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 촌놈들의 전성시대 응답하라
오승희 지음, 이우정 극본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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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거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있었다.


1994년에 나는 고작 아홉 살이었지만 대한민국을 뒤흔든 '농구대잔치'의 인기는 알고 있었다. 손지창, 장동건, 심은하 주연의 드라마 <마지막 승부>도 부모님 옆에서 재미있게 보았고, 지금은 폐간된 '나나'라는 만화 잡지에 연세대 농구부 선수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R.e.f 같은 그룹들과 나란히 소개되어 있던 것도 기억한다. 그만큼 연세대 농구부의 인기는 '핫' 했고, 나는 멋대로 '연세대=멋있는 오빠들이 다니는 학교 =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며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을 키웠다.
 

그 때 그 시절,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 나정 역시 연세대 농구부에 빠져있었다. 그것도 광적으로. 하나뿐인 딸이 이상민을 좋아하다 연세대에 입학하자 나정의 부모님은 아예 학교 앞에 '신촌하숙'을 차렸다. 그리고 이곳에 나정과 쓰레기, 칠봉이, 정대만, 해태, 장국영, 빙그레, 모두 일곱 명의 청춘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게 된다. 



소설 <응답하라 1994>의 원작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작년 한해를 휩쓴 '응사 열풍'의 핵인 동명 드라마다. 전작 <응답하라 1997>은 드라마도 보고 소설도 읽었는데, <응답하라 1994>는 드라마는 못 보고 소설만 읽었다(드라마 응사를 안 본 이유는 단 하나, 인피니트의 호야가 안 나와서다 ㅎㅎㅎ).


드라마 내용을 몰라도, 스무살 그 파릇파릇하고도 뜨거운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공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하숙을 한 적도 없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타 지역에서 서울에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색함과 설렘을 알고 있고, 내맘처럼 안되는 첫사랑에 좌절하고, 어른이 되려고 발버둥치던 때의 고통 같은 것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꼭 내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내가 아홉살 때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로 보았던 신촌에서의 캠퍼스 라이프를 다시 볼 수 있었다는 것. 어린 시절에 <마지막 승부>, 학창 시절에 <남자 셋 여자 셋>, <뉴 논스톱> 등을 보며 키웠던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내가 꿈꿨던 대학 생활은 밤새 술마시고 노는 것도 아니요, 스펙 열풍에 휘둘리는 것도 아니요, 부딪치고 깨져도 계속 도전하는 젊음과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청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걸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서, 드라마에 이어 소설까지 응사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의 재미와 감동을 활자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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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 파격과 야성의 요리사 열전
후안 모레노 지음, 미르코 탈리에르초 사진, 장혜경 옮김, 박찬일 감수 / 반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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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하면 새하얀 복장에 천장에 닿을 듯 높다란 모자를 쓰고 오성급 호텔 레스토랑을 전두지휘하는 우아한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으리라. 외국방송 좀 본다 하는 사람이라면 '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처럼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욕을 바가지로 쏟아내는 거친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있다. 요리의, 요리에 의한, 요리를 위한 삶을 사는 철저한 요리인이라는 점.


삶의 모습은 좀 달라도 독일 저널리스트 후안 모레노가 쓴 <날 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에 소개된 열일곱 명의 요리사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레스토랑 '라오스'의 셰프 프랭크 팰레그리노는 부나 명예보다도 요리가 우선이다. 심지어는 단골손님만 받는 정책 탓에 세계적인 가수 마돈나는 물론 전직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도 자리를 못 받았다고. 한때는 악명 높은 이탈리아 마피아 갱단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는 이 레스토랑의 요리를 먹으려면 적어도 현직 미국 대통령이나 교황 정도는 되야겠다.


50만 명을 학살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의 전속 요리사였던 오톤데 오데라는 어떨까.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돌만큼 무시무시한 독재자가 그에겐 그저 하루 세끼 요리를 대접하는 손님에 불과했다는데, 이는 이디 아민의 보호 아래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요리사로서의 직업 정신 내지는 자부심같은 것일까. 어찌됐든 '괴물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기란 어땠나?', '왜 그를 암살하지 않았나?' 같은 질문에 쉬이 대답할 수 없음이 그가 평생 치를 죗값이라면 죗값일 테다.


이밖에도 시위 현장마다 따라다니며 보급할 요리를 만드는 독일 요리사, 알프스 두메산골 게스트 하우스에서 평생 요리를 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남편, 자식을 위해서는 요리를 할 수 없었던 스위스 할머니, 밖에서는 약 중독자, 감옥에서는 요리 중독자로 사는 요리사, 200명의 사형수에게 마지막 식사를 만들어준 미국 요리사까지, 맛있는 요리 저편에 가려져 있던 세계 곳곳의 요리사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보너스로 그들의 대표 메뉴 레시피까지 ^^


날 것의 재료를 맛있는 요리로 만드는 재주는 그저 요리학교나 선배 요리사에게 배운 기술만으로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음식에 대한 애정과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 나아가 먹음으로써 이어지는 인생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그들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셰프로 만든 것이 아닐까. 마피아, 마약보다도 독한 이들 요리사들의 인생 이야기가 의외로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던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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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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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다섯 시부터 한 시간 동안 방송되는 EBS 라디오 <화제의 베스트셀러>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듣는다. 타이틀대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베스트셀러를 한 시간 동안 아나운서와 성우 두 분이 낭독하는 방송인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제3인류> 등 인기 작품 위주인 데다가 텍스트로 된 소설을 음성으로 듣는 재미가 쏠쏠해서 즐겨 듣고 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도 이 방송의 낭독을 듣고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배우 이보영 씨가 지금은 없어진 <달빛프린스>라는 프로그램에 애독서로 소개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내용을 알기 전에는 읽지 않는 편이라 관심을 두지 않다가 낭독을 들으면서 흥미를 느꼈다.


