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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ㅣ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1955년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소설에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에 대한 공개적이며 인간적인 다양한 해석과 고민을 담아냈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교를 지탱하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버팀목이기 때문에, 아무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거나 그 내용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터부다.·······로마가톨릭교회는 지체 없이 이 불온한 서적을 금서로 지정했고, 카잔차스키가 소속되었던 그리스정교회는 그를 출교시켰다.
30년 후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이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다.·······이 영화는 인간 예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구축한 교리 안에서만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예수를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신이라고 가르치며,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이단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인간의 고뇌와 완벽한 신의 모습을 둘 다 담은 ‘온전한’ 영화다. 완벽한 인간의 모습에 당황한 그들은 이 영화를 신성모독으로 낙인찍었다.(195-196쪽)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났었다고 다들 생각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 영화를 한국인 감독이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도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 했을 것입니다. 물론 우스개입니다. 왜 대뜸 우스갯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마가톨릭교회도 그리스정교회도 고위 성직자들 여럿이 모여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결정 사항을 감독을 포함한 전 세계인에게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근엄한 모자와 가운을 차려입은 고매한 성직자가 마이크 앞으로 나왔습니다. 카메라가 그 얼굴에 서서히 앵글을 맞추어갑니다. 아뿔사! 카메라에 잡힌 성직자의 얼굴, 그 얼굴이 예닐곱 살짜리 아이입니다! 바로 이 순간 과연 누가 배꼽을 잡고 웃어댈까요?
생각해보십시오. 분명히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신이라고 가르치며,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인간의 모습에 당황한 그들은 이 영화를 신성모독으로 낙인찍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완벽한 인간의 고뇌와 완벽한 신의 모습을 둘 다 담은 ‘온전한’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바에 부합했는데 저들이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신성모독으로 낙인찍고 만 것입니다. 말인즉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신이라도 완전한 신만을 드러내야 이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말을 스스로 뒤엎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그 대단한 성직자들이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 했단 말인가요?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신이라고 하는 이 이율배반의 진실을 제 입으로 말해놓고도 그 실재는 아직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치명적 고해성사입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신성모독이라 하는 것인가요? 적어도 그리스도교에서 예수가 완전한 신이기만 해도 완전한 인간이기만 해도 이단임이 확실합니다. 그야말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아닌가요?
자, 통 크게 양보합시다. 그 영화에서 인간 예수를 홀랑 다 빼고 신 예수만 남기도록 했다 칩시다. 그러면 그게 과연 예수가 완전한 신임을 보여주는 장엄한 영화입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그 예수는 그저 “비인간적” 예수일 따름입니다. 신성은 인간성으로 말미암아 장엄해지고 인간성은 신성으로 말미암아 숭고해집니다. 이 만고의 이치를 모른 채 그리스도교는 이천 년을 허송했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교에게 비대칭의 대칭, 그 오묘함은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수평선 같은 존재이니 말입니다.
아이들이 별이 된 지873일째인 어제(9월 4일) 저는 광화문 세월호광장 유가족 먼발치에서 지지단식을 했습니다. 오후에 예은 아빠 유경근 씨가 출석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교회 신도들이 왔습니다. 뭔가 아픈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끝나고 그들은 따로 모여 목회자의 인도 아래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의 수런거림이 제 관심 밖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찰나 어둑해지는 하늘에서 천둥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