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어이 발길을 돌린다, 함성이 울려 퍼질 서리풀(瑞草)에서 절규가 메아리칠 솔고개(松峴)로. 송현동 갤러리 57th에는 <‘황무지, 유령의 벌판’전>을 연 오십 년 지기 칡뫼 김구 화백이 있다. 전시회 이름에 이미 드러나거니와 내가 발길을 돌릴 구실은 충분하다.
“그림은 말이다.” 칡뫼가 견지하는 회화관이다. 말은 서사를 지시한다. 서사로서 그림은 보이는 풍경을 그리지 않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우리’라는 말이 그가 지닌 언어 습관을 무심코 따른 표현인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강조로 읽힌다. 그가 현실 정치를 겨누는 까닭과 분단을 과녁 삼는 며리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강 하나 건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목전에 둔 김포 갈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호만 칡뫼(葛山)로 지은 게 아니라 현실 삶에서도 분단과 전쟁, 그 후유증을 옹골차게 부여잡고 있다. 그 삶 자리(Sitz im Leben)에서 세상을 읽고 그 독해로서 그림을 그린다.
칡뫼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강한 어기(語氣)는 여기서 발원한다. 그 어기는 때때로 범람하는 직설 산문으로 드러난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그는 수필집을 낸 엄연한 문학가기도 하다. 화가도 문학가도 아닌 상담의로서 그 그림과 수필에 사부랑삽작 건너가기 어려운 나는 그냥 내가 편한 운문 방식으로 읽는다. 그가 시인이기까지를 바라지 못한다.

이번에 새로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크다. 모름지기 그 절규가 커서일 테다. 사도와 현자 탈을 쓴 법 버러지, 언론 탈을 쓴 기레기, 영성 탈을 쓴 개독 주술사, 엘리트 탈을 쓴 부역 지식인 카르텔 총체를 드러내어 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향방을 준열히 묻는다.
나는 ‘순수예술’을 표방하고 표백된 고담준론을 드높이는 ‘예술’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다. 본성상 예술은 공존 행위로서 생태 실천이다. 근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투명하게 통과한 ‘예술’ 갑질은 학예회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은 없다. 설혹 있다손 치더라도 그 보편 추구에 예술가가 발 담그는 짓은 다시없는 자기기만이다.
예술에 치유력이 있다는 말은 예술에는 영성이 있다는 뜻이다. 예술에 영성이 있다는 말은 예술이 공생 네트워킹이라는 뜻이다. 예술에서 고립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립 개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각 개체를 극한 고양하는 역설 사건, 그 서사가 예술이다.
그림을 둘러보고 작가와 대화하던 중 들마가 되어 문 닫고 나가 저녁을 같이 먹는다. 막걸리 한 잔 한 잔에 더불어 곰삭아가던 어둠이 시간을 높이 쟁여놓자 우리는 허우룩해서 또 홀가분하게 인사를 나눈다. 광장을 대신한 화랑, 함성을 대신한 절규가 함께 익어가는 밤을 걸어 우리는 각자 삶으로 돌아간다. 더 밝은 우리 내일을 꿈꾸기로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