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 무대 기획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원준의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는 '엄마'라는 키워드를 제외하면 30대 남성이 쓴 일반적인 여행책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천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루트라든지, 도보나 버스, 배편으로 불편하게 이동하며 고생하는 이야기는 배낭여행을 주제로 한 여느 여행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른살 아들의 유일한 동행자가 예순살 어머니라는 사실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서른살 남자가 여행하는 이야기야 흔하지만, 그 곁에 항상 육십이 다 된 중년의 여성이 있고, 게다가 그 사람이 엄마인 경우는 흔치 않다. 여행을 해봤자 위험 요소가 별로 없는 국내 여행, 아니면 럭셔리한 효도 관광 정도? 그런 편안한 여행을 해도 부족할 연세에 혈기왕성한 아들을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생한 어머니나,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동분서주한 아들이나 참 대단하다. 아니, 멋지고 부럽다!


책을 읽으면서 몇 달 동안 재미있게 본 <꽃보다 누나>를 종종 떠올렸다. <꽃보다 누나>를 보면 젊은 이승기는 힘이 남아도는데 윤여정, 김자옥 같은 '누님'들은 조금만 걸어도 힘에 부치고, 반나절은 누워있어야 다음 반나절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저질 체력이었는데, 이 책에도 저자와 어머니가 페이스가 맞지 않아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곤란해 하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같이 오래 산 엄마와 아들이라도 함께 여행하기란 이렇게 힘든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산 어머니와 단 둘이 여행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가족끼리 여행을 간 적도 많고, 엄마와 단 둘이 외출이나 쇼핑을 하는 적은 많지만, 여행을, 그것도 둘만 떠나는 여행을 해보지는 않았다. 만약 여행을 간다면 언제 어디로 갈까?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느낌일까? 서로에게 어떤 추억으로 남을까? 더 늦기 전에 어머니와 여행을 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참 신기하다. 읽기 전에는 '이전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 별 것 있겠어?' 싶고, 막상 읽어봐도 뻔한데, 도무지 그만 읽을 수가 없다. <빅 픽처>, <위험한 관계>, <리빙 더 월드>에 이어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2012년 작 <행복의 추구>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무대는 미국의 장례식장. 이혼 후 혼자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케이트라는 여성이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이튿날, 그녀의 앞에 새러라는 이름의 노부인이 찾아와 부모님의 오랜 친구이며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왔다고 말한다. 이 노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노부인과 케이트의 부모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새러의 이야기는 케이트를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매카시즘 광풍이 불기 직전의 혼란스런 미국 동부로 데려놓는다.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을 택한 이 소설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다른 소설들과 비슷한 듯 다르다. 독신 여성이 원나잇 스탠드로 인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힘들게 이혼을 하고 삶을 되찾는다는 줄거리는 <위험한 관계>와 비슷하고, 역시 똑똑한 독신 여성이 유부남과 사랑을 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다가 극적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는 <리빙 더 월드>와 흡사하다. 한 여자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다가 파경을 맞는다는 이야기는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 외에도 수많이 변주 되었지만, 이만큼 줄거리가 비슷비슷하고, 거기에 중산층의 몰락, 금지된 사랑, 파산 또는 돈벼락, 변호사의 도움 같은 똑같은 코드가 계속 등장한다는 점은 자기복제 같은 감이 없지 않다. 뭐 또 그게 그의 팬들이 그의 작품을 계속 찾게 만드는 매력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까지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 중 이 소설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읽은 케네디의 소설들은 대부분 현대 중산층의 생활을 그린 무난한 것들이었는데 반해, 이 작품은 배경도 과거인 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어지러운 상황과 홀로코스트, 매카시즘 광풍 같은 시대적인 요소들을 곳곳에 잘 배치했다. 특히 새러의 운명의 남자 잭이 그녀와 결별할 때 한 말이 두 사람의 첫만남을 넘어 홀로코스트 문제로 연결되는 대목에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저 대중 작가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훨씬 역량있는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저자는 매 소설에서 성공 또는 행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며, 실패나 불행의 뒷면에는 예상밖의 행운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행복의 추구>야말로 그의 생각 내지는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내가 이래서 더글라스 케네디를 막장이라고 욕하면서도 계속 읽나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기억과 친구의 기억이 조금씩 다르거나, 심지어는 전혀 달라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가령 나는 친구가 A를 좋아한다고 해서 도와줬는데, 친구는 내가 자진해서 다리를 놓은 것으로 기억하는 식이다. 누구의 기억이 진실인지 가려줄 사람마저 없는 경우, 그때까지 좋았던 추억은 진실인지 아닌지 애매하다는 이유로 빛을 바라고, 오해 내지는 혼란으로 애처롭게 전락한다.


