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필드(W. G. Penfield)의 호문쿨루스(homunculus)에 따르면 가히 촉각 중추라 할 만한 신체 부위는 손과 입술(과 혀를 포함한 입 주위)이다. 그중 단연 손이다.

 

피부접촉 가운데 대부분을 손으로 한다. 닿기(대기), 만지기, 쥐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잡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받치기(받들기), 주무르기, 접기, 펴기, 벌리기, 찌르기, 짜기, 조르기···.

 

여기서 생사가 나뉘고, 애증이 교차한다. 여기서 성장과 퇴행이 엇갈리고, 상처와 치유가 자맥질한다. 여기서 웃음과 울음 쌍곡선이 그려지고, 이별과 상봉 운명이 결정된다. 여기서 한 생이 시작되고 한 생이 끝난다. 여기서 문명이 일어나고 문명이 스러진다. 여기서 지구가 안식하고 지구가 요동친다.

 

제국 백색 손은 소외와 격리를 극단화한다. 제국 백색 손은 기술과 돈을 극대화한다. 하여, 죽음과 증오, 퇴행과 상처, 울음과 이별이 비즈니스 전략으로 둔갑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더 이상 손으로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는다. 기계와 화학합성물질이 모든 짓을 한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에게 아픈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고장 난 기계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손 의학이다. 손으로 진단하고 손으로 치료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는 코도 손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는 입도 손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는 귀도 손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는 눈도 손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는 약도 손이다. 의자와 환자가 서로 마주 닿고(대고), 만지고, 쥐고, 쓰다듬고, 다독이고, 도닥이고, 문지르고, 비비고, 잡고, 닦고, 씻고, 두드리고, 긁고, 간질이고, 누르고, 받치고(받들고), 주무르고, 접고, 펴고, 벌리고, 찌르고, 짜면서 생명을 지켜간다.

 

나는 신학 하다가 40대 중반에 의학으로 돌아섰다. 입 쓰는 사람에서 손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이 손 쓰는 사람을 근원에서 요청하는 의학이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이다. 치료하는 손을 기다리는 생명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제국주의 기계와 화학합성물질이 일으킨 살상으로 신음하는 숲도 간절하고 화급하게 겸손한 인간 손을 기다린다. 참회와 감사와 흠숭을 실천할 손, 그 두 손을 모으고 나는 오늘도 숲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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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백색의학이 감각을 하찮게, 감정을 열등하게 여겨 뒷전 취급하는 동안, 제국 자본은 그 감각·감정을 수탈 거점으로 삼아 잔혹하게 파고들었다. 심리학자들을 매수하여 거대하고 치밀한 저인망 마케팅을 짰다. 이른바 터치 비즈니스’, ‘터치 산업이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감각·감정에 병든 사람 증상이나 완화해 터치 비즈니스, 터치 산업 먹잇감이 되게 함으로써, 제국 자본에 부역하는 꼴을 자초하고 말았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감각·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여, 어떻게 삶에서 건강하고 바르고 아름답게 발현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촉각 문제를 생각한다.

 

다시 말한다. 촉각은 모든 감각의 모체다. 아니 촉각이 바로 엄마다. 닿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는다. 실제로 제이차세계대전 때 엄마 잃은 아기들이 피부접촉을 통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일찍 죽음에 이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 슬프고 참혹한 사실에서 배우지 않는다. 여전히 아이들은 피부접촉 결핍에 시달린다.

 

산업 출산 문명 자체가 피부접촉을 가로막는다. 엄마 아닌 낯선 타인들이 장갑 끼고 받아내는 분만실 풍경을 떠올려보라. 더욱이 무통분만을 목적으로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이것은 아기와 엄마 사이 원초적 피부접촉을 제거한다. 출산 뒤 곧 엄마 품과 격리하는 신생아실 시스템, 조산아 인큐베이터 양육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다. 이후 양육 과정에서도 피부접촉을 소외시키는 거대한 격리사회 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돈벌이와 조기교육에 혈안이 된 부모는 아이를 전천후 피부접촉 결핍 상태로 유도한다. 결국 아이는 결핍을 보상받기 위해 중독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과도한 시각 자극에 노출되면서 공격 성향이 증폭된다. 아이들 폭력 문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아이가 자라 어른 되는 법이다. 이렇게 어른이 되면 무슨 수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겠나.

