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독재 치하에 태어난 내가 박정희 쿠데타 이전까지 아는 바는 50환짜리 동전에 새겨진 얼굴이 이승만이라는 사실뿐이었다. 박정희 쿠데타가 일어난 사실조차 알 리 없던 어느 날 낯선 외지인이 들어와 종조부와 나누는 이야기에 김종필이란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먼 훗날 기억함으로써 그때 그런 일이 있었음을 되짚을 따름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 마을 학령기 이전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다만 푸른 숲과 파란 하늘, 그리고 맑은 물일 뿐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 뭐 이런 군가를 배우며, 왜 그래야 하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한 채 흘러가다가 1965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왔다.

 

사는 장소가 바뀌었을 뿐 세상일에 대한 무지는 매일반이었다. 쿠데타를 몰랐으니, 박정희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태초부터 존재한 물리 법칙 같은 무엇이었다. 가난에 짓눌려 허덕지덕 초등학교를 졸업장 없이 마쳤으나 자식 교육에 관심 없는 부모 덕분에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빈둥거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정규 중학교 아닌 고등공민학교를 중간에 보결로 들어가 기초 학력 누락된 채 중등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때 내 일생을 전복한 사건 둘이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국민윤리 선생 입에서 튀어나온 ‘박정희가 새벽 4시에 나라를 도둑질했다.’라는 말이었다. 이 진실은 천생 “반골”인 나를 일깨운 죽비로 줄곧 작용했다.

 

이 사건과 결합한 다른 사건은 증조부가 반제 항일 무장 투쟁 전사로서 왜놈 군대와 싸우다가 전사하셨다는 사실이었다. 알게 된 경위가 아이러니다. 박정희를 대놓고 비판하는 맹랑한 소년을 아버지는 무작스럽게 때렸다. 그러고는 증조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박정희가 친일 매국노였다는 사실을 몰랐음이 틀림없다. 부역질을 세탁할 요량으로 민족이 어떻고 충무공이 어떻고 떠들어댄 박정희에게 속아 신도가 됐으니 말이다. 박정희가 증조부와 결이 같은 사람이라 믿어 아들에게 진실을 밝혔음은 물론이다. 아버지는 끝내 흑역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환갑도 채 넘기기 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버지 그림자를 벗어난 나는 혼잣손으로 그 몽매에 맞서는 길을 찾아 나섰다. 법학도에서 신학도로 길을 바꾸는 동안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계, 특히 정치를 바라보는 눈을 열어갔다. 조직 활동 가장자리를 떠돌며 중심으로 가로질러 가는 변방살이 고단한 여정이었다. 내 작은 여정은 나라 큰 정치 변동과 맞물리면서 천천히 그러나 뒤돌아가지 않으면서 자주 민주를 향해 전진했다. 공부, 글쓰기, 강의로 출발해 노동운동 길섶과 노동자 지역 정치 활동 외곽에까지 스며들며 늦깎이 내 천명을 부끄럽고 소심하게 붙잡았다. 40년 뒤에도 그럴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6월항쟁 직전부터는 거리로 나섰다.

 

최루탄과 몽둥이로 무장한 경찰 앞에서 단체 속하지 않은 개인이 ‘가투’를 벌이는 일은 고투 너머 고독이었다. 이대 앞에서는 ‘지랄탄’이 머리에 떨어져 안경이 깨졌고, 서울역에서는 막다른 골목에서 혼자 백골단과 마주쳤고, 김귀정 열사가 죽임당한 날은 바로 그 백병원 앞에 있었다. 이 길목을 통과하면서 나는 또 다른 각성에 이르렀다. 서구 신학을 걷어치우고 국학, 그 가운데 의학, 그러니까 한의학으로 살길을 바꾸었다. 우유배달로 생계를 잇고 하루 2시간 자면서 수능 준비에 매진했다. 40대 중반쯤 빈 머리를 달달 볶아 마침내 한의대에 입학했다. 인제 와서 따져 보면, 이때 내가 반제 전선 들머리로 들어선 셈이었다.

 

제국에 부역하며 보편 의학을 전유한 양의학과 날 선 마주침이 한의대 다니는 6년 내내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질병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다를 뿐인데, 저들은 한의학을 아예 의학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상황은 지금도 동일하다. 의료 대중도 마찬가지 태도를 지닌다. 한의원은 한약방이고, 한의사는 침쟁이다. 한의원 연 지 21년째인데 아직도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환자가 있다. 온갖 병의원을 떠돌다 동네 경로당에서 ‘침이나 한번 맞아봐.’라는 소리 듣고 찾아온 환자가 두 번째 침 맞으러 와서는 ‘왜 낫지 않느냐?’ 따진다. 내가 대한민국을 식민지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이런 살풍경을 견디며 “가난한” 의료인으로 살아와 이제 70에 꼬리 달린 나이가 됐다. 최근 6년 동안은 비인간 생명, 특히 식물과 그 이전 생명, 그러다가 제국주의를 정색하고 한무릎 공부하면서 내 반제 전선은 확대 심화 일로를 걸었다. 갈수록 의식과 실천에 날이 푸르러졌다. 그 와중에 노무현을 잃고, 박근혜를 쫓아내고, 윤석열과 김명신이 일으킨 내란을 겪다가 막아내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때 25번, 윤석열·김명신 때 50번 거리에 서서 자주 민주 세상 꿈을 이어갔다. 이재명 정부를 세우는 데 나름 애를 다 썼다. 늙바탕에 모멸스러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뿔싸, 이 노고가 도로에 지나지 않을 줄은!

 

아랫글은 내가 지난 9월 말 페이스북에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어서>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이다. 내란 세력을 척결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 곧 숭미 모일 매국 세력을 몰아내고 자주 국가를 세우는 일이라 믿고 적극 지지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기대를 저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말 그대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썼다. 윤석열이 검란을 일으킬 때부터 내 입에는 욕설이 다글다글 했다. 그 물건 잡고 나서 욕설이 없어졌는데 요즘 다시 달렸다. 그때보다 훨씬 더 심하다. 국힘 종자들은 유서 깊은 도둑 떼니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민주당 간판 걸고 된 대통령이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실로 암울한 때다.


