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창욱(목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나는 이 공간에서 한국전쟁 때, 미국이 폭격으로 한반도 전역을 말살했다고 줄기차게 말했다. 미국을 은혜의 나라로 알고 있는 대중에게는 그게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미국이 폭격으로 한국과 조선을 아작낸 것은 명백한 역사사실이다.
근거가 뭐냐고? 여러 증언이 있지만 김태우의 <폭격> 이 책이 압도적이다. 이 책에는 미국이 어떻게 폭격으로 한반도를 유린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한국 대중들이여,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하노니 미국은 은혜의 나라가 아니고 원수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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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저,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권정생 소설 <점득이네>에 미군의 전투기가 하천부지에 모인 피난나간 한국 민간인들을 기총소사로 몰살하는 내용이 있다. 이 참변으로 주인공 점득이도 부모를 잃고 자신은 시력을 잃고 누나 점례와 함께 거리의 악사로 살아간다. 나는 처음에 이 내용이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줄 알았다.
‘한국인의 자유를 위한 전쟁’을 벌이는 미군이 ‘흰 옷입은 민간인’들을 이처럼 학살하는 범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폭격>을 읽어보니 미군 전투기들이 한반도 영공에서 조선 민중을 일상적으로 학살해 왔음을 확인했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 미군의 북폭 전말을 담았다. 조선 전역을 폭격으로 초토화시킨 과정을 기록을 통해 소상히 밝혔다. 그러나 폭격피해자는 조선만이 아니었다. 남하하는 인민군의 이동전선을 따라 유엔군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공중작전에 나선 미군 전투기들은 꽁꽁 숨어서 보이지 않는 인민군 대신 한국의 민간인과 건물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그들이 전투기에 가득 싣고 온 폭탄들을 남김없이 터뜨렸다.
정찰기인 모스키토호가 신호를 보내면 폭격기들은 민간인과 마을을 향해 게임하듯이 주저하지 않고 폭격을 퍼부었다.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다.
한국전쟁기 내내 조선에 쏟아 부은 폭격 때문에 가족은 물론 모든 것을 잃은 조선 주민들은 상층부 권력의 반미노선과 무관하게 미국에 대한 증오가 하늘에 솟구쳤다.
예를 들어 평양은 해방 때까지 가장 대표적인 친미공간이었다. 청일전쟁 때 교회로 피신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역사경험은 민중들을 교회로 몰려오게 했고 그 결과 전 조선의 장로교인 80%가 평안도와 황해도에 운집할 정도의 대성장을 이루었다. 평양은 개신교와 미국을 동일시하는 대표적인 친미도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기동안 가장 친미적인 도시는 가장 반미적인 도시로 변했다. 조선 사람들은 교회는 미군폭격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 믿고 교회로 피신했지만 오히려 교회당의 첨탑은 미군이 폭격하기 좋은 타깃이 됐다. 수많은 폭격몰살 가운데는 이렇게 교회도 예외없이 몰살장소가 돼버렸다.
미 권력층 안에는 한반도 폭격에 대해 대립적인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다. 하나는 일본폭격 경험이 있는 공군장성들 입장으로, 전쟁 승리를 위해 적의 인구밀집지역 전체를 핵무기나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에 또 다른 주장은 2차 대전 후 유럽에서 활발해진 반전평화주의와 전시 민간인 보호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폭격 시 군사목표만을 정밀폭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미대통령도 합동참모본부도 후자를 지지해서 형식상으로는 군사목표만을 타격한다는 기조가 우세했다.
그러나 정밀폭격도 말뿐이었다. 전혀 정밀하지 않은 레이더로 좌표를 찍어 폭격한다는 것 자체가 적중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서 타격지점에 폭탄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적을 공격했다. 그 와중에 군사목표가 아닌 민간인, 마을, 민간시설등도 속절없이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그런데 이 형식적인 기조인 정밀폭격도 1950년 11월 중국군 참전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거의 승리를 눈 앞에 두었다가 중국군에게 연전연패당하는 미군의 맥아더는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조선 전역을 초토화 시키라고 명령했다. 이전의 폭격보다 더 무자비한 화력으로 북한을 타격하라는 지시였다. 그때부터 미군전투기들은 제한없이 소이탄 대량폭격을 자행했다.
참으로 악랄한 것은 조선 주민들이 소이탄 폭격화재를 신속히 진화하지 못하도록 폭탄 속에 시한폭탄을 함께 떨어뜨렸고 또 점득이네 소설처럼 기총소사로 화재진압하러 달려오는 주민들을 살상했다.
