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며

 

1990년대 후반 나는 한의대 입학을 위한 수능 공부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절에서 한 적이 있다.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요사채 속인들이 울력에 동원되는 일은 오래 묵인된 관습이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대부분 공부하러 들어온 사람들인데 승려들이 그런 배려 없이 일을 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사건이 느닷없이 일어났다.

 

잠시 머물면서 이따금 예불도 이끌고 요사채 있는 속인들과 족구도 하면서 안면을 튼 객승이 하나 있었다. 평소 자기가 두 바퀴 구른경지에 도달했다고 큰소리치던 자였다. 점심 식사 마치고 어느 처사 방에 모여 차 한잔하고 있는데 종무소 총무가 와서 법당 잡역 좀 도와달라 청했다.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객승이 나타나더니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모두 어안이벙벙해하는데, 사람들 눈길이 내게로 쏠렸다. 내가 그 객승보다 한참이나 연배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사람들을 이끌고 법당으로 이동해 일을 마쳤다. 돌아오면서 한 청년에게 일렀다. “아까 그 스님한테 말 전해라. 나한테 사과하라고.” 청년이 돌아와 말했다. “사과할 테니 스님 방으로 오시래요.” 내가 답했다. “사과할 사람이 와야지 받을 사람이 가는 법은 없다.” 마침내 그가 나타났다. 노기등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한껏 겸손한 표정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내가 불교 신도였다면 그가 내게 사과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는 평소에 불자들이 뵙기를 청하면 삼배를 요구했다고 말기에 말이다.

 

이 시건방진 객승은 계를 받고 속가에 갔을 때 어머니한테 삼배를 받았다고 했다. 그가 과연 예외적 인물일까. 무슨. 계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되면 부처님 가문 사람이 되므로 속인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승려가 얼마나 될까. 이런 특권의식은 비단 불승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개신교 목사도, 천주교 신부도 본질이 같다.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성찰하지 않는 데에는 이런 오만이 자리 잡고 있다. 도덕과 윤리, 심지어 법 위에 있다고 믿는다. 부처나 하느님 법을 따르지, 세속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지 않던가. 초월자와 합일시키는 이 오만은 단순한 오만이 아니고 정신병 일종이다. 전광훈 입에서 튀어나온 하나님도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말은 웃자고 하는 수사가 아니다. 저들은 무도덕 경지에서 논다.

 

특권층 부역자로서 목사, 신부, 승려가 무슨 부역 행위를 저질렀으며, 사과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했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살폈다. 앞으로도 이 역사는 전복되지 않고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거대 통속 종교 프레임을 깨뜨리지 않는 한 변화를 기대하는 일은 난센스다. 프레임을 그러면 누가 깨뜨리는가? 목사, 신부, 승려는 할 수 없다. 초월적 기득권에 올라탄 특권층이기 때문이다. 각성한 평신도 부역자가 의문을 품음으로써 변혁은 시작된다. 가령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기도 올리고 있는 또 다른 평신도에게 묻는다: 대한불교조계종이 1941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총독부 승인을 얻어 부역승들이 창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총독부가 승인했다면 그 종헌과 조직 성격이 어떠했으리라 짐작하십니까? 해방되면서 종단을 자진 해체하고 대중 의지를 물어 재창종했어야 옳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단도직입으로 답할 수 있는 평신도는 거의 없으리라 본다. 이 불모지에서 누군가가 첫발자국을 떼어야 한다. 각성한 평신도 부역자 하나가 어렵사리 또 하나와 손잡을 때 비로소 네트워킹이 열린다. 나아가 비인간 주체와 더불어 일궈내는 네트워킹이 열린다. 이 나지막한 영성 연대만이 제국주의와 부역 식민주의 종교 흑역사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모두 그린 샤먼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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