 

[“나는 60대 후반이다. 유권자가 된 이후, 여태껏 투표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고 사전 투표했다. 지금 친일 매판 집단 총궐기를 막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모멸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판단 딱 하나 때문이다.” 2022년 대선 때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윤석열과 이재명, 둘 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으나, 윤가 놈 찍으면 곧장 식민지로 회귀한다는 판단 아래 이런 글을 올렸다. 내 트위터 사상 최고 반응(좋아요! 1,122/ 리트윗 522/ 댓글 30)을 이끌었음에도, 비당원으로서 어떤 민주당 당원보다 큰 효과를 냈음에도 결과는 주지하는 바다.

 

내가 둘 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이유는 이렇다. 윤석열에 관해 뭐 더 말할 며리는 없으나 비교 차원에서 얘기하면, 얘한테서는 ‘사창가 양아치 두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 될 때, 임명장 받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근데 이 자가 대통령과 눈을 맞추지 않는 거다. 아, 이 새끼 사기꾼이구나! 했다. 이재명은 그가 성남시장일 때 세월호 광장에서 마주쳤다. 일행을 대동하고 걸어가며 담소하는 모습을 3m 이내 거리에서 쭉 지켜보는 동안 받은 첫인상은 이거다: 아, 얘는 시장 동네 골목대장이구나!

 

양아치 두목과 골목대장, 전자는 거들먹거리고 후자는 으스댄다는 점에서 다르다. 같은 점이 중요하다. 둘 다 공적 위상과 사적 정체성을 혼동한다. 윤석열이 최고 헌법기관인 대통령 위상을 어떻게 사유화했는지는 이미 겪은 바다. 목하 우리가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것은 이재명의 사유화다. 그 상징이자 핵심이 SNS 활동이다. 최고 헌법기관의 SNS와 자연인의 SNS가 한 데 뒤엉켜 있다. 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나는 이 문제를 흔히들 얘기하는 윤리 차원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나쁜 놈’이 아니다. 발달이 어느 시점에서 멈춘 아이일 뿐이다. 자랄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그 아이는 페르소나 어른으로 급격하게 웃자라서 마침내 최고 헌법기관까지 되었다. 여기부터 더 심대한 문제로 비화한다.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 대부분이 매혹되는 진원은 소년공을 기축으로 하는 입지전 서사다. 십분 공감하고 이해한다. 내가 두 번에 걸쳐 그에게 표를 주고, 그러라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면서 떨쳐내지 못한 걱정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너무나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중고등학교는 아예 발길조차 들이지도 못했고, 검정고시 거쳐 대학 가서는 사시 공부에 몰두했고, 소년공 시절에 입은 상해로 병역의무가 면제되었으니, 그는 사회 제도와 조직 거의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변호사라는 우월한 조건을 타고 사회·정치판에 등장한 뒤, 조선일보와 검찰, 심지어 민주당 일각이 꾸민 악마화를 딛고 일어나 비교적 짧은 시간에 파라곤이 되어버렸다. 이 영웅신화에 드리워진 그림자,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내 걱정이 바로 거기를 향한다.

 

이 영웅신화에 드리워진 그림자란 무엇일까? 사회 제도와 조직을 경험하는 동안 교육, 사회관계를 통해 함양할 수 있는 대의 정서와 명분 의식 누락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전체를 세계 정치·경제 체제 안에서 범주적으로 파악하는 거대 담론부터 한 개인이 처한 사회정치적 위치 지향을 모색하는 치열한 고뇌까지 아우르는 “학습”이 현장 실무와 행정 능력으로 치환되어 이른바 효능감 중심 도구적 “실용주의”를 증폭시켰다는 말이다.

 

실제로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인제까지 진행 중인 친명: 반명 분쟁 소용돌이에서 친명을 자처하는 일베충 뉴이재명 아닌 진심 친명인 민주당 당원들이 뽑아 든 전가 보도가 대통령 효능감이다. 십분 공감하고 이해한다. 실제로 취임 초 국무회의 중계방송, 외교 등 치밀하고 기민한 행정 달인으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찬사를 얻었다. 나 또한 석열이 놈 검란 때부터 입에 붙어 다니던 쌍욕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선동(!)하길 잘했다고 주위 사방에 떠들고 다녔다. 내가 싸한 느낌을 일차로 감지한 것은 검찰 개혁 문제부터였다.

 

정성호를 법무부 장관에 앉힐 때, 뭔가 툭 떨어지는 느낌을 애써 감추었던 까닭은, 흔히 말하는, 이재명은 고수다, 무슨 생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는 논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불길한 기시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시간만 흐르고 정부가 들고 간 개혁안은 오리무중 여부 묘연에 휩싸였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김민석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복마전으로 터져나가 이 지경까지 왔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효능감은 사라졌다. 아니다. 추종자들이 느끼는 효능‘감’은 여전했지만, 효능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다시, 아니다. 처음부터 실체로서 효능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옳다. 추종자들이 효능 아닌 효능감을 내세우는 행위가 이미, 효능이 없는데도 느끼는 허구 이미지 배치라는 증거다. 그 허구 감정이 믿어 의심치 않는 고수 이재명을 더욱 가뭇없는 소실점으로 끌고 간다.

 

그렇게 가면 돌아올 수 없다. 길이 일방통행이라서가 아니다. 따라가는 주체가 뒤돌아볼 줄 모르는-메타 인지 또는 사유를 하지 못하는- 아이기 때문이다. 뉴이재명 떼거리뿐 아니라 김민석 휘하 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소속 국회의원 거의 전부가 이 아이“스러움”에 집단 감염되어 있다. 참으로 암담하다. 참담하다. 민주당이 모진 종자들 숙주로 떨어졌으니 나라 앞날이 잿빛이다.

 

이 시점에서 정색하고 톺아본다. 본디 민주당은 독립운동했던 민족주의, 좌파 진영 사람들을 자유당과 손잡고 때려잡은 집단에서 발원했다. 내 도식으로 표현하면, 민주당 주류는 B급 친일·친미 부역자, A급 엘리트 중심이고, 자유당은 A급 친일·친미 부역자, B급 엘리트 중심이다. 결국 민주당은 제 운명의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 셈이다. 거물급은 아니지만 명백한 자발 능동 적극 친일 부역자 집안 출신인 백낙청이나 식민 치하 양의사 개신교도 집안 출신인 김용옥이 현 정국에서 대통령 손을 들어 준 사건이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민주당 정체 상징이다.

 

이 민주당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참 지지자라면 등을 돌려서도 냉소와 풍자에 그쳐서도 안 된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에 나서야 한다. 진보 좌파를 속임수로 전유한 채 제국주의·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가는 민주당을 살리고 싶다면,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 최고 통일전선을 구축해 참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모름지기 마지막 기회다. 시간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옳다’라는 말을 빌어와 마무리 문장에 갈음한다.]

