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변호사다. 쿠데타 주된 종사자 편드는 장로 변호사 한 놈이 법정을 모독하고 재판관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연일 상상 초월 살풍경을 연출하며 사법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 과대망상증에 걸려 기괴하게 오만방자해진 김명신이 벌인 궤란쩍은 짓거리와 뒤엉키며 실로 점입가경을 일궈내고 있다. 이 나라 특권층 부역 세력이 드러낼 수 있는 모든 추악을 아예 작정하고 선보이는 듯하다; 거리낌도 야마리도 없이 사이코패스 진면모를 과시한다.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그 언행을 지켜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상식은 이미 그에게 뭉개지고 없다. 저렇게까지 하면 몸값이 뛰어 돈벌이가 되고 더 큰 돈벌이를 보장하는 정치판에 진입할 수 있으므로 그는 저렇게까지 한다.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 면상을 이슥히 응시한다. 그가 살아온 삶이 말갛게 들여다보인다. 그 뒤에 가짜 신까지 버티고 있으니 오죽하면 여북할까. 이번 생은 말짱 다 꽝이다.

 

고백건대 나도 열심 다해 사시 공부한 적 있는 법학도였다; 진심 다해 영성 추구한 적 있는 신학도였다. 그 길 전복하고 40대 중반에 수능 다시 쳐 한의학도가 되었다. 판검사를 포기하고, 성직자를 포기하는 과정에는 생존 문제 넘어선 시리고 아픈 인생 성찰이 수반되었다: “이 길로 가도 되는가?” 그때 성찰과 전복이 없었다면 나 역시 법비(法匪) 또는 개독 극우 목사가 되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돌이켜보니 모골 송연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의사가 된 이후, 50대 중반 원효(元曉) 공부, 60대 중반 식물과 균(곰팡이) 공부, 60대 후반 제국주의 공부가 나를 성찰과 전복으로 향하도록 끊임없이 독려해 왔다. 성찰과 전복으로 가는 여정은 당연하게도 사회정치적 각성을 포함한다. 사회정치적 각성이 빠진 인생 성찰과 전복은 가짜다. 이 나라 극우에 득실대는 엘리트가 전형이다. 박근혜 때 25번까지 합해 70번째 광장에 서는 오늘 내가 엘리트 아니라는 사실이 고맙고도 고마울 따름이다. _()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 원동욱(동아대 교수)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한국 민주주의가 겪는 위기를 단일한 사건으로 규정하는 시도는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불법계엄에 의한 내란사태는 물론이고 검찰의 정치적 개입, 사법부를 둘러싼 조작 의혹, 대통령 중심의 권력 과집중, 지방자치의 약화 등 모두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구조적 결과다. 한국의 권력 구조 자체가 시대 변화에 맞추지 못하고 노후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왔던 천주교정의평화연대가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지금 벌어지는 사법적 반란을 수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절박함이 중요한 견해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우선’이라는 단어는 지금의 위기가 단일한 층위에 있다는 전제를 함축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복수의 균열이 동시에 터져 나온 구조적 파열이다.
내란적 사태를 진정시키는 일은 필수지만, 그 사태를 가능하게 했던 구조를 그대로 두고 위기만 봉합하는 방식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마치 도시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싱크홀을 보며 “이번 구멍만 막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복의 원인은 노후한 지하 배수망이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딱 그런 상태다.
정치권 일각은 조국 대표의 개헌 언급을 “국면 전환용”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이 구조적이라면, 개헌—즉 제도 설계의 재구성—은 전선 이탈이 아니라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내란 종식은 제방의 균열을 막는 일이고, 개헌은 물길을 바로잡는 일이다. 둘은 선택지가 아니라 병행해야 하는 과제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의제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은 오래된 습관처럼 반복돼 왔다. 박근헤 탄핵 이후 “적폐청산”만 강조되면서 다른 개혁들이 뒷전으로 밀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폐청산이 “검찰개혁”으로만 남게 되면서 전체 개혁 동력은 줄었다. 단일 의제 정치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단기적인 동원 효과는 있었으나, 구조 전체는 건드리지 못했고, 결국 같은 위기가 다른 얼굴로 되돌아왔다.
지금도 똑같은 패턴이 반복될 조짐이 있다. “내란 종식만 우선하자”는 주장에 세력 전체가 빨려들어 간다면, 위기의 뿌리가 다시 방치될 위험이 크다. 이는 지난 10년간 개혁이 왜 매번 중도에 멈춰 섰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충분하지 않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단일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과제를 동시에 조율해 내는 것이다. 오늘의 혼란을 진정시키는 손과 내일의 제도를 설계하는 손은 다른 손이 아니라, 정치가 반드시 함께 써야 하는 두 손이다. 둘 중 하나라도 묶이면 전체 방향은 흔들린다.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은 세 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일 때 가능하다.
첫째, 지금 벌어진 내란적 사법 훼손에 대한 단호한 정리.
둘째, 검찰·사법·행정·지방권력 등 권력기관 전반의 견제 구조 재편.
셋째, 제7공화국을 향한 헌정 구조 개편, 즉 개헌 논의의 본격화다.
이것을 ‘순서’의 문제로 이해하면 안 된다. 이 세 가지는 선후 관계가 아니라 동시적 관계다. 위기가 구조에서 비롯되었다면, 처방도 구조적이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붕괴된 오늘”과 “설계되지 않은 내일” 사이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둘을 잇는 다리를 놓는 것이다.
그 다리가 놓이지 않는다면,
오늘의 위기는 어떤 이름으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35년 세뇌당해 이토록 야비한 악귀 부역 집단이 지배층 되었는데 100년쯤이었다면 말글은 물론 영혼까지 몽땅 뽑아내 민족 전체가 개돼지로 변해버렸을 테다. 3년 권력에 취해 이토록 황당한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는데 5년을 채웠다면 왜놈 황군 불러들여 남북 모두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테다. 이놈 저년 가릴 것 없이 자락자락 왜장독장치는 꼬락서니가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아간다. 슬픔이 끝도 없이 차올라서 진료 일찍 끝내고 휭하니 광장으로 간다.

