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산마루 집 거실에서 남쪽을 보면 바로 앞이 정능산이고 그 본진은 관악산이다. 서쪽은 국사봉이고, 왼쪽은 서달산이다. 북쪽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는 이름이 없는 낮은 산인데, 거기 사육신묘가 있다. 한강 가로지르면 용산이고 그 본진은 안산 (너머 북한산)이다. 이 지정학적 배치를 인류학적 서사로 재구성하면 정능산은 주작, 국사봉은 백호, 서달산은 청룡, 사육신묘가 있는 산은 현무가 된다. 북한산은 진산(鎭山), 관악산은 객산(客山)이다. 도림천을 그려 넣으면 배산임수 풍수도 완성이다.

 

오늘 숲 걷기 동력은 바로 물색없어 보이는 이 인류학적 이야기에서 나왔다. 백호를 돌아 주산 능선을 타고 청룡으로 들어간다. 청룡이 품은 동작동 국립묘지를 정화하려 의식을 행한다. 동작동 국립묘지는 국방부 소속 국립서울현충원이 관장한다. 국립서울현충원 누리집 소개란에 <현충원의 지세>라는 글이 있다. 전문을 인용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북한산, 남산, 공작봉,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푸른 동맥을 잇는 공작봉(孔雀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공작봉은 서울 강남에서 드물게 푸르른 녹지를 가진 현충원을 감싸 안은 봉우리로 양쪽으로 뻗어내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면서 늠름한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호위하는 모양으로 기운이 뭉쳐 있다.

 

사방의 산은 군인들이 모여 아침 조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지하에는 여러 갈래 물줄기가 교류하여 생기가 넘치는 명당자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체의 형국은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쭉 펴고 있는 모습으로 공작장익형(孔雀張翼型)이면서,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이다. , 좌청룡(左靑龍)의 형세는 웅장한 산맥의 흐름이 마치 용이 머리를 들어 꿈틀거리는 듯 한강을 감싸 호위하는 형상이고, 우백호(右白虎)의 형세는 힘이 센 호랑이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듯하며 전후좌우로 솟은 사방의 봉우리와 산허리는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줄지어 서 있는 형상과 같다.

 

정면 앞산을 바라보면 주객이 다정하게 마주 앉은 모양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마치 물소뿔 모양이며 한강 물은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들어 마치 명주 폭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며 공작봉을 감싸 흘러 내려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립묘지가 위치한 공작봉(孔雀峰)은 산수의 기본이 유정(有情)하고 산세가 전후좌우에 펼쳐져 흐르는 듯하여 하나의 산봉우리, 한 방울의 물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으며 마치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상인 갈형취상(渴形取象)으로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제임스웹 망원경이 우주 진실을 전하는 세상인데 대한민국 국립서울현충원은 누리집에서 풍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한다. 천하 난센스인가? 일단 대답을 유보한다.

 

청룡을 남북으로 따라 걷다가 달마사 직전에 서북으로 방향을 틀어 매봉재(까치산) 능선길을 걷는다. 상도터널 위를 가로질러서 마침내 사육신묘에 다다른다. 청룡을 따라왔지만, 실은 사육신묘 품은 산은 다른 흐름에서 와 청룡과 만난다고 해야 한다. 사당이고개에서 청룡과 갈라져 흐르는 능선은 둘이다. 하나는 그대로 동서 방향으로 흘러가 국사봉에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도동과 노량진1동을 가로지르는 남북 방향 능선이다. 그 끄트머리가 사육신묘 품은 산이다. 그 흐름의 분기점이 바로 내가 사는 바리뫼 마루다.

 

사육신묘는 김시습이 사육신 주검을 거둬 묻음으로써 역사에 등장했다. 방치되다가 숙종과 정조를 거치며 정비·법제화되었다. 사당을 비롯한 건물들은 박정희 때에 지어졌다. 박정희가 벌인 이런 토건이 지닌 모순도 모멸감을 자아내지만, 한 가지 전해야 할 진실이 또 있다. 바로 김문기다. 김문기는 사육신이 아니다. 정조가 만든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에 따르면 삼중신(三重臣)에 해당한다. 여기 묻힐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된 까닭은 김문기 후손인 김재규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사육신이 지닌 상징적 위상에 편승하려 권력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문중에서는 이를 부인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가 이병도·이선근·백낙준·한우근·이기백·김원룡·최영희-이들은 대부분 일제 특권층 부역자다- 15인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꾸려 이 문제를 논의하고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나중에 결정을 뒤집기는 했지만, 여전히 김문기 빈 무덤이 봉안된 채로 있다. ‘6’신묘에 ‘7’신묘를 봉안한 이 웃지 못할 꼴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나중에 덧붙인 김문기에 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오른쪽 아래 묘역에 하나가 억지로 더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지도


 

