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몸살 앓으며 인생 내림굿을 하는/받는 동안 내게는 당연하게도 형언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났다. ‘내림굿세 축인 숲·물 걷기, 아픔·삶 고치기, ·나무 동무하기가 서로 엮으며 복잡다단하고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빚어냈다. 한 생이 닫히고 또 다른 한 생이 열리는 카이로스였다. 화룡점정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각단을 잡고 간각을 세워 본다.

 

최근 5년 동안 내 삶 이정표 제시와 각성, 그리고 변화는 언제나 숲·물에서 일어났다. 장소가 아니라 주체로서 숲·물은 내 스승이었다.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보·지식은 인간인 내 사유와 독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또한 미소 생명 팡이시질(networking) 속에 있고, 영감과 동력은 숲·물에서 온다. 도봉산 회룡 계곡과 방이 습지, 궉림(鴌林)이 그곳이다.

 

궉림(鴌林)은 매일 출근길에 40여 분가량 머무는 자그마한 숲이다. 관악구와 동작구 경계 지역으로 동서 방향 긴 능선과 남북 방향 골들로 오종종하게 구성된 이름 없는 숲을 궉림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 지성소에서 꿩이 울고 날갯짓하는 새벽 의례로 내가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아픔을 떠나보내고 새 삶을 맞아들인 일대 치유 사건으로 새겨졌다.

 

봉황을 상징하는 꿩, 그래서 궉()이라 일컫는 새와 소통하고 나서, 이치에 따라 그 지성소 경계에 있는 물오리나무하고 소통을 이루었다. 물론 물오리나무가 나를 불러서였다. 물오리나무를 깊이 몰랐을 때 내가 고쳐 부른 이름이 물팥버들이었다. 소통 후 더욱 깊이 알고 나서 다시 고친 이름은 메팥버들이다. 옛사람 통찰이 옳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오리나무 한자 이름이 적양(赤楊)이다. 물오리나무처럼 물을 좋아해 습지에 산다. 다른 점은 버드나무처럼 물살이 약한 하류 습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물오리나무는 물살이 세고 빠른 상류 산 습지, 심지어 습지 아닌 산등성이에서도 잘 살아 산적양(山赤楊)이라 불렀다. 이런 이름은 콩과 식물과 같은 성질도 지닌 물오리나무를 정확하게 반영하니 제격이다.

 

이렇게 거듭나 내 삶으로 들어온 물오리나무, 그러니까 메팥버들은 꿩과 더불어 씻김과 내림을 갈무리한 몸주수호신이다: 내 심신 온갖 질병을 고친 의사다: 반제 전선 참 동지다: 지구 아우라지·노나지 장엄 영주다. 인제 내게는 그가 소도다; 그가 궉궁 신장이다; 내가 다시 또다시 돌아갈”(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자리다; 솟아서 날아오를 자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 달 몸살 정점을 찍었던 기침 근육통에는 오해가 따라다닌다. 기침이 일어나는 기관이나 기관지 근육에 생긴 통증이라 생각해 그토록 심하다면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부추긴다. 아니다. 기침을 효율성 있게 하도록 돕는 늑간근, 복근, 광배근, 횡격막이 격하게 수축 운동해 기침이 끝난 뒤에 피로 또는 후유증으로 다양하고 기묘한 통증을 일으킨 경우다.


불편하기로 따지자면 그 격렬한 통증부터 주목해야 옳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왜 그렇게 폭발 기침을 집중해서 일으켰는가다. 아침 일찍 한의원 도착해 원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날카롭고 매운 공기가 목구멍을 찌른다. 그럴만한 원인을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5년 동안 변한 일이 없는 한적한 장소다. 장마철임을 고려해서 찬찬히 다시 톺아본다. 그렇다. 마른 식물!

 

동물 식으로 말하면 식물 시체(!)가 원장실 전체에 즐비하다. 그동안 숲에 드나들면서 거둬온 나무줄기와 가지, 그 껍질, 풀잎, , 열매, 거기다 다양한 버섯까지 기억과 기림을 버무려 이곳저곳에서 웅얼거리고 있다. 식물 본성이 상실과 고통으로 들어왔다는 진실과 마주한 찰나부터 내 몸이 달리 반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돌연 감각 구멍이 열린 거다. 아파!

