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방이 습지에서 공동체의 시간”(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과 잠시 만나고 나는 삼성동으로 가 봉은사를 걸었다. 봉은사는 고등학교 1학년 때(1972) 봄 소풍으로 처음 다녀간 이래 50여 년 동안 아주 여러 번 걸은 곳이다. 특히 한의사가 된 뒤부터는 보수교육을 대부분 코엑스에서 받는지라 매번 찾았다.

 

넓지 않으나 오히려 아기자기한 맛이 쏠쏠하다. 뒤쪽 야산에 명상길까지 가꾸어 놓아 찾는 이가 많다. 다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불사, 그러니까 토건이 돈을 향해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켜서 갈 때마다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뭐 하나 세우고 그 앞에다 불전함 놓고 이런 식이라 걸태질 같아 보이니 말이다.

 

봉은사뿐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 모든 절 풍경이 그렇다. 불심으로 보면 남루하고 너절해 보일 텐데 이 무슨 아이러닌지. 부처님오신날 가까워서 더욱 야단스럽다. 신심과 욕심 사이 구별이 없어 보이는 풍경을 휘적휘적 가로지른다. 오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놀랍게도 공양간이다; 거기 모셔진, 조왕신(竈王神)이다.


 

조왕신은 우리 토속신앙에서 부뚜막 또는 부엌신이다. 나도 어린 시절 그 이름을 들었고, 할머니께서 치성(致誠) 올리는 일을 수없이 보았다. 이제 와 홀연히 다시 맞닥뜨리니 대뜸 시간이 접힌다. 어디 부뚜막/부엌뿐인가. 우물, , , , 심지어 뒷간에까지 수호신이 있다-측신(廁神)-. 가히 즈런즈런한 다신론이다.

 

불교는 이런 토속신 104위를 품어 신중(神衆) 신앙과 융합했다. 맹랑한 음모론 유일신교 관지에서 보면 뒤죽박죽 미신이거나 열등한 종교일 테지만 엄밀하게 보면 이렇게 촘촘한 다신(多神)이야말로 무작위 퀴어 우주 본성에 한층 더 다가간 숭고다. 나는 불교 자체가 더욱 섬세한 평등 networking 다신교가 되기를 빈다.

 

조왕신께 합장하고 명상길로 들어선다. 지난해 잘려 나갈 위기에 몰렸다가 내 기지로 목숨 건진 여린 도토리나무 앞에 선다. 기울어지긴 했으나 흠씬 자란 그분께 신명을 헌정한다: 회신(栃神). 우주를 구성하는 삼라만상 모두가 신이다. 얽히고설켜 서로 장엄을 축하하는 존재 사건이다. 도토리나무께서 나를 초대한 신비다.


화면 전체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가로지른 호리호리한 나무가 도토리나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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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대(시인/문인화가)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삼성전자 노조원 같은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회사의 어마어마하게 큰 이익을 같이 나누자는 것(성과급 투명화, 상한제 폐지 등) 이해가 간다. 거기에 대해 의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들이 받는 성과급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액수라고 해도 말이다.
다만, 오늘 같은 날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고령 노동자 등 조직되지 못한, 조직되기 힘든 노동자들에게 더 눈길을 돌려야 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일해도 대기업 노동자 보너스 만큼도 못 받는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기 힘드니 잘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을 무단히 원망하기도 한다. 옳지 못한 원망이지만 그 원망을 무작정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죽했으면 그러겠는가 하는 마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 부당한 요구를 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 해당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대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꿈같은 생각을 해본다. 어떤 연대의 방식이 있을까? 욕설 범벅인 시 한 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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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 유전]
석 달 넘게 일한 돈 못 받아 겨울 풀처럼 말라 가는 엄마와 외제 차 자랑한다는 업주에게 하소연 전화하는 엄마 옆에서 업주에게 들리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혀가 식칼이 된 아들 전화기 속으로 고함 소리 잘 들어가도록 폰 마이크를 켜는 저녁이다 그 씨발새끼한테 찾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말해 줘요오오— 책상을 치고 스텐 냄비 두드리며 피 끓는 응원을 보내는 아들과 조용히 하라면서도 손짓 발짓 아들의 함성을 부추기는 엄마 눈 껌벅이며 신호를 주고받다가 아들의 고함 가까이 전화기를 대주는 전화기 이쪽의 애끓는 저녁이다 아저씨 흥분하지 마시라 하라고 소곤거리는 전화기 저쪽의 간사한 저녁이다 씨발새끼가 여자라고 사람을 우습게 봐 혼자 산다고 우습게 봐? 남편 아니고 아들이라고 말해 줘요 식칼 들고 찾아간다고 말해 줘요오 엄마는 웃으면서 우는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아들이 무슨 일 저지를까 무섭다고 능청스럽게 흐느낀다 바람 불고 전등 깜박거리던 저녁이 지나간 이튿날 식전 통장에 엄마 월급이 들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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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방이동 옛 이름은 방잇골이었다. 개나리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 이름으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병자호란 때 오랑캐를 막았다는 뜻, 곧 방이(防夷)가 등장했다. 후대에 선비들이 뜻을 문제 삼아 방이(芳荑)로 바꾸었다고 마무리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부분 그렇듯 먹물들이 지어낸 그럴듯한 서사일 가능성이 크다.

 

방잇골은 백제 첫 도읍인 위례성 권역으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안말내(성내천)와 단내(감천, 나중에 감이천)가 합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농사가 성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 특히 1960년대 말부터 사나운 변화 대열에 휩쓸린다. 정치적 계략이 사회경제적 현실을 부추겨서 거대한 토건을 이른바 영동지구에서 일으킨 것이다.