 

현재 어른에게도 접촉 결핍은 심각한 문제다. 시각 독재(tyrannis visifica) 편재 상태다. 거의 모든 일상과 업무가 TV와 컴퓨터 모니터로 이루어지는 전자 산업 시대에서 피부접촉은 유기된 지 오래다. 어른 또한 중독성 향락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틈을 터치 자본이 밀고 들어온다.

 

피부 감각은 언어나 감정이 일으키는 감각보다 10배 강력하다. 제국주의 백색 문명이 촉각을 매몰차게 버렸다가 다시 일으켜 착취 대상으로 삼은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촉각을 복권해야 한다는 요청 앞에서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은 우선 자기 진단·치료 행위부터 곡진하게 점검한다. 터치 의학이 명실상부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성찰한다. 그 뒤 치밀하고 집요하게 제국주의 백색의학과 맞선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의 거대한 노터치 의료를 무너뜨린다. 다른 길은 없다.

 

나는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 딸 생애 최초 시간을 산업 출산 시스템에 빼앗겼다. 나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게 내 딸 생후 1년여, 특히 아내 출산휴가가 끝난 뒤 기간에 거의 100% 내 손으로 키웠다. 영국 런던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 피부접촉이 아기 정서발달은 물론 성장 후 사회 적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버지 손을 통해 어머니 이외 바깥세상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많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나는 내 딸과 보낸 그 1년여를 팡이실이 신 축복이라 여긴다. 오늘 내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감수성, 그 녹색 촉각이 거기서 발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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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인간 기본 감각은 5, 그러니까 촉각·후각·미각·청각·시각으로 나눈다. 후각·미각·청각·시각은 촉각에서 비롯하였다. (수정 이전 정자까지 생명을 소급한다면 태초 감각은 후각이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이야기한다.) 촉각은 피부 감각 모체다. 모체 감각은 모체 피부에 남아 있다. 모체 피부는 소미 감각으로 나머지 4감을 여전히 지닌다.

 

4감은 각각 터미널로 독립 진화하였다. 후각 터미널은 코다. 미각 터미널은 입이다. 청각 터미널은 귀다. 시각 터미널은 눈이다. ···눈은 그러므로 특화된 피부 주름이다. 특화된 피부 주름이 하나 더 있다. 뇌다.

 

6감은 5감 말고 더 있다고 생각하는 감각이다. 사전적 정의는 알 수 없는 사물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정신·심리 작용이다. 정신·심리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6감은 모름지기 5감 네트워크가 빚어내는 전체 감각일 터이니 육감(肉感)이라 말하는 작용과 본령이 같다고 봐야 한다. 이 감각이 태초 뇌 감각이다. 거꾸로 말하면 5감 네트워크가 빚어낸 감각 진화가 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5감과 제6감의 감각은 인간 생명에게 무엇인가? 외부 세계에서 오는 자극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일은 기본적 생명 작용이다. 그 감각에 터 하여 모든 감정·인식·추론·판단·결단·실천이 일어난다. 최종 실천은 몸 작용이므로 결국은 새로운 몸 감각을 이루며 다시 나선 순환하는 운동이 생명 현상 실재다. 인간이 지닌 도구적 이성이 폭발적으로 증강하면서 감각은 외현(外現) 기술에 밀려났다. 심지어 어떤 감각, 예컨대 후각은 폄훼되었다. 이런 거대한 감각 둔화 기제에 편승한 의학이 제국주의 백색의학이다. 5감과 제6감 복원이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이다. 5감과 제6감 피부 생명 복권이 반제국주의 녹색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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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맘을 뇌라고 한다. 가소로운 무지요 가공할 범죄다. 뇌는 맘이지만 그 역은 아니다. 저들은 자기 종자 논리를 부수고도 그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렇다 치자. 그럼, 몸은 무언가? 답이 궁하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 따르면 맘은 의당 피부다. 피부는 비대칭 대칭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건이고, 맘은 그 가운데 파동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몸은 반대로 입자 축 가까이에서 운동한다. 100% 맘은 없다. 있다면 유령이다. 100% 몸은 없다. 있다면 시체다. 맘을 보면 몸이 보이고, 몸을 보면 맘이 보일 때, 비로소 전체 진실에 주의할 수 있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맘 병이라 판단하면 맘만 본다. 우울장애 환자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준다. 그 화학합성물질로 소화기관을 망가뜨린 뒤 소화제 준다. 몸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몸 병이라 판단하면 몸만 본다. 아토피 환자에게는 그저 스테로이드제를 준다. 맘 문제가 불거진 뒤 정신과 보낸다. 맘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백색의학 정신과 전문의가 장내세균을 조절하는 날은 언제일까. 아토피 전문의가 우울장애를 숙의하는 날은 언제일까. 그사이 아픈 이들은 스러져간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은 아무래도 녹색 죽비로 처맞아야 정신이 들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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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는 육체를 이루는 한 부분이 아니다. 피부는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근원이다. 디디에 앙지외 피부자아에 단 주해(2010. 8. 23.) 일부를 불러온다.

