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이다. 골짜기마다 절집이 있는 우리나라 풍경을 떠올린다면 오늘 같은 날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더군다나 절집 앞까지 포장도로가 있다면 두말할 여지조차 없다. 한 주 뒤로 미룰까, 잠시 고민한다. 주초 하루 가웃 비 온 사실이 기억나자, 가기로 한다. 회룡천과 아우라지 특히 아우라지 앞뒤 마른 내 상태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몹시 궁금해서다. 복잡해질 교통 상황을 고려해 이른 아침 먹고 서둘러 나서보지만 벌써 지하철부터 빛 다른 날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노약자석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아뿔싸

 

회룡사 들머리에 순찰차가 서 있다. 금세 까맣게 잊고 뭔 사고 났나, 한다. 뱀처럼 늘어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보고서야 아이고 다행이다, 한다. 개인 승용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그나마 숨 막히는 일은 없을 테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들 소리 때문에 쏠 동영상을 더러 포기한다. 회룡사 안내방송, 독송, 종성이 골짜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비구니 독송이 낭랑은 한데 그리 유장하지 않아 귓등만 때리고 되돌아간다. 예불문(禮佛文)도 나올 뭣이 안 나오고 지나가는 듯하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내가 메운다.

 

그만한 비에도 회룡천 수량이 확실히 불어나고 물때들도 대부분 걷혀 있다. 물소리도 제법 우렁차다. 회룡사 지나서부터는 물소리가 아연 잦아든다. 아우라지 직전에 이미 마른 내 상태가 된다. 골짜기가 그리 깊지 않아선지 내 바닥 특성 때문인지 고요한 복류 상태를 유지한다. 복류는 어디쯤에서 비롯했을까. 아우라지에 이르러보니 사패산 쪽 물은 아예 적요다. 도봉산 쪽 불길을 따라 들어간다. 작은 섬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 저 소리 내는 물 마지막 지점이 복류 진원지이겠구나. 궁금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만다.


 

물을 발견하고는 곧장 합장하고 동영상에 담는다. 손 종지 만들어 물을 마신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접지한다. 발이 시려 더는 견딜 수 없어 일어서면서 내려다보니 발 담근 작은 웅덩이 밖으로 물이 흘러 나가지 않는다! 위에서 좔좔거리며 세찬 물이 내려오는데 작은 웅덩이를 결코 채우지 못한다. 기이하다. 나는 얼른 물 밖으로 나온다. 가만히 웅덩이를 들여다본다. 미세한 소용돌이 여러 개가 무작위로 나타난다. 물이 빠르게 밑으로 빠져나간다는 증거다. 땅 밑 물길이 이미 있지 싶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넋 빠뜨린 채 바라본다.

 

몰입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나는 찬찬히 섬 주위를 다시 살핀다. 병꽃나무를 포함해 몇 가지 나무를 더 확인한다. 이 작은 섬 안팎에 내가 아는 식물만도 15종이 넘는다. 이끼나 돌꽃까지 헤아리면 여기도 어엿한 생태 단위임이 틀림없다. 다음 주에는 더 큰비가 온다 하니 어떤 변화를 지을까 자못 기대된다. 아우라지에 인사하고, 마른 내 바위를 이리저리 건너뛰어 백여 미터 내려오다 보니 용천이 내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 경계를 이렇게 무작위로 넘나들며 회룡 물은 중랑천 거쳐 한강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바다 되어 지구늪을 이룬다.