또한 맥아더의 초토화 작전명령 이후에는 애초에 폭격대상에서 제외했던 수력발전소와 저수지등도 예외없이 폭격했다. 폭격으로 저수지 댐이 무너져서 홍수가 농토와 마을을 덮치는 사진이 생생하다. 이런 융탄폭격으로 조선 전역에 집이나 건물은 거의 남아나질 못했고 주민들은 토굴 속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폭격으로 죽은 사람 수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소이탄 융탄폭격은 정전협상을 하는 내내 계속했다. 정전협정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항공압력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초토화시키는 전략을 몰아 부쳤다. 미군의 폭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김일성은 조기에 정전협정을 맺고 싶었으나 정전협정도 전쟁 치르듯이 협상한 미국과 중국의 입장차이로 시간만 끌었다.
예를 들어 포로협상에서 미국은 자원송환원칙을, 중국은 자동(강제)송환원칙을 고수하느라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미군만 조선 영공을 제 집 드나들 듯 폭격놀이를 즐겼다. 이것이 폭격의 전말이다.
우리는 조선 민중들이 인민군 남하 때문에 부득이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한 피난이 훨씬 많았다. 그만큼 한국전쟁기 내내 미군의 폭격은 조선민중 숨통을 압박하는 괴물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미군조종사 개개인들의 전혀 소양없는 자질도 민간인 폭격학살을 부추겼다.
이 책 저자는 역작 끝에 이렇게 진단한다. “전쟁의 신은 한반도처럼 갈등하는 지역을 눈여겨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만약 한반도에서 불운의 역사가 재개되어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또다시 ‘그들만의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참으로 무거운 심정이다. 미국으로부터 자주와 주권과 독립이 왜 절실한지 이 책 역시 절절히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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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이 우익 세력들을 포섭할 때, 기독교 집단도 포섭 대상이었다. 한국 기독교와 미국은 아삼육 관계였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인들 대개가 미국 기독교를 이식받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거부감없이 장단이 잘 맞았다.
그렇게 한국 기독교와 미국이 아삼육 관계가 된 것은 구한말 때 부터였다. 미국 입장에서 조선은 황금어장이었다. 황금어장은 선교용어이다. 어부가 다량의 물고기떼를 만나면 대박나는 것처럼, 선교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미국 선교사들에게 조선은 대박 현장이었다.
황금어장답게 선교사들은 조선에 많은 기여를 했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 급기야 일제에 먹히고 마는 조선에서 유일한 기대처였다. 조선 민중들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 병원, 교회를 통하여 야소교와 친숙해졌다. 그리고 자연히 선교사들의 고향인 미국도 동경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에 미국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았냐면, 한 가지 정책이 증거한다. 1909년 미국 선교사들이 모여서 중대한 결정을 했다. 이른바 ‘선교지 분할정책’이다. 조선의 각 도 별로 미국의 각 교단이 분할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미국 북장로교는 강계, 선천, 평양, 재령, 서울, 청주, 안동, 대구, 등 평안도 황해도와 충청북도 일부 지역과 경상북도 지방을 맡았고, 미국 남장로교는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 등 전라도와 대전 부여 등 충청남도 일부와 제주도를, 캐나다장로교는 함경도 지방을, 그리고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부산, 진주, 마산, 거창, 통영 등 경남지방을 맡았다.
이 정책에 따라 미국의 각 교단이 중복을 피해서 선교지를 맡은 것이다.
미국 선교사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정책을 세울까, 싶다.
미국 선교사들에게 조선행은 선교사의 사명인,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 권력에게는 선교사들의 외국행이 선교사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그것은 무엇일까? 1880-90년대, 미국은 아메리카 정복이 거의 끝나갈 시점이었다. 원주민 말살로 시작한 정복은 중미, 남미까지 확장했고 탐욕을 다 채웠다. 이제는 새로운 정복지가 필요했다. 그곳은 태평양 건너 아시아였다. 하지만 이미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정복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었다. 정복을 순탄하게 하려면 이미지를 순화시켜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로 선교였다. 미국 권력 입장에서는 선교사들이 미국의 나쁜 이미지를 세탁해 주는 너무도 반가운 존재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타국에 나가기 좋게 전폭적으로 협조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선교사들이 가장 큰 애로를 겪는 게 비자문제다. 일반 여행객 신분이기 때문에 기간이 다 차면, 옆나라 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그렇게 체류를 연장하는 것이다.
