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장애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진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복잡한 증후군이다. 그 가운데 내가 깊이 유념하며 치료해 온 측면은 자기 경계를 건강하게 세우지 못해 일어난 자기 비하나아가 자기부정이다. 타자를 당당하게, 대등하게 마주하지 못하고 배려·양보·관용이란 이름으로 스스로 먹잇감 되게 하는 모진 경향성이다. 그 끄트머리에 자기 살해가 도사린다.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송주현, 2026)에 따르면 모유 먹는 아기 장내 점유율 1위 미생물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필수아미노산 트립토판을 이용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면역 교사 인돌-3-젖산을 만들어낸다. 모유를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나와 남/적을 구별하는 일에 실패해 자가면역을 포함한 여러 면역 질환으로 미끄러지는 이치다. 그 대표 질병이 다름 아닌 우울장애다.

 

<고갱이 의학을 아시나요?>에서 내 위장질환 문제를 이야기한 바 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미음으로 연명한 영아 시절 아밀라아제 결여가 어떻게 일생을 뒤흔들었으며, 그 진실을 알고 나서 어떻게 변했는지가 그 내용이었다. 그보다 더 육중한 오늘 사연은 내 우울장애 이야기다; 같은 곳에서 발원한 두 질환이 내 인생 전체 방향을 더불어 규정하고 조정했다는 각성 이야기다.

 

내가 40대 중반에 수능 쳐서 한의대 입학해 50대 초반에 한의사 그것도 숙의(熟議)로 정신 치료하는 사람이 된 까닭은 50년 동안 시달려온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한 내 병을 스스로 고치려, 미친 짓이라며 만류하는 주위 뿌리치고 건곤일척 도박을 감행했다. 성취만큼이나 좌절도 심했던 임상이지만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중이다; 우울 골갱이도 남아 있는 채다.


물론 그 골갱이도 인제 고갱이로 변할 테다. 위장질환 경우처럼 그 시원(始原) 곡절을 마침내 알았기 때문이다. 이 두 변화는 치유를 근본 지점에 가 닿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생명에 배어든 식물성과 여성성이 몸 마음 살갗을 찢어 들어온 상처였음을 통렬히 각성하게 했다. 그 각성은 온정과 신비 경사각을 단박에 쳐 내려, 상처 이전 본성이 지닌 임계점에 다시 세웠다.

 

임계질량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종간 공명과 소통을 꿈꿀 수 없다는 진리 앞에 허리 접도록 깨우치신 도봉 큰 스승께 8배 올린다; 본성 최선으로 흐르게 길을 트도록 가르치신 회룡 큰 스승께 고맙습니다!” 예물 드린다; 동시성을 인과성에 붙들어 매려 했던 아둔함에서 벗어나도록 이끄신 물까치 큰 스승께 “객~깨깨깨깨깩!” 찬가 바친다. 노나지가 참 아우라지 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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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까치는 60년도 썩 넘은 내 기억 역사 속에 암암히 살아 있는 새다. 그 소리도 메나리토리처럼 귀에 각인돼 있다. 이따금 그 날렵한 자태와 파스텔 톤 물색에 눈이 가곤 하지만 보통은 출근길 숲에서나 도봉산 숲에서나 방이 습지 숲에서나 특별한 주의 없이 익숙하게 대하고 지나친다. 오늘 그 오랜 습관이 툭 끊어진다.

 

도봉산 회룡 계곡 아우라지를 나와 자주 가는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지하철로 곧장 방이 습지를 향한다. 달력 구분으로는 오늘이 봄 마지막 날이지만 습지는 이미 여름에 이드거니 들어와 있다. 볕이 후더분해서 누리가 누글누글하다. 물에 떠 있는 논병아리도 굼뜨다. 나 또한 땀 아낄 요량으로 소심히 움직인다.

 

꾀꼬리, 되지빠귀, 박새, 쇠박새, 멧비둘기들 목소리에 귀를 열고 무심히 걷던 어느 순간, 내 주위를 따라 돌고 있는 새 기척이 다가온다. 물까치다. 걸음을 멈춘다. 그가 같은 음성으로 내 존재를 탐색한다: 크르르르~!? 곧이어, 숲 전체에 흩어져 있던 물까치들이 집결한다. 내 주위를 도는 그가 더욱 가까이 다가든다.