 

지구늪에서 구름으로 올라간 물방울은 바람 타고 도봉산 회룡계로 되돌아올 테니 참으로 queer networking 그 자체다. 작디작은 아우라지가 빚어내는 묘하디묘한 변화에 겸허히 참여하는 찰나마다 내 상()은 사라지고 공생 이행 과정, 잠정 실재로만 진동한다; 이 장엄을 약탈하는 사악한 제국 앞에 무릎 꿇은 무지렁이 부역자임을 통감하고 무고히 희생당하는 숭고 존재와 늪 재생 항쟁 동지이기를 차마 앙망한다. 바리데기들이 끝까지 웃으며 다 함께!” 싸우는 일 없이 장엄은 오지 않는다. 장엄은 지극 헌신이다. 부처님오신날 참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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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어 다시 회룡천 아우라지로 향한다. 다시 가는 며리가 아우라지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오가는 골짜기 풍경 또한 거기 포함된다. 경험 횟수와 시간 경과에 따라 어떻게 숲과 물이 달리 모습을 드러내고 말을 건네고 내음을 피워서 내 감각을 두드리는지 살피며 천천히 들어간다. 사진으로 담아낼 때도 전과 달리 색깔보다 빛살에 더 유념한다.


지난주 진입한 지점을 조금 지나자, 금지선이 해제되어 자연스럽고 쉽게 물길로 접근할 수 있는 샛길이 나온다. 스마트 지도로 미리 확인한 바와 다르나 가시에 찔리거나 거미줄에 걸리지 않고 사패산 쪽 물줄기로 내려간다. 큰비 온 뒤를 상상하며 더 안전한 경로를 눈대중해 둔다. 내 조그만 섬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잡아챈 변화 하나: 돌탑이 허물어져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 손이나 발길질 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든 아니든 문득 든 생각은 여기가 돌탑 있을 자리는 아니다, . 좀 더 맑은 마음으로 엄밀한 자리 보아 새로운 돌탑을 쌓는다. 앉아서 무작위로 기이하게 펼쳐질 존재 향연을 호흡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든다. 섬과 물길 둘레 땅을 돌며, 나무와 풀을 깜냥대로 살핀다. 생태가 대강 들어온다.


 

물가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버드나무가 전혀 없다. 물살이 거센 상류라서 뿌리를 얕게 뻗고 나뭇결이 부드러운 버드나무는 살기 어렵다. 도린곁이라 땅이나 물을 정화하는 버드나무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다. 당연하게 여기는 물오리나무 영지다. 물 좋아하는 본성을 같이 지녔으나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무와 달리 깊게 뿌리 내리고 나뭇결이 단단하므로 딱이다.

 

물오리나무는 참 특별하다. 콩과 식물도 아니면서 질소 고정 능력을 지닌다. 때때로 거센 물에 시달릴지언정 뿌리가 진흙을 어느 만큼만 품을 수 있다면 모래땅이라도 다른 식물이 살 조건을 만들어준다. 이 섬 중 가장 큰 식물로서 층층나무가 늠름히 서 있는 근거다. 그런 보익 작용은 물론이고, 물오리나무는 버드나뭇과 식물도 아니면서 해독 작용까지 한다.

 

전천후 능력을 지닌 물오리나무 힘입어 이 아우라지에는 무작위로 기이하게 인연 맺은 싸리나무, 국수나무, 뽕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쪽동백나무, 머루나무, 누리장나무, 개옻나무까지 한껏 어울려 살아간다. 칠십 년 버드나무로 살았으니 인제부터 우리로 살아보라고 물오리나무가 빙 둘러서서 권하며 응원한다. 물오리나무 꽃말이 장엄이다.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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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현(민속학자)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그대로 싣는다


정용진의 뿌리. 그의 할배 정상희는 메이지대학 출신으로 당시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체육회이사. 대학 시절의 일본인 인맥이 그의 출세에 도움을 줌. 1936년 손기정선수가 동백림마라톤에 우승하도록 돕고 베를린까지 갔다. 전쟁 막바지에 만주로 사업차 떠났는데 그의 송별식이 반도호텔에서 거창하게 열려 정무총감 등 당대 조선을 지배하던 발군의 인물이 모였다.친일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 이상이었던 인물. 연전 <양정인물평전> 발간하면서 대선배인 그를 인물군에서 뺐다.

