이 없을까? 동물이 지니는 얼굴을 기준으로 삼으면 딱 잘라 그렇다고 대답하는 데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대체로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을 하며 무엇에 쓰이는지 상식으로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나,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는 아무나 생각할 수 없어서 문제가 아연 어려워진다.

 

동물과 식물은 각각 다른 원리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동물은 기관 중심 시스템이다. 이동하는 생명체로서 선택하고 집중하는 데에 비교 우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얼굴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식물은 모듈 분산 시스템이다. 이동하기 힘든 생명체로서 모든 조건을 견디며 생명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도 지니지 않는다.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얼굴 유무를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동물 중심주의, 그러니까 종 편견에 해당한다. 얼핏 들어도, 정색하고 들어도 얼굴 없는 생명체를 낮게 평가하는 배음이 들려온다. 진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할 수 없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무지 상태다. 전방위·전천후 생존 솔루션을 구축한 식물이 훨씬 더 고등한 생명체다. 모든 곳이 얼굴이니까.

 

여기에 반대할 수 있는 관용을 베푼다. 반박을 기대한다. 일단 다음 이야기를 더 하겠다. 얼굴이란 과연 무엇인가? 얼굴 전문가는 수없이 많다. 그 많은 전문가가 일제히 놓치고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얼굴이 생식기라는 진실이다. 이 진실을 놓친 실패 또한 종 편견에서 발원한다. 좁은 의미 생식기가 얼굴에서 멀찌막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물 생식기는 이와 다르다. 꽃은 인간 미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식을 위해 아름답게 핀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꽃이라 부르는 부위는 꽃잎, 암술, 수술, 꽃가루, (변형된) 꽃받침 모두를 포함한다. 이 통칭하는 꽃은 생식기와 얼굴을 함께 품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식물은 좁은 의미 얼굴도 지니고 있다. 그 얼굴은 곰팡이 얼굴 버섯에서 왔다.

 

버섯이라면 인간은 우선 식품으로 표상할 뿐 별달리 생각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봐야 항암 효과 운운, 그리고 송로버섯 운운. 버섯은 곰팡이 생식기다. 곰팡이는 지구 생태계를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설계한 창조자다. 이 창조자에게서 버섯이 왔고, 식물 꽃이 왔고, 동물 얼굴과 성기가 왔다. 인간은 버섯이 인간 성기를 닮았다며 무식하게 킥킥댄다.

 

말이 나온 김에 끝까지 간다. 비건은 버섯을 먹는가? 버섯을 식물이라고 생각하고 생각 없이 먹고 있음이 틀림없다. 버섯은 식물이 아니다. 곰팡이가 식물이 아니니 당연하다. 구태여 따진다면 버섯은 본성에서 동물 쪽으로 기울어진다. 생김새와 질감이 그 증거다. 무엇보다 동물 본성이 여기서 발원한 진실에 무지해서 인간은 뒤집힌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마지막으로 먹는 행위를 도구화하고 있는 태도를 전복해야 한다. 먹는 행위는 자체로서 먹이가 되는 생명과 소통하는 제의이기도 하다. 제의란 인간 본성에 가닿는 행위다. 거룩하다. 거룩한 만큼 신난다. 얼굴 있네, 없네, 논의 따위가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아야 한다. 먹는 행위를 도구화하는 주제에 감히 동물을 먹는다고 비난하는 우월감은 참으로 가소롭다.