 

자아는 피부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피부는 자아다.”입니다. 사실 이 말만으로도 전복적입니다. 피부를 그런 맥락으로 읽어 본 예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은이는 주어와 술어 위치를 바꿈으로써 더한층 날카롭게 나아갑니다. 피부가 자아의 부분집합이 아니고, 자아가 피부의 부분집합인 상황을 만들어버립니다. 이 명제로써 한순간에 피부는 광대한 은유가 됩니다. 피부이자 피부를 넘어선, 현실과 상상을 가로지르는 절묘한 실재성을 획득합니다.

 

엄마와 아기가 살을 비비는 정밀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생태적 제국·자본주의 문명의 제약 불가능한 경계 침탈까지, 실로 엄청나게 광대한 은유가 피부라는 경계, 즉 가장자리에서 요동치는 사건입니다. 피부는 다만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역동적 사건 그 자체입니다. 지은이는 피부 기능 여덟 가지를 말합니다. 지탱하기, 담아주기, 항상성, 의미, 교감, 개별화, 성욕화, 에너지화.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피부 기능이라기보다 피부라는 사건이 다양하게 발현하는 양상이라 해야 하겠지요.

 

이 피부 사건에 두 가지를 더해야 한다. 하나는 호흡. 폐라는 호흡기관이 있음에도 전체 호흡 중 0.6%를 피부가 담당한다.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폐는 호흡 기능을 극대화하려고 접혀 들어간 피부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0.6% 호흡은 도리어 그 결정적 증거가 된다. 호흡을 기준으로 보면 생명은 피부라는 괄호 안에 있다.

 

다른 하나는 정보 인식. 디디에 앙지외가 적시한 교감과 다른 차원에서 피부는 소미한 정보 인식 사건을 일으킨다. 이는 면역체계와 직결된다. 교감 사건과 상보를 이루면서 에너지화와 대칭되기도 한다.

 

전체 맥락에서 보면, 생명은 다양한 피부 주름이다. 생명 사건은 다양하게 변주하는 피부 사건이다. 피부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감각, 의식,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피부는 개별 생명체로 일단 떼어서 생각하면 가장자리다.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생각하면 중심이다. 단독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결국 생명 중심은 피부다. ‘중심인 피부가 가장 깊다. 더 깊은 내면 따위는 없다.

 

이런 생명 이치는 어디서 발원했을까? 자크 타상은 나무처럼 생각하기에서 인간이 숲에서 태어났으며 나무 생명 이치를 몸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은유가 아님을 안다. 나무처럼 생각하기를 주해한 <10. 껍질이다>(알라딘 서재 2021.5.3.)를 불러온다.

 

  나무가 예민한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향적이지는 않다. 장기도 내면세계도 없는 나무는 철저히 외부를 향한다.

  나무를 정의하자면, ‘밖으로 드러나 많은 가지를 치고 곧게 서며, 땅과 하늘에서 자양분을 얻고 개체화한 동시에 결합한, 살아 있는 껍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껍질이라는 말의 다의적 특성을 이용한 정의다. 껍질이라는 말은 표면은 극대화하고 부피는 극소화한, 기하학적 의미를 담는다.(58)

 

살아 있는 존재가 표면을 넓히는 것은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확장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드높이는 것이다.(60)

 

나무는 자신에게 의지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의지할 줄 안다. 반면 인간은 세계를 복종시키고 제 입맛에 맞추려 한다···

  인간은 내면에 깊게 박힌, 거드름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 ,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에게서 지혜를 찾아야 한다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에서 우선 찾아보자.(62)

 