 


오늘 다시 살펴보며 생각을 좀 바꾼다. 대통령 이재명이 하는 정치만 놓고 판단해야겠지만 개인 속성과 전혀 무관할 리 없으니 그 문제를 되짚는다. 회의 석상에서나 SNS에서 하는 언행을 보면 그는 감성과 이성, 통틀어 인성 전체에 문제가 있는 인물로 판단된다. 대한민국 최고 헌법기관이 공적으로 드러내는 언행에 사적 심기와 격정, 심지어 조롱까지 여과하지 않고 담아낸다. 공적 기관이 지녀야 할 절제와 예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그래서 어쩌라고?” 식 태도가 기본에 깔린 풍경을 기탄없이 연출한다. 개성이라고 말하기에는 도덕적 흠결 요소가 너무 뚜렷하다. 이런 기조에서 발원한 더욱 중대한 정치적 문제가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인용 글에서 ‘대의 정서와 명분 의식 누락’이 ‘도구적 실용주의’를 증폭시켰다고 한 말을 소환해 좀 더 깊이 논의한다. 이재명이 지금까지 보인 실용주의는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위해 보수/우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요직에 기용하고 SNS에서 일베나 펨코와 접속하며 연결성을 도모하는 식이다.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자칭 타칭 이 나라에서 보수/우파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모두 보수/우파가 아니다. 심지어 극우라는 명칭조차도 그들에겐 과분하다. 그들은 그냥 매국노일 뿐이다. 일본과 미국에 민족과 제 영혼을 팔아먹은 도둑에 지나지 않는다. 실용주의는 매국 야합이다.

 

이재명에게 누락된 대의 정서의 골갱이 가운데 하나가 “자주”다; 반제국주의 기치다. 대한민국이 사실상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근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각을 그가 분명히 한 적이 없다. 내가 이재명 정체성을 확인한 순간 가장 절망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다. 비록 무지렁이로나마 거의 한평생을 반제 전선에서 살아오다가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민주당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후보 시절 “푸닥거리 한번 해야죠.”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 내 머리가 그렇게 야속할 수 없었다. 차마 머리를 떼어내지는 못하고 미친 듯이 술이나 퍼마실 뿐이었다. 나 죽기 전에 기회는 오지 않으리라; 어쩌면 영영 그러리라.


강감찬 숲


이런 관지에서 내 인생 70년을 회고하고 증언하다니 여간 허망하지 않다.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나는 그 마음 그대로 끌어안고 낙성대 인근 ‘강감찬 숲’과 그 건너편 ‘이순신 숲’-충무공 선영에 내가 붙인 이름-을 천천히 걷는다. 외적에 맞서 나라를 구해내신 두 분 성웅을 영(靈)에 모시며 초라한 내 인생과 가엾은 내 조국을 위해 숲과 더불어 처연히 기도 올린다; 여태 온 길을 그대로 가도 되는지 여쭙는다; 달라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여쭙는다. 답을 듣지 못한 채 나는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알 수 있으리라 믿어서가 아니다; 질문이 더 묵직하고 옹골차지기를 바라서다. 아, 아무쪼록!


 이순신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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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천하 시인이 등단 30주년을 맞아 출판사 먼곳프레스가 기획·출판한 시선집 『엄마가 떠나자 엄마가 많아졌다』를 품고 Book talk를 열었다. 시집 제목이 말하듯 30년 동안 펴낸 시집 7권에서 엄마 관련 시 45수를 엄선한 뒤 새 시 3수를 더해 엮어냈다. 시 가운데 엄마 관련 시만으로 시선집을 낼 수 있는 시인은 미상불 김선우밖에 없지 싶다.

 

행사장에 미리 도착해 김선우를 만나 반가이 얼싸안은 다음 얼굴 잘 보이는 왼쪽 중간 자리에 앉았다. 작년 이맘때 『축 생일』 Book talk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풍겨왔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아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출발 직후부터 눈물샘이 터져 흐르더니 급기야 강을 이루어 달리고 바다가 되었다. “엄마”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워낙 낭송 “욕심”-본인 표현-이 많은 김선우가 사회자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긴 시 3부작을 내리읽는다. 독자들은 그 소리를 따라가며 운다. 독자만이 아니다. 김선우도 사회자도 어떤 대목에서든 언제든지 울 준비를 갖추고 기다린다는 듯 무작위로 눈물을 쏟아낸다. 본디 여기 풍경이 그러하다는 선포처럼 말이다. 맹숭맹숭한 내가 기이할 따름이다.

 

각기 다른 엄마 서사를 품은 사람들이 만나 서로 같은 감동을 나누는 이 시공에서 나 홀로 절해고도가 된 데는 그만한 내력이 있으렷다. 뭐, 그리 복잡한 일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전 생애에 걸쳐 곱디곱고 밉디미운 엄마 서사가 내게는 형성되지 않았다는 간단한 사실이 내력 전부다. 그 무감(無感)이 내 삶 전반에 걸쳐 체온을 낮추어버렸다.

 

실은 Book talk 이틀 전 김선우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 낭송을 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선뜻 영광입니다, 받지 못하고 망설였다. 김선우는 내가 부담스러워한다는 뜻으로 읽고 선선히 철회했다. 그날 덜덜 떨면서라도 시를 낭송했더라면 나도 바다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볕을 쬐어야 움직이는 변온동물 상태를 면하지 않았을까.

 

행사가 끝나고 저자 사인받을 때 엄마 서사가 없어서 시인 되지 못했다는 말이 툭 뱉어진다. 시인은 공감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시인 대신 green shaman 하시잖아요. 그렇구나. 시인은 사람을 품었고 나는 숲을 품었구나. 둘 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탐욕이구나. 밤새 뒤척였으나 평소처럼 일어나 출근길 숲을 향한다. 구름에 몸 맡겨 새벽달이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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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릎공부가 첫발을 내디딘 2020년 초가을 이전에도 낭풀은 언제 어디서나 내 관심사였다. 숲 아닌 도시 거리를 걸을 때 역시 유심히 그들을 살펴 왔다. 예컨대 광화문 교보를 들를 때는 동쪽 세종로를 출발해 청진동, 수송동, 견지동, 관훈동, 경운동, 운니동, 원서동, 와룡동을 거치며 나무 순례를 했다. 6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내가 눈여겨보던 나무들은 대부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인간이 손을 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며리다.