해방 이후 정치계에 투신,국회의원으로 리승만정권의 3.15부정선거에 가담,감옥을 다녀온다. 일제말기부터 이병철과 가까운 사업파트너로 사돈을 맺게되며, 이병철의 딸인 이명희가 정상진의 아들 정재은과 결혼하여 정용진의 모친이 된다. 사람들은 막연히 신세계가 삼성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만 알지만 정용진의 조부가 일제말과 자유당정권의 막강한 실세로 이병철에 막강한 도움을 주었고 딸을 시집 보내어 사돈을 맺은 것은 생략한다. 한마디로 정상희는 친일에서 미군정을 거쳐 자유당정권 부패신화의 조연으로 활약했다. 그 손자가 정용진으로 5.18에 탱크데이를 선포하고 도마뱀 꼬리자르기로 스타벅스 사장만 사표받고 끝.

평소에 멸콩을 부르짖던 정용진 ‘가문의 영광’이 이처럼 오랜 뿌리를 지닌 것이니, 5.18탱크데이로 흥분할 거 하나도 없다. 한국근현대사의 모순이며 근현대 재벌의 부의 축적이 이루어진 적나라한 정경유착의 과정, 그리고 어쩌면 하나도 변치않게 손주에게까지 유전된 친일 반민주 사업가의 전통이 멸콩놀이 일베놀이로 이어지는 DNA를 재확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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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회룡천은 두 물이 만나 어우러진다: 도봉산 포대 능선 산불 감시초소 기점 북쪽에서 발원한 남쪽 물줄기와 사패산 회룡바위 근처에서 발원해 도봉산·사패산 경계를 따라 흐르는 북쪽 물줄기. 이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거니와 남쪽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이 없어 거기 숲과 내는 사람 타지 않은 태고 골짜기로 남아 있다.

 

20231, 나는 눈 덮인 그 골짜기로 혼자 올라가다가 실패해 죽을 고비 넘겨 가며 도로 내려왔다. 20238, 거꾸로 포대 능선 산불 감시초소 기점 부근에서 출발해 내려가다가 수직 벽 아래로 세 번이나 굴러떨어지면서도 기어이 지난겨울 실패 기점을 밟았다. 두 사건 이후 나는 도봉산 회룡 계곡을 스승으로 섬긴다.

 

스승은 앞 실패를 이끌며 나 또한 순혈(純血)’ 반제 전사일 수 없는 부역자라는 진실을 통렬하게 가르쳤다; 뒤 성공을 이끌며 나와 스승이 생사를 나누는 동지임을 통곡으로 가르쳤다. 이 두 사건을 통해 나는 비인간 생명, 나아가 비생명 존재가 나와 더불어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전우라는 진실을 심장에 새길 수 있었다.

 

이 기억에 터 해 사는 삶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기회가 홀연히 찾아왔다. ‘홀연히라는 표현은 무작위 팡이시질(networking)이 작동했다는 뜻이다. 현재 내 고뇌와 시절 인연을 이루는 한 사람은 제임스 브라이들이다. 그가 쓴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는 내가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열어나갈 길을 예시했다.

 

또 한 사람은 <습지가 부른다>에서 스치듯 인용한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다. 그가 쓴 자연은 퀴어하다를 나는 여러 번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같은 결 영혼을 느끼는 매우 귀한 사람임을 살갑디살갑게 감지한다. 그가 수행하는 앉을 자리(SIT SPOT)”가 내 숲·물 걷기에 다시 또다시 돌아가는방향을 보탰다.


 

나는 오전에 방이 습지를 세 번째 걸은 다음 회룡 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 발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회룡천 아우라지/두물머리로 향한다. 2023년 여름에 나온 냇가 건너편 숲으로 들어선다. 물론 길이 아니다. 방향만 가늠한 채 무작정 나아간다. 건천이 된 북쪽 물줄기를 건너 두 줄기가 만나는 곳 땅으로 올라간다.