현대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인간의 불확실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토니의 반에 어느 날 에이드리언라는 범상찮은 소년이 전학을 온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졸업 후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토니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는 에이드리언이 토니의 전 여자친구인 베로니카와 사귀기로 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토니는 베로니카에 대한 배신감과 에이드리언에 대한 질투심으로 속이 뒤틀렸지만 쿨하게 인정했고, 얼마 후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한참 후 집으로 돌아온 토니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되고,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나 노년이 되어서야 그 시절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반쪽짜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토니가 그랬듯이 내가 지금껏 진실로 여겨온 기억 또한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본, 현실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내멋대로 남을 미워하거나 욕한 적은 없는지 돌아본다. 아니, 내가 남을 미워하거나 욕했을 때 대부분이 착각 내지는 오해는 아니었을까. 혼란스럽다. 나는 이 책을 뒤에서 남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반쪽짜리 기억으로 남을 미워하고 욕하고, 그러고도 속시원하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인간의 기억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다른 식으로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친구와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 연인과의 애틋했던 시간처럼 좋았던 기억들이 백퍼센트 진실이 아니며, 그들과 온전히 공유할 수 없었다니. 내가 즐겁고 행복했던 만큼 그들도 즐겁고 행복했을까? 반대로 내가 슬펐거나 외로웠던 시간 동안 그들은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떤 관계도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없으며 이를 알고 있음에도, 기억이라는 녀석이 늘 나를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 원통하고 또 애달프다. 


이 책은 스웨덴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부커상 수상작을 읽은 건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읽다만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에 이어 세번째. 이 책을 알게 된 건 '이동진의 빨간책방' 덕분이다. 동진 님이 하도 극찬을 하셔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스럽지 않았다. 책을 읽고나서 방송을 다시 들었는데 들은 듯한 기억이 나는 대목이 하나도 없어 다시 한번 기억이라는 녀석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줄리언 반스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덧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60회째를 맞았다. 예고편부터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들은 애청자로서 기쁘고 또 뿌듯하다. 동진 님의 목소리에 푹 빠진 것도, 김중혁, 황정은, 이기호, 이승우 등 좋은 한국 작가들을 알게 된 것도, (아이폰 유저가 아닌 나는 주로 팟빵으로 듣지만)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귀에 딱지가 앉을 것처럼 팟캐스트 방송을 들어대는 것도, 그 어떤 방송을 들어도 빨책만한 것이 없어 늘 헛헛한 것도 모두 다 '빨책' 덕분(?)이다.  


어제는 동진 님이 쓰신 <밤은 책이다>를 읽었다. 산 지는 오래 되었는데, 읽고나니 빨책의 모태이자 교과서인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나 싶다. 동진 님이 쓰셨다는 점, 빨책을 제작하고 있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만든 책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무진기행>, <싱글맨>, <에브리 맨>, <그리스인 조르바>, <총, 균, 쇠>,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승우, 이기호, 무라카미 하루키 등 방송에 소개된 책이나 출연한 또는 소개된 작가들의 책이 다수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빨책과 뗄려야 뗄 수 없다. 심지어는 '흑임자' 중혁 작가 님의 소설 <미스터 모노레일>까지도(이 때는 두 분이 각각 '적임자', '흑임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셨을까?)!
 

동진 님이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안경을 쓰게 된 이유도 나와 있다.


어느 날, 쓰던 안경테가 부러져서 동네 안경점을 찾았습니다. 이전처럼 검은색이나 갈색의 뿔테 혹은 은테 안경들을 진열대에서 훑어나가는데 갑자기 빨간색 뿔테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튀지 않는 안경테 몇 개를 걸쳐보며 거울을 보다가 그 빨간 테도 슬쩍 써보았어요. 거울 속의 제 모습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보이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곧 빨간 테를 벗어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튀는 안경테를 어떻게 써?'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중략) 

하지만 이어서 '왜 안 돼?'라는 반문이 스스로 들더군요. 직장까지 그만둔 상황에서 대체 누가, 무엇이 신경쓰이길래 쓰고 싶은 안경테도 못사는가, 싶었던 것이지요. 결국 과감하게 그 안경테를 샀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울한 나날들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변화의 순간은 일종의 의식을 필요로 할 때가 많은데, 말하자면 제게 그 의식은 빨간 테 안경을 사는 일이었던 셈이지요. (p.27)

'빨간책방'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가 동진 님의 상징인 빨간 안경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동진 님에게 '빨간 안경'과의 만남이 있다면, 나에겐 얼마 전 블로그에도 소개한 '숏 헤어'와의 만남이 있다. 스물아홉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본 짧은 머리. 이번엔 안경테를 바꿔볼까?