즉 당국이 본국증명서나 여권, 비자 등을 협조해 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을 세탁해 주는 선교사들이 아시아로 가는 일을 막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증명서는 극히 한 예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얼키고설켜 있겠는가.
조선에 미국선교사들이 득시글거릴 수 있었던 데는 미국 권력의 깊은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선교사들도 그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분야가 다르니 그냥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을 뿐이다. 그리고 헐버트 선교사같은 극소수의 선교사 빼고는 미국 선교사 대개는 미국 권력의 의도에 협조하면서 선교했다. 조선 입장에서는 미국 선교사들이 백프로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미국의 속셈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고종을 보기 좋게 배신했다. 일제의 침략에 방패막으로 미국을 의지했던 고종은 그래서 미국에게 여러 가지 알짜배기 사업권을 줬던 고종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어떡하든 국제사회에 조선의 처지를 알리고자 했던 고종특사 헐버트 선교사도 조국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미국선교사들은 이렇게 일치감치 조선에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조선 교회에 대한 독점적 지위는 일제 강점기 내내 계속됐다. 교회 안에 조선인의 자생적인 모임이 생기면 선교사들은 저주까지 퍼부으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자생적인 모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선교사들의 추악한 면모만 드러날 뿐이었다. 그렇게 미국권력과 같은 모양인 것을 스스로 증명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8.15 후 미군정 시기에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검은머리 미국인들을 포섭하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이게 8.15 후 한국기독교의 모습이다. 미국의 시다바리 역할로 내전과 전쟁, 조국 분단에 가담한, 자랑스럽지 못한 부역의 역사다. 그 치부를 가리기 위해 더 반공에 광분한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가 제대로 서려면, 미국과 얽힌 관계부터 청산해야 한다. 한국기독교 현실과 동떨어진 말인가. 그렇더라도 한국이 자주독립하려면 미국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듯이, 한국 기독교도 과거를 청산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 길을 거쳐야 한다.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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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일이송(영화감독)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남미의 지도. 수개월 전부터 SNS의 세계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밈. 남미 전역이 도미노처럼 극우화됐고 이제 '거의' 브라질만 남았다는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기우로 그치지 않았다. 오늘 브라질 대선 1차 선거에서 룰라가 패배했다. 룰라가 근소하게 이길 거라던 여론조사 결과가 모조리 빗나갔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아들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이겼다.
2차 결선으로 가겠지만, 룰라가 승리할 가능성은 적다. 설령 기적적으로 이긴다고 해도 오늘 선거에서 브라질 상원과 하원을 보우소나루 정당이 휩쓸었기 때문에 팔다리가 묶인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아내 미셸 보우소나루가 오늘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또 두 명의 다른 아들들도 각각 상원과 하원에 당선됐다. 그러니까 감옥에 있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제외하고, 온가족이 대통령에서부터 의회를 장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우소나루주의의 완벽한 부활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쿠데타를 일으키다 감옥에 갔지만, 그의 가족과 지지 세력들이 뺨에 복수의 점을 찍고 훨씬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극우들은 트럼프 독트린을 완성했다. 남미 대륙 전역에 극우 정권이 들어섰고, 미 극우들은 쇠퇴하는 제국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남미의 민중을 지독하게 쥐어짤 것이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자신의 파시즘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대국을 얻게 됐다.
한 동안 권위주의 괴물들이 남미를 휩쓸게 될 것이다. 소고기, 콩, 금, 회토류 등을 노리는 다국적 기업의 배부른 만찬 식탁으로 수탈될 것이다. 물론 룰라 정부에서 주춤해진 아마존 삼림 벌채율이 다시 치솟게 되면서 인류는 기후붕괴의 지평선을 향해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하게 될 것이다.
암울하다.
룰라는 왜 패배했을까? 실업률과 인플레이션도 낮췄고 경제 지표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고려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 다른 남미 국가들에서 그랬듯, 미국과 CIA의 선거 개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선거 전부터 브라질 법무부가 미국의 선거 개입을 면밀히 조사하는 중이다. 아니면, 룰라 정부 인사들의 부패 스캔들을 지목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2차 결선을 앞두고 패배 원인이 다양하게 분석될 것이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룰라 정부가 보우소나루주의를 제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육신은 감옥에 있을지언정, 그로 대변되는 보우소나루주의가 브라질의 뼛속까지 잠식한 터다.