줄거리는 간결하다.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는 자신의 진료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행복의 비결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 역시 정신과 의사 출신이라고 하는데 본인의 이야기일까? 백퍼센트 픽션은 아닐 것 같다.


꾸뻬 씨가 찾은 행복의 비결 역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그러나 잊고 살기 쉬운) 행복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등등 무엇 하나 특별하거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은 흔히 돈이나 부동산 같은 물질이나 사회적 명예가 행복의 동의어라고 착각하지만, 꾸뻬 씨가 찾은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나 채소밭을 가꾸는 것 같은 아주 소박한 것들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는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리는(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정신과 의사 출신의 프랑수아 를로르의 이야기이니 믿어볼 만하다.


동화 <파랑새>의 교훈처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어떤 행복은 가까울 때보다 멀리 있을 때 더 잘 보이고 잘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당장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가 여의치 않다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으로 대신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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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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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역시 같은 미스터리 소설이라도 범죄자의 심리를 그린 것보다는 형사나 탐정 등 범죄자를 잡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걸 좋아하나 보다. 같은 요 네스뵈가 쓴 소설인 <스노우 맨>은 퍽 재미있게 읽었는데(주인공은 '해리 홀레'라는 형사다), <헤드헌터>는 썩 재밌지 않았다.

 
도입부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떠올리게 할 만큼 흥미진진했다.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 로게르 브론.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밤이 되면 미술품 절도를 일삼는 범죄자라는 사실(천사소녀 네티?). 그런 그에게 비밀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생애 최고의 기회가 찾아온다. 자신에게 채용을 의뢰한 회사의 CEO 후보가 유명 화가의 사라진 명작을 소장하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된 것! 이는 헤드헌터로서도, 미술품 절도꾼으로서도 대박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기회를 잡으려는 순간,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중년 남성이 갑자기 삶의 전환을 맞이한다는 설정까지도 <빅 픽처>와 비슷하다.


그런데 반전이 드러나면서부터 이야기는 급격히 지루해졌다. 일단 범죄자였던 주인공이 왜 갑자기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불리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 안이하고 너무 쉽게 해결되는 감이 없지 않았다. 미스터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설이라는 느낌? 범죄자가 범죄의 표적으로 입장이 바뀌었다가 다시 완전범죄를 만든다는 설정 자체는 특이하지만, 그러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후반부가 전반부에 비해 덜 재미있었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읽은 <심플 플랜>도 비슷한 내용인데 재미가 없었다. 내가 이런 내용이나 구성을 별로 안 좋아하나보다. '해리 홀레 시리즈'나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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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책상 - 꿈꾸는 청춘을 위한 젊은 시인들의 몽상법
김경주 외 지음, 허남준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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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책 쓰는 사람들, 책 만드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자연히 궁금해진다. 소설가, 편집자에 이어 이번에 내 눈길을 끌어당긴 이들은 바로 시인. 계기는 <시인의 책상>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참여한 시인은 자그마치 열 명. 김경주, 김승일, 박성준, 박진성, 서효인, 오은, 유희경, 이이체, 최정진, 황인찬 등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시인들이라고 한다.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것 말고 이들을 연결하는 모티프는 바로 '책상'. 왜 하필 책상일까 생각해 봤더니, 시를 쓰는 행위는 흰 종이와 연필, 그리고 그것들을 대고 쓸 책상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그마저도 필요 없다고 이불 위에 드러누워 쓰거나 밥상으로 대신하는 이들도 몇 명 있기는 했다).


설명할 수 없는 적요와 무수한 이미지의 제국으로 만들어진 
글쓰기의 영토 안에서 자신의 글을 써나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특별한 탄생을 글쓰기의 경험 안에서 만들어간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 경우 책상이란 존재는 마치 처음 흔들려본 요람처럼 자신의 숨소리를 듣는 
고요하고 무구한 경험의 장소라고 믿을 수밖에. (p.73)


시를 써본 적도 없거니와 시인을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한글을 겨우 뗀 꼬꼬마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상 위에서 꿈을 꾸고 꿈을 쓰던 그들의 이야기가 무척 공감되었다. 책상과 흰 종이, 연필만 있으면 그 어떤 친구나 장난감도 부럽지 않았던 내 유년 시절과, 그 때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네들의 그것과 퍽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그들의 책상보다도 나는 책장이 부러웠다. 빽빽하게 꽂힌 엄청난 양의 장서들이라니. 장서의 양이 다르다는 점 말고도 차이점은 그네들의 책장에는 시집이 많이 꽂혀있는 반면 내 책장엔 단 한 권도 없다는 것. 내가 그동안 얼마나 시를 멀리 했는지, 시심(詩心)없는 메마른 삶을 살았는지를 여실히 느꼈다. 그래서 내 책상은 이렇게 썰렁하고 황량한 걸까. 그들의 따뜻하고 풍요로운 책상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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