 

165차는 촛불행동 전국 집중이라 사람이 많다.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기어이 다시” “항쟁이 선언된다. 지난해에 이어서 또 겨울날들을 광장으로 채워야 하나보다. 이런 참여가 스러진다면 제국에 부역하며 호의호식하는 매국노 법비(法匪) 떨거지들 손에 나라가 난장판 되고 말 테니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한다. 특권층 부역자로 당당히 커밍아웃한 현직 판검사, 그 출신 변호사와 파면된 대통령 연놈들이 자행하는 협잡이 이루 다 형언하기 어려우니 퇴로도 없다.

 

본디 그렇게 한평생 살아온 작자들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쉽지 않은 작태들을 상상 초월로 쏟아낸다. 어떤 인간 집단이 한꺼번에 떼거리로 어떻게 쉽고 기막히게 망가지는지 다시없이 생생하게 자기 폭로해 주어 나쁘지만은 않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왜 윤리와 법을 만들었는지, 그래서 그 윤리와 법이 얼마나 속절없이 무용지물로 부서지는지 실팍하고도 허탈하게 깨닫고 만다. 오래전에 잡은 선약 때문에 좀 일찍 광장을 떠나면서 의문이 깊어진다.

 

인간은 정말 존엄한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구별이 과연 타당한가. 인간이 스스로 존엄하지 않다는 진실을 깨달아서 이런 말을 당위론으로 세우지 않았는가. 존엄이란 말을 입에 담지조차 않는 또는 못하는 비인간 생명, 나아가 비생명이 존엄하지 않은가. 아니, 존엄이란 개념 자체가 인간이 지닌 서사 구성 능력에 올라탄 과잉 또는 왜곡이 아닌가. 아니라 하더라도 존엄을 전제하지 말고 얌치있는지에 따라 인간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 않는가.

 

쉽게 심지어 나쁜 뜻으로 쓰는 경향이 있지만 얌치는 웅숭깊은 말이다. 얌치는 존재 자체로 부끄러움을 아는 상태다. 내 생명을 다른 존재에 빚지고 있다는 겸손이다. 공존과 상생 팡이실이, 곧 네트워킹에 참여해야만 삶이라는 각성이다. 얌치 없는 세상을 만든 이 나라 지배층, 특히 오늘 우리 앞에 똬리 튼 법비(法匪) 떨거지들에 인간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기 힘든 까닭이 여기 있다. 약속한 사람들과 만나서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