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 Abbas Kiarostami <Wind, Rain, Glass>


“Talk to me like the rain and let me listen”_Tennessee Williams 




* 출처-Jo Coyne @Jopolka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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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ène Delacroix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바탕 그림 일부


세계는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비대칭의 대칭운동이다. 쪼개진 둘의 영속화도 억압이고 포개진 하나의 영속화도 억압이다. 이 억압에 찰나적으로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릴 때 인간은 울음 또는 웃음으로 반응한다. 울음은 무엇이며 웃음은 무엇인가? 어떤 경우는 울음이며 어떤 경우는 웃음인가? 문제의 근원성에도 불구하고 논의 수준은 높지 않다.


일상의 정서에서 울음은 어둠, 웃음은 밝음으로 느낀다. 극적인 상황에서 이 느낌은 뒤집힌다. 일상의 이성에서 울음은 눈물이란 물질로 나타나고, 웃음은 그런 물질로 나타나지 않는다. 극적인 상황에서 이 인식은 뒤집힌다. 고전물리학적 어법에서 울음은 입자고 웃음은 파동이다. 양자물리학적 어법에서 울음과 웃음은 상태함수 차이일 따름이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식으로 정리하면 울음과 웃음은 안팎으로 나뉘되 하나인 무엇이고, 하나이되 안팎으로 나뉘는 무엇이다. 안팎의 나뉨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은 물론이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고 해서 그때그때 식별 가능한 실재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울음은 울음인 만큼, 웃음은 웃음인 만큼 실재하는 사건이다. 그 실재가 출발점이다.


태초에 울음이 있었다. 본디 울음은 웃음과 혼융된 하나였다. 울음에서 웃음이 떨어져 나오는 찰나 울음의 소향실재와 웃음의 소향실재가 나뉘었다. 울음은 하나라고 믿었는데 둘로 쪼개지는 것을 알아차릴 때 터져 나온다. 웃음은 둘이라고 믿었는데 하나로 포개지는 것을 알아차릴 때 터져 나온다. 울음은 아프되 삽상하다. 웃음은 즐겁되 씁쓸하다.


양태는 다르지만 기존의 갇힌 세계에서 이탈하는 경험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울음과 웃음은 동일하다. 기존 세계에서 이탈하는 것은 다만 예외적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전체 진실을 향해 변화해가는 것이다. 울음과 웃음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방식으로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세계 진실의 열린 네트워킹에 참여하는 근원행위다.


근원행위임에도 주목받지 못한 것은 경계사건이기 때문이다. 경계사건은 계기로 작동할 때만 주목받는다. 계기인 경계사건은 각성과 결합한다. 각성의 심리는 상실애착과 상실혐오라는 비대칭의 대칭으로 구성된다. 상실애착 때문에 울음은 웃음보다 무거워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상실혐오 때문에 패권문명은 깨달음의 울음보다 조증의 웃음을 택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조증의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도구적·소비적 웃음이 넘쳐나는 오늘날, 웃음을 말하는 데 인문학적 관점만으로는 부족하다. 생태정치학비판이 필수다. 하물며 웃음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와 구체적 무기를 장착한 유머임에랴. 각성과 변화 없이 쾌감만 남기고 허공에 소리로나 흩어질 웃음일 뿐이라면 유머가 더는 필요 없잖나.


생태정치학비판에서 웃음이 곤경(!)에 처했다면 짝패인 울음은 어떨까? 조증 처방이 울증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웃음의 유머와 맞먹는 울음의 ‘무엇’이 없는 도저한 편향이다. 편향을 벗어나려면 엄숙한 의례와 질탕한 축제를 이어줄 울음의 ‘무엇’을 호명해야 하잖나. 변혁의 오르가즘과 방설의 울부짖음을 물적으로 만나게 하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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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센트 카드를 지니고 다닌 적이 있었다. 식사 중에 음식 국물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옅은 초록색 얼룩이 지고 말았다. 젊은날 소향대로라면 섬세하게 얼룩을 지웠을 것이다.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얼룩을 나뭇잎 그림으로 바꾸고 나뭇가지를 더 그려 모양을 잡았다. 비오는 날 다른 얼룩이 생겼을 때도 같은 유의 작업을 했다. 그림이 또 달라졌다. 우울증으로 상담하러 온 분이 얼핏 보더니 본디 있었던 그림인가 물었다. 내가 곡절을 말해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작은 마주침을 기회로 삼았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입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지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곡진한 터전 위에 새로운 삶을 지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울증 치유도 이런 인생 이치 안에 있습니다.” 그는 눈을 감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 치유 절반은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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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신명

스물스물

거대매판

갉아먹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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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마지막 일요일 이른 오후. 아무런 계획 없이 집을 나선다. 마침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기에 탄다. 광교에서 내리자 버스는 졸지에 기사의 커다란 승용차가 되어버린다. 신호가 바뀌면 건넌다. 골목이 열리면 들어간다. 종로4가까지 걸으니 출출해진다. 음식점이 있을 법한 작은 골목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조명, 전기, 설비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을 편력이라도 하듯 헤맨다.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자 콩나물해장국집이 나타난다. 뜨끈한 국물에다 소주 한 잔까지 흘려주니 속이 이내 풀어진다. 다시 길을 나서 광화문 방향으로 걷는다. MB청계천으로 열린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탐탁히 여기지 않았으나 무심히 내려간다. 송사리 떼가 노는 모습을 확인하고 올라와 광화문 네거리를 건넌다. 경희궁 지나 돈의문 박물관 마을로 들어간다. 작정하고 차린 것 같은데 실속은 없어 보인다. 휘적휘적 지나 서울교육청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이정표를 보고 한양 도성 인왕산 코스 성 밖 길을 따라간다. 조금 오르니 하마 산이다. 발아래 군락 이룬 아파트와 우글거리는 연립주택이 뒤엉켜 있다. 멀리 성곽 저 너머 고층빌딩 숲이 이루는 문명의 스카이라인이 아스라하다.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을 숨 몰아쉬며 오르다 문득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스듬히 내려간다. 인왕산 선바위의 기이한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무학 대사에 얽힌 전설이 끼어들어 선바위라 하지만 본디 만신이 이끄는 토착신앙의 성소임에 틀림없다. 텅 빈 마음으로 돌아보다 더 텅 비어져서 내려오는데 여인 둘이 치성 차 올라간다. 심상하되 간절한 그 걸음에 끌려 잠시 멈춰 선다. 홀연 질문 하나 날아든다. 나는 내 삶을 저렇게 간절히 대하고 있는가. 어둑해지는 하늘 이고 푸른 기운을 뿜어내는 큰 바위에 가만히 시선을 둔다. 나 너머의 나를 향해 가는 길 떠나려고 표표히 도시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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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9-12-3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라고 설명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추상화라고 생각할뻔했어요. 압도당하는 걸요.

bari_che 2019-12-31 09:51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영적 의지처로 삼을 만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