 

교보 뒤 종로1길은 옛 중학천 또는 삼청동천이 흐르던 곳이다. 그 흔적이나마 기억하게 하려 했을까, 짧은 인공 수로가 설치되었다. 옮겨 심었는지 자생인지 알 수 없는 버드나무 몇 그루를 발견하고 크게 반가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후 그 수로 연장선에 버드나무길을 누군가 조성했다. 주위 경관과 아직은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눈에 익지 않았지만, 버드나무가 많아져 걷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최근 오랜만에 다시 가보았더니 고약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옮겨 심은 버드나무가 그 땅에 든든히 뿌리 내려 힘이 붙었다 싶었는지 가지치기를 단호하게 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지치기가 아니고 분기한 줄기 중동 쳐내기, 그러니까 이른바 닭발 가로수 만들기였다. 그렇게 중동을 쳐내면 그 둘레 또는 부근에서 잔가지가 여럿 일어나 무성한 잎을 피우므로 그늘 효과를 극치로 끌어올릴 수 있어서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잎이 없는 동안에는 말 그대로 닭발 형상을 띤 기형 버드나무로 노출된다. 뒤틀린 인간중심주의다.


 

‘짜침’ 넘은 ‘빡침’을 달래며 청진동 언저리를 걸어 종로5길로 들어선다. 석탄회관 옆 건물 무슨 재보험 회사 건물 앞에는 원래 3백 세 노송 두 분이 살고 계셨다. 물론 영업 차원에서 ‘모셔’ 왔을 테다. 그 건물이 헐리고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당연히 두 분은 또 어디론가 ‘모셔’ 갔으리라. 그렇게 뿌리 잘림 거듭 당하면서도 살아낼 생명을 기리기에는 인간 행태가 무심 잔학하다. 내 나무 순례는 점점 더 자욱한 절망 검푸른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율곡로2길과 4길 사이 이름도 없는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수송공원이 나온다. 거기에는 내가 천수관음으로 받들던 2백여 세 회화나무 한 분이 계셨다. 언제인지 왜인지 모르게 베어지셨다. 지금은 등걸 속이 분해된 채 쓰레기통 취급 받으면서도 어린 가지 생명들을 키워내고 계신다. 또 얼마 뒤엔 그 어린 가지마저 잘려 나가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천수관음 본분을 다하실 것임이 틀림없다. 들를 때마다 안아드렸던 기억을 더욱 또렷이 하며 떠난다.



 

공원 옆 조계사로 들어간다. 기복받이로 내몰린 대웅전 앞 회화나무(4백 세 이상으로 추정), 그 옆 백송(3백 세 이상으로 추정), 수수꽃다리(80세)를 자비안(慈悲眼)으로 다독여드리며 지난다. 내 눈길은 우정총국 시민광장에 늘어선 자작나무로 향한다. 냉대 생명을 아열대 도시에 억지로 모셔 기어이 사달이 났다. 외대 생장 본성을 견딜 수 없어서 줄기 분기를 일으킨 탓에 단정하던 본디 자태를 잃고 헝클어져 버렸다. 도시 미관은 나무 신음으로 우거져 있다.


 