이 책은 형식 자체는 흔한 서평집이지만, (빨책이 그렇듯이) 문학뿐 아니라 비문학 도서의 비중이 높고, 덜 알려진 교양서도 여러 권 소개해줘서 좋았다. 저자의 글은 길지 않지만 유려하고, 소개된 책의 인용이 해당 책의 문체와 분위기를 알게 할 만큼 넉넉히 길어서 좋았다. 빨책 애청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고, 방송에 소개된 책에 대한 글은 복습 차원에서 읽고, 소개되지 않은 책에 대한 글은 앞으로 소개될 만한 책을 예측하는 재미로 읽어도 좋겠다. 


'책, 임자를 만나다' 만큼이나 동진 님이 최근에 산 책을 소개하는 '내가 산 책' 코너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동진 님의 책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밤은 책이다>가 2권, 3권 시리즈로 나와주면 좋을텐데. 어떻게 안 될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수많은 분야 중에 어쩌다 서평 블로거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글쎄, 어쩌다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미니홈피 대용으로 쓰던 블로그를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알라딘 서재를 만났다.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 분들이 상주하며 매일같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멋지고 따스해 보였다. 그 때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다 읽고 덮으면 그만이었던 책의 서평을 쓰기 시작한 건.

 

 

알라딘 서재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편은 아니고, 실력 있고 이름난 서평 블로거는 더더욱 아니지만, 몇 년에 걸쳐 서재를 '눈팅' 하며 (글로만, 그것도 일방적으로) 자주 뵙는 서재지기들이 몇 분 계시다. 그 중 한 분이 '다락방' 님이신데, 얼마전 책을 내셨다. 서평집, 책에 대한 책이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나는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을 했다(물론 알라딘에서^^).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듯한 여인의 뒷모습과 초록빛의 멋드러진 캘리그라피를 담은 옅은 미색의 표지가 멋지다. 물론 그 안의 글은 더더욱.    

 

 

다음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대목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다니엘 글라타우어, 줌파 라히리, 로맹 가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던 상대들도 떠오른다. 누군가는 그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었다고도 했다. 그들은 내가 <어둠의 왼손>을 읽으며 그릭에 대해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책을 선물해준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렸을까. (p.27)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의 선물 고르는 안목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책을 별로 안 좋아했던 탓인지, 잘 읽었다든가 그 책의 어디가 좋았다든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은 아쉽게도 없다. 언젠가는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선물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

 

 

 

지하철은 시험 때문에 무언가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단지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을 때도 최고의 장소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지하철을 타고 얼마나 가야 하는지 따져보는 것도 기분 좋은 설렘이고, 지리멸렬한 직장 생활도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읽는 책 덕분에 견딜 수 있다. 지하철은 책을 읽는데 집중이 정말 잘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지하철은 나만의 작은 세계다. (pp.46-7)

 

나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대학교 때부터의 습관인데, 분당에서 신촌까지 1시간 반 가량의 등하교 시간을 때우기에(?) 책만한 것이 없었다(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분당선, 그리고 2호선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도 읽고,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도 읽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도 읽고, 댄 브라운 시리즈도 읽었다. 그 책들은 모두 나의 책 사랑에 자양분이 되었으며 지금도 내가 읽은 최고의 책 목록에 든다. 학교가 집에서 가까워서 지하철을 1시간 반이나 타고 갈만큼 등하교 시간이 길지 않았다면 이 모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소설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었다. 소설에서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나 표현이 나올 때마다, 나는 역시 소설가가 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pp.58-9)

 

나도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게 소설을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소설을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잘하는 사람이고, 소설에서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문장을 읽거나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소설가는 하늘이 내리는 거라고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소설이 좋고, 소설가가 좋고, 소설 읽기가 좋다.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사람들은 블로그를 하다 트위터로 옮겨가고 또 재미있게 하다가 그만두고는 했다. (중략) 그런데 나는 그대로였다. 계속 읽고 썼다.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중략) 나는 그야말로 '성실'했다. 성실함의 생생한 증거였다. '아, 나는 성실하구나'. 갑자기 머리를 탁 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데 나는 하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성실하다는 말이 어쩌면 재능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pp.84-5) 

 

나도 이 글의 마지막 세 문장과 똑같은 말을 최근에 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 일을 몇 년이나, 그것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능이 아닌가. 좋아할 것, 정붙일 것이 점점 없어지는 세상을 살고, 나이를 먹다보니 무엇 하나 끈질기게 하고 있는 것에 나도 모르게 더 애착을 가지는 것뿐일까. 나의 오랜 놀이터 알라딘서재, 그곳에서 활발히 글을 쓰는 다락방 님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무한 공감하며 읽고 있노라니 마음이 뭉클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