 

마치 공격하듯이 근접 비행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자, 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더 오래 머물며 다시 말한다: 크르르르르~!? 다음 순간 내 입에서 같고 또 다른 소리가 흘러나온다: 크르르르르~?! 열댓 번 주고받더니 풀어놓는다. 내가 서서히 움직이자 집결했던 무리도, 말을 걸었던 그도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도, 떠난다.

 

다음 일이 궁금하다. 그들이, 아니면 그만이라도 나를 기억할까? 다른 궁금증이 하나 더 있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에서 내가 크르르르르~?!” 말하면 거기 물까치들도 대답할까? 아무래도 이거까진 무리지 싶다.^^ , 괜찮다. 새가 이리 말을 걸어왔으니, 길이 보인다. 여간해서는 생략할 수 없는 동물 나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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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6-04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아파트 주위에도 물까치가 아주 많아요. 이 아파트에 처음 이사와서는 한 종류의 새가 눈에 띄게 많은데 무슨 새인지 몰라서 도감 보고 찾아봤더니 물까치더라고요.
아기 물까치도 혹시 보셨나요? 쬐그만 것이 아주 귀여워요.^^
 

 

일기 예보는 분명히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도봉산은 어쨌으려나 궁금하다. 지난주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 골짜기 들머리에 도착했다. 회룡천 물부터 살핀다. 역시나 오히려 지난주보다 수량이 줄었다. 아우라지 상황도 마찬가지다. 복류 지점이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해 있다. 지난번 복류 웅덩이는 아예 말라버렸다.

 

접지하며 앉아서 찬찬히 살핀다. 돌 사이로 낙엽이 쌓여 길을 막아 물이 빙빙 돌며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열어주자 후련하게 물이 흐르더니 금세 말간 줄기를 되찾는다. 돌돌 여돌차게 들리는 물소리가 한결 더 경쾌하다. 정신을 명징하게 만드는 소리다. 커다란 폭포 소리도 감동을 주지만 작디작은 쏠 소리가 이럴 땐 훨씬 더 찰지게 배어든다.


 

숲에 빙의되어 숨 쉬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돌아본다. 산초나무가 손짓한다. 건너편 비탈 활엽수 뒤에 몸을 숨겼던 소나무도 슬며시 나선다. 돌 틈과 나무 사이 좁은 땅에 깜냥 맞춰 이고들빼기, 좀깨잎나무, 졸방제비꽃, 주름조개풀들이 해를 향해 까치발하고 있다. 빛살과 마주하는 온갖 방식으로 조그만 숲은 queer 자체다.

 

헬리콥터가 온 산을 뒤흔들며 다가와 사패산 보루 쪽에 머문다. 사고가 난 듯 한참이나 지나고야 떠난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머니 같은 산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맹수 같기도 한 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아우라지도 ‘노나. 아우라지라고 거슬러 찾아온 내게 여기는 그런 나누라지다: 섣부른 신비주의 합일보다 엄연한 경계 앞에서 투명하라.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제 마주한 현실이 마지막 승부수를 요구한다면 어찌할까. 무엇이 승부가 될까. 수는 있을까. “나로서는아직 알 수 없다. 내 황석공(黃石公)이신 도봉산 회룡계께서 일묵만뢰(一黙萬雷) 가르치실 테다. 다시 길 없는 길을 떠날 때 엄숙과 질탕이 갈마들며 심사가 묘연해진다. 오라시면 오고 가라시면 갈 따름이다.

 

* '노나지'는 분리를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노누다'에서 끌어와 새로 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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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한해를 빼고 거의 70년 동안 나는 위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기억이 또렷하게 나지 않는 아주 어릴 때는 말고 서울 와 살면서부터만 돌이켜봐도 배앓이, 게우기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살던 집 차고 눅눅한 방에서 배를 웅크려 안고 뺑뺑 돌던 기억이, 이따금 마치 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풀이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여러 가지 위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렇다 할 치료를 하지 않고 견뎠다. 왜 그런지 생각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다음에는 더러 한약을 달여 먹곤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깊이 관심 두지 않았다.