그런데 이 문제에 김두규라는 외부 필자 글이긴 하지만, 조선일보가 입을 댔다. 글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노량진 사육신 묘역의 풍수는 어떨까? 묘역의 지세는 관악산 지맥이 북상하여 한강으로 나아가려 한다. 사육신묘는 그 흐름을 따르지 않고 거꾸로 한양도성과 등을 돌리고 관악산을 바라본다. 이른바 지세를 거슬러[] 안장되었다. 하극상으로 투옥될 자리라고 풍수서는 말한다. 풍수에 능한 숙종이 이곳에 사육신묘를 허락한 것도 겉으로는 '충신'으로 현창하지만, 속으로는 '배신자들'의 무덤임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닐까? 김재규 부장의 풍수 패착은 이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익히 경험했고, 현재도 목격하는 바처럼 이 식민지 부역 권력과 재력 정상부 담론에서 점술과 풍수는 필수다. 대놓고 일삼는 일제는 훨씬 더 음산하다. 과학과 합리를 가면으로 쓴 서구 제국은 기독교 주술과 묵시록에 절어 가장 악마적이다. 저들이 인류학으로 인류에게 뒤집어씌운 온갖 어두운 서사는 실제 극단화된 자기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이 찬란할수록, 합리가 결곡할수록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점술과 풍수는 맹랑하고 허황하다. 전향한 저들 인류학도 여전히 그 품에 깃든 채 파닥거릴 따름이다.

 

모순과 모멸을 그득 안고 나는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으로 들어간다.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걷는다. 순국선열을 기리며 숙연한 마음을 지니는지 알 길 없지만 수많은 사람이 산책한다. 박정희 묘 앞에 선다. 음모가 작용했는지도 알 길 없지만, 마치 그 묘 하나를 쓰기 위해 국립묘지 전체가 들러리 선 듯한 규모와 위치다. 국립서울현충원 누리집 소개 글과 조선일보 글을 함께 음미하면 음울한 음모론 속으로 빠져든다. 황군 장교 출신 독재자, 그 죽음을 둘러싼 인연과 후손, 친일파들이 대거 발 뻗고 누운 천하 명당 국립묘지, 그리고 저 사신묘, 이 모두를 이어주는 풍수 이야기가 마치 지적으로 설계한대하극 같으니 말이다. 응시로 응징하고 박정희 묘에서 돌아선다.



중요한 많은 사실을 숨기고 찬양만 가득 채웠다




왼쪽 아래 있는 박정의 묘가 모든 묘를 거느리고 있는 형국이다  //네이버 지도


 

해가 서달산 서쪽 능선으로 내려앉으려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을 떠나며 헤아려 보니 서달산으로써 200m 이하 낮은 산도 스물두 개를 걸었다. 200m 이상 높은 산 스물두 개까지 합해 서울 산에 갖출 예의를 다했다. 이제부터는 마음 가는 대로 홀가분하게 떠돌아다니련다. 이 놓여남을 기리면서 한 가지 다짐을 매어둔다.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식물에 진심을 쏟아부음으로써 60대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생명 이치에 따라 공부는 곰팡이를 앞장세운 미소 생명으로 이어졌다. 공부는 숲 걷기와 한 묶음이었다. 그 숲이 제국주의 공부를 일깨워 주었다. 또한 숲은 제국주의와 함께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내게 도전해 온 화두는 바로 인류학이었다. 내가 힘입은 인류학을 넘어 나는 범주적 인류학을 꿈꾼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인간이 이룩한 모든 (서구적) 학문을 인간학이라 이름하고, 그 맞은편에 비대칭 대칭으로 인류학을 세운다는 뜻이다. “인간학은 인간 이외 모든 존재, 심지어 어느 정도는 인간까지도 사물로 대하는 학문이다. “인류학은 인간 이외 모든 존재를 사물로 대하지 않는 학문 (너머 학문)이다. 내가 글 들머리에서 말한 풍수는 바로 그런 인류학어법 중 하나다. 온 존재가 낱낱이 팡이실이 하는 초인과·초합리 서사다. 특히 제국 지배층 인간과 특권층 부역 인간이 사적 탐욕 논리로 접근하는 풍수는 인류학이 아니다. 개벽 인류학이 찐 학문으로서 세계 앞에 서려면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체제를 해석·변혁 범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인간학이 제국주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학을 응시하는 인류학도야말로 남은 날 내 정체성이다.

 

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에서 남은 날을 다짐하는 일은 삶을 단지 육중함에 잡아두지 않는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나지막이 경계 이루는 여기는 오히려 나를 경쾌함으로 놓아준다. 두 묘역을 돌아 20km가 훌쩍 넘었으니 이제 온온한 곳에 퍼지고 앉아 막걸리 한 대포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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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4-02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이 좋으니 막걸리 한 대포 시원하게 맛있게 드실 수 있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