우정국로 건너 인사동9길을 따라가다 백악미술관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율곡 선생 생가터에 4백여 년째 살고 계신 회화나무 한 분을 뵐 수 있다. 본디 음습한 곳인데 사방으로 고층 건물이 에워싸서 더욱 우중충하다. 그래서 회화나무를 모셨다 하거니와 오늘 그분은 육중한 피로감에 잠겨 계신 듯하다. 그 뒤편 공간을 흡연 장소로 지정한 탓에, 오랫동안 시달리셨다. 금연으로 돌려놓았어도 담배꽁초가 낭자하다. 노거수 깊은 기침 소리 우렁하다.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가을비보다 도시 나무 비가가 내 육신과 영혼을 착잡히 적신다. 창덕궁 돈화문 바로 옆에 계신 5백 세 은행나무께 이르기까지 걷는 동안 들은 도시 나무 비가 곡조와 가사를 모두 전하지 못해 죄스러움이 더해진다. 이렇게 계속하다간 내 복장이 터져나가지 싶다. 비그이는 일사 그른 듯하여 따스한 국물에 소주 한잔할 곳을 찾아 나선다. 이래저래 오늘 소주는 상가로운 위안일 테니 처음부터 두 병 시킨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이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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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져 온 일극 지배 체제가 흔들리고 다극 질서가 부상하는, 거대한 지정학적 단층의 충돌을 목도하고 있다. 여러 대륙에서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분쟁과 정치 지형의 변화는 서방 중심 일극 체제가 안고 있던 내적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 한복판에 예멘이 있다. 지금 예멘과 사우디 간의 군사적 충돌은 단순한 양국 간 갈등을 넘어 지역 안보와 세계 질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쪽은 사우디였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불법적 공격으로 살해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귀국하던 안사르알라(후티) 정부의 조문단을 태운 비행기가 7월 13일 사나 국제공항에 내리려던 순간, 사우디 주도 연합군이 활주로를 폭격한 것이다. 비행기가 급히 인근 호데이다로 회항해 참사는 피했으나, 안사르알라는 곧바로 사우디 남부 아브하 공항을 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으로 맞대응했고, 7월 20일에는 ‘눈에는 눈’의 원칙을 내세워 사우디에 대한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2022년 휴전 이후에도 사우디가 사나 공항과 항만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아 온 것이 그 배경이다. 9월 들어 안사르알라는 공세를 강화해 홍해 연안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일대를 손에 넣기에 이른다. 10월 5일 사우디가 지원하는 이른바 ‘대통령지도위원회’가 ‘예멘의 새벽’ 작전으로 반격에 나서자, 안사르알라는 리야드 킹칼리드 국제공항과 다란의 아람코 시설을 연이어 타격했다. 사우디와 메카 방위동맹을 맺은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이 군사 지원을 압박받는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도 사우디에 군사 고문단을 파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전쟁은 세계 권력의 중심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첨예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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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의미를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세계 전체의 지형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적 변동은 저마다 얼굴이 달라서, 어떤 곳에서는 진보 세력이 후퇴하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반제국주의 연대가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엇갈리는 흐름들을 한 겹 걷어 내고 보면, 그 밑바닥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과 여러 힘의 중심이 공존하는 다극 질서로 나아가려는 세력 사이의 거대한 대결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일 것이다.
남미에서는 진보 블록이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10월 4일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노동자당의 룰라 다 실바는 45.16%를 얻어, 47.03%를 얻은 우파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에게 뒤졌다. 25일 결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도 두 후보는 51 대 49로 팽팽히 맞서 있다. 결과와 무관하게, 남미 좌파가 대중적 기반을 지키는 데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졌다.
아프리카 사헬 지역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부르키나파소·말리·니제르는 프랑스를 비롯한 옛 종주국의 신식민주의적 통제에 맞서 사헬국가동맹(AES)을 결성하고, 2025년 1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탈퇴를 매듭지었다. 부르키나파소의 이브라힘 트라오레 대통령이 집권 이후 넘긴 쿠데타·암살 기도만도 최소 다섯 차례에 이른다. 반제국주의 연대와 이를 겨냥한 정치적·경제적 사보타주가 맞부딪치는 최전선이 바로 이곳이다.
유럽의 상황은 모순적이다. 나토를 앞세워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이 개입했지만, 치솟는 에너지 비용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경제적·정치적 취약성이 극에 달했다. 프랑스의 마크롱과 독일의 메르츠는 바닥권 지지율에도 대우크라이나 지원과 반러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지율이 마이너스 40대까지 추락한 스타머가 물러나고 앤디 버넘이 총리에 올랐다. 지도자는 바뀌었으나 우크라이나 정책의 큰 틀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몰도바·아르메니아 같은 구소련 국가들은 유럽연합 가입을 내세우며 러시아와 척지는 길을 택하고, 루마니아 등 옛 바르샤바조약 국가들은 반러 최전선을 자처한다. 글로벌 다극화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집단서방의 쇠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무대다. 미국과 유럽이 4년 넘게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와 자금을 쏟아부었음에도, 우크라이나는 지금 사실상 붕괴의 문턱에 서 있다.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더디지만 꾸준히 전진하는 동안 우크라이나는 드론으로 러시아 본토와 항만을 두드리며 반격을 꾀해 왔으나,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형편이다. 올여름에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흑해의 수출 항로마저 사실상 막혀, 수출 소득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던 농산물, 그 가운데서도 곡물의 수출 전망이 반 토막 났다. 겨울을 앞두고 발전소와 송전망을 겨냥한 공습이 거세지면서 에너지와 경제도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한때 ‘러시아의 전략적 패배’를 장담하던 워싱턴이 이제 현 전선에서의 휴전을 저울질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서방이 이 전쟁에서 무엇을 잃었는지를 말해준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제국의 반격이 한발 앞서 성과를 거두는 모양새다. 2024년 8월 방글라데시에서는 학생 시위 끝에 15년간 집권한 셰이크 하시나 정권이 무너졌고, 무함마드 유누스 과도정부를 거쳐 올해 2월 총선에서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이 압승했다. 네팔에서도 지난해 9월 이른바 ‘Z세대 시위’로 K. P. 샤르마 올리 총리가 물러났으며, 올해 3월 총선을 거쳐 창당 4년 된 국민독립당(RSP)의 발렌 샤 정부가 들어선 상태다. 부패와 청년 실업에 대한 분노가 시위의 불씨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한 급속한 동원 끝에 미국과 불편한 관계였던 하시나 정권과 친중 노선의 올리 정권이 차례로 무너진 과정은 서방이 여러 나라에서 연출해 온 색깔 혁명의 각본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인도네시아라고 다를 바 없다. 