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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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즐겨 보지 않는 내가 오랜만에 드라마에 푹 빠졌다. 바로 장안의 화제 <응답하라 1997>. 1997년에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즉 '초딩'이었으니 드라마 속 고등학생들과 같은 세대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주변에도 H.O.T와 젝스키스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있었고, <슬램덩크>와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와 <오디션>을 보았고, '양파'라는 이름이 신기했고, '얼굴 없는 가수' 조성모의 얼굴이 궁금했고, <별은 내 가슴에>와 <신데렐라>를 모두 본방사수했던, 세상 일에(주로 연예계) 관심 많은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무척 공감하며 보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그 때 그 시절의 풍경과 유행했던 것들을 보면서 새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은 그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일단 몸이 변했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주변 사람들, 세상을 보는 눈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다행히도 이제까지 살면서 인생을 좌우할 만한 큰 사고나 사건은 없었지만, 그 때로부터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 곁을 작은 바람들이 무수히 지나며 내 몸을 수없이 흔들었던 탓일까.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의 신작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바로 이런 - 아이가 어른으로 커가면서 느끼는 성장통과, 겉만 자란 '어른아이'들의 고민에 관한 책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내용이나 구성만으로 보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주로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 20대 청춘들이 대상이라면, 이 책은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층, 그리고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아직도 아잇적 상처를 안고 있는 직장인, 은퇴자, 전업주부 등 다양한 연령과 계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 책에는 어른이 되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위기와 시련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느끼는 무력감,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지 못하고, 함께 있고 싶은데 함께 있지 못하는 데서 느끼는 쓸쓸함, 여자라서, 남자라서 느끼는 한계... 그 모든 시련들을 저자 김난도는 '바람'이라고 명명하고, 이 바람들을 견뎌냄으로써 튼튼한 고목으로,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보니 자연히 이제까지 나를 흔들었던 무수히 많은 작은 바람들이 떠올랐다. 중학교 운동장에서 친구와 배드민턴 실기 연습을 할 때 셔틀콕을 싣고 날라주었던 바람, 방송반 모임을 마치고 교문 앞에서 친구들과 붕어빵을 사먹을 때 차갑게 불어댔던 야속한 바람, 입시제도가 추첨제로 바뀌는 바람에 1지망으로 썼던 고등학교는 떨어지고 16 지망으로 썼던 고등학교에 붙어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입학식에 참석했던 날에 불어왔던 바람, 대학교 첫 엠티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불었던 바람, 알바 끝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불었던 바람, 소중했던 사람과 함께 걸으며 맞았던 바람, 마지막으로 본 날 불었던 바람, 바람...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서정주의 유명한 싯구처럼, 나를 키운 것 역시 팔할은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바람으로 인해 내가 전보다 더 단단하게 여물어지고 성숙해졌다는 것. 지금 불고 있는 바람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그 때의 흔들림이 '지극히 당연한 어른 되기의 여정' 이었다는 저자의 말을 믿어보고 싶다.

 

 

 


사실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을 때만 해도 란도쌤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 법대 출신에 교수라는 위치에 있는 분인 만큼 나 같은 ‘잉여 청춘’에 대한 시각이 보통 사람들과 같지 않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신간을 읽으면서 란도쌤도 전셋집 구하느라 애먹고, 부모님 생각에 아프고, 자식 걱정을 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 엿보여서 재미있기도 하고, 따뜻하고 정감 있게 느껴졌다.

 


돌아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이 전문 분야나 업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어떤 직업인, 사회인이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선생님께서 생활에 대해,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를 계속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청춘은 젊음이 자연스레 가져다주었는지 모르지만 어른은 다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학교를 졸업한다고, 절로 어른이 되진 않습니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흔들리며 조금씩 삶을 배워나가면서, 꼭 그만큼씩만 어른이 됩니다. (p.9)

 

지금 취업을 못 하고 있다고 해서 인생이 멈춰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버스는 가고 있습니다. 다만 서서 가야 하다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p.34)

 

'아, 내 안에 아직도 열지 않은 서랍이 많구나.'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조심스럽게 자기 내면의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고, 또 그 안에 새로운 것을 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p.52)

 

내가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면서 더 풍요한 존재가 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의 평판이 아니라, 나라는 이름의 초인에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시도들이 나의 가치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시도하는 그 무엇이다. (p.82)

 

꿈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가는 건 항상 당신 자신이다. (p.98)


우리는 서로에게 달 같은 존재다. 계속 같은 반구만 보여준다. 가장 밝은 면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어두운 뒷면은 볼 수가 없다. 내 어둠을 아는 것은 나뿐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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