자크 타상의 나무는 껍질이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디디에 앙지외의 자아는 피부다.”라는 말과 포개진다. 나무도 인간도 우주 구조와 운동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면 결국 최소 범주 공변양자장도 표면이고, 최대 범주 우주 전체도 표면이라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삼라만상의 본령이 껍질이고 피부고 표면이다. 너무 작아 볼 수 없는 세계도 너무 커서 볼 수 없는 세계도 결국은 개체화한 동시에 결합한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바깥이 존재할 수 없듯 네트워킹 안쪽, 그러니까 내면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트워킹의 중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내면 운운하고 중심 운운하는 것은 죄다 망상이다. 망상은 없음에도 있다고 우기는 정신병이지만, 있도록 만들어서 바깥과 주변으로 여기는 존재를 복종시키고 수탈, 살해한다면 범죄다. 물론 현 상황에서는 양자 구분이 무의미하다. 정신병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치료와 징벌을 결합한 처결은 필수다. 나무 앞에 무릎 꿇려 그 껍질 본질을 직면하고 그 껍질 삶, 교류 가능성, 외부와의 공유영역, 예민한 부분을 극대화하도록 엄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신의 유연함과 세심한 주의력을 잇는 , 시간, 공간의 특수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철저히 외부를 향하는 것이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감도 드높이는 것임을 증명하게 된다. “세계와 영원히 합일하는 나무의 능력을 복원하게 된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에게는 내면이 없다. 다시 확인하거니와 인간은 중심이 아니다. 모두 평등하게 개체화한 동시에 결합한 네트워킹에 참여하는 껍질로 복귀하는 것만이 성불이며 구원이다.

 

나무는 껍질이다. 생명은 피부다. 피부가 일으키는 네트워킹, 그러니까 팡이실이, 이야말로 제국주의 반대말이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 이처럼 핍진한 표현은 다시 없다. 그러면

 

껍질, 그러니까 피부를, 어떻게 결결이 겹겹이 대해야 할까? 피부는 지극한 거룩함과 질탕한 즐거움이 비대칭 대칭을 이루는 사건이며 실재다. 이 이율배반과 모호함을 흔쾌히 흠뻑 끌어안아야 한다. 정중하게 모시는 일과 까불대며 함께 노는 일에 동시 감각이 일어나야 한다. 바라보기, 닿기, 만지기, 쓰다듬기, 다독이기, 도닥이기, 문지르기, 비비기, 닦기, 씻기, 두드리기, 때리기, 긁기, 간질이기, 누르기, 주무르기, 접기, 펴기, 핥기, 빨기, 깨물기, 벌리기, 끼워 넣기, 찌르기, 짜기, 째기, 자르기, 데우기, 태우기, 식히기, 적시기, 말리기, 불기, 뿌리기, 바르기, 싸매기···수많은 접촉이 수많은 생명 사건을 일으키므로 한꺼번에 주의하고 하나하나 집중해야 한다.

 

한의사인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침으로 피부를 찌르는 치료를 한다. 침 찌르기는 근본적으로 피부 사건 일으키기다. 침이 찔러지는 경혈 흐름인 경락은 피부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락이 혈관계·신경계·림프계들로 진화하기 이전 피부 미분화 정보·에너지 전달 체계였다고 본다. 물론 경락 이전 단계에서 피부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감각·기억·전달·치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포들 사이에 원시 팡이실이도 있었다. 그 원시 팡이실이가 나중에 경락을 거쳐 혈관계·신경계·림프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경락과 침을 발견한 일은 실로 위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침은 동종의학과 이종의학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여느 한의사와 달리, 침을 찌르기 전에 특별한 경우 말고는 반드시 침 찌를 곳에 가벼운 터치를 한다. 단순히 대기도 하고, 문지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누르기도 한다. 대부분은 가볍게 톡톡 두드린다. 가볍게 두드리는 동작은 매우 소미한 통증 유발, 또는 정보 전달 효과를 낸다. 손가락 머리(指頭)를 모으고 세워 두드리면 생체 광자(photon)들이 다량 방출된다. 생체 광자가 정보 전달을 통한 치료 능력을 발휘한다. 이들은 동종의학이다.

 

동종의학은 소미심심(小微沁心) 의학(medicina tenuissima)이다. 소미심심 의학은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난다. 피부에서 비롯하여 배어들고 배어남으로써 생명이 피부임을 증언하는 서사가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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