 

70줄에 접어든 어느 날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벼락같은 사실과 맞닥뜨린다: 생후 1년 이내 영아에게는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가 분비되지 않는다! 이 시기 동안은 모유를 먹도록 진화해 왔다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내가 먹은 음식은 모유가 아니라 미음이었다. 어머니한테서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먹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누구이랴. 당사자인 아기가 자라서 의료인이 된 뒤에도 20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을 바탕으로 뭔가 알아차리기란 벼락 맞고 천재 되는 일과 같다.


 

인간이 모른다고 아무도 모르리라 단정하면 안 된다. 아는 존재들이 그때부터 있었으며, 이제까지 있다: 바로 인간 나와 공생하고 있는 미생물! 그들이 증거 주체며, 나아가 나를 어렵사리 살려낸 은총 주체다. 그들이 마침내 꼭 똑 알맞은 카이로스를 택해 내게 기별했다. 한 소식 전해 들은 나는 그제야 70년간 봉인돼 있던 비밀에서 풀려났다(解脫). 깨달음은 곧장 치유력으로 작동했다. 사실에 터 잡은 진실 서사가 장엄한 의학이 되어 내 생애 전체를 화쟁으로 관통했다. 70년 통틀어 속이 이리 안온한 나날은 바이없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는 중이다.

 

내력도 이치도 시종도 모르는고통에 시달릴 때 인간은 절망한다. 모르는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행위가 다름 아닌 의학이다. 이 행위를 하는 의자는 오늘날 거의 없다. 구조 병을 수리하는 외과 기사, 기능 병을 개선하는 내과 기사만 판을 친다. 삶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병을 서사로 치료하는 고갱이 의학을 내다 버린 거다. 서사로써 모르는상태를 걷어내는 시간이 제국 자본에 반역하기 때문이다. “모르는상태이기에 무거워지는 고통이 기사질로 가벼워지는 고통보다 모름지기 더 많다. 의자가 본디 알려주는 자였다는 역사를 신화에 내어주면 찐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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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로 짐작되는 70대 후반 남녀가 지하철 노약자석 셋을 모두 차지하고 앉아 있다. 가운데 좌석을 비우고 양 끝에 떨어져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가운데 좌석에 앉자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구태여 그 의아함을 풀 까닭까진 없어서 이내 눈길을 돌리다가 여자가 하는 행동 때문에 멈칫한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뜯고 까는 손길 더한 다음 남자에게 건넨다. 초코파이를 비롯한 음식물이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받아 우물우물 먹는다. 다 먹고 남은 봉지를 여자에게 준다. 봉지를 받아 든 여자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거두어 먹는다. 이런 행동을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20분가량 지났을까, 남자가 잠을 청한다.

 

여자는 봉지 포함 이런저런 쓰레기를 정리한 뒤 등을 젖혀 기댄다. 아주 잠깐 허공을 향한 그 눈빛이 보였다. 현실에서든 드라마 같은 허구에서든 그렇게 아득한 눈빛을 본 적이 없다. 그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는데 내 시선에는 여전히 그 아득한 눈빛이 걸려 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저들 행동이 내 심사를 흔들어댄다.



모든 진실을 다 알 듯도 하고 대체 어쩌면 저렇게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교조화된 조선 후기 유교 사회를 거쳐 왜 식민지, 미군정, 내전, 다양한 형태 독재를 겪으면서 내재화된 가부장 심리 기제라고 설명을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우라 잘못 불리는 쓰레기들한테 온 나라가 휘둘리는 이 뒤틀린 현실에서.

 

저녁 식사 때 충분히(!) 마신 반주로 얼얼했는데 그 아득한 눈빛에 찔려 정신이 은화처럼맑아지고 만다. 우환에 나로 말미암아 내 옆지기가 그런 눈빛을 지은 적은 없을까, 까지 살을 파고드니 발걸음이 아연 허든댄다. 따지고 보면 결이 같아서 내가 자꾸 되작거리는 거다. 가리산지리산 헤매는 내 삶부터 아득한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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