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계곡 가운데 염두에 두었으나 들어가지 못한 곳이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절터골 계곡과 염불암 계곡이다. 오늘(2013. 9. 17.)은 이곳으로 간다. 시간이 맞는다면 삼성천 건너 비봉산(295m) 허리께 재를 이루는 소곡도 들어갈 생각이다.

 

여느 날보다 조금 일찍 출발해 절터골 계곡을 향한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가는데 숲에서나 도시에서나 그 지도는 그리 세밀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아 여러 번 길을 잘못 든다. 계곡 입구에서조차 헤맨다그러려니 하고 헤매면서 간다.

 

계곡 풍경이 아연 좋다. 전날 비가 내려서인지 물소리가 기세 좋게 들려온다. 계곡 길은 물과 살짝 거리를 둔 사면을 따라가는데 이 길 또한 소곡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길도 작은 도랑이다. 군데군데 길을 가로지르는 소곡이 주름져 도랑끼리 수시로 교차한다. 나는 아주 자주 그 작은 물에 손을 맞춘다. 기분이 탱탱하게 맑아진다. 계곡 물소리가 거의 능선에 이르기까지 계속 들려와 기분을 더 맑게 해준다. 처음 겪는 일이다.



 

이리도 작은 계곡이 이렇게나 아금박스럽다니. 능선길을 걸으면서도 염불암 계곡으로 들어서서도 지나온 계곡 향기가 심신에 묻어 있어 사라지지 않는다. 염불암 계곡은 예상한 대로 포장도로와 소란스러운 인파가 풍경을 일그러뜨린다.

 

물소리 시원한 삼성천으로 내려와 식당을 찾는다. 단체 손님 받는 곳들이라 모두 손을 젓는다. 한참 걸어서 겨우 해장국 파는 식당에 닿는다. 안주인이 돈 안 되는손님을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맛있게 먹고 명함 한 장 달래서 챙겨 나온다.

 

이번에도 엉성한 지도에 당하다가 가까스로 안양동에서 비산동으로 넘어가는 재넘이 계곡 진입로를 찾아낸다. 아주 좁은 길이지만 특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능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지막한 둔덕인데 좌우 조그만 골짜기에서 물소리가 화음으로 들려온다. 더 깊은 골짜기 물소리가 먼저 끊기고 어디가 시작인지도 알 수 없는 얕은 골짜기 물소리가 거의 잿마루까지 들려온다. 숲이 품은 진실은 언제나 내 상상 저 너머에 있다.

 

이로써 관악산 계곡 16곳을 들고 났다. 이만하면 어디 지성소 삼을만한 데가 나올 법도 하련만 여전히 마음이 허공에 떠 있다. 물론 오늘 지나온 절터골 계곡에 마음이 심하게 끌리기는 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불편은 단념을 부른다.

 

아무래도 가까운 다른 계곡에 더 들어가야겠다. 서울 둘레길 구간 중에 무당골이 있다. 거기서부터 결 지는 작디작은 계곡들을 마지막으로 살피기로 한다. 뭐 꼭 그래야 한다기보다는 거기서 더 갈 곳은 없으니, 숲이 말을 건네리라 믿어서다.

 

나는 반제국주의 전선에서 꼭 똑 숲 군대 척후병으로 살아갈 운명인가 보다. 도시와 인간하고는 도무지 연대할 수가 없다. 저들이 쏟아내는 거대한 강전(强電)은 내게 생명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숲이 전하는 소소한 약전이 나를 살아 퍼덕이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게 숲은 시시각각 나를 낳아주는 어머니시다. 어머니 묵묵함이 일깨울 때만 나는 천둥 같은 전사가 된다. 나무와 풀과 어깨 걸고 진군할 때만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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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20 0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일행들과 관악산 등산 다닐 때가 생각나네요.

bari_che 2023-09-20 07:55   좋아요 0 | URL
오, 관악과 인연 있으시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