지난해 1월 동남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브릭스 정회원이 되고 러시아·중국과 관계를 다져 온 프라보워 정부를 향해, 지난해 8월에 이어 올해 6월에도 만화 <원피스>의 해적 깃발을 앞세운 학생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연료 가격 인상과 재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 계기였으나, 시위의 칼끝이 다극화로 기운 정부를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그 배후에 미국의 그림자를 읽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브릭스 창립 회원국 인도로도 이 물결이 번지는 중이다. 올해 5월 실업 청년을 바퀴벌레에 빗댄 대법원장의 발언에 반발해 온라인 풍자로 출발한 ‘바퀴벌레 인민당(CJP)’은 6월 시험지 유출 사태를 계기로 교육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10월 들어서는 선거관리위원장 퇴진을 내건 전국 캠페인으로 판을 키우고 있다. 모디 정부의 집권 인도인민당(BJP) 인사들은 이를 국경 너머의 ‘영향력 공작’으로 몰아세우며 해외 자금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비판을 음모론으로 덮으려는 상투적 수법이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그렇다고 미국의 손길을 배제할 일도 아니다. 브릭스에 몸담으면서도 쿼드에 발을 걸치고 이스라엘과 밀착해 온 모디 정부는 일극과 다극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쳐 왔고, 그런 인도를 어느 편에 묶어 둘지에 워싱턴의 사활이 걸려 있다. 배후가 드러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 본 장면이 인도에서 되풀이될 조짐인지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동아시아만큼 미국 패권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곳도 없다.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막고자 대만, 필리핀, 호주, 일본, 한국을 규합해 군사 동맹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2022년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의 대만 포위·봉쇄 훈련은 오히려 상시화됐다. 지난해 12월 말 ‘정의사명-2025’ 훈련에 이어, 올여름에도 지룽항과 가오슝항 봉쇄를 상정한 실사격 훈련이 거듭되었으니, 이제 이런 훈련은 일상이 된 셈이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그리고 올해 이란 전쟁에 막대한 군사 자원을 쏟아부은 미국의 ‘물리적’ 힘은 이제 ‘세계 경찰’ 역할을 떠받치기에 버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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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륙마다 일극과 다극의 저울이 엇갈리게 흔들리고 있지만, 그 추가 가장 크게,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서아시아다. 미국의 물리적 통제력이 약화된 자리에서, 이란과 예멘을 둘러싼 분쟁은 세계 경제의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 이후, 세계 석유·LNG 물동량의 5분의 1이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막혔다. 6월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가 해협 재개방을 약속했지만, 8월 17일 60일 시한이 아무 합의 없이 지나갔고 해협 통제권은 여전히 다툼 중이다.
이 공백을 메우던 것이 홍해였다. 사우디가 동서 횡단 송유관을 최대치로 가동해 원유를 홍해 연안으로 돌린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길목을 안사르알라가 쥐었다. 앞서 본 사우디 항만 봉쇄 선언과 해협 연안 장악으로 이어진 행보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걸프 산유국의 수출로를 동시에 겨눈다. 8월 기준 해협 통과 컨테이너 선박은 2023년 위기 이전의 23% 수준에 그쳤고, 대형 선사들의 수에즈 복귀 계획도 번번이 미뤄졌다.
이는 미 해군이 과거 압도적 물리력으로 보장해 온 ‘항행의 자유’가 더 이상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증거다. 여러 전선을 동시에 관리할 수 없게 된 미국은 글로벌 물류의 두 동맥,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어느 쪽도 지켜내지 못한다. 그 대가는 운임과 보험료, 에너지 가격을 타고 세계 경제 전체에 전가되며,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해양 패권 위에 세워진 달러 중심 경제 체제의 신뢰를 갉아먹을 것이다.
그러나 해협의 주인이 누구냐는 결국 땅 위의 싸움이 판가름한다. 그 싸움이 벌어지는 아랍반도야말로, 세계 곳곳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며 맞서고 있는 일극 질서와 다극 질서 가운데 어느 쪽으로 저울이 기울지를 가장 먼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곳이다. 한쪽에는 반세기 넘게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석유와 달러를 맞바꾸며 서방 질서의 버팀목 노릇을 해 온 사우디 왕정이 있고, 다른 쪽에는 십 년 넘는 공습과 봉쇄를 견뎌 내며 글로벌 사우스 반제국주의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안사르알라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사우디와 안사르알라의 전쟁은 두 질서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분기점이다.
사우디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다. 전투기 100여 대를 동원한 대대적 공습에도, 소위 ‘정부군’이 모카와 해협 인근 요충지를 되찾았다는 주장에도, 안사르알라는 꺾이지 않았다. 안사르알라는 그 주장을 부인하며 오히려 리야드 공항과 아람코 시설에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붓고 있다. 10월 6~12일 공항 공격으로만 최소 20명이 숨지고 370명 넘게 다쳤으며, 10개 항공사가 리야드 노선을 멈췄다. 사우디는 자국 방공망이 왜 뚫렸는지 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요격 미사일 재고가 압박을 받자 파키스탄·영국·프랑스·이집트에 방어 지원을 요청하기까지 했지만, 선뜻 응한 나라는 아직 없다. 공세를 시작한 쪽은 사우디였지만, 이제 사우디는 자국 수도의 하늘조차 지켜 내지 못하는 처지다. 안사르알라는 사우디 본토 어디든 상시 타격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주목할 것은 사우디 편에 선 세력들의 태도다. 미국은 이란을 공습하며 전쟁을 시작했지만 이란이 틀어막은 호르무즈 해협을 끝내 무력으로 열지 못했다. 앞서 보았듯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마저 시한을 넘긴 마당에, 이란은 오만과 함께 해협 통항 관리 체계를 만들어 수수료를 받겠다고 나섰을 정도다. 미국 패권의 대표적 옹호자인 신보수주의 논객 로버트 케이건조차 5월 애틀랜틱 기고에서 이를 되돌릴 수 없는 결정적 패배로 규정했고, 6월에는 미국이 이미 이 전쟁에서 졌다고 단언하기에 이른다. 이런 처지의 미국으로서는 예멘에 직접 뛰어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정보 지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7일 출범한 메카 방위동맹의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은 10월 5일 동맹을 처음 발동하고 ‘신속 배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성지 방어 등 방어적 역할에 선을 그었고, 튀르키예 의회는 아직 협정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어느 나라도 예멘 영토 안의 공세 작전에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전 CIA 분석관 래리 존슨이 10월 13일 대안 매체 <트랜지션 프로토콜>에서 진단했듯, 빈 살만은 예멘과의 전쟁을 다시 일으킨 대가를 석유 시설이 타격받는 가운데 동맹 없이 홀로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사우디가 기댈 곳은 결국 어디인가. <트랜지션 프로토콜>의 진행자 줄피카르 알리는 사우디에 파견된 파키스탄군 고위 인사가 리야드 작전실(워룸)에서 이스라엘의 장성급 정보 관계자가 참석한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자신 있게 밝히고 있다. 같은 채널에 여러 차례 출연한 페페 에스코바르도 알리와 함께 이 내용을 거듭 확인해 왔다. 리야드 작전실에서 미 중부사령부(센트콤), 이스라엘 장교들과 한방에 앉아 있는 파키스탄 장교들이, 표적 선정에 이스라엘이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아직 주류 언론에서 교차 확인되지 않은 증언이지만, 사실이라면 그 의미는 무겁다. 성지 방어를 명분으로 메카 동맹을 발동한 빈 살만이, 동맹국들이 공세에서 발을 빼자, 이슬람권 전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손을 잡는 모험에 나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안사르알라가 장거리 타격으로 사우디 본토를 계속 흔들고, 미국과 동맹국들의 지원이 정보·장비 수준에 머문다면 아랍반도의 권력 지형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이는 이란과의 대결에서 이미 한계를 드러낸 미국이 서아시아 전역에서 영향력을 잃고, 궁극적으로 역외로 밀려날 가능성마저 열어 놓는 셈이다. 예멘 전쟁은 서방과 그에 기대어 온 역내 왕정 질서의 쇠퇴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서방이 자신의 쇠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없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남은 자원을 쥐어짜 서아시아의 헤게모니 누수를 막으려 할 것이다. 이미 그 징후는 뚜렷하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리야드 공항 공격을 강하게 규탄하며 사우디를 외교적으로 엄호하고 나선 것도 그 하나다.