 

영동은 영등포 동쪽이란 뜻으로 1, 2차에 걸쳐 엄청난 부동산 쇼가 온 나라를 뒤흔들며 펼쳐졌다. 흔히 이 사태를 강남 개발이라 불렀다. 이 광풍 언저리에 놓여 있던 방이동, 안말내와 단내 사이 농지에 1970년 벽돌공장이 들어섰다. 1997년에 문을 닫을 때까지 토사를 마구잡이로 퍼낸 결과 그 자리에 커다란 웅덩이가 형성됐다.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웅덩이는 인근 물과 강우가 쌓이면서 습지로 변해 갔다. 숲이 생기고 물고기와 각종 동물이 보금자리를 꾸몄다. “방이 습지. 2002년 서울시는 방이 습지를 생태·경관 보전 지역으로 지정했다. 2011년에는 방이동생태학습관도 열었다. 현재 식물 114, 조류 45, 어류 6종이 서식하고 있다(2021년 통계 자료). 



지난 일요일(4월 26나는 방이 습지로 향했다올림픽공원역에서 진입하는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귀살쩍다여전히 방치 상태다도시 개발이 빚어내는 그림자로 궁뚱망뚱한 살풍경 전형이다서둘러 지나쳐 생태학습관에 이른다아무도 없다관찰 길도 마찬가지다적요에 아뜩해졌으나 곧 고요에 깃든다.

 

천천히 걷다 섰다 앉았다 하며 쩍말없이 홀로라는 습지그 물컹한 늪으로 빠져든다여태까지 걸었던 숲이나 물 발길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질퍽거린다시간이 흐를수록 음탕해지는 개구리 연가를 속귀 열어 듣는다홀연히 꿩이 울리라는 육감에 따라 스마트폰 앱을 연다이어서 울지 않고 끊는 그 우렁찬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는다.

 

이런 시간을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이 자연은 퀴어하다에서 말한 공동체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사실 내가 여기 온 며리가 그러하다내 걷기는 중대한 변곡점을 향해 가는 중이다무작위성과 퀴어함에 나를 열어듣지 못해서 듣는 세계로 들어가고자 해서다마법이 과학인과학이 마법인 삶에 잠기기 위해서다.

 

새, 나무버섯바람을 반제·반식민 동지로 모시는 일이 더없이 엄밀해지려면 더 자주 더 이드거니 만나야 한다여럿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여러 번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인간과 과학 경계를 가로질러 시공을 접는’ 마법이 필요하다유의미한 고뇌는 유의미한 결과를 창조하는 법이다습지에 홀로 앉아 영에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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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느지막이 도봉산 무수골로 향한다. 다른 계획을 잡기 어려울 때 가곤 하던 곳이다. 지난번 내린 봄비로 무수천 물도 물소리도 깨끔하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 전에 어귀 밤나무집 가서 점심 식사부터 한다. 새콤하니 익은 열무김치 곁들여 잔치국수를 먹는 중에 바깥일 하던 여주인이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듣는다.

 

여기서 태어나 60년 가까이 살았으나 골짜기 이름을 무수골이라고 부른 적이 없단다. 심지어 보문사 계곡이란 말은 처음 듣는단다. 토박이들은 골 위쪽을 밤나무골이라 부르고 아래쪽을 굿골이라 불렀단다. 물론 밤나무와 무속인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실현 가능성이 작으나 한자로 표기한 관료식 이름을 모두 본디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도봉산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 창건된 도봉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설이나 조선 개국과 관련해 도봉산이 됐다는 설은 모두 지배층 중심 사후 서사다. 도봉에서 에서 왔다고 본다. 자운봉을 비롯해 그 주위 암벽들이 지니는 압도적 위상서껀 이어지는 오봉·포대·다락 암릉(巖稜) 길을 가리키는 우리말 이름이 모름지기 엄존했을 테니까.

 

특정 목적에 따라 작위로 지은 이름과 달리 민중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름은 무작위 소산이다. 인간으로서 산, , 들과 상호작용 하며 살아가는 맥락에 딱 알맞은 표상을 누구랄 수조차 없이, 너나 함께 입에 올려서, 사실상 자연발생 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시원에 닿은 평등과 자유 팡이시질(networking) 영성을 머금고 있다. 되살려야 할 며리다.

 

길 잃고 헤매기 직전에 담았다고 추정하는 숲 풍경


밤나무골 길을 찾은 뒤 처음 담은 물 풍경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여주인이 허리 아픈 이야기를 한다먹다 말고 나는 침을 꺼내 든다침 치료를 받은 그가 고마움을 표하며 전을 부쳐준다맛나게 먹고 길을 나선다지도에서 확인한바 다른 길과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 비탈길로 들어선다길 잃기로 작정한다마침내 어디선지 알 수 없이 길을 잃고 무작위로 헤맨다숲에 왜 드는지 알고야 말리.


어떻게 해서 밤나무골 길을 찾아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지점을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은 걸 보니 넋을 놓은 상태로 떠돌았음에 틀림없다. 정신 차리고 담아 놓은 물 사진이 서른 장 가까이 된다. 밤나무골 물 모심은 제대로 한 듯하다. 새로운, 아니, 본디 이름을 찾아 다시 부를 일 없는 이름 무수골은 이제 어떤 격상을 앞두고 있다.

 

실은 몇 주 전부터 해월(海月) 스승 유택이 있는 원적산을 탐색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숲에 드는 게 맞는지 스스로 다시 물었다. 기나긴 여정 뒤라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확실히 비어 있다고 느껴서 끈덕지게 물었다. 원적산을 보류하고 위험성이 덜한 밤나무골 어디선가 길 잃기로 돌렸다. 숲이 어떤 슬기를 줄는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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