 

잠시 사위를 둘러보고 남쪽 물줄기를 따라 더 들어간다. 드릴락 말락 소리를 내는 조그만 용천을 발견하고 물 모심 한다. 되돌아 나오면서 보니 남쪽 물줄기가 끄트머리에서 살짝 나뉘어 합류한다.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와 영락없이 같은 섬을 이룬다. 전율이 온다. 나는 합장하고 돌탑을 쌓은 뒤 군데군데 밤, 도토리를 심는다.

 

남한강이 발원한 오대천 아우라지에서 태어나 70년 뒤에 회룡천 아우라지에 선 이 사건을 나는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여기가 다시 또다시 돌아가는” “앉을 자리라면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기이한(queer) 변화를 겪게 될 테다. 실은 그런 이치를 따라,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 그리고 기이한 자연을 따라 여기 왔다.

 

내가 태어난 오대천 아우라지처럼 나는 여기를 그리워할 테며, 그리워 다시 또다시 돌아올 테다; 차마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늪처럼 질퍽하고 즈런즈런하진 않을지라도 뻐근하고 두렵고 설레는 지성소로 스며들 테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을 남겨둔다. 해가 기울어 색깔보다 빛살이 찬란해질 무렵 절하고 무르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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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방이 습지에서 공동체의 시간”(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과 잠시 만나고 나는 삼성동으로 가 봉은사를 걸었다. 봉은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1972) 봄 소풍으로 처음 다녀간 이래 50여 년 동안 아주 여러 번 걸은 곳이다. 특히 한의사가 된 뒤부터는 보수교육을 대부분 코엑스에서 받는지라 매번 찾았다.

 

넓지 않으나 오히려 아기자기한 맛이 쏠쏠하다. 뒤쪽 야산에 명상길까지 가꾸어 놓아 찾는 이가 많다. 다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불사, 그러니까 토건이 돈을 향해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켜서 갈 때마다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뭐 하나 세우고 그 앞에다 불전함 놓고 이런 식이라 걸태질 같아 보이니 말이다.

 

봉은사뿐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 모든 절 풍경이 그렇다. 불심으로 보면 남루하고 너절해 보일 텐데 이 무슨 아이러닌지. 부처님오신날 가까워서 더욱 야단스럽다. 신심과 욕심 사이 구별이 없어 보이는 풍경을 휘적휘적 가로지른다. 오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놀랍게도 공양간이다; 거기 모셔진, 조왕신(竈王神)이다.


 

조왕신은 우리 토속신앙에서 부뚜막 또는 부엌신이다. 나도 어린 시절 그 이름을 들었고, 할머니께서 치성(致誠) 올리는 일을 수없이 보았다. 이제 와 홀연히 다시 맞닥뜨리니 대뜸 시간이 접힌다. 어디 부뚜막/부엌뿐인가. 우물, , , , 심지어 뒷간에까지 수호신이 있다-측신(廁神)-. 가히 즈런즈런한 다신론이다.

 

불교는 이런 토속신 104위를 품어 신중(神衆) 신앙과 융합했다. 맹랑한 음모론 유일신교 관지에서 보면 뒤죽박죽 미신이거나 열등한 종교일 테지만 엄밀하게 보면 이렇게 촘촘한 다신(多神)이야말로 무작위 퀴어 우주 본성에 한층 더 다가간 숭고다. 나는 불교 자체가 더욱 섬세한 평등 networking 다신교가 되기를 빈다.

 

조왕신께 합장하고 명상길로 들어선다. 지난해 잘려 나갈 위기에 몰렸다가 내 기지로 목숨 건진 여린 도토리나무 앞에 선다. 기울어지긴 했으나 흠씬 자란 그분께 신명을 헌정한다: 회신(栃神). 우주를 구성하는 삼라만상 모두가 신이다. 얽히고설켜 서로 장엄을 축하하는 존재 사건이다. 도토리나무께서 나를 초대한 신비다.


화면 전체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가로지른 호리호리한 나무가 도토리나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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