극우들이 장악한 상-하원에 팔다리가 묶여 룰라가 제대로 의정을 펼치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룰라는 기존보다 더 우경화된 정치적 기조를 유지했고 이것이 브라질 좌파의 분열을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흔히 보우소나루주의는 성경, 소고기, 총알의 삼위일체로 설명된다. 성경은 복음주의를, 소고기는 농업 기업을, 총알은 군과 경찰을 의미한다. 보우소나루주의는 복음주의 세력, 농업 기업들, 군과 경찰력을 기둥 삼고 축조된 파시즘적 세계에 다름없다.
이러한 강력한 권력과 우경화 추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보다 진보적이고 담대한 정치 비전과 민중 동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파시스트를 축출한 직후 등장한 정부가 온건하고 우경화된 기조를 취했을 때 언제든 파시스트가 다시 귀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를 쫓아내고 등장한 조 바이든 정부가 밍숭밍숭한 중도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트럼프의 부활을 재촉했듯이, 또 보우소나루를 쫓아내고 등장한 룰라 정부가 주춤거리면서 다시 보우소나루주의가 복권되듯이.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은 감옥에 보냈지만, 윤석열주의는 외려 더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도 이재명 정부의 우경화는 앞서 예시한 경로를 착실히 따라가는 중이다.
오늘 일어난 브라질의 실패는 우리의 내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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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뒷창 담쟁이덩굴. 얼핏 보면 깊게 물든 단풍처럼 보이지만, 세심히 살피면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주의세(Imperiocene)를 살아가면서 제국 지배 집단이 벌인 기후 침략에 맞서 싸우다 입은 상처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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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하리는 ‘사막과 초원, 그 경계 어디쯤인 반건조 모래 사바나’다. 이 queer 대지를 생명 방식으로 삼아 살아갔던 시원 인류가 이른바 부시먼이다. 부시먼이야말로 원조이자 전형 풍요를 누렸던 인간다운 인간이었으나 제국과 그 부역 문명에 쫓겨나 빈곤으로 내몰렸다(『호모 부시마니쿠스(정해종)』. 나는 멸칭인 부시먼을 버리고 그들을 호모 칼라하리쿠스라 부른다. 어제 그들 삶을 오늘 내 삶으로 번역하기 위해서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살아가는 이 도시가 다름 아닌 잿빛 칼라하리라는 사실을. 하여 눈을 돌린 대상은 도시를 점점이, 그러나 맥맥히 흐르는 나무와 풀, 그리고 먼저 삶을 피워낸 태고 생명들이다. 커다란 숲 언저리부터 도심 화분과 그 골목 후미진 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야말로 제국과 최전선에서 맞서고 있는 전사가 아닌가. 저들이 얼마나 장엄하며 또 얼마나 아프고 슬픈지 이제야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다니, 나는 얼마나 비루하며 또 얼마나 둔하고 어리석은가. 제국 생활 양식에 젖은 채 저들-이하, 나무를 대표 단수로 쓴다-을 배경으로조차 인식하지 않고 흘러가는 인간 사이 광화문 한 모퉁이에 서서 앙가슴을 두드린다.

 

나무에 관심 기울이는 깨인 인간조차 나무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초점 맞추어 접근한다. 나쁘지 않으나 모자란다. 여전히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태도다. 나무는 다만 인간 도구나 방편이지 않다. 나무는 인간과 동등하게 이 푸른 별에서 한껏 실컷 살아갈 권리를 지니므로 나무 관지에 서 보는 사유와 실천 수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당면한 공통 문제의식으로서 제국주의세(Imperiocene)를 살아가며 제국주의 지배 집단에게 착취·살해당하는 피지배 존재 당사자성에 관해 나무와 식민지 인간 위치를 동일하게 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 전제에 터 잡아 상리공생과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모색할 수 있다.

 

이 전망에서 오늘 여기 호모 칼라하리쿠스인 나는 뭘 해야 하는가? 광화문 벤치에 주저앉아 질문을 포개간다. 어느 순간 나와 눈길을 주고받던 땅바닥 돌이 자기 문양으로 조형해 낸 표정 변화로 말을 건넨다. “고난받는 존재를···” 예? 바로 다음 순간, 마무리다. “응시하고 증언하라!” 구체 방법은 내 몫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거리를 걸어서 나아간다. 도처에서 신음과 비명이 들려온다. 그 소리를 사진에 담는다. <도시 나무 비가(悲歌)>가 탄생한다.



돌의 표정1-“고난받는 존재를···”


돌의 표정2-“응시하고 증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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