 

비건이 동물을 먹지 않아서 뭐라는 거 아니다. 식물과 식물 이전 생명을 함부로먹기 때문에 시비한다. 동물권을 말하려면 식물권이라는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고 다툰다. 동물 존중하는 일과 식물 성찰 없이 먹는 일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톺는다. 부분 지식은 오류다. 관통하는 지식이 지혜를 낳는다. 스러지는 순간까지 관통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정색하고 다시 말한다. 모든 생명에는 얼굴이 있다. 얼굴은 생식기니까. 생식은 생명 궁극 본성이니까. 궁극 본성을 펼쳐내는 지성소를 두고 동물 중심주의가 자랑스레 지절거리는 소리를 더 이상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화급하다. 이렇게나마 외친다면 귀엽게 봐주기로 한다: 식물과 그 이전 생명을 위해 우리 동물 먹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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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1990년대 후반 나는 한의대 입학을 위한 수능 공부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절에서 한 적이 있다.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요사채 속인들이 울력에 동원되는 일은 오래 묵인된 관습이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대부분 공부하러 들어온 사람들인데 승려들이 그런 배려 없이 일을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사건이 느닷없이 일어났다.

 

잠시 머물면서 이따금 예불도 이끌고 요사채 있는 속인들과 족구도 하면서 안면을 튼 객승이 하나 있었다. 평소 자기가 두 바퀴 구른경지에 도달했다고 큰소리치던 자였다. 점심 식사 마치고 어느 처사 방에 모여 차 한잔하고 있는데 종무소 총무가 와서 법당 잡역 좀 도와달라 청했다.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객승이 나타나더니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모두 어안이벙벙해하는데, 사람들 눈길이 내게로 쏠렸다. 내가 그 객승보다 한참이나 연배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사람들을 이끌고 법당으로 이동해 일을 마쳤다. 돌아오면서 한 청년에게 일렀다. “아까 그 스님한테 말 전해라. 나한테 사과하라고.” 청년이 돌아와 말했다. “사과할 테니 스님 방으로 오시래요.” 내가 답했다. “사과할 사람이 와야지 받을 사람이 가는 법은 없다.”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노기등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한껏 겸손한 표정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내가 불교 신도였다면 그가 내게 사과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는 평소에 불자들이 뵙기를 청하면 삼배를 요구했다고 말기에 말이다.

 

이 시건방진 객승은 계를 받고 속가에 갔을 때 어머니한테 삼배를 받았다고 했다. 그가 과연 예외적 인물일까. 무슨. 계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되면 부처님 가문 사람이 되므로 속인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승려가 얼마나 될까. 이런 특권의식은 비단 불승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개신교 목사도, 천주교 신부도 본질이 같다.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성찰하지 않는 데에는 이런 오만이 자리 잡고 있다. 도덕과 윤리, 심지어 법 위에 있다고 믿는다. 부처나 하느님 법을 따르지, 세속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지 않던가. 초월자와 합일시키는 이 오만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고 정신병 일종이다. 전광훈 입에서 튀어나온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말은 웃자고 하는 수사가 아니다. 저들은 무도덕 경지에서 논다.

 

특권층 부역자로서 목사, 신부, 승려가 무슨 부역 행위를 저질렀으며, 사과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했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살폈다. 앞으로도 이 역사는 전복되지 않고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거대 통속 종교 프레임을 깨뜨리지 않는 한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난센스다. 프레임을 그러면 누가 깨뜨리는가? 목사, 신부, 승려는 할 수 없다. 초월적 기득권에 올라탄 특권층이기 때문이다. 각성한 평신도 부역자가 의문을 품음으로써 변혁은 시작된다. 가령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기도 올리고 있는 또 다른 평신도에게 묻는다: 대한불교조계종이 1941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총독부 승인을 얻어 부역승들이 창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총독부가 승인했다면 그 종헌과 조직 성격이 어떠했으리라 짐작하십니까? 해방되면서 종단을 자진 해체하고 대중 의지를 물어 재창종했어야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단도직입으로 답할 수 있는 평신도는 거의 없으리라 본다. 이 불모지에서 누군가가 첫발자국을 떼어야 한다. 각성한 평신도 부역자 하나가 어렵사리 또 하나와 손잡을 때 비로소 네트워킹이 열린다. 나아가 비인간 주체와 더불어 일궈내는 네트워킹이 열린다. 이 나지막한 영성 연대만이 제국주의와 부역 식민주의 종교 흑역사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모두 그린 샤먼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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