 

, 하는 어떤 시점부터 맹렬한 구토 같은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멈추기는커녕 잠시 쉴 틈도 주지 않고 가슴을 두드릴 새도 남기지 않고 쇄도하듯 목 터져라, 컹컹거린다. 눈물, 콧물 범벅에 나중에는 정신까지 혼미해지더니, 급기야 기억 끈이 뚝 하고 끊어져 버린다. 언제 어떻게 기침이 멈췄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만들어 목을 헹군 죽염수 일부와 젖은 수건이 뒹군다.

 

넋 빼고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식물 본성을 연속성에서만 생각해 왔던 지난 70년을 뒤집어엎은 일대 사건이었구나! 식물 본성을 나쁘게 생각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으나 그렇게만 내 본성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진실 앞에서 통렬히 무릎 꿇은 사건이었구나! 그날 밤부터 기침 근육들이 눈물을 쏟으며 몸부림치는데 차마 신음을 아낄 수가 없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꼬박 닷새가 지나 걷기를 완전히 멈추고 휴식을 취하니 비로소 통증이 물러난다. 이 근육 통증이 물러남으로써 한 달 전 따끔거리는 위 증상에서 비롯되어 장 증상, 천장관절 증상, 우울 증상-웃자란 어른 증후군, 틈새 엄마 증후군-, 그리고 기침에 동반해 다시 찾아왔던 혈관운동 신경성 비염까지 도파니 사라진다. 70년 인생을 휘감았던 귀마가 스러진다. 참삶 동살이 든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정성 다해 집 안에 있는 기억·기림 식물이며 버섯을 거둬들인다. 어제 가지고 온 한의원 식물, 버섯과 함께 간동그려 집을 나선다. 내 자신이자 내 아픔이었던 이들을 내게 말을 걸어온 물오리나무 아래 모신다. 거듭난 생명으로 재회할 날 설레니, 섭섭함 넘어 서그러워진다. 비 젖은 영이 보송보송한 김을 피워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몸살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체중은 50kg 아래로 내려간다. 은근히 기분 갉아먹는 신열, 시난고난한 호흡기 증상, 무엇보다 기이한 폭발 기침이 신묘하게 기습 종료된 이후부터 대상포진처럼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근육통으로 영일 없다. 몇 날 며칠씩이나 잠에서 깨어 병이 건네는 이야기 듣다가 날 밤을 새우곤 한다. 허리가 아리고 다리는 파근하며 활동 감각이 휘주근하다. ‘은화처럼 맑은영 줄 하나 겨우 부여잡고 진실을 뒤좇는다.

 

모른 채 알아차리고 알아도 모른 채 한 달이 흐르고 보니, 이 시간 전체가 신병 속에서 씻김굿과 내림굿이 갈마든 커다란 굿판이었다. 내게 결핍과 상실 틈새로 때 이르게 주입된 식물성·여성성·성숙성을 씻어 내보내고(씻김굿), 늦게나마 건강한 그러나 낯선 동물성·남성성·유아성을 맞아들이는(내림굿) 의례·몸짓 또는 자세·언어가 재현되고 변주되는 시간이었다. 아프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의학이 개입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놀란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일흔 살 먹은 남자 사람이 50kg 미만 체중이라면, 게다가 술까지 주야장천 마셔댔다면, 더럭 암 걱정을 들먹여도 호들갑은 아닐 테다. 뾰족한 설명 방법이 없으니 그냥 빙그레 웃고 만다.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오늘은 오만 년 만에 숲 걷기 중단이다! 문이란 문은 죄다 열고 하루 종일 바람 길목에 오도카니 앉아 멍때림으로 휴식을 취한다.

 

생색 없는 평온이 잠시 내려앉는다. 이 간이역에서 내릴 여행이 아니니 다음 행로에 유념한다. 어디인지 모르는 솟을굿역을 향해 다시 일어선다. 거기 또한 아플 만큼 아프고 나서야 닿을 곳인지 나는 모른다. 천명 받는 일이 무슨 상 받는 일은 아니니 전보다 더 깊은 신음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하는 일은 아닐까, 오히려 두렵다. 통증이 깊이 가라앉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사부자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밥을 먹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살려주세요!” 내가 아니라 장점막 밖에서 나와 공생하는 미세 생명들이 이 다급한 말을 듣는다. 미세 생명들은 내게 이렇게 통역해 준다. “오늘은 지하철 갈아타고 걸어가지 말자. 그냥 쭉 가서 마을버스 갈아타고 가자.” 어르신 카드로 절약되는 교통비를 <전쟁 없는 세상> 단체에 기부하기 때문에 나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자고 결정한다.