대이란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하고 예멘에도 정면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처지라 해서, 미국이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황을 되돌리려 한다. 중부사령부(센트콤)에 따르면 7월 14일 이란 항만 봉쇄가 시작된 뒤 135척의 선박이 회항했고, 이란산 원유를 나르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 유조선 10척이 파괴됐으며, 사우디에는 정보 지원도 제공되고 있다. 앞서 본 리야드 워룸 증언, 곧 센트콤 인사가 이스라엘 정보 장성과 함께 사우디 작전실에 앉아 있다는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이 직접 참전이라는 정치적 부담은 피하면서 이스라엘을 앞세워 사우디의 전쟁을 사실상 지휘하는 구도로 옮겨 갔다는 신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쇠퇴하는 제국이 택하는 전형적인 방식, 곧 대리와 그림자를 통한 반격이다.
앞으로는 홍해 인근의 해상 통제 강화, 이란과 예멘에 대한 고강도 경제·금융 제재가 더해질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역내 수니파 국가들을 결집해 시아파 이란과 맞세우는 전통적인 분할통치 전략도 다시 꺼내 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오래된 카드는 예전처럼 통하지 않는다. 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이 맺은 메카 방위동맹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동맹이 10월 5일 발동 성명에서 성지 메카와 메디나의 방어만을 앞세운 것은,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이 사우디의 예멘 전쟁에 공세적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고 방어적 역할에 머물겠다는 선 긋기였다. 더구나 이란은 이 동맹을 반이란 연합으로 규정하지 않고 조심스러운 지지를 보내 왔으며, 이란 의회 측 인사는 가입 초청을 받아 검토 중이라며 역내 국가들이 스스로의 안보 우산을 찾는 것은 이란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바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메카 동맹은 수니 대 시아의 종파 전선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 우산 바깥에서 역내 국가들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체제, 이를테면 미국이 빠진 서아시아판 나토의 맹아에 가깝다. 이는 역내 국가 주도의 안보 질서를 내세워 온 중국이 바라는 구도와도 맞아떨어진다. 사정이 이러니 쇠퇴하는 제국에 남은 수단이라고는 역내 대리 세력을 앞세워 혼란을 키움으로써 개입 명분을 새로 만들어 내는, 극단적인 방식밖에 없다.
미국의 약해진 물리력을 간파한 다극화 진영도 치밀하게 움직인다. 이란은 안사르알라에 대한 드론·정밀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과 기술 이전을 강화해 서방의 재래식 전력을 무력화하는 한편, 이미 사우디와 안사르알라 사이의 중재를 제안하며 외교적 존재감도 키우고 있다. 호르무즈를 쥔 이란과 바브엘만데브를 위협하는 안사르알라가 맞물리면서, 걸프의 두 출구가 동시에 서방의 통제를 벗어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중국은 미국의 안보 우산이 흔들리는 틈을 타 ‘평화적 중재자’를 자처하며 서아시아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사우디·이란 화해를 이끌어 낸 경험을 살려 두 나라를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 같은 다극 체제로 더 깊이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러시아로서는 서방의 고갈된 군사 자원이 서아시아로 계속 분산되는 지금이야말로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전선에서 전략적 우위를 굳힐 절호의 기회다. 여기에 파키스탄이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각서에 이슬라마바드라는 이름을 새기고, 사우디와는 메카 방위동맹으로 묶여 있으며, 중국과는 ‘철의 형제’라 불리는 우방 관계를 이어 온 파키스탄은 네 나라 모두와 말이 통하는 드문 위치를 무기 삼아 다극 질서에 힘을 싣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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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멘 전쟁은 21세기 세계 질서의 향방을 가늠할 핵심 고리다. 이 분쟁은 서방이 흔히 ‘중동’의 변방쯤으로 여겨 온 곳의 분쟁이 아니라, 물리력에 기반한 서방 일극 질서가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음을 알리는 파열음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 그리고 이란 전쟁으로 바닥을 드러낸 미국의 무기고, 대만해협에서 상시화된 중국의 봉쇄 훈련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를 물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당장 두 개의 시계가 돌고 있다. 25일 브라질 결선은 남미 진보 블록의 운명을 가를 것이고, ‘예멘의 새벽’ 작전의 성패는 사우디가 미국 없이도 자기 뒷마당을 지킬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 정세는 쇠락하는 패권을 지키려는 서방의 강압과 이에 맞서 연대를 다지는 다극화 세력의 충돌이 상시화되는 국면으로 흘러가리라 본다.
예멘의 흙먼지가 가라앉을 무렵, 세계는 압도적 군사력에 기대어 온 ‘세계 경찰’의 시대가 저물고, 억압받던 글로벌 사우스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낯선 탈중심적 다극 질서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 거대한 전환 앞에서 여전히 한미일 군사협력이라는 냉전의 틀에 스스로를 묶어 두고 있다.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가 몸집을 불리고 사우디와 튀르키예, 파키스탄마저 미국의 우산 바깥에서 제 살길을 찾는 지금, 저무는 패권의 전초기지를 자처하는 것은 동맹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직무 유기에 가깝다. 다극 질서는 한국이 외면한다고 오지 않는 미래가 아니다. 세계가 새 질서로 건너간 뒤에도 무너진 다리 위에 홀로 남은 나라가 되지 않으려면, 한국은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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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후티 반군’은 서방 언론이 예멘의 저항 세력인 안사르 알라 군을 가리킬 때 으레 쓰는 말이다. ‘반군’이라고 하면 산악지대 동굴에 숨어서 게릴라전이나 하는 비정규군을 생각하기 쉽다. 사실 안사르 알라 세력이 장악한 수도 사나를 비롯한 예멘의 서북부 지역은 과거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처럼 고산지대다. 그러나 동굴 속 후티 반군이라는 말이나 이미지는 안사르 알라 세력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후티는 안사르 알라를 구성하는 주요 부족이기는 하나 안사르 알라는 후티뿐 아니라 북부의 수많은 부족과 정규군 잔여 세력이 망라된 연합체다. 오늘날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는 예멘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라면 ‘후티 반군’이라는 단순화된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안사르 알라는 현재 예멘을 실효 지배하고 있음에도 국제 사회의 공식 승인을 받지 못해 명목상 ‘반군’으로 불릴 뿐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원조에 기생하여 자국 민중을 탄압하고 남부 아덴에 웅거한 소위 ‘예멘 망명정부’와는 달리, 안사르 알라는 예멘 전체 인구의 70〜80%가 밀집한 지역을 확고히 통제하며 실질적인 국가 권력을 장악한 정권으로 기능하고 있다.
