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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수많은 분야 중에 어쩌다 서평 블로거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글쎄, 어쩌다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미니홈피 대용으로 쓰던 블로그를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알라딘 서재를 만났다.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분들이 상주하며 매일같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멋지고 따스해 보였다. 그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다 읽고 덮으면 그만이었던 책의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알라딘 서재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편은 아니고, 실력 있고 이름난 서평 블로거는 더더욱 아니지만, 몇 년에 걸쳐 서재를 '눈팅' 하며 (글로만, 그것도 일방적으로) 자주 뵙는 서재지기들이 몇 분 계시다. 그 중 한 분이 '다락방' 님이신데, 얼마전 책을 내셨다. 서평집, 책에 대한 책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나는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을 했다(물론 알라딘에서^^).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듯한 여인의 뒷모습과 초록빛의 멋드러진 캘리그라피를 담은 옅은 미색의 표지가 멋지다. 물론 그 안의 글은 더더욱.
다음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대목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줌파 라히리, 로맹 가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던 상대들도 떠오른다. 누군가는 그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었다고도 했다. 그들은 내가 <어둠의 왼손>을 읽으며 그릭에 대해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책을 선물해준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렸을까. (p.27)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의 선물 고르는 안목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책을 별로 안 좋아했던 탓인지, 잘 읽었다든가 그 책의 어디가 좋았다든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은 아쉽게도 없다. 언젠가는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선물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
지하철은 시험 때문에 무언가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단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을 때도 최고의 장소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지하철을 타고 얼마나 가야 하는지 따져보는 것도 기분 좋은 설렘이고, 지리멸렬한 직장 생활도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는 책 덕분에 견딜 수 있다. 지하철은 책을 읽는데 집중이 정말 잘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지하철은 나만의 작은 세계다. (pp.46-7)
나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대학교 때부터의 습관인데, 분당에서 신촌까지 1시간 반 가량의 등하교 시간을 때우기에(?) 책만한 것이 없었다(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분당선, 그리고 2호선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도 읽고,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도 읽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도 읽고, 댄 브라운 시리즈도 읽었다. 그 책들은 모두 나의 책 사랑에 자양분이 되었으며 지금도 내가 읽은 최고의 책 목록에 든다. 학교가 집에서 가까워서 지하철을 1시간 반이나 타고 갈만큼 등하교 시간이 길지 않았다면 이 모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소설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었다. 소설에서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나 표현이 나올 때마다, 나는 역시 소설가가 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pp.58-9)
나도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소설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고, 소설에서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문장을 읽거나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소설가는 하늘이 내리는 거라고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소설이 좋고, 소설가가 좋고, 소설 읽기가 좋다.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사람들은 블로그를 하다 트위터로 옮겨가고 또 재미있게 하다가 그만두고는 했다. (중략) 그런데 나는 그대로였다. 계속 읽고 썼다.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중략) 나는 그야말로 '성실'했다. 성실함의 생생한 증거였다. '아, 나는 성실하구나'. 갑자기 머리를 탁 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데 나는 하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성실하다는 말이 어쩌면 재능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pp.84-5)
나도 이 글의 마지막 세 문장과 똑같은 말을 최근에 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일을 몇 년이나, 그것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능이 아닌가. 좋아할 것, 정붙일 것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을 살고, 나이를 먹다보니 무엇 하나 끈질기게 하고 있는 것에 나도 모르게 더 애착을 가지는 것뿐일까. 나의 오랜 놀이터 알라딘서재, 그곳에서 활발히 글을 쓰는 다락방 님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무한 공감하며 읽고 있노라니 마음이 뭉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