 

숭실대입구역에서 내려 승강장을 너덧 걸음 걸어가다가 시선이 갑자기 발치로 뚝 떨어진다. 거기 매미 한 개체가 힘겹게 버둥거리고 있다. 내가 거기로 얼른 다가서자, 덩치가 집채만 한 젊은 남자 사람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나는 조심조심 매미를 들어 올린다.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그에게 말한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나무한테 보내줄게.”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팝나무 줄기에 살짝 붙여준다. 천천히 힘들게 그가 나무를 타고 오른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라도 지하철역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만은 면할 테니 그 구원 요청은 일단 유효했다.


 

사실 이런 일은 내게 일상이다. 땅강아지, 지렁이, 나방, 무당벌레, , 거미, 심지어 파리까지 수없이 살길을 찾아주었다. 오늘 일을 특별히 거론하는 며리는 내가 느닷없이 귀가 경로를 바꿨다, 즉 다른 경우와는 달리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데서 결과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변화는 그만한 연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사실 우연히 일어난 일조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팡이시질(hyphaeing), 그러니까 네트워킹 작용에 따르지만 요즘 내가 깊이 관심 두는 내밀하고도 정확한 감지 능력 문제의식에 맞춘 과정 배치가 아니었을까?

 

서구 과학 인과율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내 인식 방법은 소설에 가깝다. 기껏해야 유사 과학 정도로 폄하될 줄 모르지 않는다. 소설이든 유사 과학이든 서구 과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소설이다. 인간 지성을 수학에 외주하여 만들어낸 서구 과학 이전 인류 고대 과학에서는 지식과 지혜가 분리되지 않았다. 지혜는 몸 알아차림에서 나오는 적응과 창조 능력이다. 이를 제거한 서구 과학은 일직선으로 제국주의 지식을 향해 질주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시간이 없다. 고대 과학 지혜를 복원해야 인류가 살 수 있다. 내가 주창하는 범주 인류학이 바로 그런 자각에서 발원한 지성 운동이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서구 과학주의자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 범주 인류학은 서구 과학을 가로질러 간다. 최근 내가 경험한 놀라운 일 하나를 소개한다.

 

책깨나 읽는 사람이라면 로빈 월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를 모를 수 없다. 그가 지닌 사상과 글쓰기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지나 나는 그 향모 자체에 지극한 관심이 갔다. 자료는 그리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았다. 볏과 식물로 향이 뛰어나고 북미 대륙 선주민은 지구 최초 식물로 여기며 그 향을 매우 귀하게 대한다는 정도였다. 접할 수 있는 길도 찾지 못했다. 외곽 관련 자료를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레몬그라스라는 아로마에 가 닿았다. 볏과 식물에서 추출한 아로마로 향이 레몬 비슷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뿐 레몬과는 전혀 무관하단다. 볏과 식물이라는 데에 희망을 걸고 옆지기한테 부탁해 그 아로마를 구했다. 적어도 내가 맡은 그 향은 레몬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 향은 벼 줄기나 잎에서 나는 향과 거의 똑같았다!

 

열 살 이전 고향 논두렁 경험, 그 아득함 속에 묻혔던 벼 향이 시간 벽을 찰나에 부수고 기억을 불러냈다. 더 놀랍게도 나는 단박에 이 벼 향이 원시 형태 바닐라 향이라고 직감했다! 사실 벼 향에서 바닐라를 떠올리긴 불가능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낸 데는 밥에서 나는 향에 평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한국인도 밥 향을 골똘히 생각하는 경우는 없지만 나는 밥 향으로 훌륭한 아로마를 만들 수도 있다고 평소 생각해 왔다. 벼 향과 밥 향을 같은 선상에 올리자마자 직관이 발동했다.