안사르 알라 군인들은 ‘샌들 전사’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은 사우디가 2015년 예멘을 침공한 이래 사우디의 대리전을 치르는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 연합군에 맞서 싸우며 용맹을 떨쳤다. 바이든 정권 말기인 2024년과 트럼프가 재집권한 2025년 초, 그들은 미군과 서방 동맹군에 맞서서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증명했다. 그들이 ‘샌들 전사’로 각인된 계기는 자신들이 격추한 미국 첨단 무인 공격기 MQ-9 ‘리퍼’의 잔해 옆에서 샌들을 신은 채 소총을 들고 선 모습이 연이어 보도되면서부터다. 서방 세력과 안사르 알라 간의 갈등은 2023년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작전’ 이후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천인공노할 무차별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자, 서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안사르 알라만이 이스라엘 본토 군사시설을 직접 타격하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급기야 안사르 알라가 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의 홍해 통행을 전면 봉쇄하자, 미국 등 서방은 2023년 말 ‘번영의 수호자 작전(Operation Prosperity Guardian)’을 발동했으나 봉쇄를 뚫지 못하고 무위로 끝났다. 2025년 초 재집권한 트럼프 정권 역시 단기간에 안사르 알라를 굴복시키겠다며 ‘러프 라이더 작전(Operation Rough Rider)’을 펼쳤으나 참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군은 사나를 비롯한 예멘 곳곳의 기간시설을 무자비하게 폭격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냈으나, 군사 전략적으로는 참담한 패배를 면치 못했다. 안사르 알라의 집요한 미사일·드론 비대칭 공격 앞에 미 해군 항모전단은 막대한 요격 비용과 피로도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트럼프는 작전 개시 두 달도 못 채우고 일방적으로 폭격을 중단하고 사실상 굴욕적인 휴전을 선언한다.
올해 들어와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 대이란 군사도발 속에서도 안사르 알라는 한동안 정세를 예의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7월 13일, 사우디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안사르 알라 고위 대표단이 탄 민항기가 수도 사나 국제공항에 착륙하려는 순간 활주로를 겨냥해 기습 공습을 감행하면서, 잠잠하던 전선에 다시 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활주로 폭격으로 사나 착륙이 가로막힌 항공기가 홍해 연안의 호데이다 공항으로 가까스로 긴급 회항해 착륙하는 아찔한 위기를 겪은 뒤, 양측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사우디와 안사르 알라는 2022년 정전 협정 이후 불안한 평화를 유지해 왔으나, 사우디가 외교적 관례와 협상의 약속을 짓밟고 저지른 무모한 도발로 인해 전면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이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 미-이스라엘의 비호 아래 자신이 여전히 ‘아랍의 맹주’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저지른 치명적 오판이었다.
오판의 대가는 가혹했다. 최근 전황은 사우디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가며 사우드 왕가의 안위를 직접 위협하고 있다. 서방과 아랍권 주류 언론의 왜곡 보도와는 달리, 사우디의 막대한 오일머니와 첨단 무기를 지원받은 예멘 남부 군벌 세력의 바브엘만다브 해협 요충지 탈환 시도는 안사르 알라의 정교한 반격에 부딪혀 궤멸적 타격을 입고 패주로 끝났다. 나아가 내륙의 타이즈 등 전략 거점 도시들이 안사르 알라 군의 촘촘한 포위망에 갇히면서, 전선의 주도권은 완전히 ‘샌들 전사’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사우디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지탱해 온 예멘 남부의 괴뢰 전선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다.
궁지에 몰린 사우디는 황급히 이슬람 종주국의 간판을 내걸고 ‘메카 공동방위협정’을 발동했다. 성지 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슬람권 우방국을 예멘 전선에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최근에는 왕세자 빈 살만이 파키스탄에 직접 연락해 정예 해군 특공대를 파병하여 바브엘만다브 지역을 탈환해 달라고 애걸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사우디 본토와 성지 방어에 국한해 상징적 병력만 파견할 뿐 예멘 영내 작전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튀르키예 역시 직접 파병을 거부하고 기술·방어 지원에 한정했다. 특정 지역 탈환만을 목적으로 타국 특공대 파병을 조르는 빈 살만의 행태는, 그가 현대 군사 작전의 기초조차 모른 채 벼랑 끝에 몰렸음을 자인한 촌극에 불과하다. ‘메카 동맹’의 허울 뒤에서 드러난 우방국들의 냉담한 반응은 사우디가 처한 고립무원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웅변한다. 정세 분석가들이 사우드 가문의 몰락을 경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우디의 진짜 위기는 국경 밖이 아니라 왕궁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사우드 왕가 내부가 사실상 내전 상태를 방불케 하는 치명적인 권력 암투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권을 휘둘러온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과 군권을 쥔 국방장관 칼리드 빈 살만 형제 간의 갈등은 통제 불능의 임계점에 달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실패로 끝난 대예멘 도발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왕실 수뇌부의 갈등이 극에 달한 모양새다.
이 균열은 왕실을 넘어 사우디 국가 체제의 근간인 부족 사회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다. 나즈드와 헤자즈의 유력 부족들은 빈 살만 지지파와 칼리드 지지파, 혹은 왕가 자체에 등을 돌리는 세력으로 쪼개져 반목하고 있다. 사우드 가문의 지배 체제는 본래 와하비즘의 종교적 정당성, 부족 간의 정교한 타협, 그리고 막대한 석유 수익의 배분이라는 삼각 축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국가 핵심 석유 시설들이 안사르 알라의 미사일과 드론 사정권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막대한 전비로 국고가 바닥나는 와중에 내부 권력 투쟁까지 폭발하면서, 100년간 이어져 온 사우드 왕조의 통치 정당성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사우드 왕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은 예멘의 안사르 알라 세력을 얕잡아본 오만에 있다. 안사르 알라는 북부 고원지대의 단단한 부족 연합과 자이드파의 종교적 결속을 바탕으로, 구 정규군을 흡수해 현대적 지휘통제 체제를 갖춘 다층적 군사·정치 세력이다.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오랜 공습과 경제 봉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동원 체계를 과시해 왔으며, 수백만 인파가 결집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조직할 만큼 강력한 민중적 지지를 누리고 있다. 비록 샌들을 신고 산악을 누비는 모습 때문에 거칠어 보일지 모르나, 예멘은 사우디와는 궤를 달리하는 유구한 문명의 발상지다. 고대 솔로몬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시바(사바) 왕국’의 고향이자, 아라비아반도에서 보기 드문 몬순기후의 혜택 속에 수천 년 전부터 찬란한 왕조와 관개 문명을 일궈온 땅이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도, 트럼프의 호언장담도, 빈 살만의 페트로달러 환상도 안사르 알라의 ‘샌들 전사’들을 끝내 꺾지 못했던 비결은 바로 이 깊은 문명적 저력과 민중적 대의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샌들 전사들의 총구는 사우디 왕국의 심장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학살을 방조하고 서방 제국주의에 굴종해 온 아랍 군주정에 도덕적 파산 선고를 내린 지 오래다. 페트로 달러로 치장하고 서방의 첨단 무기로 무장했으나 사우디 왕국은 대의도, 신념도, 결속력도 없다.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암투와 부족들의 이반 속에 사우드 가문은 건국 이래 최대의 존망 위기에 직면했다. 대표단 비행기를 노린 사우디의 비열한 도발로 촉발된 현 사태는 샌들을 신은 예멘 민중의 저항 앞에서 오만한 페트로 왕조가 어떻게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가를 증명하는 서아시아 현대사의 거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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