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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추억 전당포 ㅣ 스토리콜렉터 11
요시노 마리코 지음, 박선영 옮김 / 북로드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속상한 날이었다. 친구가 결혼을 하는데 가지도 못하고, 나보다 어려 보이는 수험자들 사이에서 시험을 보고... 어른이 되는 기준이 취업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면 난 아직도 애. 나이만 먹은, 몸만 큰 애 같은 기분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그 책이 바로 이 책 <반짝반짝 전당포>였다.
<반짝반짝 전당포>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다. 부모님의 간섭이 귀찮고, 친구 때문에 고민하고, 애정 문제에는 한없이 서툰, 아주 보통의 아이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소녀가 리카다. 신문부원이자 우등생인 리카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주도적인 역할이고 어른들에게는 싹싹하고 착한 여학생이다. 리카가 사는 마을에는 아이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바로 '추억전당포'. 이 곳의 마녀에게 추억을 맡기면 그만큼 돈을 주는, 말 그대로 추억을 받는 전당포인 셈이다. 이 곳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무살이 되면 이 곳에 관한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이 곳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런 식으로 이 곳은 아이들 사이에만 공유되는 비밀로 남을 수 있었다.
마을 아이들 모두가 이 곳의 존재를 알고 있고 게임기나 간식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면 추억을 팔고 돈을 받으며 이 곳을 이용했지만, 리카만은 이 곳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돌하게도 학교 신문부의 이름으로 마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캐물었다. 그런 리카가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믿고 싶지 않았던 '추억전당포'의 단골 손님이 되고, 여전히 추억은 팔지 않지만 마녀와의 우정을 쌓으면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아이들이 추억을 팔아 돈을 버는 모습은, 어른들이 돈을 버느라 아이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잊어가는 것에 대한 일종의 비유가 아닐까 싶었다. 추억전당포를 드나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날 만큼 불쾌한데도, 현실의 어른들이 그런 식으로 사는 모습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주는 면죄부일까, 어른이 만드는 변명일까.
그에 반해 리카가 '추억전당포'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과정은, 무리해서 어른이 되려 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아이로서의 순수함을 지키면서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어른이 되겠다는 자각을 해나가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성적이 비슷하고 성격도 얼추 맞는 - 소위 비슷한 그룹의 친구 대신 겉모습은 달라도 마음이 잘 통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친구 메이를 사귀게 되는 과정과 남자친구 유키나리와의 비틀린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리카가 전에 비해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리카가 예전의 모습 그대로 거짓된 관계를 이어나가고 무리해서 어른이 되려고 애썼다면 그토록 소중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설픈 아이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이였을 때 어른인 척 하느리 좀 더 느긋하게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나는 리카가 학창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신문부라는 것도 그렇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을 신경 쓰며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아이들이 모두 믿는 '추억전당포'의 존재를 본인만은 믿지 않고 오히려 의심하고 추궁하는 당돌한 성격도 그렇다. 메이 같은 친구를 동경한 점, 게다가 자기와 다른 성격의, 냉정하지만 솔직한 소년 유키나리에게 끌린 점까지도 똑같다. 그리고 나에게도 '추억전당포' 처럼 눈을 돌리면 언제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가 있다. 그래서 리카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채로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듯이, 어쩌면 나에게도 지금의 이 늦되고 오랜 성장통이 헛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