 


어쭙잖은 내 서구 과학 지식이 반기를 들었다. “바닐라는 난초과 식물일 뿐 아니라 바닐라 향도 여러 복잡한 과정, 심지어 발효까지 거쳐야 추출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벼 줄기나 잎에서 나오겠는가?” 제법 오랫동안 나는 이 고대 지혜를 발설하지 못했다. 마음에 확신은 드는데 증명할 길이 없어서다. 매미 구조 사건 직후 내게 기이한(!) 용기가 피어올랐다. 두 단계를 거쳐 내 고대 지혜를 서구 과학이 증명한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내 가설 하나: 볏과 식물과 난초과 식물은 한 조상에 갈라져 나온 자손이다.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내 가설 둘: 벼 줄기나 잎에는 바닐라 향을 내도록 하는 성분이나 물질이 있다. 이 또한 서구 과학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좀 더 복잡한 세부 이야기가 존재할 테지만 내가 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확인말고는 서구 과학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홀연한 카이로스 경험이 매미 구조 사건과 연동된다는 진실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경로를 좇아 진실에 가 닿고 살려주세요!” 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반대한다면 그대가 옳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70년 비밀을 통짜로 풀고 나니 아연 정적이 찾아든다. 모두 가만 내려놓고 나갈 생각 접은 채 양말 속옷 바느질로 오전을 다 보낸다. 살짝 이르게 국수 삶아 점심 먹고 60년 정든 정릉으로 향한다. 거기서는 무슨 목표나 목적 헤아림이 없어지고 무심히 풍경 속으로 배어들 수 있으니 내겐 수평 신성 공간으로 딱 적소다.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천천히 걸으며 세월과 빛살을 촘촘히 헤아린다. 세월이 빚은 버섯을 아껴 보고, 빛살이 빚은 눈부신 경계를 기려 본다. 마르고 짧은 늦장마라 금천 물소리가 올 고운 바람결에도 휘어지며 뭉그러진다. 작디작은 쏠을 찾아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제 나름 여돌차서 고마움 증표 삼아 영상에 모신다.

 

출입구 언저리를 수백 년째 지키고 계신 느티나무께 새삼 인사하고 염천 망토를 둘러쓴 채 숲을 나온다. 지하철 갈아타며 이동해 조용한 음식점에 든다. 그 집 김치는 휘뚜루마뚜루 후려 섞지 않아 밥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직사각형 배추 조각을 얹어 먹기 좋다. 습관대로 먹던 어느 순간 나는 그 김치 조각을 물에 넣는다!

 

빨간 양념을 헹궈낸 뒤, 다시 김치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남은 양념을 마지막으로 고이 빨아내고, 밥 위에 착 얹는다. 지그시 눈 감고 오물오물 먹는다. 포한(抱恨)이 사라지는 강력한 시간이다. 내가 신어미도 신딸도 되어 뛰노는 내림굿 아기 과장이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온몸과 혼에 소름이 돋는다. 웃자란 어른 없다.


 

홀가분하게 집으로 향한다. 전과 달리 미세 의식 오솔길을 따라 불연속으로 기우는 마음 풍경을 느낀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특히 고통은 다 연속돼 있다는 느낌에 잠겼던 뿌연 시야가 아침 안개 걷히듯 맑아지는 중이다; 결핍과 상처로 들어온 여성성에 출구가 빼꼼히 열리는 중이다. 사나이 과장이다. 틈새 엄마 없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아니다. 갑자기 삭신이 쑤시고 신열이 오른다. 처음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와 같은 증상이다. 신음을 흘리며 그저 뒹굴던 한 찰나 내 입에서 나온 말: “그래 아가야, 이 아픔 지나면 이쁜 짓 한단다~” 나비 포옹해 주고 다독다독···. 아기가 웃으며 손 흔든다.

 

다음 날 아침. 신열, 근육통, 밭은기침, 그리고 불면 때문에, 몸이 물먹인 솜 같다. 3km 훨씬 넘는 숲 걷기를 생략할까, 지난밤에 연속된 망설임이 들어서는 순간 듬직한 사나이가 야젓하게 앞으로 나선다. “이럴 때 숲에 들면 몸이 가벼워져~” 그래도 현실 몸은 일흔 늙은이라 천천히 걸어 숲을 향한다. 는개가 화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